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에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총선 분위기가 영 아니다. 눈에 띄는 새 인물과 쟁점이 안 보여 선거 이후의 세상이 설레지 않는다. 시대정신을 담은 메시지가 없으니 가슴도 안 뛴다. 민주주의 꽃이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국내 유일 가카 헌정방송’ 나는 꼼수다가 화제가 되고 ‘삼두노출’ 번개 모임에 수천 명이 몰리던 시절. 무상급식, 무상보육, 4대강 사업 등이 쟁점이었던 그때의 선거. 돌아보니, 재밌고 즐거웠다.

불과 4년 전인 2012년 제19대 총선 이야기인데, 왜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걸까? 그 시절,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있었다. 당시 ‘대세’는 김어준이었다. 그의 정치 견해에 대한 지지-반대를 떠나서, 그로 인해 총선 분위기가 달아올랐던 건 사실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김어준은 연예인일까, 언론인일까?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왼쪽)와 주진우 기자. ⓒ 오마이뉴스

외모 스타일(?)과 인지도만 따지면 연예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서울시에 등록된 인터넷신문 ‘딴지일보’를 발행하는 언론인이다. 2011년에는 ‘나는 꼼수다’로 민주언론상 본상을 받기도 했다. 김어준이 언론인이라니,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김어준도 자신을 잘 아는지, 지난 2월 서울 대학로에서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언론인이래! 나도 수사기관에 고발당하고 나서야 ‘아, 나 언론인이구나’라고 깨달았다니까!“

농담 섞인 우스갯소리다. 그런데 차라리 연예인이면 나을 뻔했다. 그랬다면 경찰, 검찰에 소환될 일도 없고, 피고인이 안 됐을 거다.

김어준은 지난 19대 총선 때 ‘가카심판’을 이야기했다 ‘나는 꼼수다’를 함께 진행했던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서울 노원갑) 등을 공개 지지했다. 그의 말마따나 서울광장에서 우발적으로 ‘삼두노출’ 행사도 진행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구나 해도 괜찮은 행동.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 기간에 누구든 할 수도 있는 실천. 이상하게도 이 모든 게 문제가 됐다.

선관위는 김어준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2012년 9월 김어준을 기소했다.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김어준은 피고인 신분이다. 공직선거법을 적용하면 김어준은 ‘부정선거운동죄’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김어준을 처벌할 수 있는 핵심 근거는 선거법 제60조다. 이 조항은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언론인은 ‘공익을 대표하는 사람, 혹은 직무의 성질상 정치적 중립성이 요청되는 사람’으로서 ‘선거의 공정’을 위하여 선거운동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결국 김어준이 연예인이 아니고, 일반인도 아닌, 언론인이어서 문제다.

여기서 ‘선거운동’은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특정 후보 지지 연설하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 어느 후보를 당선되게 하거나, 낙선하게 하려는 행위를 말한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영국의 ‘가디언’ 프랑스의 ‘르 몽드’ 등은 선거 때마다 사설이나 칼럼 등으로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을 밝히는데, 한국이었다면 이들 발행인은 모두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특정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는 사설은 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이 많을 듯하다. 저마다 ‘정론직필’을 자처하는 한국의 많은 언론은 지지 후보와 정당을 명시적으로 선언하지 않을 뿐, 실제로는 교묘한 방식으로 혹은 대놓고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여러 종합편성채널을 단 몇 시간만 봐도 이들이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보수신문으로 통하는 ‘조선’ ‘동아’ ‘중앙’과 진보라 불리는 ‘한겨레’ ‘경향’이 지난 대선 때 누구를 지지했는지 모르는 독자는 또 몇 명이나 될까? 인터넷신문도 마찬가지다.

‘오마이뉴스’와 ‘조선’은 지난 과거에 대해, 특히 2002년 대선 때 “우리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정론’과 ‘공정’을 내세운 여러 언론은 그동안 솔직하지 못한 모습으로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지지해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정론’ ‘공정’과는 거리가 있고, 대신 ‘웃음’ ‘풍자’와는 가까운 ‘딴지일보’의 총수가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 법률 탓에 처벌받을 위기에 있다.

‘딴지일보’ 홈페이지 ‘회사소개’에는 이렇게 나온다.

“살다보면 똥침을 찔러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막 찌를 수는 없다. 만약 급하다고 손가락 하나로 찌른다면? 손가락 부러지는 수가 있다. 그렇다고 얍삽하게 손가락 두 개 겹쳐서 찌른다고 들어갈 똥꼬는 세상에 없다. (중략)

그럼 도대체 어떻게? 역시 손을 써야 한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힘차게 찌르는 거다. 딴지는 똥침 찌르고 싶은 세상의 많은 것들에 정확히 방향을 잡아, 비겁하지 않게 두 손으로, 적당한 깊이까지 푸욱..찌른다. 설령 손 끝에 가끔 건더기가 묻어나더라도..딴지가 갈 길이다.”

2012년 4월 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삼두노출’ 행사 모습. ⓒ 오마이뉴스

자신들이 ‘공익의 대변자’로서 ‘공정한 보도’를 하겠다는 고상한(?) 말은 없다. ‘설령 손 끝에 건더기가 묻어나더라도, 비겁하지 않게 두 손으로 적당한 깊이까지 푸욱’ 똥꼬를 찌르겠다는 이야기가 핵심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딴지일보’를 검색하면 ‘정치, 사회, 문화 풍자 인터넷신문’이라고 나온다. ‘다음’에서는 ‘디지털 조선일보 패러디 신문’이라고 나온다. 김어준 총수는 ‘딴지일보’ 창간선언문에서 밝혔다.

“한국 농담을 능가하며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코메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싸이버 루머 저널.”

이런 김어준에게 “직무의 성질상 정치적 중립성이 요청되는 사람”이라며 선거운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뭔가 어색한 일이다. 김어준이 억울해할 일은 더 있다.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 법률 조항은 전두환 신군부 정권 때인 1981년에 만들어졌다. 이때는 SNS는커녕 인터넷 자체가 없었다. 오늘날 1인미디어, 시민기자 제도 등의 발달로 인해 ‘언론인’이란 의미는 넓어졌다. 그럼에도 현행 법률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규칙으로 정하는’ 언론인에게만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가령, 독자가 10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지역 언론사에 소속된 신입 기자가 페이스북 친구 200여 명에게 “제 친구 A가 이번 총선에 출마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고 치자. 선거법에 따르면 이는 불법으로, 이 신입기자는 처벌받을 수 있다.

반면에, 기사 한 번 쓰면 보통 수십 만 조회수가 나오고, 페이스북 친구가 4000명이 넘는 ‘오마이뉴스’ 모 시민기자가 비슷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면? 처벌 대상이 아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아니어도, 세상에는 웬만한 직업기자 영향력을 능가하는 1인미디어, 파워블로거, SNS 이용자가 많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 전두환 정권 시절의 법으로 언론인 선거운동을 규제하는 건, 불평등하고 무리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오늘날 한국의 선거법은, 선관위 직원들도 헷갈릴 정도로 어렵고 각종 규제가 많다. 유권자들은 미국인처럼 자신의 집 앞에 “나는 OOO을 지지합니다”라는 글을 써 붙일 수도 없다. 그건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시민은 고작 “투표하세요”라는 말에 만족해야 한다.

한마디로 유권자는 ‘닥치고 가만히 있다가 투표나 하라’는 식이다. 이런 걸 김어준 총수가 그냥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는 2011년 펴낸 책 <닥치고 정치>에서 이렇게 썼다.

“밥줄 때문에 입을 다물면 스스로 자괴감이 들어. 우울해져. 자존이 낮아져. 위축돼. 외면하고 싶어. 그러니까 지금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건, 위로야. 쫄지 마! 떠들어도 돼, 씨바. 그런 자세는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 해보자. 쫄지 말자. 가능, 하다.“

김어준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오히려 “쫄지 마! 떠들어도 돼, 씨바!”로 응수했던 사람이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꼼수다’를 진행했다.

김어준이 정말로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는다면, 그의 이름 앞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달리게 된다. 그동안 후보자 관련 허위보도, 명예훼손 등 기사를 제대로 못 써서 처벌받은 언론인은 있었지만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 조항으로 처벌받은 사례는 찾기 어렵다. 아마 김어준이 최초가 될 듯하다.

현행법대로 하면 김어준은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김어준은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 법률 조항은 인간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등을 억압한다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현재, 헌법재판소가 관련 법률이 위헌인지 심판하고 있다.

김어준이 위헌을 이끌어내면 드디어 한국 언론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 여러 나라 언론처럼 지지 정당과 후보를 자유롭게 밝힐 수 있다.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전면 금지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설령 손 끝에 가끔 건더기가 묻어나더라도” 똥꼬를 깊이 찌르겠다는 패러디신문의 총수가 ‘정론’을 강조하는 한국 언론 자유의 지평을 확장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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