이번 취재를 하면서 정말 화가 났던 순간이 있습니다.

경기도의회 의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한 뒤였습니다. 본회의 날 직접 만나러 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뒤에야 ‘홍보팀을 통하라’는 짧은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홍보팀이 전해준 ‘공식’ 입장은 짤막했습니다.

“유족의 뜻에 따라 언론 인터뷰는 응할 수 없습니다.”

경기도의회로 찾아가 만난 김진경 의장. 그는 수행 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대답 없이 떠났습니다. ⓒ셜록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방의회 청렴 수준 향상을 위한” 지방의회 국외출장 실태점검 결과를 발표한 때가 2024년 12월. ‘항공권 조작을 통한 항공운임 과다 청구’ 등 위법 사실이 드러난 지방의회들에 대해 수사 의뢰가 이뤄졌습니다. 경기도의회도 그중 하나였고요.

그리고,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1월, 경찰 수사를 받던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경찰서에 출석 조사를 받고 난 다음 날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의아함에 휩싸였습니다. 어째서 국외출장을 다녀온 의원들이 아니라, 실무 담당 공무원만 수사를 받게 된 건지.

공무원 사망 후 경기도의회 의장은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참담”, “명복”, “위로” 같은 낱말이 들어 있었지만, 중요한 맥락이 빠져 있었습니다. ‘항공료 부풀리기’는 의원님들을 더 먼 나라로, 더 잘 모시기 위해 행해진 일이란 사실, 문제의 국외출장을 통해 이익을 본 ‘수혜자’는 바로 의원들이란 사실 말입니다.

그런데 돈을 쓴 의원들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 돈을 만들어준 공무원만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유족의 뜻’을 방패막이 삼아 취재를 거부했습니다. 이게 정말 고인의 명예를 지키고 유족을 위로하는 일일까요?

경기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경기도의회. 의원 수 156석으로 전국 최대의 지방의회입니다. ⓒ셜록

애당초 우리가 바라는 건, 고인을 향해 무슨 말을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답을 기다리는 건 국민들입니다.

‘공짜여행’을 다녀온 의원들은 이번 6․3 지방선거에 또 출마했습니다. 유권자들은 ‘항공료 부풀리기’를 통해 유럽으로 국외출장을 갔다온 의원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또 투표를 하게 될 겁니다. 그리그 그 의원들 중 일부는 다시 의원이 되거나, ‘끕’을 높여 군수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마음속에는 아주 불쾌한 의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족의 뜻”을 운운하며 침묵하는 의원들이 정말로 걱정하고 있는 건, 바로 본인들의 ‘당선’뿐일 거라는.

근거 없는 의심은 아닙니다. 취재 도중 다른 지방의회의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선거 앞두고 있어서 절박하고, 당선 이후에, 잘못된 게 있다고 하면 사과하겠습니다. 당선 이후에.”

권익위 실태조사에서 ‘항공료 부풀리기’로 적발된 사례는 전국적으로 모두 405건이나 됩니다. 과다청구 금액은 약 18억 8000만 원으로 조사됐습니다.

권익위 보고서에 소개된 ‘대표 사례’ 중 첫 번째가 바로 충남도의회였습니다. 유럽으로 국외출장을 가면서, 무려 1700만 원 이상의 예산을 ‘뻥튀기’했다고 권익위는 밝혔습니다. 아마도 금액 면에서 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선 이후에 사과하겠다’라는 말. 공개 사과하라는 우리의 요구에, 한 충남도의회 의원이 해준 답변입니다. 문제의 국외출장을 갔다 온 충남도의회 의원들도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유권자들은 그게 누구인지도 모른 채 또 그들에게 표를 주게 생겼습니다.

군수 선거에 출마한 한 충남도의원의 선거사무소 앞 “당선 기원” 화환들 ⓒ셜록

‘아무것도 몰랐다. 법적으로 문제없다.’
‘(의원이 아니라) 제도와 관행의 문제다.’
‘의회 차원에서 사과했다.’

일부 의원들은 적극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 유권자 5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지방의원의 해외연수(국외출장)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데 무려 70.4%가 찬성했습니다. 국민들이 불신이 이토록 깊은 데는 ‘문제가 있을 때만 적당히 넘어가면 된다’는 지방의회의 태도가 한몫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꼭 알아야겠습니다. 의원들이 유럽에서 쓰고 온 돈은 모두 국민들의 세금이니까요. 의원들의 어떤 항변도, 정치의 주인인 국민의 알 권리보다 크지 않으니까요.

실무 공무원은 경찰 수사를 받고 징계와 처벌의 위기에 놓인 동안, 의원들은 아무도 모르게 또 선거에 나와 재선을 노리고 있는 상황. 이건 정의도 아니고, 공정도 상식도 아니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정치가 아닙니다. 정치인에겐 법적 책임만 있는 게 아닙니다. 가장 크고 무거운 책임인 ‘정치적 책임’이 있습니다.

‘대답 없는’ 의원님들을 찾아갔습니다. 경기도의회 본회의장 앞에서 의원들을 기다리는 조아영 기자와, 그 앞을 지나가는 다른 의원들. ⓒ셜록

한 공무원의 안타까운 죽음까지 초래한 국외출장의 수혜자, 경기도의회 의원 9명.
권익위 보고서 맨 앞 장을 차지한 ‘1700만 원 뻥튀기’ 국외출장의 수혜자, 충남도의회 의원 7명.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모두 공개하겠습니다. 머리 숙여 사과하고 다시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길 바랍니다. 그리고 의회는 문제가 된 국외출장비, 국민들의 세금을 즉각 환수하십시오.

‘선거가 절박해서 당선 이후에 사과하겠다’고 한 의원이 있었죠? 국민들은 더 절박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던진 표가 또 당신 같은 정치인에게 갈까봐 절박합니다. 우리 정치의 ‘품질’을 높일 기회를 또 한 번 놓치게 될까봐 절박합니다.

그래서 더 절박하게, 의원에겐 의원다운, 의회에겐 의회다운 ‘정치적 책임’을 묻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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