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만 둘인 결혼식에 갔다.

2018년 6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서울 강서구의 작은 카페에서 열린 송아민(32세) 씨와 최민영(가명) 씨의 웨딩파티. 각각 무릎 길이의 미니 드레스, 발목 아래로 내려오는 긴 드레스를 차려입은 두 명의 신부가 하객을 맞았다.

두 신부는 하객들에게 포스트잇에 신부들에게 궁금한 걸 적게 했다. 모객(?)이 생각보다 안 되자 최민영 씨는 블루투스 노래방 마이크를 들고 식장을 돌아다니며 질문을 받았다.

하객1: 드레스 어디서 대여하셨어요?

최민영: ‘XXX닷컴’에서 샀는데… 여러분, 절대 여기서 사지 마세요. 블랙리스트에 올려야 돼. 물건 받아보니 웹사이트 사진만 브랜드 제품 사진 불법으로 따 온 거고, 실제 제품은 (너무 작아서) 입을 수도 없는 그런 드레스예요.

송아민: 그래도 수선비까지 15만 원에 했잖아.

하객2: 자, 알뜰함에 박수!

트랜스젠더 송아민 씨. ⓒ박유빈

하객들의 자기소개 시간. 이름과 직업뿐 아니라 두 신부와의 관계,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 등. 하객들은 스스로를 설명하는 다양한 말을 낯선 이들 앞에 풀어 놓았다.

“저는 트랜스여성이자 범성애자(남성, 여성 등 성별을 구분짓지 않고 상대방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성적 지향)입니다.”

누군가가 일어서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잘 모르는 단어가 쏟아졌다. 난 그럴 때마다 테이블 아래 스마트폰으로 바삐 찾았다.

‘범성애가 뭐지..? 바이젠더는 또 뭐야? 젠더플루이드는?‘

처음엔 일일이 검색하다, 나중엔 손가락을 멈췄다. 각자의 정체성이 어떻든, 두 신부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란 건 같았다.

하객3: 두 사람이 함께 지내면서 가장 좋은 순간은?

송아민: 잠자기 전에 손 잡고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 할 때?

최민영: 근데 이 사람이 허리가 안 좋아서 정작 잠들 때 껴안고 못 자요.

하객들: 어우~~~

신부들의 시간이 끝나면 다시 하객들의 시간. 하객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데 유용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진 하객들끼리 모여 앉은 테이블도 있었다.

“저 다음 달부터 호르몬 요법 시작해요.”

“호르몬 맞기 시작하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할 거예요. 운동을 꼭 규칙적으로 하셔야 해요.”

“부모님께 커밍아웃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한 번에 받아들일 거란) 기대를 버리세요.”

트랜지션(transition, 원하는 성별의 복장을 하는 일, 호르몬치료와 수술을 비롯한 의료적 조치, 주변인들과 본래 성별로 다시 관계맺기 등 성전환 과정 전반을 가리키는 말)과 커밍아웃 등. 트랜스젠더 정체성 대로 살아가기 위한 과정을 먼저 밟은 이가 새로운 길을 앞둔 이에게 조언했다. 각자의 커밍아웃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축가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두 신부는 양손을 잡고 서로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고 두 사람이 입을 맞추자 하객들은 “부럽다” “유부녀다” 등 환호를 보냈다.

트랜스젠더 송아민 씨. ⓒ박유빈

송아민 씨와 최민영 씨가 결혼이라는 새 출발선에 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날 두 신부 가족 중 결혼식에 참석한 이는 송아민 씨의 여동생 단 한 명이었다. 부모님과 일가친척 등 다른 가족들에게는 결혼식 날짜와 장소는커녕 결혼 소식 자체를 전하지 않았다. 반대가 뻔했기 때문이다.

송 씨 부모님은 여자로 살겠다는 아들을 이해 못했다. 송 씨 회사로 찾아가 읍소하고, 유명한 목사를 찾아가보자고 설득도 했다. 송 씨는 꿈쩍하지 않았다. 보란듯이 치마 입고 머리 기른 모습이 담긴 사진을 카카오톡 메신저 프로필에 내걸었다.

부모님이 설득할수록 송 씨는 자기 존재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결국 송아민 씨는 휴대전화번호를 바꾸고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부모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최민영 씨에게 연락해 송 씨를 설득하려 했다. 여자로 살겠다고 선언한 아들이 ‘여자친구’를 계속 만나는 걸 보고 부모님은 송 씨와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아들이 여자를 계속 사귀는 걸 보니, 곧 남자의 삶으로 돌아오겠군.’

부모님 기대와 달리 남성의 신체를 가진 트랜스 여성 가운데도 남성 아닌 성별의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여성의 신체를 가진 트랜스 남성 가운데 여성 아닌 이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시스젠더(cisgender, 출생 당시 법적 성별과 스스로 생각하는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 가운데 이성애자가 있고 이성애자 아닌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2014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 참여한 233명의 트랜스젠더 가운데 이성애자는 113명(48.4%)에 불과하다.

송 씨는 트랜스젠더임을 받아들이기 이전 삶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자기 정체성 대로 사니 전에 없이 생활이 편했기 때문이다. 결혼식에서 만난 송 씨의 대학 동기 B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서 오랜만에 (송 씨에게) 연락이 왔는데, 그때 제게 커밍아웃을 했어요. (송 씨가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전인) 대학에 다닐 땐 착한데 자기를 잘 안 드러내서 친해지기 힘든 친구라고만 생각했어요. 지금은 편해 보이죠. 달라진 거요? ‘오빠’라고 부르던 호칭을 더는 쓸 수 없다는 것 말고는 없네요.“

송아민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뒤인 스물아홉 살 때 자기 정체성을 받아들였다. 그 이전의 삶은 당연히 ‘부정의 시간’이었다.

어려서부터 늘 ‘멋지게 늙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할아버지 모습은 상상되지 않았다. 2세를 갖겠다고 생각해도, 아버지가 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상상력을 총동원해도 남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송아민 씨가 선택한 방법은 또래 남자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해 따라하기였다. 남성으로서의 성별을 학습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땐 여자 친구들과 일부러 멀리 지냈다. 남자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 일부러 관심에도 없는 축구를 했다.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1분이라도 더 공을 차고 싶은 또래 남자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학급회의 시간에 “점심시간에 공을 차고 수업에 지각하지 말자”는 데에 찬성표를 던졌다. 화가 난 남자 아이들이 송 씨를 화장실로 불러내 구타했다.

트랜스젠더 송아민 씨. ⓒ박유빈

집에서 가까운 남자 중학교에 배정받았을 때도 튀고 싶지 않아 순순히 받아들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큰 실수였다. 지금도 “군대엔 다시 가도 중학교 때론 다시 안 간다”고 농담 삼아 말하곤 한다.

사춘기 소년들 사이의 힘다툼에서 누구도 열외가 될 수 없었다. 남자 고교에 배정됐지만, 그나마 상황이 괜찮았다. 공부에만 관심 있는 척 하면 남자들의 서열놀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대학교에서도 남성성 학습은 계속됐다. 군에 입대한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2학년 2학기가 끝나갈 때쯤 주위를 둘러보니 군대 안 간 남자는 자기뿐이었다. ‘아, 이제 가야할 때가 왔구나’ 생각했다.

남자 군인이 되어 2년을 보내야 한다니 상상이 안 됐다. 군대 대신 방위산업체에 가겠다고 가족에게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 아버지와 갈등을 만들기 싫어 남중, 남고에 순순히 진학한 것처럼 별 저항도 못하고 공군에 입대했다.

제대하고 트랜지션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금세 포기했다. 당시 교제하던 여자친구가 반대했다. 여자친구와도 갈등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이별하고 나서야 정신과의원을 찾아 성 주체성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 진단을 받았다. 29세 때 일이다.

당시 송 씨는 한 월간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남성으로 다녔던 직장, 여성 모습으로 출근할 자신이 없었다. 직장에 퇴사를 통보했다. 대표는 “사람 구할 때 까지만 다니라”며 송 씨를 붙잡았다. 송 씨는 그 말을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대한 수용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은 호르몬 치료, 여성적인 의상과 헤어스타일 등 달라진 송 씨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쟤 또라이래”라고 뒤에서 수근댔다. “왜 커밍아웃 했냐”며 송 씨 탓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SOGI법정책연구회가 발간한 <성소수자 친화적 직장을 만들기 위한 다양성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업이 직원의 트랜지션을 지원하는 것은 트랜스젠더를 위한 복리후생의 중요한 부분이다.

트랜스젠더는 트랜지션을 통해 일상생활과 직장생활에서 큰 만족감을 얻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등 일부 해외 기업은 트랜지션을 원하는 직원의 의료비 일부를 지원하기도 한다. 국내에는 이런 사례가 드물다.

송 씨는 결국 회사를 나왔다. 기자 시절 취재원으로 알고 지낸 스타트업 ‘걸스로봇’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성별 정체성을 숨기지 않아도 되고,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일하는 데에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직장이었다.

송 씨는 한국 최초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기자다. 그녀는 기초과학 분야에 여성, 성소수자 등이 잘 정착하도록 토대를 닦고 있다. 올초 세계 최대 과학단체 전미과학진흥협회(AAAS) 연례회의 현장을 트랜스젠더 당사자 시각에서 취재해 기사를 썼다.

트랜스젠더 송아민 씨. ⓒ박유빈

2018년 6월 11일에는 송 씨가 기획부터 행사 진행까지 도맡은 ‘레인보우 포레스트: 웰 빙 퀴어 밋업’ 행사가 열렸다. 국내 최초 커밍아웃 트랜스젠더 변호사인 공익인권법재단 희망법의 박한희 변호사와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이 성소수자의 건강권에 대해 강의했다.

“저도 얼마 전에 애인과 작게 결혼식을 올렸는데,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 정정을 하지 않아) 법적으로는 제가 남성, 애인이 여성이어서 혼인신고가 가능하긴 하지만 따로 신고하지 않았어요. 이런 사실혼 관계에서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등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송아민 씨의 질문엔 성소수자 커플로서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다. 이날 행사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가 참석해 고민을 나눴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회원 등 성소수자들의 삶을 응원하는 사람들 또한 다수 함께했다.

송 씨는 직장과 가정에서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2018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같은 내용을 <셜록>에 다시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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