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을 노리고 아버지를 수면제로 살해한 뒤 교통사고 사망으로 위장하려 사체를 도로변에 유기한 김신혜.’

수사기관과 법원의 결론이다. 검찰은 김신혜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김신혜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감옥에 갇힌 2000년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명 ‘김신혜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2000년 3월 7일,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 현장 ⓒ박상규

모든 일은 2000년 3월 7일 새벽에 벌어졌다. 이날 전남 완도군의 한적한 버스정류장 앞에서 한 남자 시신이 발견됐다. 신발은 벗겨진 채였다. 시신 주변에서 자동차 파편이 발견됐다. 애초 그곳에 있었는지, 교통사고로 위장하려 누군가 뿌렸는지 알 수 없다.

사망자는 한쪽 다리를 저는 뇌성마비 장애인 김OO씨(당시 52세). 시신이 발견된 현장과 그의 집은 약 6km나 떨어져 있다. 다리가 불편한 김 씨 혼자 새벽에 걸어오기 힘든 곳이다. 시신에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 경찰은 교통사고가 아닌 살인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유력 용의자는 첫째 딸 김신혜(당시 만 23세).

서울 신사동에 사는 김신혜는 차를 몰고 7일 오전 1시께 섬 완도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녀가 할머니집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5시. 경찰은 네 시간의 공백을 의심했다. 게다가 사망한 아버지 김 씨에게는 보험이 여러 개 가입돼 있었다.

사건 발생 만 하루가 지난 3월 8일 자정께. 김신혜는 경찰에 체포됐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의 여러 의혹은 김신혜가 체포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김신혜 체포 시점부터 지금까지 경찰의 공식 입장은 이렇다.

“김신혜가 자기 발로 걸어와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경찰이 주장하는 ‘자백’의 시발점은 바로 김신혜의 고모부 김△△씨의 입이다. 경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김△△씨는 3월 8일 오후 11시께 완도 대성병원 장례식장에서 김신혜가 자신에게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고 주장한다. 그 뒤 자신이 김신혜를 완도경찰서로 데려가 자수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기수 김신혜의 말을 들어보자. 아래는 김신혜가 2001년 7월 10일, 당시 반부패국민연대 고상만 국장에게 보낸 편지의 한 부분이다.

“자수는 경찰의 착각이자 환상.” 김신혜가 2001년 7월 10일, 당시 반부패국민연대 고상만 국장에게 보낸 편지의 한 부분이다. ⓒ박상규

“우선 저는 자수를 한 것이 아니라,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는 것. 그 상황에서 다른 설명을 해도 결론은 경찰이 자수로 썼으니까 그리 표현된 것이지, 자수는 아니었다는 점을 앞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자수라는 것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경찰의 착각이었고 환상이었던 것이죠.”

자수는 경찰의 착각이자 환상이라니. 자수와 자백은 김신혜가 존속살해와 사체유기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째(2015년 기준) 수감생활을 하는 결정적 근거가 아닌가.

김신혜는 고모부 김△△씨에 의해 엉겹결에 경찰서로 끌려가 강압수사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경찰 수사기록에는 어떻게 기록돼 있을까? 김신혜는 정말 자기 발로 경찰서로 가 자백을 했을까?

기획 ‘그녀는 정말 아버지를 죽였을까’ 두 번째 기사 <“확 뿌려버려!” 누드사진으로 협박한 경찰>에 쓴대로 경찰 수사기록은 여러 의혹을 안고 있다. 수사의 시작이랄 수 있는 ‘김신혜 체포’에서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나온다.

김신혜를 체포했다는 2000년 3월 9일 완도경찰서의 ‘피의자 검거 보고’ 문서를 보자. 김신혜 검거 일시와 장소는 이렇게 적시돼 있다.

완도경찰서가 2000년 3월 9일 작성한 ‘피의자 검거 보고’ 문서. 이 문서에는 피의자 김신혜를 완도 대성병원 영안실에서 검거했다고 나온다. ⓒ박상규

“2000. 3. 9. 01:00경 완도군 완도읍 가용리 소재 완도대성병원 영안실”

이어 검거 경위에는 이렇게 서술돼 있다.

“평소 우리 서(완도경찰서) 청문감사관과 절친한 피의자의 고모부 김△△이, 피의자가 피해자를 살해 후 위 장소에 사체를 유기하였다고 신고하여 피의자를 검거..”

정리하면, 고모부 김△△씨의 신고 이후 경찰이 대성병원 영안실에서 김신혜를 체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찰 수사기록에는 이와 판이한 내용이 적힌 문서도 있다. 같은 날 경찰이 작성한 ‘수사보고’ 문서를 보자.

2000년 3월 9일 작성된 완도경찰서의 ‘수사보고’ 문서. 이 문서에는 김신혜가 고모부 김OO 와 함께 ‘완도경찰서’로 와 자수했다고 나온다. ⓒ박상규

“피의자 김신혜가 (아버지) 김OO을 살해하여 유기하였다고 피의자의 고모부 김△△과 함께 완도경찰서 OOO을 찾아가 자수를 하겠다고 하여, 2000년 3월 8월 11시 40분경 김신혜의 신병을 인계받아 피의자신문조사를 시작..”

즉, 김신혜가 고모부 김△△씨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 자수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체포 장소는 경찰서 내부다.

같은 날 경찰이 작성한 문서인데도 김신혜 체포 장소와 시각이 다르다. 김신혜가 체포된 장소는 아버지 장례식이 열린 병원 영안실일까, 경찰서 내부일까? 그녀는 고모부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 자수를 했을까, 아니면 고모부가 신고해 강제로 체포됐을까?

자기 발로 경찰서로 가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는 것과, 자기 의사와 달리 경찰서로 끌려가 강압수사 속에서 허위자백을 했다는 건 차이가 크다. 김신혜는 후자가 자신의 처지였다고 주장한다. 경찰 공식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견해다.

피의자 체포 장소와 시각이 흔들리니, 이후에도 이상한 점은 이어진다. 역시 경찰이 3월 9일 작성한 ‘체포 확인서’를 보자. “(김신혜는) 완도경찰서 수사과 형사계 사무실 내에서 긴급 체포됐고, 변호사 선임을 고지받고 변명할 기회가 주어졌다”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피의자가 직접 쓴 글자 하나 없이 손도장만 날인돼 있다.

‘체포 확인서’. 김신혜 이름도 적히지 않은 상태에서 지장만 찍혀 있다. 김신혜는 “경찰이 강제로 내 손을 끌어가 지장을 찍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상규

경찰 주장대로 김신혜가 자기 발로 경찰서를 찾아 범행을 자백했다면, ‘체포 확인서’에 왜 스스로 이름을 쓰지 않았을까? 김신혜는 “경찰이 자신의 손을 끌어다 체포 확인서에 강제로 지장을 찍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2014년 여름,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진행한 박준영 변호사와의 접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A경찰이) 종이 한 장을 내 앞에 놓더니 (지장을) 찍으래요. (내) 머리를 탁탁 치고 뺨을 막 때리면서, 빨리빨리 찍으래요. 나는 멍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나는 (당신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했죠. 경찰이 (내 손가락에) 인주를 묻혔고, 내가 (손을) 뒤로 빼니까 내 손을 잡아서 (지장을) 찍은 거예요. 그러고선 서명을 하라고 닥달했어요. 머리 때리고 뺨 때리면서.”

김신혜가 체포돼 피의자 신분으로 첫 조사를 받을 당시, 민간인인 고모부 김△△씨는 당시 경찰 바로 옆에 앉아 한동안 조서 작성 과정을 지켜봤다. 하지만 당시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혀 있다. 경찰이 김씨가 아닌 순경 이OO씨를 참여시켜 피의자 신문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확인 결과,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현재 전남의 한 경찰서에 근무하는 이OO씨는 “나는 당시 수사 현장에 없었다”고 밝혔다. 현장을 목격한 다른 경찰도 “당시 피의자 조서 작성 때에는 김신혜, 고모부 김△△씨, A경찰이 전부였다”고 밝혔다.

A경찰 등 김신혜를 수사한 모든 경찰은 당시 상황에 대해 “가혹행위는 없었다” “잘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관련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경찰 수사기록은 또 있다. 바로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관한 내용이다.

피의자에게 구속영장 실질심사 절차를 고지하고 의사를 확인하는 일은 수사와 구속 절차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판사가 피의자를 직접 대면해 심문하고 구속사유를 판단한 이후에 영장을 발부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피의자는 이 자리에서 경찰 수사과정의 위법 여부와 자신의 범죄 사실에 대해서 판사에게 말할 수 있다. 피의자에게는 구속 되느냐, 마느냐의 중요한 순간이다.

완도경찰서가 작성한 ‘수사보고’ 문서. 경찰은 김신혜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스스로 포기했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서명 날인 등 김신혜의 의사가 포함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박상규

김신혜는 3월 8일 체포 뒤 몇 번 피의자 신문을 받는다. 신문조서 어디를 봐도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관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경찰의 3월 9일 수사기록에는 “(김신혜에게) 판사에게 심문받기를 원하는지 물어보자 피의자(김신혜)는 실질심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기에 수사보고 합니다”라고 적힌 수사보고서가 포함돼 있다.

한마디로, 김신혜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포기하고 구속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정말일까? 문서 어디에도 김신혜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포기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서명이나 무인은 없다. 경찰이 정리한 내용만 있을 뿐이다. 완도경찰서에서 근무했다가 은퇴한 한 전직 경찰은 “진짜 김신혜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포기했다면, 그녀의 서명과 무인이 있어야만 정상적인 문서”라고 밝혔다.

피의자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을 권리를 포기하더라도 가족들이 신청할 수 있다. 따라서 수사기관은 피의자 가족에게도 구속영장 실질심사 신청을 고지해야만 한다. 완도경찰서도 김신혜의 할머니에게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관한 내용을 고지했다고 수사기록에 적시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김신혜 할머니가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 당시 경찰은 할머니의 고령을 감안해 아들이 손녀딸 김신혜에게 살해됐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박상규

위 문서에 나온대로다. 경찰은 3월 9일 당시 김신혜 할머니 이□□씨가 고령이란 점을 감안해 “당신 아들을 손녀딸이 살해했다”라고 밝히지 않았다. 그때까지 김신혜의 할머니는 아들 김씨의 사망 원인을 교통사고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할머니에게 ‘당신 아들을 살해한 손녀딸 김신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고지했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할머니는 당시 82세의 고령으로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문맹이었다. 그 탓에 자신의 진술 조서 말미에 다른 가족이 대리 서명했다.

경찰 자신도 오락가락하는 김신혜 체포 장소와 자수 여부. 피의자가 직접 쓴 이름이 없는 이상한 ‘체포 확인서’. 여기에 피의자 구속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구속영장 실질심사 문제까지.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김신혜가 순순히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는 경찰의 주장은 사실일까? 경찰은 왜 김신혜가 판사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을까?

당시 상황을 엿본 중요한 인물이 나타났다. 다음 기사에서 전하겠다.

(박상규 기자가 2015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셜록>에 다시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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