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아침, 인천의 한 정신병원 앞에 이주인권 활동가들이 모였다. 활동가들의 표정에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말없이 병원 층계를 올랐다. 철문을 열고 병동에 들어섰다. 면회실에서 기다리기를 잠깐. 환자복 차림의 청년이 비틀비틀 걸어 들어왔다.

데완(가명)이다. 스물여섯 살 방글라데시 청년 데완 라셰드 초우두리(Dewan Rashed Chowdhury, 가명). 걸을 때마다 마른 몸이 휘청거렸다. 넘어질 듯 겨우 의자에 앉았다.

자꾸 감기는 눈은 초점이 흐렸다. 그의 말을 나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말이 유독 느리고 어눌한 건 알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 출신 섹 알 마문 이주노조 부위원장이 통역을 맡았다.

데완은 2022년 한국에 왔다. 세 곳의 공장을 거치며 지난 2월 말까지 일했다. 아마도 그때쯤일 거다. 데완이 공항에서 발작을 일으켜 이곳 정신병원으로 ‘응급입원’ 하게 된 때도.

데완은 조용한 성격이었다. 다만 동료들은 요즘 들어 데완이 ‘고향에 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기억했다. 기숙사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목욕재계를 하고 혼자 기도를 올리는 데완을 이상하게 여기기도 했다.

사실 데완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본국에 다녀올 수 있게 휴가를 달라고 회사에 요청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회사가 사업장 변경에 동의해주는 식으로, 퇴사를 하고 가려 했던 걸로 짐작된다.

‘그날’ 데완은 스스로 인천공항으로 갔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은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는 감정과, 큰소리가 났다는 흐릿한 기억만 남아 있다. 입원실에 보관된 데완의 가방 안에는 비행기표가 없었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데완(가명)을 만난 곳은 인천의 한 정신병원 면회실이었다 ⓒ셜록

그를 병원으로 데려온 건 경찰이었다. 우리가 병원으로 찾아간 건 그때로부터 이미 한 달도 더 지난 때였다. 데완은 ‘난 아무 병이 없다, 빨리 고향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내 병명이 뭐냐, 언제 퇴원할 수 있냐’ 따져 물어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그의 하루는 약 먹고, 잠들고, 일어나서 따지고, 또 약을 먹고, 잠에 빠지는 일의 반복뿐이었다. 우리를 만났을 때 비틀거리고 어눌한 모습을 보인 것도 약 기운 때문이었다. 데완은 자신이 왜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 언제까지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답답한 날들을 보내야 했다.

(이주노동자라면) 누구든 겪을 수 있는 문젠데…,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이런 일들은 사실상 그냥 넘어가 버리는 것 아닌지 걱정입니다.”

만남에 동행한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언어 장벽 때문에 의료접근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상당히 흔한 문제다. 이애란 한국이주민건강협회 사무처장 역시 이 문제를 중요하게 지적했다.

“정신과는 치료도구가 언어잖아요. 약물치료도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적 접근에는 상담이 필수적이죠. 자신의 심리적 상태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꺼내놓고, 내 말이 치료자에게 직접 전달돼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그런 시스템이 너무 부족합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7년간(2017~2023년)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 누적 흑자는 3조 2377억 원에 이른다. 최 변호사는 외국인 건강보험료로 수조 원의 흑자를 쌓아두고서도 가장 기본적인 자국어 상담 체계조차 갖추지 못한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방글라데시 통역이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치료가 되겠습니까? (이주노동자도) 건강보험료를 내는데 아파도 병원 가기도 힘들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도 쉽지 않다는 거죠.”

이애란 사무처장은 당장 많은 예산을 들이지 않더라도 이주노동자 정신건강 지원의 문을 넓히는 길은 있다고 말한다. 바로 전국 시군구 기초자치단체마다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 인프라를 활용해 ‘연계’ 시스템을 만드는 길이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전국에 200곳이 넘습니다. 이주민들은 자국어 상담을 받을 수가 없어요. 당장 상시 (통역) 인력을 갖추기 힘들다면, 인적자원을 공유해도 되잖아요. 그렇게 상담을 받아주고 의료기관으로 연계하는 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이미 있는 기관에 맞춤형 언어지원을 ‘플러스’하는 정도죠. 사실 ‘링크’만 시켜줘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아요.”

데완(가명)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섹 알 마문 이주노조 부위원장 ⓒ셜록

이주인권 활동가들의 방문 이후에 주한방글라데시대사관에서도 데완을 만나러 왔다. 입원 이후 두 달 만인 4월 중순에는 퇴원할 수 있었다. 의료진은 그의 증상을 ‘양극성 정동장애’에 의한 것으로 의심했다.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나중에야 알게 된 병명이다. 현재 그는 방글라데시 동료들과 함께 지내며, 약물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정신적인 문제의 원인 가운데 ‘가족’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한국에 오는 동기 자체가 대부분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거니까.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그리움은 이주노동자들의 마음 아래에 깊이 깔려 있는 감정이다.

하지만 돈을 많이 보내달라는 가족들과, 그만한 사정이 되지 못하는 노동자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가족을 위해 혼자 먼 나라까지 와서 힘들게 일하지만, 정작 가족과 본국 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이주노동자들을 극심한 고립감으로 몰아넣는다. 섹 알 마문 부위원장이 가장 안타까움을 보인 것도 그 대목이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내가 좋아서, 나를 위해서 하는 일도 좀 있잖아요. 그런데 이주노동자들한테는 그런 일들이 거의 없어요. 돈 벌고, 본국에 돈 보내고 그게 전부인 거죠. 90%가 그러겠죠. 그런데 있으려고 하면 있을 곳이 없고, 가려고 하면 갈 곳이 없어요.”

‘이주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진행한 한국이주민건강협회 이애란 사무처장 역시, 책임감과 고립감이 이주노동자들을 진퇴양난의 굴레에 빠뜨린다고 지적했다.(관련기사 :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세 남자의 ‘꿈의 나라’>)

실태조사 할 때, (이주노동자가) 엉엉 울어요.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가족들의 기대를 외면할 수 없어서…. 자기 처자식만 먹여 살리면 되는 게 아니에요. 부모, 형제, 조카, 조부모까지 생계를 다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정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자기도 빨리 돈 벌고 자기 인생 살고 싶다는 얘기를 하거든요.”

2024년 세계노동절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 ‘직장 변경 제한’ 상징물을 깨뜨리고 있다. ⓒ이주노조 제공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단속과 추방에 떠밀려, 한국에 머물고 싶어도 머물 수 없는 사람들. 가족 부양의 책임감과 본국 사회의 외면 때문에, 한국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노동’이란 말을 쓰는 이유가 있다. 그들에겐 일터를 선택할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은 자기 책임이 아닌 사유, 즉 사업주의 임금체불이나 인권침해 등 부당행위가 입증된 경우나, 사업주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만 3년 안에 최대 3회까지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의 부당행위를 입증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문제’를 조용히 넘어가는 조건으로 사업주가 사업장 변경 동의를 ‘선심 쓰듯’ 해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퇴사 후 3개월 안에 새 사업장을 구하지 못하면 ‘미등록’ 상태가 된다. ‘불법 사람’이란 사회적 혐오의 대상이 되고 ‘살인적인’ 단속과 추방의 공포에 시달린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 자살을 막기 위한 제도적 과제로는,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첫 번째라고 꼽았다.

“(사업장 변경 제한) 제도가 바뀌어야 돼요. 이 제도를 유지하는 한 사업주들이 그렇게(부당행위) 하게 돼 있어요. 법이 나쁘니까 사람도 나빠지는 거예요. 사업장 변경 자유롭게 한다면 지금 있는 문제의 70~80%는 해결될 수 있다고 봐요.”

이애란 사무처장 역시 “(우다야 라이 위원장 말에) 200% 동감합니다”라고 힘을 보탰다.

“사람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문제 자체에서 온다기보다, 그것을 자기 뜻대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오거든요. 주도적으로 해결하고 싶어도 나한테 결정권이 없다면, 구속된 느낌, 마치 사슬에 매여 있는 느낌이 들겠죠. (이주노동자가) 노동환경이 안 맞거나 현장에서 인권침해를 받았을 때 언제든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그런 스트레스를 막을 수 있지 않겠어요?”

최정규 변호사는 ‘사업장 변경 제한’을 “고용허가제 최대 독소조항”이라 비판했다. “사용자가 악착같이 착취할 수 있게 하고, 노동자를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제도라는 거다.

자나카 포천스리랑카공동체 대표 역시 ‘동기부여’ 차원에서 제도 개선의 중요성을 짚었다.

“예를 들어 사장님이 기숙사 신경 안 쓰고, 먹는 거 신경 안 쓰고 그냥 일만 시켜요. 그런데 이렇게 되면(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주면) 사장님들도 (숙련공을 잡아두려고) 지금보다 좋은 마인드를 갖고 근로자들한테 잘해주려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바뀌는 거잖아요.”

미디어활동가인 섹 알 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의 새 영화 제목은 ‘빨대’다 ⓒ셜록

섹 알 마문 부위원장은 영화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는 미디어활동가다. 올해 공개될 그의 새 영화 제목은 ‘빨대’다. 여러 겹의 착취와 고립을 상징하는 낱말.

“(이주노동자에게) 한국 정부가 빨대 꽂고, 사장이 빨대 꽂고, 가족이 빨대 꽂고, 내 나라 정부가 빨대 꽂고, 그 사람은 갈 데가 없어요. (…) 비자가 있으면 노예가 되고, 비자가 없으면 범죄자가 돼요. 그런 나라가 한국이에요.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한 손엔 ‘꿈의 나라’라는 환상을, 다른 한 손엔 가족 부양의 책임과 빚을 쥐고 한국에 온다. 하지만 공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노동은 물론, 부당한 차별과 인권침해까지 맞닥뜨리게 된다.

환상이 깨어져 나간 자리에 실망감과 억울함이 자라난다. 빚에도 쫓기고 단속에도 쫓기며 공포와 불안이 커진다. 거기다 ‘꿈의 나라’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가족들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자책감까지 더해질지 모른다. 가족이나 공동체의 지지마저 받지 못한다면 고립감은 그를 더 깊고 깊은 우울의 바닥으로 몰아붙일 게 뻔하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온다. 위기는 비극으로 치닫기도 하지만, 천금 같은 구조의 손길을 붙잡을 기회가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꿈의 나라’에 온 지 3개월 만에 꿈을 잃고 목숨마저 버리려 했던 세 번째 남자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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