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기사는 박근혜, 문재인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펼치던 때에 세상에 나왔다.

“문재인, ‘악질 주부 성폭행살인범’ 변론.. 충격!”
[부산 엄궁 데이트 강간살인] 변호인 문재인, 무죄 주장했지만 판결은 극형!

<뉴데일리>는 이런 제목의 기사를 2012년 12월 18일에 보도했다. 제18대 대선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기사의 많은 부분은 과거 <연합뉴스> 기사를 그대로 복사한 것으로 채워졌다. 제목과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해당 기사는 살인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을 변론했던 문재인 후보를 비난-비판한 것이다.

제18대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 2012년 12월 18일 <뉴데일리>는 문재인 후보가 ‘악질 주부 성폭행살인범’을 변론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뉴데일리 기사 캡처

이로써 1990년 1월 4일에 발생한 ‘부산 엄궁동 부녀자 살인사건’은, 22년 만에 대선 국면에 등장했다. 당시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무기수가 된 장동익, 최인철의 실명도 거론됐다.

문재인은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패했다. 그의 의뢰인이었던 장동익, 최인철은 감형을 받아 2013년 세상에 나왔다. 2016년 9월, 문재인은 경남 김해의 한 카페에서 두 사람을 20여년 만에 만나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넸다. <뉴데일리> 시각으로 따지면,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악질 성폭행살인범’을 유력 정치인이 격려한 셈이다.

이 사건은 문재인 후보가 승리한 제19대 대선 정국 때도 거론됐다. 이번엔 문 후보가 직접 말했다. <뉴데일리> 보도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낙동강변 2인조 강간살인사건. 부산지역에서 아주 떠들썩했던 사건인데, 오늘 (영화 <재심>에서) 보셨던 거와 같은 경찰의 가혹한 고문으로 (장동익, 최인철이 허위) 자백을 했던 사건입니다. 그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한 게 제 변호사 생활에서 제일 한이 되는 사건입니다.” – 2017년 2월 24일 영화 <자백> 관람 후 감독과의 대화에서.

장동익, 최인철은 강간살인범이 아니라고 확신한 문재인 후보. 20여년 전, 그는 부산에서 인권변호사 활동하며 두 사람을 변론할 때도 이렇게 말했다.

2017년 지난 2월 24일 문재인 대선 예비후보는 영화 <재심>을 관람했다. 가운데 앉은 이가 ‘낙동강 부녀자 2인조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누명을 쓰고 약 21년간 복역한 장동익이다. 문재인 변호사가 과거 맡았던 사건이다. 맨 왼쪽은 현재 이 사건의 재심을 추진하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다. ©셜록

“피고인들과 함께 사하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던 동료 3명이 이들의 고문사실을 증언했습니다. 최인철 피고인의 경우 당시 고문으로 입은 팔과 이빨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장동익 피고인의 경우 피해자가 정확히 지목하지 않고 있는 등 증거가 전혀 없는 상태인데도 유죄로 인정한 재판부의 판단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 1993년 1월 7일 광주고법 무기징역 선고 직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의 범행을 입증하는 명백한 물적 증거가 없고, 피해자조차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는데도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한 사건. 문재인 대통령이 오랫동안 두 사람이 범인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청년 변호사 문재인이 이 사건을 맡게 된 과정부터 볼 필요가 있다. 문 변호사는 이 사건을 비껴갈 수 있었다. 사건의 1심 변호인은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부산지방법원이 낙동강 부녀자 강간살인사건 누명을 쓴 장동익, 최인철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1992년 8월 11일. 장동익의 어머니와 막내동생 장성익은 크게 낙심해 법원에서 나왔다. 사건에 관심이 있던 한 기자가 이들에게 다가왔다.

“인권변호사 문재인을 찾아가 보십시오. 문 변호사라면 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을 겁니다.”

장동익의 어머니와 장성익은 사건 기록을 들고 문 변호사를 찾아갔다. 두 사람은 문 변호사를 만나 사건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다. 문 변호사는 그 자리에서 확답하지 않았다.

“기록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제가 변론을 맡겠다, 못 맡겠다 결정할 수 없습니다. 기록을 읽어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며칠 뒤, 문 변호사는 사건을 맡기로 결정했다. 장성익은 그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문 변호사님이 기록을 꼼꼼하게 보셨는지, 두 사람(장동익-최인철)은 범인이 아니라면서 열심히 해보겠다면서 했습니다. 이후 저희 어머니께서 문 변호사님 사무실을 자주 찾아가 하소연을 하셨는데, 그 이야기도 잘 들어주셨습니다.”

낙동강 2인조 살인사건의 기록. 최인철 관련 자료는 따로 표시돼 있다. ⓒ 셜록

문 변호사가 사건을 맡도록 결심하게 한 건 바로 ‘사건 기록’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사건은 물증 없이 두 피고인의 자백과 피해자 진술에만 거의 의존해 유죄 판결이 났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수사의 왕은 자백’이니 말이다.

범인의 진실한 자백은 흐트러짐이 거의 없고, 사건 상황과도 일치한다. 일관성이 없고, 사건 상황과 불일치한 자백은 고문이나 조작에 따른 허위자백일 가능성이 높다.문재인 변호사는 사건 기록 속 장동익, 최인철의 자백이 허위란 걸 알아챘다. 문 변호사는 2심 재판과 대법원 상고에서 이 문제를 집중 지적했다.

수사기관이 작성한 기록을 보면 공범이라는 장동익, 최인철의 진술이 일치하는 게 거의 없다.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오락가락 뒤죽박죽이다.

부녀자 박수경(가명. 당시 30세)씨가 두개골이 함몰된 모습으로 사망한 채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 갈대밭에서 발견된 때는 1990년 1월 4일 오전 6시 40분께. 부산 사하경찰서는 친구 사이인 장동익, 최인철이 사건 전날인 1월 3일 오후에 만나 술을 마시는 등 놀다가 다음날 새벽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조작했다.

자, 이제 사건 기록을 살펴보자.

#1. 장동익-최인철의 만남

시작은 이렇다. 1991년 11월 11일에 작성된 최인철의 자필 자술서부터 보자.

“그날(1991년 1월 3일)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 동익이가 놀러와 심심하다길래 시라시(먹장어 새끼) 잡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작업 하다가 추워서 술이 생각나 한잔 하려고 육지에 내렸습니다.”

같은 날 작성된 그의 1차 피의자 진술조서에서는 이렇게 말이 달라진다.

“장동익이가 회사일을 쉬고 있었고, 장동익 집에 전화기가 있어 전화를 하여 명지삼거리에서 오후 4시쯤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 시간에 서로 하는 일도 없고 하니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하여 하굿둑으로 가서 을숙도 광장에서 맥주 등을 먹고 그곳에 있는 원숭이를 보고 놀다가…”

이틀 뒤인 11월 13일에 작성된 2차 피의자 진술조서의 내용은 이렇다.

“(1월 3일은 신정)연휴라 동익이가 집에 놀고 있지 싶어 전화를 하여‘저녁에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하니 좋다고 했습니다. 오후 5시쯤에 심포삼거리에서 만나자고 해, 그때 함께 어디서 술을 한잔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계속 말이 달라진다. 자, 이제는 장동익 차례. 11월 14일에 작성된 그의 자필 자술서를 보자.

“1990년 1월 3일 연휴에 인철이에게 저희 집으로 ‘술 한잔 하자’고 전화가 왔습니다. 신포에서 (중략. 말이 이어지지 않음) 함께 술을 깨기 위해 바람 쐬러 가자고 하여 을숙도 강변도로를 걸어 가다가 그 부근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인철이가 ‘술 한잔 더 하자’고 하여..”

둘의 말이 비슷해지는 듯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만나는 장소, 약속 시간이 제각각이다. 1990년 1월 3일(수요일) 역시 연휴가 아니었다. 당시 신발 공장에 다니던 장동익은 그날 정상 출근해 오후 6시 30분까지 근무를 했다.오후에 최인철이 장동익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술 약속을 잡았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낙동강 부녀자 2인조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누명을 쓰고 약 21년을 복역한 장동익(왼쪽), 최인철. ©셜록

#2. 차량 습격 모습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 직장 동료 박수경, 정현덕은 검은색 로얄프린스 차량 안에 있었다. 차는 박 씨의 집 앞에 주차된 상태였다. 박수경이 물을 뜨러 자리를 떴을 때 정현덕은 차량 뒷좌석에 있었다. 잠시 뒤 남자 강도 두 명이 습격했다는 것이 정현덕의 주장이다.

먼저, 최인철은 11월 11일 사하경찰서에서 진행한 1차 피의자신문조서를 보면, 당시 상황이 이렇게 설명돼 있다.

“저는 운전석 쪽 문을 열고 동익이는 뒷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바로 제가 주먹으로 (정현덕) 얼굴을 때리고, 그 남자가 ‘누구냐’고 물어 (제가) ‘단속반이다’라고 하고 있을 때..”

최인철의 말은 검찰조서에서 달라진다.

“제가 운전을 해보고 싶어서 차로 다가가서 차 뒷문을 열고 ‘단속반이다’ 했습니다. (제가) ‘차가 좋은데 운전을 해보자’고 하니까, 처음에는 남자가 머뭇거리더니 ‘조금 이따가 해보라’고 하여,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 11월 18일. 검찰 1차 피의자신문조서

장동익의 진술조서에는 그때 일이 이렇게 설명돼 있다.

“인철이가 차문을 열고 저는 (인철이) 옆에 서 있었습니다.” – 11월 14일 자필 자술서.

하지만 두 사람의 조서와 달리 정작 피해자 정현덕은 사건 직후 경찰에게 이렇게 말한 것으로 나온다.

“저는 차량 뒷좌석에 앉아 약 20~30분간 잠들었는데, 범인 2명이 양쪽 문을 열고 주먹으로 내 얼굴을 마구 때리고..”

사건이 시작되는 최초의 순간. 기록에 나오는 피해자, 범인 두 명의 이야기가 다르다.  피해자는 운전석과 뒷좌석을 오가고, 범인들이 열었다는 차량 문도 제각각이다.

#3. 누가 정현덕을 강으로 끌고 갔나

물을 뜨러 간 박수경이 돌아오자, 두 강도가 그녀와 정현덕을 차에 태우고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으로 갔다는 게 정현덕의 주장이다.

엄궁동 현장에 도착한 직후의 상황이 최인철은 자필 자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내가 먼저 남자를 낙동강으로 끌고 가 물 좀 먹이고 때렸습니다. 또 내가 다시 승용차에 있던 여자를 끌어 내려 강간을 하고..” – 11월 11일 작성된 최인철 자필 자술서에서

반면 장동익의 피의자진술조서에는 자신이 남자를 강으로 끌고 간 것으로 나온다.

“인철이가 저에게 ‘너는 저쪽으로 안 보이는 곳에 가 있으라’고 하여 제가 묶여 있는 그 남자(정현덕)를 (강에) 밀어 넣었더니, 그 남자가 바깥으로 나오려고 하기에 또 강으로 밀어넣었는데..” – 11월 14일 사하경찰서에서 작성된 장동익 2차 피의자진술조서에서.

정현덕은 사하경찰서 수사 과정에서 두 범인의 인상착의를 ‘키 큰 남자’ ‘키 작은 남자’로 각각 구분해 진술했다. 그러나 추운 한 겨울 새벽, 자신을 강으로 끌고가 밀어 넣었던 범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지 못했다. 최인철, 장동익의 조서상 진술도 일치하지 않는다.

#4. 어디서 지갑을 빼앗았나

피해자 정현덕은 최인철에게 지갑을 빼앗겼다고 경찰에게 진술했다. 그 지갑은 어디서 빼앗겨, 어떻게 사라졌을까. 최인철의 피의자진술조서에는 이렇게 나온다.

“차를 (엄궁동) 강쪽으로 돌려 세우고, (정현덕과 박수경) 둘 다 주민등록증이나 지갑 있으면 내놓으라고 했습니다.여자에게는 뭘 받았는지 지금 기억이 없습니다. 남자에게는 지갑을 받았으며, 지갑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중략)

(여성 살해 후) 저는 바로 엄궁동 방향으로 걸어 도망갔습니다. 가다가 보니 제 주머니에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이 든 지갑이 있기에 놀라 ‘엄마야’하고 부마고속도로 가는 다리 중간 부분에서 강쪽으로 (지갑을) 던져 버렸습니다.”- 11월 13일 사하경찰서 작성 최인철 2차 피의자진술조서에서

여성을 살해한 엄궁동 낙동강변에서 지갑을 빼앗은 후, 도주하면서 강에 버렸다는 진술. 이는 검찰조서에서 완전히 달라진다.

“차가 서 있던 곳(박수경의 집 앞)에서 (정현덕의) 지갑을 받아 돈 3만 원인가를 꺼내어 제 주머니에 넣고 지갑은 신분증이 들어 있는 채로 주인에게 돌려준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 발생 후 약 7개월이 경과한 후에 장동익과 드라이브를 하는데, 장동익이 피해자의 지갑을 보여줬습니다. 사건 당시 정현덕에게 빼앗았던 지갑을 자기가 받아 여태까지 보관했는데, 어떻게 할까라고 물어, 제가 ‘알아서 하라’고 하였더니 장동익이 차 밖으로 버렸습니다.” – 11월 18일 검찰 1차 피의자 진술조서에서.

지갑을 빼앗은 장소, 보관한 사람, 버린 장소가 모두 달라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정작 지갑을 빼앗겼다는 정현덕의 말은 최인철의 조서에 적힌 진술과 또 다르다. 애초 그는 박수경 집 앞에서 차를 타고 엄궁동으로 가는 도중에 최인철에게 지갑을 줬다고 진술했다. 나중에 그는 박수경 집 앞에서 지갑을 빼앗겼다고 말을 바꿨다.

‘낙동강 부녀자 2인조 살인사건’ 기록이 담긴 오래된 보따리. ©셜록

#5. 누가 여자를 숨지게 했나

사하경찰서가 11월 13일 작성한 최인철 2차 피의자신문조서에는, 최인철이 혼자 박수경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나온다.

“제가 (현장에서) 도망가려고 하는데, 아줌마(박수경)가 제 허리띠 부분을 잡고 늘어지면서 놓아주지 않기에 제가 땅바닥에 있던 나무(각목)를 오른손에 들어 여자의 어깨를 친다고 하는 것이 머리에 맞은 듯합니다. 그 당시의 확실한 기억은 없으나, 그렇게 두서너 번을 때리니 여자가 옆으로 쓰러졌습니다. 제가 겁이나 여자를 끌고 강쪽으로 데려가 정신차리게 하려고 강물을 몇번 적셔도 축 늘어지기에 갈대밭에 반듯이 뉘어 놓고 정신없이 도망쳤습니다.” –  11월 13일 사하경찰서에서 작성한 최인철 2차 피의자신문조서에서

장동익의 조서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적혀 있다.

“(엄궁동 낙동강변에서) 갑자기 ‘퍽퍽’ 하는 소리가 두 번 나는 것을 듣고, 그쪽으로 가보니 여자가 넘어져 있었습니다. 인철이가 ‘들어라’ 하기에 제가 (여자) 다리를 잡고, 인철이가 머리를 들고 둑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중략)

갈대숲 입구까지 내려가 그 자리에 놓고 보니까 도저히 (여자가) 살 것 같지 않아 겁도 나고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  (중략)

그곳에 있던 주먹크기의 돌을 쥐고, 머리부분을 1회 찍었습니다. 그때 인철이가 ‘미쳤나, 이 호로새끼’ 욕설을 했습니다. 여자를 갈대숲으로 끌어 넣고, 불빛이 보이는 쪽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 11월 15일 사하경찰서 작성 장동익 3차 피의자진술조서에서

도대체 누가 여자를 죽였다는 것일까?

#6. 아무도 장동익 얼굴을 못봤다

이 사건 피해자 정현덕은 경찰, 검찰, 법정에서 장동익을 두고 “키가 작다는 것 외에 별 특징이 없어 기억을 못하겠다”며 “자신 있게 그 사람(범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장동익은 낙동강 부녀자 2인조 살인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이 됐다.

형사사건 수사와 재판의 최종 목표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서술한 대로 수사기관이 작성한 기록에는 범인으로 지목된 두 사람과 피해자의 진술이 처음부터 일관되지 않고 계속 달라지는 것으로 나온다. 현장 상황과 부합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장동익, 최인철이 범행에 사용했다고 조서에 적혀 있는 주먹만 한 돌, 각목 등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정현덕이 빼앗겼다는 지갑은 애매하게 사라진 것으로 처리(?)됐다.

두 사람의 유죄 입증은커녕 사건 내용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장동익은 검찰 수사 때부터 “사하경찰서 형사들의 물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밝혔다. 최인철도 11월 22일 검찰 두 번째 소환 때부터 같은 주장을 했다.

첫번째 소환 때는 고문경찰들과 함께 출석한 탓에 번복을 하지 못했다. 둘의 주장은 재판 과정 내내 이어졌다. 허위자백으로 없는 사실을 진술하느라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했다는 취지였다.

두 사람을 수사했던 사하경찰서 허OO 형사는 “고문은 없었으며, 장동익-최인철이 외압 없이 자발적으로 자백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허 형사의 말은 거짓이다. 문재인 변호사 말대로 고문의 정황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다. (추후 보도 예정)

무엇보다 허 형사의 말은 모순이다. 범인들의 진실한 자백은 범죄의 구체적인 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죄 형량을 낮추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이런 자백은 사건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장동익, 최인철의 기록상 자백은 일관되지 않고 사건 당시 모습과 맞지도 않는다. 게다가 사망한 여성의 몸에는 외견상 성폭행 흔적도 없었다. ‘강간살인’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기 힘들다.

검찰은 두 사람의 허위자백을 검증하지 못했고, 법원은 “억울하다”는 주장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반성의 여지가 없는 모습”으로 치부했다. 실체적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자신들의 본업을 잊은 채 부실한 근거로 검찰은 사형을,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난 2017년 2월 24일 영화 <재심>을 관람한 당시 문재인 후보는 이런 말을 해다.

“사법이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제도가 못되는 세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청산해야 할 오랜 적폐 중의 적폐입니다. 이 영화가 울림이 오는 이유는, 이게 과거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략) 고문 경찰관, 부패 검사들, 심지어 피고인의 절규를 들어주지 않은 재판부까지, 어느 한 사람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세상을 우리가 바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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