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가짜 살인범 낙동강 2인조의 슬픔’ 집중 취재를 위해 부산행 KTX에 오른 때는 가장 무더운 8월 초였다. 일주일간 부산에 머물 생각이었다.

시원한 KTX 좌석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숙박업소를 검색했다. 휴가철이었지만 해운대 등 바닷가를 피하면 숙박요금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숙박업소를 선택해 결제 하려는 순간, 장동익에게 전화가 왔다.

“부산에 오신다고요? 저희 집에서 주무십시오. 제 사건 취재하러 오는데 다른 곳에 머물면 제가 미안하고 마음이 불편합니다.”

전화를 끊고 숙박업소 애플리케이션을 닫았다. ‘가짜 살인범’ 시각장애인 장동익의 집에서 일주일간 머물기로 했다. 취재원 집에서 장기 체류, 취재에 도움이 될 듯했다.

장동익은 1990년 1월 4일 새벽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에서 한 여성을 강간살해 했다는 누명을 쓰고 무기수가 됐다. 친구 최인철과 함께 말이다. 그는 교도소에서 21년여를 보내고 2013년 4월 26일 출소했다.

장동익은 시신경위축 증상 탓에 앞을 잘 볼 수 없다. 부산 사하경찰서 형사들은 물고문을 가해 어두운 밤에는 야외 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장동익을 끝내 살인범으로 만들었다. 아무 죄 없이 무기수가 된 사람, 시력에 이어 가장 소중한 사람마저 잃은 그가 교도소에서 어떻게 21년을 버텼을지, 모든 게 궁금했다.

KTX 안에서 ‘낙동강 2인조 살인사건살인사건’ 기록을 펼쳤다. 25년 전, 부산구치소에 있던 장동익에게 아내 송선주(가명. 당시 27세)가 보낸 편지를 읽었다.

아내가 교도소에 있는 장동익에게 보낸 편지 ⓒ장동익

“유리벽 하나를 두고 손 한 번 잡지 못하는 내 마음 아프지만은 당신보다야 할까요. 경현(가명)이는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요. (중략) 경현이가 자기 이름도 알고요, 참 대견해요. 경현이가 집안에 없으면 너무 조용해요. 다락방과 부엌은 마음대로 드나들구요. 막내 삼촌을 무척 따르는군요. 경현이 아빠! 고생이 되더라도 참아 주구려.”

편지는 아내의 고백으로 끝난다.

“여보! 사랑해요 영원히. 건강하세요.”

성인이 썼지만, 편지지에 적힌 글자는 무척 크다. 앞을 잘 볼 수 없는 남편을 위한 아내의 배려다. 장동익이 사하경찰서로 끌려갔을 때, 그에겐 젊은 아내와 어린 딸(18개월) 장경현이 있었다. 그에겐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부산역에 도착한 KTX에서 내렸을 때, 남쪽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숨이 막혔다. 장동익은 부산 영도의 작은 임대아파트에 산다. 산아 깎아 만든 고지대에 그의 집이 있다.

한여름 대낮에도 장동익의 집은 어두웠다. 선풍기 두 대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실내 온도는 외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어컨은 없었다. 부산역 광장에서처럼 숨이 막혔다. 거실 겸 침실로 쓰는 방 한쪽 벽에 걸린 사진이 눈에 띄었다.

한복을 입은 아내 송선주,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 장경현, 양복을 입은 장동익. 딸 장경현의 결혼식 때 찍은 가족사진이다. 사진 속에서 장동익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당연히 긴장되죠. 제가 출소하고 약 5개월 뒤에 딸이 결혼했거든요. 제가 감옥에서 21년을 살고 나왔는데, 세상 물정을 잘 알겠습니까? 아내도 오랜만에 함께 한 거고…”

장동익이 사랑하는, 한때는 그의 전부였던 가족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았다. 장동익은 살인누명을 쓰고 약 5년이 지난 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아내를 떠나 보냈다. 무기수로서 젊은 아내에게 차마 “기다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송선주는 재혼을 했고, 딸도 하나 낳았다.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하겠습니까? 교도소에 있을 땐 그런 마음도 들었는데, 그걸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 화병이 나서 저는 살 수가 없습니다. 앞도 안 보이고, 물고문으로 살인누명 쓰고, 아내 잃고, 딸도 내 손으로 못 키우고… 아프고 답답했지만, 그걸 또 견뎌야지 어쩌겠습니까?”

앞을 볼 수 없어, 나쁜 짓도 할 수 없는 그는 아무 이유 없이 모든 걸 빼앗겼다. 그럼에도 그에게서 세상을 향한 원망과 증오, 미움의 말을 듣기 어려웠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타인에게 도움을 요구하는 태도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시각장애인 장동익과 일주일. 하루 세 끼, 식사 때마다 걱정이 앞섰지만 그는 혼자 힘으로 모든 걸 했다. 당신의 집인 만큼 느리지만 익숙한 몸짓으로 쌀을 씻어, 솥에 안치고, 밥이 다 되면 상을 차렸다. 그러면서 미안해 했다.

“제가 눈이라도 좋으면 국이라도 끓이고 할 텐데.. 반찬이 이래서 미안합니다.”

장애로 앞을 잘 볼 수 없는 장동익은 기자를 위해 직접 밥상을 차렸다. ⓒ셜록

반찬은 딱 세 가지였다. 마늘장아찌, 양파장아찌, 김치. 대신 그는 밥을 제주도 오름처럼 고봉으로 쌓아 내밀었다.

상에 삿대질하며 질펀한 욕도 못하는 그가 밥이라도 제대로 먹으면 떨 짠했을까. 장동익은 밥상을 차리는 것보다 밥 먹는 걸 더 힘들어 했다. 앞을 잘 볼 수 없는 그는 상 위의 반찬을 제대로 집지 못했다. 그는 먹고 싶은 걸 먹는 게 아니라, 숟가락이나 젓가락에 뭔가 ‘걸리면’ 그걸 먹었다. 그의 숟가락과 젓가락은 자주 허공을 갈랐다.

그렇게 그와 반찬 세 가지로 식사하기를 몇 차례. 어느날 이른 아침, 식사도 하기 전에 장동익은 밖으로 나갔다. 그는 한참 뒤에 양배추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손님 식사 대접을 부실하게 해서 참 미안합니다. 양배추 데쳐서 쌈으로 먹으면 맛있잖아요. 이걸 사려고 마트에 갔는데.. 문을 안 열어서 한참 기다려 사왔습니다. (웃음)”

장동익은 얼굴의 땀을 씻으며 웃었다. 그의 노력 덕에 반찬 하나가 들었지만, 눈이 안 좋은 그는 정작 양배추 쌈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도 그는 늘 침대를 손님인 내게 양보했다. 자신은 이불을 깔고 바닥에서 잤다. 선풍기 두 대의 방향도 자신이 아닌 침대 쪽으로 돌렸다. 나는 미안해서 잠들지 못했고, 그는 더워서 잠들지 못했다. 더위를 참지 못하고 하루는 그에게 ‘용기’를 내 말했다.

“선생님, 우리 커피 한 잔 하러 가요. 제가 커피를 좋아하거든요.”

혼자 사는 시각장애인 장동익이 밥상을 치우고 있다. ⓒ셜록

사실 커피가 아니라, 카페의 에어컨 바람이 그리웠다. 이를 알 리 없는 장동익은 “왜 밖에서 돈을 쓰느냐”며 커피도 직접 타려고 했다. 간신히 그를 만류해 함께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켰다. 공기는 커피만큼 시원했다. 그렇게 약 두 시간을 보냈다. 장동익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커피 이름이 뭐라고요? 근데 이렇게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오래 있어도 됩니까? 카페 이용하는 방법을 알면 나도 이렇게 더위를 피할 텐데요, 저에게는 이런 것도 참 어렵습니다. (웃음)”

밥을 먹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장동익에겐 카페에서 주문하고, 음료를 받고, 자리에 앉아 음료를 마신 뒤, 쟁반을 반납하는 것도 크나큰 일이다.

며칠 뒤, 어렵게 장동익에게 부탁해 그의 옛 아내 송선주를 만났다. 우리 셋은 시원한 카페에서 녹차빙수를 먹었다. 마땅한 호칭이 없어 그녀에게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녹차빙수를 다 비울 때쯤 그녀가 말했다.

“녹차빙수 태어나 처음 먹어 보네요. ‘사모님’이란 말도 처음 들어 보고요. 화장실 가보니까, 번호키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데요. 이런 화장실도 처음 이용해 봅니다. 덕분에 호강하네요.”

장동익이 말을 받았다.

“요즘엔 문에 번호키 달린 화장실 많아서, 저 같은 사람은 참 힘듭니다. 눈이 보여야 번호를 누르지요. 아무리 급해도 화장실 앞에서 그냥 돌아온 적도 많습니다.”

변호키 누르는 화장실을 처음 이용해봤다는 송선주는, 그런 화장실을 만나면 발길을 돌린다는 장동익을 두고 해질녘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지금 다른 남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그날 저녁, 침대에 누운 나는 장동익과 오래 잠들지 못했다. 선풍기 두 대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했다.

깊은 밤, 장동익이 작게 말했다.

“경현이 엄마가 나랑 이혼하고 부자로 잘 살면 내 마음이 덜 아플 텐데.. 거기도 사는 게 좀 그런가 봅니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 됐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나중에 돈 벌면 녹차빙수를 많이 사줘야겠습니다. (웃음)”

장동익은 침대를 기자에게 양보하고 늘 바닥에서 잤다. 전 아내를 만나고 돌아온 밤, 장동익은 밤새 뒤척였다. ⓒ셜록

침대 위의 내가 해줄 말은 없었다. 방바닥의 장동익은 오래도록 뒤척였다. 더위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장동익은 여름 내내 작은 방에서 오래 머물렀다. 주로 종일 TV를 틀어놓고 하루를 보냈다. 장동익은 언제 시작될 지 모르는 재심을 기다리며, 그가 21년을 보낸 감방처럼 좁은 방에서 혼자 살아간다.

방 한쪽에 붙은 사진 속 그의 옛 아내와 딸과 함께 말이다. 정작 장동익은 그 사진도 제대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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