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성 직장 동료가 강도 두 명에게 붙잡힌 현장에서 혼자 도망쳤다. 그는 약 500m 떨어진 공장 불빛을 보고 달렸다. 달도 뜨지 않은 새벽 4시께, 낙동강변은 어두웠다.

공장에 도착한 남자는 “살려달라!”고 외치지 않았다. 공장 한 귀퉁이 보일러실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여성 동료가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를 그때, 남자는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새벽 5시께, 공장 직원이 그를 발견했다.

“추워요.. 따뜻한 곳으로 데려가 주세요.”

여성과 2인조 강도를 잊었는지 그는 자기 몸부터 챙겼다. 남자의 몸은 온통 젖었고, 얼굴에는 상처가 있었다. 공장 직원이 그를 병원에 데려간 시각은 오전 5시 40분께. 범죄현장에서 탈출한 지 약 100분이 흐르는 동안 그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의식도 멀쩡했는데 말이다.

정현덕은 사건 현장에서 홀로 탈출했다. 그는 약 2시간 동안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다. 캄캄한 새벽에 인근 공장으로 달려가는 정현덕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봤다. ⓒ 류정화

경찰에 처음 신고한 사람은 그가 아닌 병원 의사였다. 오전 6시 40분께, 경찰이 낙동강 현장에 도착했다. 강변 도로에 검은색 로얄프린스 승용차 한 대가 보였다. 차 옆 인도에 붉은 피가 낭자했다.

핏자국은 강 쪽으로 길게 이어졌다. 경찰은 붉은 피를 따라 약 50m를 걸었다. 핏자국이 끝나는 강변 갈대밭, 여성은 만세를 외친듯이 두 팔을 머리 위로 뻗은 채 누워 있었다. 오른쪽 두개골이 함몰된 그녀는 숨을 쉬지 않았다.

남자 말에 따르면, 그가 탈출할 때까지 이 여성은 살아 있었다. 두 강도가 여성을 죽였다면, 오전 4시 이후의 일이다. 남자의 신고로 경찰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범인들은 크고 무거운 물체로 여성 머리를 가격한 후 시신을 갈대밭에 유기한 셈이다. 그것도 약 50m 떨어진 곳에 말이다.

두 강도는 체포를 걱정하지 않을 만큼 대범했을까? 여성을 죽이고 시신을 유기할 때까지 경찰은 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을까? 진짜 의문은 따로 있다.

탈출한 남자는 왜 바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지?

현장에서 약 800m 떨어진 곳에 파출소가 있었는데 말이다. 사망한 여성은 박수경(가명. 당시 30세), 탈출한 남자는 정현덕(가명. 당시 35세)이다. 정현덕은 사건이 벌어진 1990년 1월 4일 당일, 부산 북부경찰서 형사 두 명과 다시 현장을 찾아 자신이 겪은 위급한 상황을 설명했다.그의 말은 ‘현장검증 조서’에 적혀 있다.

“박수경 집 앞에서 그녀를 (로얄프린스 승용차) 운전대 옆 좌석에 태우고 (중략) 주차한 상태에서 카세트 테이프 노래를 약 1시간 15분 가량 들었습니다. 01시 30분경에 제가 박수경에게 (집에 가서) 물을 떠오라고 차에서 내려보냈습니다.

그후 저는 차량 뒷좌석에 앉아 약 20~30분간 잠들었는데, 범인 2명이 양쪽 문을 열고 주먹으로 내 얼굴을 마구 때리고 있을 때 박수경이 돌아왔습니다. 범인 중 1명은 박수경을 운전대 옆 좌석에 태우고 다른 1명은 저를 감금한 채 차를 운전해 낙동강 하구언 방면으로 갔습니다. 03시 30분경에 제2현장(부산 엄궁동 낙동강변)으로 갔습니다.” – 부산 북부경찰서 엄궁동 살인사건 검증조서 참고

정현덕은 범인 두 명이 아무런 도구 없이 주먹으로 자신을 때렸다고 진술했다. 범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이번엔 제2현장인 엄궁동 낙동강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보자.

“엄궁동 강변에서 범인 중 키가 작은 1명이 저의 손을 뒤로 해서 테이프로 묶고 입을 막았습니다. (키 작은 범인이) 나를 낙동강으로 끌고 가서 물속에 밀어넣어 처박았으나 포박한 것이 풀려 키 작은 범인과 물속에서 서로 치고 박고 격투를 했습니다. (이후) 범인과 같이 지쳐서 차 있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그 시간이 약 30분 정도 걸린 것으로 생각됩니다.

차량 문이 열려 있었는데, 운전대 옆 좌석에 있는 박수경 살결이 보여 남아 있던 키 큰 범인에게 강간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도망가다가 약 50m 지점에서 키 작은 범인한테 붙잡혀 다시 끌려왔습니다. (범인이 다시) 저의 손목을 묶고 구타할 때 박수경에게 ‘도망쳐’라고 소리쳤습니다. 박수경이 도망가자 범인 2명이 따라가는 것을 보고 (제가 차에 타) 시동을 걸려다가, 박수경이 붙잡혀 오는 것을 보고 저는 다시 도망쳤습니다. 그때 시각이 04시 00분 조금 넘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 부산 북부경찰서 엄궁동 살인사건 검증조서 참고

정현덕은 피해자이자 생존자이며, 유일한 정황 목격자. 이처럼 정현덕은 제1현장, 제2현장에서 겪은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이 사건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이며, 유일한 정황 목격자다. ‘낙동강 2인조 부녀자 살인사건’은 이렇게 출발했다.

부산 북부경찰서는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수사를 시작했다. 경찰은 제1현장, 제2현장에서 범인을 특정할 만한 유력한 증거를 못 찾았다. 2인조가 탔고, 강간 정황이 있었다는 로얄프린스 승용차에서도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 머리카락, 음모, 정액 등은 나오지 않았다.

정현덕의 기억과 입은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그는 격투까지 벌이며 약 두 시간을 함께 보낸 2인조의 인상착의를 설명하지 못했다. 이유가 있다. 그날 그 순간, 하늘엔 달이 없었다. 제1현장, 제2현장에는 가로등도 없었다. 온통 어두웠다.

정현덕은 용의자 몽타주조차 못 그렸다. 수사협조문의 ‘범인 인상착의’에는 이런 내용만 담겼다.

갑 : 30세 전후 신장 170~172cm, 체격 좋고 얼굴 둥글 넙적. 보통 머리, 잠바 착용, 흰장갑, 부산말씨. 
을 : 30세 전후 신장 165~167cm, 체격 적고 호리호리, 얼굴 홀쭉, 잠바착용, 부산말씨.

1990년 1월 4일 낙동강 부녀자 살인사건 이후 배포된 수사협조문. 범인 인상착의에는 구체적인 정보가 담기지 못했다. ⓒ장동익

특별수사본부는 약 6개월간 수사했지만 유력 증거를 확보 못 하고, 범인 검거에도 실패했다. 사건은 미해결 상태로 미궁에 빠졌다. 반전은 정확히 1년 11개월 뒤에 벌어진다.

1991년 11월 11일, 북부경찰서가 아닌 부산 사하경찰서 쪽에서 정현덕을 불렀다. 형사는 그에게 두 남자를 보여줬다. 짧은 대면, 정현덕이 입을 열었다.

“저 사람들이 범인입니다. 확실합니다.”

사건 발생 직후에는 용의자 얼굴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정현덕. 그는 공무원사칭 혐의 등으로 부산 사하경찰서에 체포돼 있던 장동익, 최인철을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정현덕은 사건 발생 약 2년 뒤에야 갑자기 새로운 기억이라도 떠오른 걸까? 1991년 11월 27일, 담당 검사가 정현덕을 불렀다.

  • 검사 : “(당신이 지목한 장동익, 최인철이) 범인이 맞다면 최고형인 사형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두 사람이 틀림 없습니까?”
  • 정현덕 : “예, 확신 없이 그들이 범인이라고 어떻게 장담을 하겠습니까.”
  • 검사 : “어떻게 그렇게 장담을 할 수가 있죠?”

정현덕은 물증을 제시하지 않았다. 확신을 뒷받침 하는 새로운 근거도 없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범인이 맞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낙동강 부녀자 살인사건 범인은 장동익, 최인철이라며 이들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명백한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정현덕의 진술과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현덕의 진술과 증언은 신빙성이 있었을까? 두 사람을 평생 교도소에 가둬도 괜찮을 만큼 그의 말에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었을까?

범죄가 발생했을 때, 사건의 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피해자와 가해자다. 피해자의 진술과 증언, 범인의 자백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핵심 열쇠 중 하나다. 물론 여기엔 단서가 붙는다.

‘거짓이 아닌 진실일 것.’

사건 상황, 현장에 남은 물증, 목격자 진술 등에 부합하지 않는 피해자-범인의 진술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오락가락 일관성 없는 진술 역시 신뢰도를 떨어트린다. 자, 그럼 이제 사건 기록을 펼쳐보자.

낙동강 부녀자 살인사건의 사건기록. ⓒ셜록

북부경찰서 엄궁파출소에서 작성됐다는 ‘1차 진술조서’라 적힌 문서에 따르면, 정현덕은 이렇게 진술했다.

“갑자기 남자 두 명이 뒷문을 하나씩 동시에 열고 돌멩이인지 무슨 흉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제 얼굴을 수회 때렸습니다. 누구냐고 물으니 ‘경찰이다, 너는 죽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범인 중 키 작은 사람이 권총인지, 장난감인지 몰라도 구리빛이 나는 것으로 저의 목에 갖다 대고 ‘자꾸 반항하면 죽인다’고 했습니다.” – 제1현장 상황 설명

“키 작은 범인이 제 머리카락을 잡고 갈대밭으로 끌고 내려갔습니다. 그가 ‘너는 죽어야 된다’면서 저를 물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물속에서 발버둥 치다가 손에 감겼던 테이프가 풀려서 밖으로 나오려 하니까, 키 작은 범인이 물속으로 따라 들어와 서로 치고 받았습니다.

범인이 지쳤는지 저에게 ‘최 기사, 이제 술 깨나’ 하여 제가 ‘술이 깬다’고 했습니다. 범인이 ‘그럼 차에 가자’고 하여 그가 제 머리카락을 잡고 차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제가 차 조수석 문을 여니까 실내등 불이 켜졌습니다. 조수석에 앉은 박수경을 보니 맨살이 보여 제가 엉덩이 부분을 만지니까 옷을 벗은 상태였습니다.” – 제2현장 상황 설명

이상하다. 격투를 벌이던 범인과 정현덕이 그 추운 겨울 새벽에 물속에서 한가하게 “술이 깨느냐” “술이 깬다”라는 대화를 나눴다니. 죽일 듯이 싸웠다는 둘은 왜 함께 차 쪽으로 다시 이동했지?

차에 도착했을 때 상황도 의아하다. 차 문을 열자 실내등이 켜졌는데, 정현덕은 굳이 직장 동료 박수경의 맨살 엉덩이 부분을 만져봤다고 했다. 그것도 강도 두 명 앞에서 말이다.

당시 상황 설명만 어색한 게 아니다. 위 진술은 앞의 현장검증 때와 많이 다르다. “주먹으로 때렸다”는 진술은 “돌멩이 혹은 흉기로 때렸다”고 바뀌었다. 키 작은 범인이 ‘구리빛이 나는 도구’를 꺼내들었다는 범행도구 진술도 새로 나왔다.

또 현장검증 때 정현덕은 “차량 문이 열려 있었”으며 “운전대 옆 좌석에 있는 박수경 살결이 보여 남아 있던 키 큰 범인에게 강간당한 느낌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유일한 생존자이자, 정황 목격자의 진술이 다른 건 가벼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두 진술은 같은 형사가 같은 날, 혹은 좁은 시간차를 두고 기록한 것이다. 자세히 보면, 북부경찰서가 작성했다는 ‘1차 진술조서’는 이상한 점이 있다. 형사는 중요한 인물의 달라진 진술을 문제 삼지 않았다. 게다가 이 조서는 언제 작성됐는지 날짜가 기록돼 있지 않다.

세월은 흘렀다. 정현덕이 사건 발생 약 2년 만에 사하경찰서로 불려와 최인철, 장동익을 차례대로 처음 대면하는 1991년 11월 11일의 모습을 보자. 기록에 남은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최인철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니 범인이 틀림없습니다. 체격과 얼굴, 머리 형태를 봤을 때 주범격인 그 사람이 틀림 없고, (중략) 제 회사 아줌마인 박수경을 강간하고 때려 죽인 사람이 틀림이 없습니다.” 

어두운 새벽에 사건이 벌어져 몽타주도 그리지 못했던 정현덕은 최인철을 보자마자 “범인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박수경 살해 당시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그는 “박수경을 강간하고 때려 죽인 사람은 최인철이 틀림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장동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은 정확히 기억할 수 없는데, 비슷해 보입니다. (중략) 제 손으로 저 사람을 죽이고 싶습니다.” 

비슷해 보일뿐인데, 죽이고 싶다니. 게다가 자신과 격투를 벌였다는 장동익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면서, 다소 떨어져 있던 최인철에 대해서는 “주범이 특림없다”고 단정하다니. 정현덕의 이상한 진술은 다음날인 11월 12일에도 이어진다.

“(최인철을 보고) 처음 보는 순간 그때 범인이 틀림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중략) 지금은 검게 탄 얼굴이지만, 그때는 밤불빛에서 보아도 얼굴색이 지금보다 흰 편이었습니다.” 

“(장동익을 보고) 작다는 것 정도 외에 별 특징이 없어 사실 기억을 못하겠습니다. (중략) 자신 있게 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으나 (중략) 범인이 틀림 없습니다.”

1990년 8월 부산 해운대에서 촬영된 장동익(왼쪽), 최인철의 모습. 최인철은 바닷일을 오래 해서 얼굴이 검은 편이다. 정현덕은 “(사건 당시) 최인철 얼굴색이 지금보다 흰 편”이었다고 진술했으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 최인철

사건 당시 몽타주도 못 그린 정현덕은 2년 만에 “최인철 얼굴색이 지금보다 흰 편”이었다고 자세히 진술했다. 장동익에 대해서는 ‘기억을 못하지만 범인이 맞다’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했다. 그의 오락가락 진술은 계속 이어진다.

11월 16일에는 ‘낙동강 격투신’에 대해서 말을 바꿨다.

“장동익과 물속에서 격투를 하다 둘 다 힘이 떨어졌습니다. 장동익이 ‘인자 힘 빠지제? 인자 나가자’하여 둘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차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사람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걸었다니. 그는 사건 발생 직후에는 북부경찰서 엄궁파출소에서 “장동익이 머리카락을 잡고 올라왔다”고 진술했던 그다. 이게 끝이 아니다. 정현덕의 일관성 없는 진술은 검찰에서도 이어진다.

“장동익은 물속에서 저와 격투를 하고, 차 있는 곳까지 갈 때 제가 앞서고 장동익은 경사진 곳을 오르면서 엉금엉금 기어 따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1991년 12월 4일 검찰 3차 진술.

자꾸만 달라지는 진술. 드디어(?) 검찰에서 그의 말을 문제 삼기 시작한다.

  • 검사 : “사건 직후 북부경찰서에서 진술할 때는 격투 끝내고 장동익이 진술인의 머리카락을 잡고 차 있는 곳까지 갔다고 되어 있는데요.”
  • 정현덕 : “(그때) 제정신이 아니라 정확히 기억을 못한 듯한데요. 지금 생각하는 내용이 맞습니다.”
  • 검사 : “그럼 당신은 차 있는 곳까지 갈 게 아니라 도망을 가야하지 않나요?”
  • 정현덕 : “그때는 범인들이 저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몰랐고, 박수경 아줌마가 차 안에 있었기에 혼자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진술과 달리 그는 박수경을 두고 혼자 도망간 당사자다. 또 정현덕은 시간이 갈수록 기억이 더 선명해지는지 북부경찰서, 사하경찰에서 하지도 않은 진술을 검찰에 와서 처음 꺼내기도 했다.

“(사건 당시) 범인들에게 ‘이 차에 있는 카세트는 녹음장치가 되어 있다’고 말한 사실이 있는데, 이는 아직 진술하지 않은 내용입니다.”

1990년 로얄프린스 승용차 카오디오에 녹음장치가 있다니. 이는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로얄프린스 카오디오를 제작·생산했던 업체에 직접 물어봤다. 그때는 물론이고 현재까지 카오디오 모델 가운데 외부음성 녹음기능이 있는 제품은 없다.

“문의한 카오디오 모델은 해당 차량(정현덕 차량) 전용 모델로, 다른 차량에는 설치 된 바 없다. 당시 카오디오에는 마이크도 없었고 외부음성 녹음 기능 자체가 없다. 다른 수입 제품, 경쟁사 제품에도 이 기능은 없었으며 별도의 기능 추가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사건 당시 현장검증 조서를 봐도 카오디오가 파손됐다는 기록은 없다. 장동익-최인철이 수사기관에서 그런 진술을 했다는 기록 역시 없다. 그야말로 2년 만에 새로 등장한 이야기.

그럼에도 이 사건을 수사했던 허OO 경찰은 1심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최인철에게 차량 파손 이유를 물었는데, 음성 녹음을 남기지 않기 위해 카세트를 파손하고 도망 갔다는 말을 들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2년 뒤에 기억이 더 선명해지다니.

범행 도구 중 하나인 가스총에 대한 정현덕의 기억법도 놀랍다. 사건 당시 정현덕의 최초진술조서, 북부경찰서 형사들이 작성한 사건발생보고서, 종합수사보고서, 검증조서, 수사협조문 등 어디에도 가스총 언급은 없다. 어두워서 범인 얼굴도 특정하지 못한 정현덕은 2년 만에 “총구가 구리빛”이었다고 가스총에 대해서는 상세히 진술했다.

당시 사하경찰서는 최인철의 차에서 가스총을 압수했는데, 이에 맞춰 말을 바꿨거나 경찰이 진술을 조작한 것으로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제1현장의 승용차 안 구타 상황에 대해서도 주먹으로 맞았다 -> 돌멩이로 맞았다 -> 몽둥이로 맞았다 -> 가스총으로 맞았다 등으로 정현덕은 일관되지 않게 말했다.

시각장애인 장동익. 앞을 잘 볼 수 없는 그는 낙동강에서 부녀자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서 약 21년을 복역했다. ⓒ 셜록

이쯤되면, 합리적인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정현덕은 정말 강도 두 명을 만나긴 했을까? ‘낙동강 부녀자 살인사건’의 범인은 두 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범인은 둘”이란 건 정현덕의 주장에서 비롯됐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박수경 시신에 남은 흔적은 범인은 한 명일 수도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녀의 목 아래 등쪽에 남은 무수히 긁힌 자국. 사람 혼자 시신 다리를 잡고 끌었을 때 그런 상처가 남는다는 걸 작년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팀은 실험으로 보여줬다.

무엇보다 정현덕이 물속에서 자신과 격투를 벌인 범인으로 지목한 장동익. 그는 시각장애인이어서 격투는커녕 밤에는 외출도 잘 못한다는 걸, 정현덕은 알고 있었을까?

또 한 가지. 정현덕은 자신이 “박수경의 맨살 엉덩이 부분을 만져”봤으며 “최인철이 박수경을 강간했다”고 확신했지만, 북부경찰서 부검 수사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외견상 성폭행 현상 발견할 수 없음.’

“부검 소견으로 외견상 성폭행 현상 발견할 수 없고”라고 적힌 북부경찰서 부검 수사보고서. ⓒ장동익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용의자의 흔적이 남아 있을까하여 박수경의 손톱을 채취해 혈액 반응 검사를 실시했다. 박수경의 손톱에서는 ‘A형’ 혈액 반응 결과가 나왔다. 정현덕은 A형이었다. 실제로 그는 사건 당시 용의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낙동강 부녀자 살인사건의 생존자이자 유일한 정황 목격자인 정현덕은 1990년대 중반에 사망했다. 지병 탓이었다고 유가족은 전했다. 부질없는 질문을 다시 해본다.

“탈출한 정현덕은 왜 바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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