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정말 나쁜 사람이네!”

한 의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C교수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의 눈은 경찰이 작성한 수면제 치사량에 관한 수사보고서를 주시했다. 그는 왜 분노했을까.

“경찰의 이 보고서는 100% 허위 조작입니다. 과학적 근거도 무시한 채 이렇게 쓰면 안 되죠. 일부러 한 사람을 해코지 한 겁니다.”

C교수가 주시한 문서는 전남 완도경찰서가 2000년 3월 17일 작성한 독실아민(Doxylamine)에 대한 수사보고서다. 이 문서는 한 사람을 평생 감옥에 가두는 근거 중 하나였다. 재판부는 유죄의 증거로 이 문서를 기재했다. 그런데 허위 조작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시중 약국에서 의사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수면유도제. (이 약품은 본 기사와 상관 없다) ⓒ박상규

보험금을 노리고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수가 된 김신혜. 수사기관과 법원에 따르면 그녀는 독실아민 성분이 포함된 수면제 약 30알을 술과 함께 한꺼번에 먹여 아버지를 살해했다.

“수면제 30알로 사람이 죽는다고?”

여기서 합리적 의심을 해보자. 독실아민 성분의 수면제 약 30알로 정말 사람을 살해할 수 있을까?

코웃음 칠 일이죠. 그런 약 30알로 사람을 살해했거나, 성인이 죽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과학자가 보면 정말 웃긴 이야기죠. 게다가 독실아민 성분이 든 그 약은 의사 처방전 없이 누구나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에요. 그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거죠.”

그럼 완도경찰서는 이 독실아민에 대해서 어떻게 수사보고를 했을까.

2000년 3월 완도경찰서의 한 형사가 작성한 독실아민에 대한 수사보고서. 이 문서에는 “1회에 수면제 30알을 먹으면 사망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박상규

“수면제는 1회 복용시 1정이 기준이나, 수면제를 자주 먹는 사람은 2~3정까지 복용하여야 1시간 이내에 잠에 들며, 1회에 30알을 복용하였을 경우 혼수상태로 인한 호흡곤란 등으로 사망할 수도 있음.”

1회에 30알을 먹으면 사망할 수도 있다니. 경찰은 무슨 근거로 이렇게 썼을까. 경찰은 제약회사로부터 받은 답변서와 영어로 작성된 외국의 독성실험보고서를 근거로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답변서와 외국의 실험보고서 어디를 봐도 “1회에 30알을 복용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언급은 없다. 제약 회사의 답변서를 보자.

2000년 3월 한 제약회사가 완도경찰서에 보낸 독실아민 성분에 대한 문서. 이 문서 어디에도 ‘수면제 30알을 한꺼번에 먹으면 사망할 수 있다’는 내용은 없다. ⓒ박상규

“(독실아민 성분이 들어간) OO정의 근거 자료로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치사량 투여 실험 자료는 없고 마우스와 토끼, 랫트를 대상으로 한 급성독성실험 자료가 있습니다만, 이것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이므로 다만 참고사항이 될 뿐, 사람과 동일시 할 순 없습니다.”

C교수는 경찰이 첨부한 외국의 독성실험보고서를 보고 웃었다.

“이건 원숭이랑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거잖아요. 사람 치사량 연구도 아니고요.”

경찰이 첨부한 독실아민에 대한 외국 보고서. 왼쪽은 원숭이, 오른쪽은 쥐를 상대로 실험한 것이다. ⓒ박상규

실제로 두 보고서의 제목은 이렇다. ‘원숭이에서 관찰된 독실아민의 농도.’ ‘독실아민 제제를 쥐(rat)에 투여했을 때의 발생 독성.’ C교수는 직접 준비한 문서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거기엔 ‘3세 아이가 독실아민 성분이 든 약 1000mg(약 40알)을 먹고 18시간 뒤 사망했다’고 적혀 있다. C교수가 말했다.

3세 아이가 독실아민 성분이 담긴 수면제 1000mg(약 40알)을 먹고 18시간 뒤에 사망했다는 문서. ⓒ박상규

“3세 아이가 40알 먹고 18시간 뒤에 사망했으니까, 어른은 과연 얼만큼 먹어야 죽을까요? 수사기관에 따르면 김신혜는 아버지를 만난 지 1시간 30분 안에 약으로 살해했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도대체 술 취한 성인에겐 몇 알을 강제로 먹여야 1시간 30분 안에 죽을까요?”

이젠 사건이 발생한 2000년 3월 그때로 돌아가보자. 경찰이 정리한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김신혜는 3월 7일 새벽 1시 30분께 전남 완도의 아버지 집에 도착했다. 그녀는 서울 집에서 양주 반 병과 독실아민 성분의 수면제 30알을 갈아서 가져왔다. 이를 양주 병에 탄 뒤 두 잔을 아버지에게 먹였다. 아버지는 새벽 3시께 사망했다. 김신혜는 교통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해 새벽 4시 사체를 도로에 유기했다.’

이에 따르면, 김신혜의 아버지는 알약 30알을 먹은 것도 아니다. 오직 두 잔 정도만 마셨을 뿐이다. 술이란 변수가 있지만, 극히 적은 양을 먹고 사망한 셈이다.

경찰은 김신혜가 수면제를 갈았을 때 이용했다는 그릇, 숟가락, 바닥에 떨어진 수면제를 닦았다는 행주를 영장도 없이 불법으로 압수했다. 경찰은 명백한 증거를 잡기 위해 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했다. 하지만 그 어떤 약 성분도 검출되지 않았다. 앞뒤가 맞지 않고, 과학적 근거도 없는 수사결과. 결국 검찰에서 살해 방법은 확 달라진다.

‘김신혜가 수면제 약 30알을 갈지 않고 한꺼번에 아버지에게 먹였다.’

법원은 이를 그대로 인정됐다. 여기에서 C교수의 얼굴은 황당함으로 가득 찼다.

“알약으로 30알을 먹였다면, 더욱 사람을 죽이기 어렵죠. 술 취한 사람이 그 새벽에 30알을 한꺼번에 먹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지만요.”

무슨 말일까? C교수는 차분히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약은 가루 상태로 먹으면 체내 흡수가 빠릅니다. 알약으로 먹으면 천천히 흡수되죠. 부검 결과 사망한 김신혜 아버지 혈액에서는 독실아민이 13.02ug(마이크로그램)/ml 검출됐잖아요. 보통 성인이 독실아민 성분이 든 알약 1개를 먹으면 혈액에서 0.069~0.138ug/ml 검출됩니다.”

그럼 사체 부검 결과인 독실아민 농도 13.02ug/ml가 나오려면 몇 알을 먹어야 할까? (2000년 당시 국과수에서 독실아민 과량복용이 직접 사인으로 판명된 사례에서는 혈중 농도 22.3ug/ml와 59.2ug/ml였다고 한다. 전자의 경우 알약 200알 정도를 먹어야 되는 양이다.)

“글쎄요. 사람마다 달라서 특정하기 어렵지만, 수치로만 따지면 최소 100알 이상을 먹어야죠. 100알 한꺼번에 먹을 수 있어요? 더 중요한 건, 사망자가 100알을 훨씬 초과해 먹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

이건 무슨 말일까?

“경찰은 김신혜 아버지가 3월 7일 새벽 3시께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부검을 시작한 시간은 3월 8일 오후 2시예요. 약 30시간이나 차이가 납니다. 사망을 해도 사람 혈액에는 대사효소가 있기 때문에 혈중 수치는 계속 변합니다. 즉, 독실아민 13.02ug/ml 수치는 사망 30시간 뒤 부검 결과잖아요.”

C교수는 그는 체내에 들어온 독실아민의 농도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설명하는 그래프가 담긴 문서를 꺼내 보여줬다. 시간 흐름에 따른 체내 독실아민 농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독실아민 제제의 농도에 대한 식이의 영향 정도’ 보고서. 이 보고서에는 시간 흐름에 따른 독실아민 혈중농도의 변화 그래프도 담겨 있다. 인체에 들어온 독실아민은 약 2시간 뒤 최대의 농도를 보이다가 약 60시간 뒤에는 모두 사라진다고 그래프는 보여준다. ⓒ박상규

“이 연구에 따르면, 체내에 들어온 독실아민은 약 2시간 뒤 사람 몸에서 최대 농도를 기록합니다. 그 뒤 농도가 옅어지다가 약 60시간 후에는 체내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김신혜 아버지 혈액에서는 사망 30시간 뒤 13.02ug/ml이 나왔으니까, 사망한 순간에는 그 수치가 훨씬 높았겠죠. 당연히 엄청난 알약을 먹어야 가능한 수치고요.”

물론 술이라는 변수가 있다. 술과 함께 독실아민 성분 알약을 먹으면 흡수 속도와 농도는 달라진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과연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과학적인 실험과 근거는 없다.

C교수는 “술과 함께 먹었어도 알약 30개로 독실아민 수치 13.02ug/ml는 나오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신혜 아버지를 부검한 국과수도 사망원인을 정확히 특정하지 않았다. “독실아민 중독과 고도명정 주취상태의 합동으로 추정된다”고 적었다.

이번엔 사건 당시 김신혜 아버지 시신을 직접 부검한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김윤신 교수를 지난 10일 직접 만났다. 김 교수 역시 알약 30알로 사람을 살해했다는 법원 결정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부검할 때 사람 위 내용물을 아주 자세히 살피거든요. 때로는 채로 거르면서 고춧가루 하나라도 살피죠. 사망자가 전날 밤(3월 6일 오후 9시 이후)에 먹었다는 잡채 내용물인 당면류는 부검할 때 확인했어요. 그런데 (3월 7일 새벽, 사망 직전에 먹었다는) 알약이나 알약이 녹은 걸쭉한 흔적은 발견 못했어요. 봤다면, 감정서에 언급을 했겠죠.”

실제 부검감정서에는 “위에서 미소화된 취식물을 보고 당면류, 야채류 등이 식별됨”이라고만 적혀 있다. 관련 사진도 첨부했다. 그렇다면 김 교수는 독실아민에 대한 경찰 수사보고서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김신혜 사건 재심을 위해 노력하는 박준영 변호사에게 보낸 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독실아민 치사량에 관한 담당수사관의 보고서는 큰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오류를 알고도 의도적으로 작성된 보고서라면 그 잘못은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의도적이었다면?

오류를 알고도 의도적으로 작성되었다면 용서받기 어려운 잘못. 잘못된 문서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의미있는 근거 중 하나가 됐다. 형사소송법은 유죄판결의 증거가 된 서류가 위, 변조되거나 허위작성된 경우 재심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형사소송법 제420조 제1호, 대법원 1997. 7. 25. 선고 97다15470 판결). 김신혜가 재심을 받아야 할 근거는 여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수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김신혜는 수면제로 아버지를 죽였다. 당연히 수사기관은 살해도구인 그 약을 어디서, 어떻게 샀는지 밝혀야 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살해 도구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술병, 술잔도 못 찾았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어떤 사건은 과학적 이해가 있어야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김신혜 사건이 그렇다. 하지만 법원은 의학 등 과학적 근거를 따지지 않았다. 경찰의 허위 문서를 믿고 의사, 약사 등 전문가 단 한 명도 증인으로 부르지 않았다. 법원은 2000년 8월 김신혜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망자 입 주위에 이상한 흔적

다시 한 번 합리적 의심을 던져본다. 사망한 김신혜 아버지의 혈액에서 검출된 독실아민 13.02ug/ml은 어떻게 나온 결과일까. 술 취한 남성은 새벽에 수십, 혹은 수백 개의 알약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을까? 김신혜가 약으로 1시간 30분 만에 아버지를 살해한 게 맞나? 다른 사망 원인은 없었을까?

사체 부검감정서에 이상한 게 하나 보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작성한 부검감정서의 한 대목. 누군가 입과 코를 막아 질식사시켰을 가능성도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법원과 경찰은 이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박상규

“변사자의 비구(코와 입) 주위에서 미세한 표피손상을 보는 바, 이 손상은 변사자를 유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겠으나, 만에 하나 약물과 알코올로 인한 사망의 과정에 비구부에 압박이 가해졌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할 것임.”

누군가 코와 입을 막아 질식시켜 살해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박상규 기자가 2015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셜록>에 다시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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