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서 2015년 7월 18일 공개한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를 살해한 김OO. 사람을 죽였는데도 지난 15년간 단 하루도 처벌받지 않은 남자. 그의 행운은 어디까지일까?
그는 군산경찰서에 체포돼 범행을 모두 자백했지만 이틀 뒤 경찰서를 유유히 빠져 나갔다. 이후 지금까지 자유롭게 살고 있다. 최근엔 해외 골프여행도 다녀왔다.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오는 8월 9일이면 그는 완전한 자유인이 된다.
살인범의 이런 삶, 두 공무원의 공(?)이 컸다. 우선 당시 전주지검 군산지청의 정OO 검사가 그를 구속수사하지 않았다. 경찰에서 풀려날 땐 전북의 한 지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그의 삼촌이 신병보증을 섰다.
택시기사를 살해한 그날, 범인 김OO을 숨겨준 친구 임OO도 군산경찰서에서 모든 내용을 자백했다. 검찰은 임OO도 풀어줬다. 그는 2012년 집에서 자살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살인범 김OO에겐 자신의 범행을 아는 결정적 인물이 사라진 셈이다.
살인범 김OO을 잡으려던 군산경찰서와 기어코 그를 구속하지 않은 검찰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검찰은 어떤 근거로 그를 구속하지 않았을까? 사건기록으로 살펴보자.
살인범 김OO은 2003년 6월 5일 체포돼 총 네 차례 자백했다. 그의 자백에는 범인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정보가 많았다.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6월 7일, 군산경찰서는 “김OO과 임OO의 자백으로 범죄인정되나 증거를 확보치 못해 계속 수사가 필요하다“며 검찰에 신병지휘를 요청했다. 사실상 구속수사 요청이었다.
하지만 정OO 검사는 곧바로 “피의자(김OO, 임OO)들 진술 외에 다른 보강증거가 없으므로 불구속 수사하라“고 지휘했다.
김OO에겐 기회였다. 그는 울면서 “내가 택시기사를 죽였다” “나 때문에 억울하게 옥살이 하는 최성필(가명)에게 미안하다“고 자백했지만 곧바로 이를 번복하기 시작했다. 모든 건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을 바꿨다.
황상만 형사반장 등 당시 군산경찰서 형사들에겐 위기였다. 살인범을 숨겨준 임OO마저 자백을 번복하기 전에 증거를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곧 우려한 일이 벌어졌다. 임OO도 자백을 번복하기 시작했다. 그는 김OO과 말을 맞춘 듯했다.
경찰은 김OO이 범행에 이용한 칼을 찾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난감한 일이었다. 3년 전 범행에 사용한, 살인범마저 이제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그 칼을 어디에서 찾을까.
경찰은 청소노동자, 청소업체까지 조사해 그 칼이 익산시 용안쓰레기매립장에 매립됐을 것으로 파악했다. 이들은 쓰레기 매립장을 파보겠다며 6월 18일 ‘압수수색검증영장 신청‘을 검사에게 요청했다.
이번에도 정 검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사지휘 문서를 통해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칼에 대한 특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살인범이 상세하게 자백했음에도 증거가 없으니 풀어주라던 정 검사. 이번엔 그 증거를 찾겠다고 하는데도 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대신 정 검사는 이 문서에서 “김OO이 당시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 친할머니인지 외할머니인지 확인하여..”와 같이 사건과 상관없는 수사까지 주문했다.
이런 검사의 반응에 경찰은 독기가 올랐을까? 경찰은 보강 수사를 거쳐 7월 1일, 쓰레기장을 파보겠다며 다시 압수수색검증영장 발부 청구를 요청했다. 검사는 아래의 취지로 이를 또 거부한다.
“관련자들의 칼에 대한 진술이 상이하고, 칼을 찾는다 하더라도 피해자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 검사 말대로 정말 범행도구 칼에 대한 관련자들의 진술은 상이했을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임OO 등 여러 살인범 친구들의 칼에 관한 진술은 대체로 비슷했다.
영장이 없으면 칼을 찾을 수 없는 경찰. 이번엔 김OO, 임OO의 혈액을 채취할 수 있는 영장을 7월 3일 정 검사에게 요청했다. 김OO은 범행 직후 임OO의 방에서 며칠을 숨어 지냈다. 경찰은 임OO의 침대 메트리스에서 발견된 혈흔이 이들의 유전자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려 했다.
이번엔 검사가 요청을 받아들였을까? 군산경찰서의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정 검사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들의 인권에 관련된 문제이니 압수수색검증영장을 신청하기 전에 피의자들로부터 채혈 동의서를 받아 임의수사를 해보라.”
이때는 이미 김OO과 임OO이 전북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둘은 6월 16일부터 310호에서 함께 지냈다. 물론 건강 문제로 입원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살인범 김OO과 친구 임OO은 병원 측의 심리검사에도 응하지 않았다. 검사의 지휘대로 경찰은 정신병원으로 찾아가 둘에게 채혈을 ‘부탁‘했다. 경찰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두 피의자는 이렇게 답했다.
“일체의 혈액 채취를 해줄 수 없다. 혈액을 채취하려면 압수수색검증영장을 발부받아 오라.”
살인범에게 거부당한 경찰은 정 검사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며 영장 신청 여부를 문의했다. 정 검사의 대답은 이러했다고 수사보고서에 나온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감정중인 유전자 검사결과를 보고 판단하도록 하자. 영장 신청은 하지 마라.”
어느덧 진범을 체포하고 풀어준 지 1개월이 넘은 7월 9일. 경찰은 분노의 표현인지, 아니면 답답함을 호소하려는 것인지 수십 페이지 분량의 ‘종합수사보고서‘를 작성한 뒤 “김OO, 임OO을 구속수사하고자 한다“고 검사에게 보고한다. 이 문서에는 황상만 군산경찰서 형사반장 등 형사 총 8명의 도장이 찍혔다. 이번엔 통했을까?
‘묵묵부답‘
이것이 검사의 반응이었다. 경찰은 검사의 구속수사지휘가 없자 7월 21일 구속영장신청서를 작성하여 접수하려 했다. 하지만 끝내하지 못했다. 정 검사가 구두로 이런 지휘를 했다고 한다.
“구속영장 청구 접수하지 마세요.”
결국 경찰은 기록으로만 남겨두고자 사건기록에 영장신청서만 첨부해놨다. 이게 끝이다. 결국 정 검사는 경찰의 구속수사요청을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다.
정 검사는 현재 전북의 한 지청에서 부부장 검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17일 오후 전화통화에서 “개별 사건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청의 다른 직원을 통해서는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할 말 없다“는 뜻도 전했다.
살인범 김OO이 군산경찰서에서 나올 때 신병보증을 선 공무원 이씨도 여전히 공직에 있다. 그는 17일 오전 전화를 하자 이렇게 말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전화하지 마세요! 이거 공무집행 방해입니다.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