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에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선거 참여를 큰 행운이라 여겼다. 올해 대학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신입생 6명은 선거를 10일 앞둔 2016년 4월 3일 빈 강의실에 모였다. 대학에 입학한 첫 해에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시켜서 모인 게 아니었다. 뭔가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뜻이 맞아서 의기투합했다.

지난 총선 때 선관위가 제작한 홍보 영상 중 한 장면이다. “투표는 표현이다”라고 홍보하지만, 선거법은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많이 제약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 선관위

6명은 작게나마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싶었다. 학교가 있는 지역구에서 상대적으로 더 나은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선거운동을 하기로 했다. 어느 후보자의 선거운동원이 되지 않고,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민주주의 축제의 장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모았다.

몇 차례 더 모임을 했다. 학내에서 대담ㆍ토론회를 개최해 다른 학생들을 초청해 의견을 듣기도 했다. 어느 후보자를 지지할 것인지 격론을 벌였다. A후보자가 비교적 낫다고 결론을 냈다. 이제 갓 입학해 돈이나 별다른 힘이 없는 학생들은 몸으로 뛰는 활동을 하기로 했다.

왜 A후보자가 다른 후보보다 더 나은지 시민들을 만나서 설득하고 싶었다. ‘바른 정치를 위한 자발적인 대학생 모임’이라고 그럴 듯한 모임 이름도 붙여 보았다. 시민들에게 나눠 줄 유인물의 내용도 직접 썼다. 아직 정치학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왜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르는지, 어른들이 보기에 한 없이 좋은 환경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청년들이 왜 절망하는지,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도 담아 보았다.

축제에 뛰어든 김에 추억을 남길 겸 단체 티셔츠도 맞춰 입었다. 시민들에게 나눠 줄 작은 소품도 준비했다. 이번 선거에서 쟁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구호를 담은 작은 리본도 만들었다. 가방에 달면 예쁘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갑’은 후보자 캐리커쳐를 그린 배지도 몇 개 만들었다. ‘을’은 구호를 적은 풍선 몇 개를 가져왔다.

어깨띠까지 만들어 매고 나온 ‘병’은 다소 흥분하기도 했다. 거리를 행진하다가 학교 근처 광장에 다다르자 즉석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몇몇 어른들이 격려하자 뿌듯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선거 전 날까지 이렇게 거리를 돌아다녔다.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고 심지어 후보자가 알지도 못하게 자발적으로 선거에 참여한 대학생들의 행동, 우리 선거법에서는 어떻게 평가될까.

애초 모임부터 선거법에 위반된다. 선거기간(국회의원 선거는 14일)에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집회나 모임을 아예 개최할 수 없다.

공직선거법(이하 ‘법’) 제103조 제3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향우회·종친회·동창회·단합대회 또는 야유회, 그 밖의 집회나 모임을 개최할 수 없다고 금지한다. 위반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법 제256조 제3항 제1호 카목).

거리를 행진한 행위 역시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다. 누구든지 선거운동을 위하여 5명(후보자와 함께 있는 경우에는 후보자를 포함하여 10명)을 초과하여 무리를 지어 거리를 행진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법 제105조 제1항 제1호). 이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행위다(법 제255조 제1항 제16호).

모임에 이름을 붙이고 모임 명의로 유인물을 나눠준 것도 불법이 될 수 있다. 계모임 등 개인 간의 사적 모임이라도 모임 명의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법 제87조 제1항 제3호). 이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법 제255조 제1항 제11호). 설령 모임 명의로 하지 않았더라도 문서를 나눠준 것만으로도 처벌될 수 있다(법 제93조 제1항).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어떤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문서나 그림을 배부하는 것은 선거법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경우에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질 수 있다(법 제255조 제2항 제5호).

문서, 사진, 그림 등을 나눠주는 행위는 선거 180일 전부터 금지된다(법 제93조 제1항). 풍선, 작은 리본, 캐리커쳐 배지를 배부하는 행위 역시 선거법에서 예외적으로 정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법 제90조 제1항 제1호 내지 제3호).

이 학생들의 행위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법 제256조 제3항 제1호 아목).

6명이 티를 맞춰 입은 행위도 처벌될 수 있다. 병이 어깨띠를 맨 것도 역시 처벌 대상이다.

선거법 제68조 제1항에 따르면, 후보자와 그 배우자, 선거사무장, 선거연락소장, 선거사무원, 후보자와 함께 다니는 활동보조인 및 회계책임자만 선거 후보자 홍보에 필요한 사항을 게재한 어깨띠를 맬 수 있다.

그 밖의 일반 시민은 누구든지 선거운동 기간 중 어깨띠, 모양과 색상이 동일한 모자나 옷, 표찰·수기·마스코트·소품, 그 밖의 표시물을 사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법 제255조 제1항 제5호).

토론회와 연설회도 선거법에서 정한 방식으로 하지 않으면 불법이 된다. 누구든지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선거법의 규정에 의한 연설·대담 또는 대담·토론회를 제외하고는 다수인을 모이게 하여 개인정견발표회·시국강연회·좌담회 또는 토론회 기타의 연설회나 대담·토론회를 개최할 수 없다(법 제101조).

선거법에서 정한 방식을 따르지 않은 채, 후보자와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개최한 토론회와 연설회는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범법행위다(법 제256조 제3항 제1호 자목).

이렇게 자율적인 대학생들의 실천은 모두 불법행위로 처벌될 수 있다.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청춘의 꽃은 피어날 수 없다. 저렇게 ‘금지’와 ‘처벌’로 촘촘히 짜인 선거법이 있는데, 이 땅의 청춘은 무슨 실천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현행 선거법 규정 대로라면 선거기간에 유권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가만히 있다가 투표나 하라”는 게 한국 선거법의 명령이다. ⓒ 선관위

물론 위의 상황은 한국의 선거법이 유권자의 자유와 권리를 얼마나 가로 막는지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가정이다. 정말 궁금하다. ‘금지’는 가득하지만 ‘자유’는 희박한 지금의 선거법이 선거의 공정성이라도 확보하고 있는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복잡한 각종 규제를 없애고, 후보자가 사용하는 선거비용에 대한 통제만 하는 게 옳다는 목소리가 있다. 선거운동을 마치 유해한 행위처럼 취급해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선거법. 유권자는 가만히 있다가 투표만 하라고 명령하는 듯하다.

이런 답답한 명령 속에서 민주주의 꽃은 제대로 필 수 있을까? 꽃은 비, 바람 속에서 피어나며 어떤 꽃은 곤충 등의 도움이 있어야만 수정을 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들판의 꽃도 그렇게 부산한 움직임 속에서 피고 지는 법인데, 왜 민주주의 꽃인 선거를 침묵의 온실에 가두려는 것일까?

선거법, 이대로 좋은지 질문을 더 크게 던질 때가 되었다. 총선은 끝났지만 곧 우린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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