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나카 포천스리랑카친구들 대표의 휴대전화는 두 대였다. 카페 테이블 위에 올려둔 전화기는 인터뷰 중에도 번갈아가며 쉴 새 없이 진동음을 울렸다. 대개 그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전화였다.

이주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도, 섹 알 마문 이주노조 부위원장의 말에서도 ‘긍정’ 요소로 중요하게 언급된 것이 있다. 바로 ‘사회적 지지’. 자나카 대표는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몇 년 전 나디라(가명)를 처음 만난 그날 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밤 12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어요. 제가 오랫동안 알고 있는 친구 한 명 있어요. 그 A라는 친구한테 연락 왔어요. ‘형, 우리 공장에 한국 온 지 얼마 안 되는 친구가 있는데 너무 힘들어해요, 지금 와주실 수 있어요?’ 그때 바로 찾아가서 두 시간 넘게 이야기 나눴어요.”

그때 나디라는 20대 초반. 아내와 아기를 스리랑카에 두고 한국에 온 지 석 달도 안 된 때였다. 나디라는 같은 기숙사를 쓰는 동료 A에게 “살기 싫다”, “자살하고 싶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구체적인 자살 계획까지 이야기하는 걸 보고, A가 자나카 대표를 부른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잠도 안 왔어요. 항상 자살 생각만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목매달아 죽어야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래야 이 상황이 해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나디라 증언, 이주노동자 생명지기_스리랑카 편, 위프렌즈 유튜브, 2024. 10. 8.)

‘이주노동자 생명지기’ 영상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나디라(가명) ⓒ한국이주민건강협회 유튜브 캡처

자나카 대표는 나디라에게 ‘형처럼 편하게 생각하면서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숨기지 말고 뭐든 말하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본국에 있는 나디라의 어머니에게도 전화를 걸어 눈물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니 시계는 새벽 4시에 가까웠다.

오전 8시. 자나카 대표는 나디라가 일하는 공장으로 찾아갔다.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 나디라를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관리자에게 사실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자, 돌아온 첫 마디.

“이건 회사하고는 아무 관계없는 일입니다.”

“정말 마음이 서운했어요. 자기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이 아픈 거잖아요. 가족도 나라도 잠시 떠나서 이 나라에 와서 일하는 거잖아요. 조금이라도 신경 써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건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되는 일이라고 했어요. 그게 제일 마음이 아픈 거예요.”

자나카 대표는 나디라를 포천에서 의정부까지 데려가서 진료를 받게 했다. 30분 정도 의사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고, 자나카 대표는 통역을 맡았다. 의료진의 진단과 조언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이해시켰다.

“의사 선생님이랑 얘기 나누고 갈 때 (나디라의) 마음이 조금 편하게 되는 것 같았어요. 병원 나와서 커피숍 가서 한 시간 정도 더 얘기 나눴어요. 그리고 기숙사 친구들에게 (나디라를) 잘 지켜보고, 어디 혼자 보내지 말고, 같이 한국말도 배우면서 챙겨주라고 부탁했어요.”

그렇다면 나디라가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뭘까. 회사는 “회사와 아무 관계없는 일”이라 선을 그었지만, 나디라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제가 고향에서는 장시간 일하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는 너무 늦게까지 일하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일이 일찍 끝났는데 많이 힘들고 머리도 아팠습니다. 일할 때 부모님이 생각나고 아이들과 아내가 생각나면서 너무 힘들었어요.”(나디라 증언, 위 유튜브 영상)

젊은 나이에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들 중에는 본국에서 노동 경험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직장생활도 처음, 외국생활도 처음,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것도 처음.

심지어 ‘꿈의 나라’라는 환상을 하루아침에 무참히 깨트릴 만큼 고된 노동을 직면한다. 그만큼 초기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고, 자살 사례 역시 입국 초기 1년 사이가 많다.

나디라는 6개월 정도 자나카 대표와 함께 통원 치료를 받았다. 이후에는 혼자 병원을 다니며, 간혹 소통이 어려울 때는 자나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통역을 도움받기도 했다.

나디라는 현재 울산으로 공장을 옮겨 일하고 있다. 더 이상 약도 먹지 않고, ‘죽음’을 떠올리지도 않는다고 했다. 지금도 자나카 대표와 2~3주에 한 번씩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2024년 이주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참여한 노동자들. 조사 결과 24.1%에서 ‘자살사고’가 발견됐다. ⓒ한국이주민건강협회 제공

자살 위험을 포착하고 즉시 공동체에 도움을 요청한 동료 A. 그리고 전문적인 의료기관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이동과 통역을 꾸준히 도운 자나카 대표. 그들의 지지와 지원 덕분에 나디라는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영암 돼지농장에서 사장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팔 청년 뚤시에게도,(관련기사 :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세 남자의 ‘꿈의 나라’>) 영문도 모른 채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했던 방글라데시 청년 데완(가명)에게도,(관련기사 : <산재 아니면 ‘자살’로 죽는다… 그게 한국입니다”>) 이런 시간들이 필요했다.

이런 지지와 지원이 필요했다. 그게 가능했다면 그들도 지금 우리 곁에서 건강히 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향한 지지와 지원을 더더욱 받기 힘들게 만들어버렸다. 지난 2023년 고용노동부는 전국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지원 예산 71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자나카 대표는 “이주노동자가 언제든 마음 놓고 찾아가 자국어로 상담받을 수 있는 센터가 전국에 열 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센터에 가면 자기 나라 사람이 있다, 안전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정신적 버팀목이 돼줄 수 있다는 말이다.

“자기가 (마음이) 이상하게 됐으면 여기(상담센터)서 끝까지 상담해주는 거예요. 다른 사람 몰래 상담도 해줄 수 있는 거고, 병원에 가고 싶으면 치료도 받게끔 도와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한국 정부, 신경 아무도 안 쓰잖아요. 있는 예산도 다 없애버렸잖아요.”

“모든 이주민의 노동권, 주거권, 건강권을 보장하라.” 한국 사회에 ‘인간의 조건’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차례다. ⓒ이주노조 제공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일하러 왔다. ‘죽으러’ 오지 않았다. 이주노동자 자살과 정신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앞선 기사에서 언급한 의료접근성과 사업장 변경 자유 외에도 이애란 한국이주민건강협회 사무처장은 ‘인간의 조건’을 강조했다.

“사람이 사는 환경도 정신건강에 있어서 중요하잖아요.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제공해주는 게 필요하죠. 여름이면 열사병으로 죽고 겨울이면 얼어죽는 일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발생하잖아요. 주거환경만이라도 사회가 책임을 지면, 그래도 ‘내가 한국에 와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중을 받으며 함께 살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들겠죠.”

지난 2020년 겨울,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이 난방시설이 없는 비닐하우스에서 살다가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앞세워 주거권 보장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아직도 컨테이너박스 등 가설 건축물이나,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공장 한쪽에서 ‘기숙사비’까지 내면서 살고 있다.

이애란 사무처장은 이주노동자 주거권 문제 해결을 개별 사업장에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지역에 넘쳐나는 빈집 등을 활용할 방법을 국가 차원에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자가 만난 이주인권 활동가들은 입을 모아 ‘교육’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주노동자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한국의 현실을 제대로 알게 하는 것. 막연한 환상 대신 자신이 겪을 미래를 구체적으로 알게 하고, 권리교육이나 상담 안내 등도 이뤄져야 한다는 거다.

“스리랑카에 있는 한국어 학원에서 (한국 가면) ‘월급 400~500만 원 벌 수 있다’ 광고해요. ‘우리 학원에서 한국말 열심히 배워서 한국으로 가라!’ 거짓말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젊은 사람들의 희망은 오로지 한국이에요. 그 말만 믿고 한국에 오면, 최저임금 210만 원 받아서 기숙사비 내고, 보험료 내고, 개인 생활비 조금 쓰면 남는 게 150만 원도 안 되는 거야. 그걸로 빚도 못 갚고 가족 부양도 못하잖아요. 거기서부터 (정신이) 무너지는 거죠.

자나카 포천스리랑카공동체 대표는 “한국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온다”며 답답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잔업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이달 월급이 왜 적게 나왔는지,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어디 가서 물어봐야 하는지도 알려주는 곳이 없다.

나디라의 경우도 그랬다. 입국 초기 어려움을 어디 가서 상담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막막함이 그를 정신적으로 더 궁지로 몰았다. 그래서 자나카 대표는 권리 등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정신건강 문제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한다.

이애란 사무처장은 ‘자살예방’ 교육도 반드시 포함시켜서,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이나 동료의 정신건강상 문제들을 빠르게 알아차리고 비극을 막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 2024년 10월 20일 ‘살인단속’에 항의하는 퍼포먼스. ⓒ이주노조 제공

한국이주민건강협회의 의료지원, 실태조사 등 사업은 100% 민간 자원에 의지한다. 이곳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주노동자 지원은 대부분 민간단체나 이주민 공동체에 맡겨져 있고, 예산에도 정책에도 국가의 책임은 빈자리로 남아 있다.

이애란 사무처장은 “(이주노동자를) 언제든 필요하면 쓰고, 필요 없으면 내보낼 수 있다는 한국 정부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거라고 경고했다.

한국 사회의 구조에 대한 고민. 그는 “이주민 사회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돌아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주노동자 지원은) 표면적으로는 이주노동자를 위하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한국 사회를 위한 겁니다. 이제 되돌릴 수 없죠. 이주노동자 없이는 한국 경제가 안 돌아가거든요. 경제구조의 바닥을 받쳐주고 있는 사람들이 무너지면, 이주노동자만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니거든요. 한국 경제 시스템도 같이 무너지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해요.”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