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원래 잘 웃고, 장난도 잘 치거든요. ‘초딩이 따로 없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지난해 3월 첫 인터뷰 때 그녀가 한 말. 나는 믿지 않았다. 그녀는 그 말을 하면서도 울고 있었으니까. 인터뷰 내내 눈물을 닦은 휴지가 한 무더기 쌓였는데, 어떻게 그 말을 믿겠나.

1년 5개월이 지나 그녀를 다시 만났다. 얼굴에서 그늘이 한 겹 벗겨진 느낌. 이제야 알았다.

‘이렇게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었구나.’

무엇이 그녀의 표정을 이렇게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지난해 3월 첫 인터뷰 때 박지은(가명)이 눈물을 닦은 휴지들 ⓒ셜록

대전제대군인지원센터(이하 센터) 공무직 직업상담사 박지은(44, 여, 가명). 지난 7월, 그녀가 해오던 소송이 끝났다. 산재 신청을 불승인한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변호사도 없이 혼자 해온 소송. 법원의 조정권고를 통해 산재가 승인되면서 사실상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모두가 안 될 거라고 했습니다. 쓸데없는 일이라고. (…) 법원으로부터 송달받은 서류의 몇 개의 문장이 위로가 되기도, 기쁘기도, 허망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먼 길을 돌아 인정을 받은 건가. 내가 피해자가 맞다고.’”(박지은 소송 후기 중)

박지은은 2021년 센터에 ‘공채 1기’로 입사했다. 센터에는 과거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하다, 공무직으로 일괄 전환된 직원들이 먼저 일하고 있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텃세’와 ‘군기잡기’를 의심하게 하는 경험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박지은은 오히려 조직 내 ‘짬밥’ 문화와 부조리를 지적하고 나섰다. 박지은에게는 ‘조직에 화합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평가가 돌아왔고, 따돌림과 괴롭힘이 시작됐다.

박지은은 네 살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육아지원제도를 썼다는 이유로 인사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았다. 그게 억울해서 문제제기를 했더니, 오히려 손가락질이 돌아왔다.

한 팀장은 박지은이 ‘싱글맘’이란 사실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멋대로 이야기하고, 혼자 힘들게 아이를 키우는 그녀의 처지를 공개적으로 조롱했다.

“아침에 애기 업고 지하철역 앞에서 김밥 팔아봐. 사람들이 불쌍해서 사주지 않겠어?”

동료들은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녀는 투명인간이 됐다. 분명 같은 사무실에 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는 존재, 모두가 못 본 체하는 존재가 됐다.

박지은(가명)은 대전지방보훈청 산하 대전제대군인지원센터 직업상담사다 ⓒ셜록

박지은은 2021년 12월부터 간헐적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아왔다. “애기 업고 김밥 팔아보라”는 모욕을 당한 이후인 2022년 12월부터는 본격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우울, 불안, 불면 증상과 자살사고까지 겪고 있는 그녀는 지금까지도 치료를 이어오고 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해 5월, 그녀의 이야기를 세 편의 기사로 보도했다(관련기사 : <싱글맘 직원에게 “아이 업고 김밥 팔아봐” 조롱한 팀장>).

박지은은 인정받고 싶었다. 자신이 마음을 다치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직장에서 겪은 괴롭힘’ 때문이라는 인정. 그래서 선택한 것이 ‘산재(요양급여)’ 신청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근로복지공단은 그녀의 산재 신청에 대해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불승인 결정 자체도 속상했지만, 그 서류에 들어 있는 한 문장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피해망상의 개인적인 소인에 의한 증상으로 판단된다.”

‘피해망상’이란 그 단어가, 그 단어가, 정말 사람을 무너뜨리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 저도 제가 의심스러웠어요. 정말 모든 게 내 피해망상 때문일까? 모두가 내가 이상하다고 말하는데, 정말 내가 이상한 건지 확인받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박지은(가명)을 절망시킨 한 문장. 근로복지공단이 보낸 ‘산재 불승인’ 통보. ⓒ셜록

두 달 뒤인 지난해 9월, 그녀는 산재 불승인 결정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반드시 이길 거라는 확신도, 어떻게든 이겨내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생각뿐. 그래서 변호사도 없이 혼자 소송을 시작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생각, 수도 없이 했습니다.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는데,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에 내딛는 걸음마다 공포와 두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 바위 같은 그들과 맞서 결국은 내가 부서질 걸 알면서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었습니다.”(박지은 소송 후기 중)

그래도 만약 패소한다면, 상대 측 소송비용까지 물어줘야 한다. 그 생각도 안 한 건 아니다.

“언젠가 우리 사무실 여직원들끼리 얘기를 하는데, 태어나서 명품백을 한 번도 안 가져본 사람은 저밖에 없는 거예요. 소송에 지면 저쪽 변호사 비용까지 수백만 원 물어내야 될 텐데, 그렇게 되더라도 그냥 나한테 명품백 하나 사줬다고 치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결정 이후 두 달 정도 ‘독학’하면서 소장을 썼다. 재판이 시작된 뒤에 제출한 세 번의 준비서면도 모두 직접 작성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답변서 한 번 제출한 게 전부였지만, 그녀는 재판 기일이 잡힐 때마다 준비서면을 냈다. “절실하니까.”

“아마 전문가 분들이 보시면 제가 쓴 소장은 엉망진창일 거예요. 인터넷 카페에 찾아보니까 ‘자신의 감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더라고요. 그 조언이 머리로 이해가 되는데, 막상 쓰다보면 글이 감정적으로밖에 안 나오는 거죠. 그래도 (준비서면을 여러 번) 쓰다 보니 느는 것 같기도 해요.(웃음)”

재판은 TV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억울함을 말할 기회도 없이 짧았다. 판사의 제안으로 진료기록 감정을 신청했다. 진단 기록만 보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때 또 고비가 왔어요. 감정 신청 서류가 되게 중요하다 하더라고요. 제가 질문을 작성해서 내야 하는 거예요. 일단 막 고민해서 써서 냈는데, 나중에 제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하신 거예요. 그래서 조언해주신 대로 다시 써서 냈는데, 그럼 감정 비용이 두 배로 나올까봐 또 조마조마했어요. 나중에 돈은 더 안 받으셔서 감사했죠.”

장난감 상자, 책장 등 집 안 곳곳 눈에 잘 띄는 데 약을 나눠뒀다. 쉽게 보고 먹기 위해서. ⓒ셜록

몇 달 뒤 ‘감정 비용을 두 배로 받지 않은 것’보다 더 감사한 일이 생겼다. 지난 6월 나온 감정 결과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박지은의 눈물샘을 터지게 만든 대목이다.

“우울, 불안, 불면 증세의 발현 및 악화의 주요 요인은 ‘직장내 스트레스’의 주된 내용인 사회적, 정서적 고립의 지속이라고 할 것이므로, 재구성된 임상 진단인 ‘적응장애’의 주요 원인을 ‘직장내 스트레스’로 볼 수 없다는 (근로복지공단의) 전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것임.”

한 달 뒤인 지난 7월, 재판부는 ‘조정권고’를 내렸다. 감정 결과를 근거로, “피고(근로복지공단)가 원고(박지은)에 대하여 한 장해등급결정 처분(산재 불승인)은 그대로 유지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는 말과 함께.

양측은 조정권고를 받아들였다. 소송은 끝났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7월 26일 박지은에 대한 ‘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했다. 약 1년 만에 불승인에서 ‘승인’으로 뒤집혔다.

사실상의 승소. 의미가 크다. 그녀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질병 산재 피해자란 걸 대한민국 법원이 인정한 거니까. 변호사도 없이 혼자 힘으로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그토록 “절실하게” 기다려온 날이지만 생각보다 기쁘지 않았다.

“3년이란 긴 시간 동안 내가 싸워 얻은 건,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뿐이구나. 마이너스(-)였던 나를 그냥 제로(0)로 만드는 데, 온 시간과 에너지를 다 쓴 거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위로와 허무함이 엇갈리던 감정. 그럴 만도 하다. 사무실 안에서 그녀는 여전히 ‘투명인간’이니까. 소리도 모습도 없는 ‘따돌림’은 여전히 그녀의 주변에 안개처럼 깔려 있다.

지난 7월에는 기이한(?) 일도 있었다. 사무실 여자화장실에 이상한 벽보(?)가 붙었다.

“제발 더러운 짓 좀 하지 맙시다. 자식이 벌 받아요!!”

여자화장실에 붙은 정체 불명의 벽보(?) ⓒ제보자 제공

같은 층을 쓰는 다른 사무실은 없다. 아무래도 이곳 ‘센터’에서 일하는 ‘자식이 있는’ ‘여성’ 누군가를 타깃으로 삼은 것 같았다.

박지은은 입구 CCTV라도 확인해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누가 붙인 건지, 누구 보라고 붙인 건지, 진실은 알 수 없었다. 아니면 ‘박지은을 제외한’ 모두가 이미 진실을 알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박지은은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7월 말부터 무급병가에 들어갔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 (2023년 겨울에) 제가 30일 동안 1인시위 할 때거든요. 제가 확성기 들고 부들부들 떨면서 (시위를) 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서로 팔짱 끼고 웃으면서 저를 스치듯 지나갈 때. (…)

그리고 제가 그때 점심밥을 못 먹었거든요. 점심시간마다 약 먹고 지쳐서 그냥 사무실 안쪽에 누워 있었어요. 거기 바로 옆 파티션 너머에서 (자기네들끼리) 음식 시켜서 막 웃고 떠들면서 먹을 때, 사람이 참 잔인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달 박지은은 허리를 다쳤다. 일주일 남짓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담당 의사는 다른 질병이 의심된다며 이것저것 다른 검사도 받게 했다.

“의사선생님이 저를 안심시키려고 계속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근데 저는 오히려 ‘정말 큰 병에 걸린 거였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이런 삶이 너무 무겁고 버겁다는 생각, 온전하고 건강한 나를 다 잃어버린 느낌…. 그런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박지은(가명)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변호사도 없이 혼자 싸웠다 ⓒ셜록

박지은은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정신질병 산재 피해자로 인정받았지만, 가해자들은 여전히 한 공간에서 ‘아무 탈 없이’ 일하고 있다. 여전히 “죽은 자처럼 출근하고, 투명인간처럼 존재하다가, 수증기처럼 퇴근”(박지은 비망록)하는 쪽은 그녀다.

아직도 그녀의 1순위 희망사항은 일터로 돌아가 “재미있게 같이 일하는” 거다. 병가와 휴직을 반복하며 고립되는 쪽보다는 “사회적으로 기능하며” 성취감을 느끼며 일하는 쪽이 좋다. 그녀의 일을 지키는 것이 그녀와 아이의 삶을 지키는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고.

그녀는 국가보훈부 익명게시판에 쓴 행정소송 후기에 이런 당부를 남겼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이 (…) 괴롭힘의 대상자가 내가 될까봐 무서워서, 다수의 목소리 큰 가해자들 편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생각해보세요. 한 사람의 삶과 영혼을 짓밟는 일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녀의 글은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나 역시 그녀에게 빌어주고 싶은 말이다.

“부디 여러분의 직장이 안전한 곳이기를 바랍니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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