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여행 짐을 쌌습니다. 벌써 2년 반 전 일입니다. 주변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떠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여행을 가장한 도피였습니다. 3년간 취재 현장에 쫓겨 다니듯 다니다가, 집에 홀로 앉아 헛헛함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잡생각을 못하도록, 격렬히 몸 쓰는 곳으로 가자.’

오로지 먹고, 자고, 걷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여행지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적당한 것을 넘어 약간 버거운 곳, 길어질지 모르는 백수 생활을 대비해 물가도 그리 높지 않은 곳을 찾았습니다.

무엇보다 ‘본연의 나 그대로일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허울뿐이었던 기자직, 그마저도 쉬이 내려놓지 못했던 과거의 저를 멀리 던져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안나푸르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음이 기울자마자 바로 네팔행 티켓을 샀고, 며칠 뒤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휴가로 오신 건 아닌 것 같은데.. 표정이 왜 그렇게 어두워요?”

먼저 제게 대화를 건 이는 한인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었습니다. 별스러운 농담에도 진지하게 반응했던 탓인지, 타고난 낮은 목소리 탓인지 사장님은 며칠째 제가 왜 긴 여행을 떠나 왔는지 궁금해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대수롭지 않은 척 “뭐, 그냥..” 정도로 말끝을 흐렸는데, 사흘쯤 지나자 물음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술이 적잖이 들어간 사장님 눈에서 ‘이번만큼은 질 수 없다(?)’는 의지가 보였습니다. ‘내 패배감을 꿰뚫어 보셨던 걸까.’ 결국 술의 힘을 빌려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명선 씨는 퇴사하고 왔어요? 무슨 일 하다 오신 거예요?”

“뭐 그냥.. 언론사에서 잠깐 다녔었습니다.”

“언론사요? 그러면 기자? PD? 아나운서?”

예상대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술자리를 함께하던 다른 여행객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제게로 쏠렸습니다. 솔직히 자랑스럽지 않은 제 지난 일을 밝히기 싫었습니다. 그렇다고 비밀로 붙이기에는 우스웠습니다. 말을 안 하자니 마음에 벽을 세우는 것 같았습니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이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방송사에서 기자를 했습니다.”

“어느 방송사요?”

“그게.. 종편인데요..”

대충 얼버무릴까 하다가, 결국 꺼내기 싫었던 전 직장 이름을 내뱉었습니다. 애당초 대답을 꺼렸던 이유는 다니던 직장 이름을 밝히면 떠오르는 연상 이미지들을 제가 뛰어넘을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편파, 막말, 왜곡, 선정성 등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종은 다른 직업군과 달리 매체의 색가 개별적 존재를 집어삼키곤 합니다.

‘싫어서 퇴사했는데.. 결국에 나를 대변하는 것은 전 직장과 전 직업이구나.’

복잡한 생각이 머리 속을 뒤엉켜 놓았습니다. 태연한 척 맥주를 잔에 따랐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제 손끝이 보였습니다. 싫다고 뛰쳐나왔다 해도 제가 선택해 입사한 회사임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부끄러움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기사들에 수없이 제 이름 석자를 올렸던 것도 분명했습니다. 

그 술자리엔 보수 종편을 좋아하는 사람도, 미디어나 시사에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벌겋게 달아오른 제 얼굴은 좀체 회복될 기색이 없었습니다. 모순 덩어리인 나를 누군가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술잔을 손에 쥐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분위기 전환할 말을 애써 꺼냈습니다.

“참 우습죠? 제 발로 들어가더니, 싫다고 뛰쳐나오니. 저도 제가 한심합니다.”

일종의 선방이었습니다. 남들이 나를 평가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깎아 내렸습니다. 종편 입사 전에 품었던 생각, 이를테면 ‘회사 가려서 지원하면 좁은 언론계 취업문을 뚫기 힘들다’, ‘누가 뭐라 해도 나만 떳떳한 기사를 쓰면 그만이다’ 등의 말은 궁색한 변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말을 꺼내 주변의 웃음을 사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의 태도는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반복됐습니다.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야 할 자리에 서면, 위축되고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과거의 나의 선택으로, 지금의 내가 평가 받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1년, 2년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든 나를 증명해내지 않으면, 난 계속해서 전직 종편 기자로 남겠구나.’

작은 일을 하더라도, 떳떳하고 정의로운 일을 해야 ‘종편 기자 3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직의 뒤에 숨어,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외면한 채 살아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때로는 벼랑 끝에 서야 한다

프리랜서 생활을 청산하고 작은 출판사에 들어가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던 중, 오랜만에 박상규기자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셜록>의 대장, 박 기자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일하던 박상규 선배와는 종편 근무 초기 때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친한 관계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럿이 함께 어울린 술자리에서 몇 번 본 게 전부니까요. 

 선배는 2014년 12월 31일까지만 일하고 <오마이뉴스>를 퇴사했습니다. 그 후 그는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박준영 변호사와 재심 프로젝트 기획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박 선배를 계속 지켜봤습니다. 

내심 부러웠습니다. 조직 뒤에 숨지 않고, 본인이 꿈꾸는 진정한 저널리스트의 삶을 살아보려 부딪히려는 선배의 용기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10년간 몸 담았던 회사를 떠나, 매달 통장을 채워주는 월급 없이, 혼자 세상과 부딪히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당장 할 일은 없어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지금’을 위해 ‘안정적인 삶’을 내려 놓은 일은 분명 어려운 길입니다.  

2016년 초여름으로 기억합니다. 밤 11시, 그 야심한 시각에 박 선배가 갑자기 저를 동네 호프집으로 불렀습니다. (그와 나는 가까운 이웃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를 나눌 겸, 약속 장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명선 씨, 기자 다시 하고 싶어요?”

“네? 기자요?”

“명선 씨 꿈이 뭐예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운동복 차림의 박 선배는 비장한 표정을 하고서, 안주가 나오기 전부터 다짜고짜 질문 세례를 쏟아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일종의 면접이었다는 걸 몰랐습니다. 민감한 얘기를 잘 묻지 않았던 그였기에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점점 궁금했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과정에 펜 기자가 있었으면 좋겠고요.”

“글은 잘 써요?”

“긴 호흡의 기사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고요.”

팔짱을 낀 박 선배는 한참을 뚫어져라 저를 응시했습니다. 맥주를 한 번 쭉 들이키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이번에는 전 직장으로 화제를 바꿨습니다. 어떻게 공채에서 합격했고, 왜 퇴사했는지 물었습니다.

“전 직장에는 어떻게, 왜 합격했다고 생각합니까?”

“운이죠. 능력이 특출 나거나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쪽에서 원하는 조건과 제가 맞았던 것 같아요.”

“그럼 왜 퇴사했죠?”

“제가 생각했던 기자와 거리가 멀어서요. 돈만 벌었지, 성취감이나 만족감 같은 걸 못 느꼈어요.”

선배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바짝 조여졌던 긴장된 분위기도 풀렸습니다. 박 선배는 그 때부터 조심스레 본인이 꿈꾸는 언론사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자는 ‘알리고’ 독자는 ‘퍼트리고’ 변호사 등 전문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지금의 <셜록>에 대한 구상안이었습니다.

<셜록>을 설명하는 박 선배는 잔뜩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확신의 에너지가 싸늘한 밤 공기를 데웠습니다.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물어보려던 찰나, 맥주잔을 탁 내려놓고 그가 대뜸 제안을 했습니다.

“같이 한 번 해봅시다. 쉬운 일은 아무나 하죠. 사람이 어려운 길을 갈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때로 벼랑 끝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살 길이 열립니다. 진지하게 고민해봐요.”

짧고 굵은 대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쿵쾅거리는 가슴을 쥐고 집까지 한달음에 걸어왔습니다. 흔하지 않은 기회, 무엇보다 현실보다는 이상을 향해 달릴 수 있는 순간이 흔하지 않게 주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감사했습니다.

밤새 잠을 설치고, 출판사로 출근하는 길에 결심이 섰습니다. 뜻이 맞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망할지언정 1년간 하고 싶은 일을 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바로 몇 주 뒤 인생의 두 번째 사표를 쓰고, 기쁜 마음으로 <셜록>에 합류하겠다고 박 선배에게 전했습니다.   

“잘 될 겁니다. 기존의 판을 스스로 박찰 용기면,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박 선배가 저를 신뢰한 이유는 오직 ‘판을 스스로 박차고 나왔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앞뒤 제지 않고, 현실이 이상과 부딪혔을 때 뛰쳐나오는 용기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순수한 동기로 사람을 뽑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순수한 동기만큼 강력한 동기도 없습니다.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

<셜록>의 데뷔 글로는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 연재를 선택했습니다. 오래 망설였던 글입니다. 지난 제 흑역사를 풀어 놓아야 한다는 점, 전 직장 사람들과의 인연이 끊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저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을 정리하지 않고는 저널리스트의 삶을 시작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를 매듭짓고 이를 발판 삼아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예상과 달리 연재가 풀리자마자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사흘 만에 펀딩액의 절반이 모였습니다. 응원만큼이나 질타도 적지 않았습니다.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3년간 쓰레기 같은 기사를 써 놓고 왜 이제 와서 후회하냐는 따끔한 질책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언론의 대한 대중의 분노와 기대가, 아직도 크다입니다.

과거의 제가 부끄러웠던 만큼, 저는 앞으로 제 스스로를 떳떳이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셜록>의 끝이 비록 창대하지 않더라도 ‘이상을 위해 애써봤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것 같습니다. 겁 없이(?) <셜록>에서 일하는 이유는, 비록 순간일지라도 제 꿈에 스스로를 온전히 던져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줄어든 연봉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행복도 느낍니다. 쓰고 싶은 기사를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충분히 공부해서 기사를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어 좋습니다. 회사명을 말하기 부끄러워했던 지난 과거와 달리, 제 소개에 앞서 <셜록>을 먼저 소개할 때마다 늘 기분이 좋아 집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란 말을 들으면 지금 가는 이 길이 맞구나 다짐하게 됩니다.

이 일을 오래하고 싶습니다. 늘 잘하지는 못하겠지만, 늘 성공하지는 못하겠지만, 멀더라도 옳은 길을 가고 싶습니다. 광장에서 촛불을 켜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퍼즐의 작은 조작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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