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한 10년 세월을 “일신상의 이유로 퇴사합니다”라는 짧은 말로 퉁치는 건 뭔가 허전했다. 2014년 12월 31일, <오마이뉴스>를 떠날 때 오연호 대표에게 A4 네 장에 이르는 사직서를 써서 이메일로 보냈다. 오 대표의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서평 형식으로 쓴 사직서다.

살다보면 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사직서에 쓴 몇몇 구절을 곱씹곤 한다. 모든 일은 이 사직서에서 출발했다. 박준영 변호사와의 만남, ‘재심 3부작’ 기획, 진실탐사그룹 <셜록> 설립… 모든 출발점이 그렇다.

‘셜록 이야기’ 첫 번째 글 역시 그 사직서다.

더 행복해지려 <오마이뉴스>를 떠납니다

아침 풍경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오마이뉴스> 기자 신분으로 10년을 살았으니 3650번의 아침을 맞았겠지요. 번의 아침은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우선, 2004 5 초의 어느 아침 기억납니다. <오마이뉴스> 출근하는 날이었지요. 시청역에서 내려 광화문 사무실까지 걸어가는데, 어찌나 설렜는지요. 5 아침 햇볕이 오직 저만을 위해 반짝이는 듯했습니다.

내가 <오마이뉴스> 기자가 되다니!’라는 설렘과 기쁨, 그리고과연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교차했습니다. 신입은 원래 그런 걸까요? 한동안나는 <오마이뉴스> 기자다!’라는 자부심과 자신감 속에서 살았습니다. 힘차고 자신감 넘치던 시절이었지요.

어느 강연에서든 말합니다. 입사 전까지, 번도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요. 쓰는 좋아 시민기자로 기사를 올렸을 뿐이었습니다.

한동안 오연호 선배의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의문이었습니다. 속칭지잡대 평점 2.55 졸업하고, 토익 점수도 없으며, 영어 면접 한마디도 못한 저를, 겁없이(?) 채용했으니까요. 전까지 저의 경력은 공장 노동자와 건설현장노가다 전부였으니 의문은 더욱 컸습니다.

선배가 <우리도 행복할 있을까> 보니, 그때의 행복이 다시 선명해지더군요. 선배가 로슈 덴마크에서 일하는 베스테르고르에게행복한지 아닌지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나요?”라고 묻지요. 그녀가 답합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내 발걸음이 가벼운지, 회사로 향하는 마음이 즐거운지가 척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출근길에 ‘빨리 가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느냐가 중요합니다. 나는 이 회사에 출근하기 싫다고 느낄 때가 1년에 아주아주 적게 있습니다. 하하.”

입사 얼마동안, 역시 베스테르고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회사와 취재현장으로 가는 저의 발걸음은 경쾌했지요. 빨리 가서 취재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마음 한켠에는영어 한마디 못한 채용됐으니, 다른 걸로 능력을 보여야 한다 조바심과 열등감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마이북

실제로 제가 성과를 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행복하게 일했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강릉여중생 일기장, 노충국씨 사건, 동호공고 폐교, 노원구청 호랑이, 김상곤과 무상급식 단독이라 부를 만한 저의 보도는 모두 행복한 시절 태어났습니다. 선배가 덴마크에서 만난 이드렛스 에프터스콜레 교장 바르슬레우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행복은 ‘have to(~해야 한다)’에서 나오지 않아요. ‘like to(~를 좋아하다)’에서 나오죠. 의무적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어요.”

말을 이렇게 바꿔도 듯합니다. ‘성과는 의무적으로 하는 일이 아닌, 즐거워서 하는 것에서 나온다!’

하나의 아침에 관한 이야기를 차례군요. 입사 5년차인 2010 1 4일의 아침입니다. 그날 서울에 엄청난 폭설이 내렸고, 대응 미숙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곤욕을 치렀지요. 사회부 기자였던 저도 폭설 현장과 서울시의 대응 등을 취재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스타벅스에서 기사를 썼습니다.

기사를 송고했을 때도 여전히 아침이었습니다. 창밖 광화문광장에는 계속 눈이 내렸고 쌓였습니다. 청소부와 공무원은 치우기에 허덕였습니다. 기사를 이미 넘겼으니 마음은 편했지요. 따뜻한 커피가 있고, 커피향 가득한 스타벅스에는 좋은 음악이 흐르고,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편안해도 될까? 서울 4대문 안에서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

눈 내리던 날의 아침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셜록

어쩌면 오랫동안 품은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기자로서 4대문 안에 머물고 ‘4대문 사람들 주로 만나면서, 동질감보다는 이질감을 많이 느꼈으니까요. 4대문 안에는 그나마 안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주로 모여 있지요. 대기업 화이트컬러 노동자, 전문직 사람들, 고위 공무원, 정치인과 권력자, 4년제 이상 대졸자 .

어디 사람만 그런가요. 교통, 문화시설, 맛있는 음식점과 고급 술집, 고궁과 역사, 언론사와 좋은 정보, 미술관과 박물관 대한민국 어느 곳보다 사회적 인프라가 화려합니다

이곳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존재와 시설도 있습니다. 생계 어려움을 겪는 비정규직 블루컬러 노동자, 백인이 아닌 이주노동자, 결혼 이민 여성, 농가부채에 우는 농민, 감옥, 비행청소년, 굴뚝 공장 공해 시설..

결국 눈이 펑펑 내린 그날 아침 제가 느낀 , 역시 4대문 안에서 일한다는 우월감과, 이곳은 과연 내가 있어야 자리인가 하는 열등감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만한 우월감이 컸나 봅니다. 입사 5년차 이후 매너리즘에 빠져 세상에 무감해지고 일에서 재미를 찾지 못했습니까요. 취재 기자가 기사 쓰는 재미없다니요.

편집부 근무라는 보직 변경으로 스스로 처방전을 내렸습니다. 물론 쉬러 아닙니다. 새로운 노동의 쓴맛이 편집부에서 저를 맞았으니까요. 2011년부터 지금까지 4년간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재밌고, 힘들고, 괴롭고, 즐거웠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출근하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버티기만 하면 25일에 월급을 받는월급쟁이 기분이 들더군요. 노동을 하고 월급 받아 생활하는 폄하하는 아닙니다. 하지만 기자가 월급쟁이에 만족하면 되지요.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선배가 책에서 썼지요. 덴마크 사람들은 대학이나 직장 간판보다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중요하게 생각한다고요.

2014년에는 나름의 해법을 찾았습니다. 저는 올해 쓰고 싶은 청소년소설 <똥만이> 냈습니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리포트와 <다음> 뉴스펀딩그녀는 칼을 들었나 진행했고, 동거일기 연재도 시작했습니다. 모두 편집부 일을 하면서 퇴근 이후와 주말, 그리고 휴가를 내서 일입니다.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잃어버린 행복과 설렘을 찾았습니다.

특히 기획그녀는 칼을 들었나 기억에 남습니다. 편집부 근무하면서 취재를 하려니 정말 정신이 없더군요. 2 개인 휴가를 여기에 쏟아 부었고, 주말에도 쉬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모금된 금액 1144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차피 돈은 돈이 아니었으니까요. 비밀은 선배가 책에도 나와 있더군요.

자유의 다른 이름은스스로 선택하니 즐겁다 것이다.”

결국 저는 글을, 제가 원하는 주제를 취재해서 쓰고 싶었던 겁니다. ‘그녀는 칼을 들었나 진행하기 위해 저는 한국여성의전화(NGO 단체)를 2개월 가까이 설득했습니다. 책 10여권, 300페이지가 넘는 논문을 읽었으며, 200 가까운 판결문을 살펴봤습니다. 많은 취재원도 만났습니다. 과정을 겪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나는 그동안 너무 쉽게 (기사) 썼구나.”

세계여행을 위해 퇴사하려는 아닙니다. 세계여행은 훗날의 일로, 여전히 구체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오늘, 여기서, 행복하기 위해 <오마이뉴스> 떠나려 합니다. 내가 원하는 주제를 오랫동안 취재하고 발품을 팔아 글을 쓰고 싶습니다. 결국 저의 퇴사는나만의 에프터스콜레 갖기 위함입니다.

“에프터스콜레의 인생 계획 설계는 ‘스스로’와 ‘더불어’라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간다. 바르슬레우는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정적인 복지시스템도 없는 사회에서, 스스로 정규직을 버리려니 두려움도 큽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저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합니다. 두려움과 걱정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왼쪽)과 나.

저는 4대문 안에 없는, 있어도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찾아, 4대문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그것이 폭설이 내린 그날 아침 광화문에서 우월감과 열등감을 동시에 느낀 제가 가야할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돌아보면, 저의 특종과 좋았던 기사는 모두 ‘4대문 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재입사를 하지 않는 꿈입니다. <오마이뉴스>재입사 정책 복지체계가 전무한 사회에서 그나마 회사가 마련한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퇴사해 시민기자로 돌아가 좋은 기사를 생산하는 사례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것이 회사에게도, 저에게도 좋은 일이겠지요.

변방에서 노가다하던, 영어 한마디 못하는 저를 채용해줘서 고맙습니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이제야 하네요. 10년을 함께 일해 행복했습니다. 힘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섭니다.

2004 5 출근하는 그날처럼 떨리고, 설레고, 두렵습니다. 가슴이 움직이면 사람이 움직이고, 사람이 움직이면 세상이 움직인다고 했지요. 가슴이 가리키는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보겠습니다. 뭐라도 나오겠지요.

오연호 선배, 고맙습니다.

모든 일은 사직서에서 시작됐다. ©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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