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요. 어제 뉴스 봤어요. 진작 이렇게 됐으면….”

지난달 29일 만난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의 말. 기자가 ‘그 사장’의 구속 소식을 언급하자 돌아온 대답이다. 안도의 미소는 잠깐. 금세 그의 얼굴엔 짙은 안타까움이 번진다. 그가 말줄임표 뒤에 잇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이랬을 거다.

“진작 이렇게 됐으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텐데.”

‘뚤시’의 영정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이주노조 제공

첫 번째 남자의 이름은 뚤시 뿐 머걸(Tulsi Pun Magar). 스물일곱 살 네팔 청년인 그는 지난 2월 22일 새벽, 이역만리 한국 땅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에 온 지 불과 6개월. 전남 영암군에 있는 공장형 돼지농장에서 일했다. 모두 20명의 이주노동자가 고용됐는데, 그중 19명이 네팔 출신이었다.

뚤시가 죽고 나서야 봇물처럼 터져나온 증언. 사장과 팀장의 폭언과 폭행이 있었다는 거였다. 이유는 사소하고 다양했다. 일하다 힘들어서 잠깐 앉았다고, 쓰레기를 안 주웠다고,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고, 사장이 말하는데 웃었다고, 멱살을 잡거나 연필 등으로 가슴을 찔렀다.

괴롭힘은 CCTV가 비추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많이 일어났다.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욕설을 듣거나 멱살을 잡히며, 노동자들은 모멸감에 시달렸다.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사장은 임금을 삭감하는 내용으로 계약서를 다시 쓴 다음 서명을 강요했다.

계속되는 폭언과 폭행에 노동자들의 심신은 피폐해졌다. 농장에서 일한 지 수개월 만에 몸무게가 5kg 이상 빠진 사람도 여럿이었다. 그들은 이곳 농장을 ‘감옥’이라 불렀다.

버티지 못한 이들은 ‘감옥’을 탈출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농장을 떠난 이주노동자는 28명. 버티지도 탈출하지도 못한 한 명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스물일곱 살 청년 뚤시 뿐 머걸.

뚤시가 죽자 사장은 유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그의 급여통장에 ‘위로금’ 1000만 원과 장례비 100만 원을 입금했다. 사장은 지난달 28일, 폭행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자살 직전의 노동자들이 수두룩해요.”

지난 3월 인터뷰를 위해 만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그는 뚤시와 같은 네팔 출신이다. 그는 뚤시의 죽음 이후 서울과 전남 곳곳을 오가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죽음을 계기로, 슬픔을 무기로 싸우는 건 그에게 너무 자주 반복돼온 ‘참담한 팩트’다.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에서 숨진 네팔인 중 사망원인 1위가 바로 ‘자살’. 2008~2024년 사망자 259명 중 무려 27%, 70명이 자살했다.

사망원인 2위도 충격적이다. 25%(65명)는 ‘원인 불명’. 3위는 산업재해(12%, 30명)였다.(주한네팔대사관 통계, ‘2024 이주노동자 생명 살리는 자살예방 국제포럼’ 재인용)

뚤시가 숨진 뒤, 이주인권 활동가들은 농장을 찾아가 그의 동료들을 만났다 ⓒ이주노조 제공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실망 때문이에요, 실망.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 가면 돈 많~이 벌 수 있다, 아주 쉽~게.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와요. 한국에 대해 솔직히 얘기하는 사람 별로 없어요.”

자살 통계 이야기가 나오자 우다야 라이 위원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국을 ‘꿈의 나라’, ‘1등 나라’라 생각하는 네팔 사람들. 하지만 막상 한국에서 겪는 현실은 그들의 꿈과 너무도 다르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인권침해, 사회적 차별과 외로움까지.

“네팔에서부터 철저히 교육받고 와요. ‘사장 얘기 잘 들어야 된다, 찍소리 하면 안 된다, 사장이 때려도 참아, 사장한테 잘 보여야 돼.’ 그러니까 일하다 갈비뼈가 ‘터져도’ 병원에 안 가는 거예요. 저항 못해요. 저항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곳이 없어요.”

차별을 합리화하는 시선은 한국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돈 벌러 왔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 K-드라마와 K-팝을 통해 상상해온 따사로운 환대는 사라지고, “싫으면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서늘한 차별의 문장만 그들 앞에 남는다.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심각해지는 위험의 이주화로 인해 죽음(Death)이 더해진 4D라고까지 합니다.(우다야 라이, ‘전남 이주노동자 정책제도 개선 토론회’ 2025. 4. 16.)

천국의 꿈을 꾸다가 지옥의 현실로 떨어진다. 그 낙차만큼 마음에는 충격과 상처가 남는다. 그곳에서부터 마음의 병이 시작되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최악의 결말로 끝나기도 한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또 다른 자살 사례를 소개했다. 네팔에서 경찰로 일하던 청년이었다. 사람들의 존경을 두려움을 동시에 받는 직업. 하지만 ‘한 살짜리 딸의 미래를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경남 밀양에 있는 어느 농장에서 일한 지 일주일 만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한국과 네팔, 어느 나라의 신문에도 실리지 않았다.

“지금도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살려주세요’ 문자메시지가 오고, 울면서 전화가 온다”고 말하던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책상까지 쾅 내리치며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꿈의 나라, 1등 나라에서 이렇게 당하니까 더 이상 미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해서 죽어요. 네팔 사람들도 (자살을) 감추려고 해요. 도리어 ‘한국같이 좋은 나라에 가서 왜 자살을 해?’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OECD 자살률 1위 나라다’라고 통계까지 보여줘도 쳐다보지도 않아요. ‘이건 사회문제야! 개인의 문제가 아니야!’ 이렇게 얘기하는데도.”

이주노동자 자살 사건을 보도한 기사 제목들. 신문에 실리지 않는 죽음은 더 많다. ⓒ셜록

그의 말처럼 이주노동자 자살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국가만의 문제도 아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8~2022년 이주민 변사자 수는 모두 3220명. 그 중 21.9%에 이르는 704명의 사망원인이 ‘자살’이었다.(<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 재인용, 국가인권위원회, 2024년)

서미화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이 입수한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 6월까지 고용허가제(E-9비자) 이주노동자 사망자 중 10%가 ‘자살’ 사망자였다. 315명 중 32명. 산재 사망자 비율(11%, 36명)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2024 이주노동자 생명 살리는 자살예방 국제포럼’ 재인용)

현재 스리랑카에서 온 이주노동자 자살 사례만 두 달에 1~2명씩 발생하고 있습니다. (…) 작년에만 해도 폐소공포증 등 정신질환으로 이주노동자 10~15명과 함께 병원에 가서 치료받았습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아직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질병을 인정하지 않거나, 병원에 가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 상태가 방치되면 자해, 자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마하보디사 이주민쉼터 우연스님 발제문 중, ‘2024 이주노동자 생명 살리는 자살예방 국제포럼’ 2024. 10. 16.)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도 20년이 넘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수는 144만 명을 넘어섰다(2023년 기준, 미등록 포함). 하지만 이주노동자 자살 통계나 정신건강 실태조사는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진행된 바 없다.

다행히 민간에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가 있다. (사)한국이주민건강협회 위프렌즈는 지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네팔, 미얀마, 중국, 베트남, 태국, 스리랑카, 캄보디아 7개국 출신 414명의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는 예상대로(?) 심각했다. 2024년 조사 결과 24.1%에서 ‘자살사고’가 발견됐다. 212명 중 51명이다. 자살을 구체적으로 계획한 사람은 7명. 시도한 사람도 6명이나 있었다.

“일도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하고 임금도 적게 받고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는데. 이제 어디 도움 요청도 없고 해서 그때는 만약에 뭐라 그러지? 강물이 있으면 가서 자살한다고 이렇게 했어요.”

“엄마는 돈을 많이 빌렸어요. 근데 엄마 지금은 건강도 안 좋아요. 돈이고 월급 받아 집에 보내요. 그게 많이 걱정돼요. (…) 은행 빌렸어요. 알(게됐)고 그냥 이거 죽고 싶어요.” (<이주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서> 43~45쪽, 한국이주민건강협회, 2025. 1.)

지난달 8일 이주노조는 뚤시가 일하던 농장 사장을 고발했다. 사장은 20일 뒤 구속됐다. ⓒ이주노조 제공

실태조사 결과, 414명 중 16.4%(68명)가 고도우울, 8.7%(36명)가 중등도 우울, 14.5%(60명)가 경도우울 구간에 포함됐다. 다섯 명 중 두 명 꼴로 우울 증상을 보인 것.

▲송금으로 본국의 가족을 잘 부양할 수 없었던 경우 ▲주 40시간을 넘겨 일하는 경우 ▲사회적 지지 점수가 낮은 경우일수록, 우울 증상과 유의하게 연관이 있었다.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그 우울증이, 자기 혼자 살아야 되고, 혼자 결정해야 되고, 혼자 버텨야 되고, 이런저런 거 이 마음이(외로움을) 잊어버릴 수가 없는 거예요. 잊을 수가 없어. 평생이 한국에 있는 동안에 그 마음이 이제 그런 외로운 마음을 갖고 일을 하는 거니까 그게 제일 힘든 거라고 생각해요.”

“또 무슨 공황장애. 많아요. 그러니까 거기서는 회사에서 엄청 뭐라 하는 거예요, 사장님들이. 그러니까 이 사람이 안에서 그냥 이렇게 있다가 말도 못하고 계속 몇 년 살다 보니까 어떻게 됐냐면, 이분은 ‘공공장소’에 못 갑니다. 사람이 두려운 거예요.” (위 실태조사 보고서, 35~36쪽)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데완(가명)은 ‘공공장소’에서 발작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응급입원됐다. 그 자신도 본인의 병명을 알지 못한 채 두 달 동안 입원해 있어야 했다. ‘꿈의 나라’에 와서 정신질환자가 돼버린 두 번째 남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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