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에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당신 생각이 궁금하다. 발언자를 처벌해야 할 만큼 아래의 말에 문제가 있는지 말이다.

“(총선은) 4년 동안 민생을 파탄 낸 그런 당과 정부를 심판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김용민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중략) 용민이 사전에 사퇴란 아롱사태밖에 없습니다. 투표율 몇 % 나오면 세상이 바뀔까요? 70%!”

광장에 모인 많은 사람은 ‘아롱사태’ 대목에서 웃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발언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왜, 뭐가 문제일까? 혹시, 정권 심판을 말해서?

글쎄, 선거 때면누구나 ‘심판’을 말한다. 여당은 ‘야당 심판’을, 야당은 ‘여당(정권) 심판’을 유권자에게 주문한다. 심지어 20대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국회 심판’을 요청하기도 했다. 유권자는 표로 누군가를 심판하기도 한다.

투표 참여 독려가 문제였을까? 이것도 이상하다. 투표 참여 독려야말로 선관위의 주요 업무 중 하나 아닌가. 게다가 선관위는 최근 제20대 총선 때 가수 설현을 모델로 내세워 시민들의 투표 참여를 유도했다.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선관위는 가수 설현을 내세워 시민의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 선관위

저 말은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했다. 제19대 총선을 사흘 앞둔 지난 2012년 4월 8일 서울광장에서다. 현장에는 시민 5000여 명이 있었다. 주진우는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에 불려 갔다. 검찰은 공소장에 저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을 정도로 삼았다. 4년이 지나 총선이 한 번 더 치러졌지만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주진우는 여전히 피고인 신분이다.

이번엔 아래의 두 글을 읽어보자.

“대통령 오바마는 변치 않는 헌신을 보여 주었고, 놀라운 성과를 냈다. 매사추세츠 주의 주지사 미트 롬니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말하는 간교한 속임수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중략) 이러한 그리고 또 많은 다른 이유로, 우리는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재선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그가 당선되어 미국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위해 새로운 의회와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미국은 대통령 오바마의 견실한 리더십으로 잘 이끌어져 왔다. 오바마가 두 번째 임기를 수행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중략) 미트 롬니에게 투표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는 점이 입증됐다. 그는 이민, 세금, 게이들의 권리 등의 많은 이슈에서 틀렸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는 유권자들이 오바마를 다시 선택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한다.”

위는 ‘뉴욕타임스’ 2012년 10월 7일 자 사설의 한 대목이다. 아래는 같은 해 10월 21일 자 ‘LA타임스’ 사설의 일부다.

두 신문 모두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소속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희망했다.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는 ‘간교한 속임수’를 쓰는 사람이면서 ‘이민, 세금, 게이들의 권리 등 많은 이슈에서 틀린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두 신문은 ‘야당 심판’을 주문했다. 한국 선거법을 적용하면 두 신문은 ‘특정 후보를 당선되게 하거나 당선되지 못하게 하는 행위’인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한 셈이다.

‘뉴욕타임스’ ‘LA타임스’가 유별난 게 아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민주주의 국가의 언론은 자유롭게 후보자, 정당에 관한 의견을 표현한다. 진실을 말하고, 자유롭게 정치 견해를 밝히면서 풍부한 토론을 유도해 유권자들이 더 좋은 후보를 선출하도록 돕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전통적으로 사설, 칼럼 등으로 미국 민주당 쪽을 지지해왔다. 그럼에도 ‘뉴욕타임스’를 두고 ‘민주당 기관지’라거나 ‘객관적이지 못한 찌라시’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세계적인 매체’ 혹은 ‘저널리즘의 좋은 본보기’를 논할 때 많은 사람은 ‘뉴욕타임스’를 그 예로 든다.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를 지지한 ‘뉴욕타임스’의 2012년 10월 27일자 사설의 일부. ⓒ 뉴욕타임스

하지만 ‘뉴욕타임스’가 한국에서 발행되는 매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선관위는 편집국장이나 발행인을 검찰에 고발할 테고, 검사는 이들을 불러 이렇게 따질 것이다.

“오바마가 변치 않는 헌신으로 놀라운 성과를 냈다면서 그를 지지한 적이 있지요?”
“미트 롬니 후보는 간교한 속임수를 쓰는 사람이라면서 유권자에게 그를 뽑지 말라고 선동한 적이 있지요?”
“선거법 제60조 1항에 따라 언론인은 어떤 후보자를 당선되게 하거나, 당선되지 못하게 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걸 몰랐나요?”
“그 법을 어기면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600만 원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거 알고 있었죠? 과거부터 계속 특정 후보를 공개 지지했으니,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요.“

과한 상황 설정이 아니다. 이는 실제로 주진우가 검찰에 불려가 받은 질문과 유사하다. 한국은 선거법으로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전면 금지하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나라다.

사설, 칼럼 등 의견 표현만이 아니라 개인 신분으로 거리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 SNS는 물론이고 카카오톡으로 지인에게 ‘OOO을 뽑아주세요’라는 문자를 보내도 안 된다.

주진우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편향된 기사로 특정 정당, 후보를 지지하라고 호소하지 않았다. 거리와 광장에서 ‘가카 심판’과 야당 후보 지지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기자 주진우는 4년째 피고인 신분으로 살고 있다.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 법률은 대한민국 특산품이다. 세계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 탓에 한국 언론에서는 ‘뉴욕타임스’처럼 솔직한 사설을 볼 수가 없다. 한국 언론 스스로도 중립, 공정, 품위, 정론직필을 강조하면서 ‘후보자 공개 지지’에 비판적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친노 좌파 척결’이나 ‘수구 꼴통 제거’ 같은 거친 주장을 자주 펼치지만 말이다.

많은 시민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언론(인)이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밝히면 보도의 공정성에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만 따져보면, 이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자유롭게 정치신념을 밝힌다고 진실을 전달하는 일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법률로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함에도, 정작 언론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문 게 한국의 현실이다.

오늘날 여론 형성과 전달은 직업 기자들만의 몫이 아니다. 스마트폰 등 인터넷의 발달로 기자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블로거, 시민기자, SNS 이용자는 많다. 또 한국은 언론인의 정당 가입을 허용하는 나라다. 그럼에도 언론인, 그것도 ‘직업 언론인만’ 선거운동 금지라니, 현실과도 맞지 않는 이상한 법이다. 도대체 어떤 논리일까.

1994년까지 한국에는 대통령선거법, 국회의원선거법, 지방의회의원선거법 등 개별선거법이 따로 존재했다. 이들 법률은 모두 정당, 후보자, 선거사무장, 선거연락소장, 선거운동원 등 일정 관계인 외에 누구라도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헌법재판소는 전 국민에게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일정 관계자에게만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것은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며 1994년 위헌을 결정했다. 하지만 헌재는 위 결정에서 ‘직무의 성질상 정치적 중립성이 요청되는 사람’에게는 선거운동을 금지하더라도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합헌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언론인은 ‘공익을 대표하는 사람, 직무의 성질상 중립성이 요청되는 사람’으로서 선거운동이 금지돼 있다. 언뜻 타당한 조처로 보이지만, 이는 ‘공정한 선거’를 위해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순을 낳았다.

오늘날 한국의 선거법은 복잡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와 운동원조차도 어떤 행사를 할 때마다 일일이 선관위에 문의하고 확인해야 할 정도다. 선관위 직원도 헷갈려하는 조항이 많다. 이른바 ‘젓가락 논쟁’도 있다.

후보자 선거사무소 측이 자신들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떡, 김밥 등 ‘통상적인 다과’를 제공하는 건 합법이다. 하지만 젓가락을 제공하면 불법이라고 선관위는 유권해석을 했다. ‘젓가락과 함께 내놓는 음식은 불법 식사 제공’이라는 게 선관위의 의견이다.

이렇게 선거법이 복잡하게 꼬인 건, 관권-금권 선거가 판을 치던 과거의 ‘부정선거 트라우마’ 때문이다. 정부와 입법자는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선거의 공정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2005년 ‘공직선거법’으로 이름이 바뀔 때까지 선거법의 정식 명칭은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이었다.

부정 방지와 공정한 선거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지금의 선거법은 ‘공정’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공정한 규칙은 자유로운 경쟁을 위해 필요한 것인데, 주객이 바뀌었다. 이는 입법자인 국회는 물론이고, 헌법재판소도 인정하는 내용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중략) 규제 중심의 입법을 유지하고 있어 변화된 정치, 선거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국민의 일상적인 행위와 선거운동의 자유를 포함한 정치적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고 있는 실정임.” – 2010년 선거법 개정 이유

“정치적 표현 및 선거운동에 대하여는 ‘자유를 원칙으로, 금지를 예외로’ 하여야 하고 ‘금지를 원칙으로, 허용을 예외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자명하다.” – 헌법재판소 2011년 12월 29일 결정

표현의 자유는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자 인간의 권리다. 선거 국면, 선거운동 기간에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전제돼야 대화와 토론이 가능하고, 그럴 때 시민은 온전히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언론은 사실에 기초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무엇이든 보도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개인은 언제 어디서든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주진우 ‘시사인’ 기자. 두 사람은 언론인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선거법을 어겨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입니다.) ⓒ 오마이뉴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표현의 자유 핵심은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인 만큼, 선거 국면에서도 당연히 누구든지 정치 견해를 편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며 “법으로 언론(인)에게 중립 의무를 강제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있고, 언론의 비판 기능에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교수는 “미국은 언론만 특정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게 아니라, 기업도 자유롭게 정치 견해를 밝히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준다”며 “(한국 언론도) 비밀로 하는 것보다 (사설, 칼럼 등으로 지지 후보를) 공개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물론 조금 다른 견해도 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미국 언론의 지지 후보 공개는 선거운동보다는, 기자들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취재한 결과 ‘A후보가 우리 사회에 더 낫다’고 시민에게 추천하는 성격이 강하다”며 “하지만 정상적인 언론 역할을 하지 않는 매체가 많은 한국 현실을 고려하면 미국처럼 하는 건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모든 걸 법으로 강제하고 규정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대화-갈등-타협으로 어떤 사안을 해결하는 문화가 만들어지기 어렵다”며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법으로 금지하는 게 타당한지)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논의하고 토론해 보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발행인이 논설로 ‘친노 극좌 심판’을 주장하는 건 그의 자유다. 주진우가 거리에서 개인 자격으로 ‘가카 심판’을 외치든 말든, 역시 그의 자유다. 모든 시민은 이들의 행위에 찬반 견해를 갖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다. 조갑제 발행인-주진우의 주장과 행위를 법으로 규제하고 처벌하는 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과연 타당할까?

‘뉴욕타임스’가 후보자를 공개 지지할 때마다 한국 언론은 이를 뉴스로 다뤘다. ‘뉴욕타임스’ 관계자가 검찰에 불려 갔다는 소식은 없었다. 다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주진우의 ‘가카 심판’과 김용민 지지는 사법처리 대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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