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에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그날 새벽은 참으로 기이했다. 붉은 불, 검은 연기, 푸르게 열리는 세상. 사람 6명을 집어 삼키는 불길을 생중계 하는 뉴스와 그걸 보는 나 자신까지. 내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현실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렇게 2009년 1월 19일 발생한 용산참사는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그 남자는, 그날, 그 순간에, 그곳에 있었다. 폭발음과 함께 붉은 불이 확 퍼질 때 망루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살아 남았다. 그의 아버지는 현장에서 불에 타 숨졌다. 병원 치료를 받던 그는 교도소에 갇혔다.

정해진 길만 가는 버스처럼 그의 운명은 정해진 듯했다. 경찰, 검찰, 법원은 용산참사의 여러 잘못이 그에게 있다고 했다. 유죄가 확정됐다. 결국 그는 아버지를 불 타 죽게 한 아들이 됐다. 그는 교도소에서 4년을 살았다.

과속으로 정류장을 지나치는 버스처럼 그의 신분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세입자 -> 철거민 -> 철거민대책위원장 -> 아버지를 죽게 한 아들 -> 교도소에 갇힌 수형인. 버스 안 노선도처럼 그의 이력에 또 하나의 점이 찍힐 것 같다.

‘선거법을 어긴 사범’. 이 남자는 이충연, 전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이다.

이 남자와 대척점에 선 사람이 있다. 그 역시 용산참사 즈음과 그 이후부터 신분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서울경찰청장 -> 경찰청장 내정자 -> 용산 철거민 시위 진압 책임자 -> 경찰청장 내정자 신분 사퇴 ->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 -> 오사카 총영사관 총영사 -> 한국공항공사 사장. 이것도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그는 지금  국회의원 당선인 신분이다.

이 남자의 이름은 김석기다.

살기 위해 건물 위로 오른 철거민의 삶은 계속 추락하는데, 이들을 끌어 내려다 6명 사망자를 낸 시위 진압 책임 경찰의 삶은 계속 상승한 듯하다.

이충연을 그날의 현장에서 보기로 했다. 5월 18일 오후였다. 불길이 치솟던 용산참사 현장에는 높은 펜스만 설치됐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으로 그를 불러 미안했다.

“7년이나 지났는데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무리한 진압을 했는지..”

이충연은 용산참사 책임은 김석기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 한 번 없이 무리하게 시위를 진압하다 참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만의 생각이 아니다. 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 봄, 이충연은 경주로 향했다. 자식이면 당연히 가야하는 운명같은 길이기도 했다. 아버지를 뜨거운 불 속에서 사망하게 한 책임자가 국회의원 후보자로 출마한다는데, 세상 어느 자식이 가만히 있겠는가. 이충연과 용산참사 유가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함께 길을 나섰다.

“경주시민에게 김석기가 용산참사, 살인진압의 책임자라는 걸 알려야 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끝없이 권력만 추구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김석기 선거사무실 앞에서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줬습니다.“

그와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을 하면서 ‘김석기가 갈 곳은 국회가 아니라 감옥입니다’ ‘용산참사 살인진압, 김석기를 처벌하자’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쳤다. 같은 내용의 글과 김석기 모습이 그려진 피켓도 들었다. 시민에게 나눠준 유인물의 한 대목은 이렇다.

‘(김석기 후보는) 용산참사의 책임뿐만 아니라, 출세에만 혈안이 돼 두 번의 공직(오사카 총영사,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정치적 정류장 쯤으로 여기며, 중도에 그만두고 선거에 나온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공기업 사장의 신분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일본 왕 생일파티에 참석해 국민적인 조롱거리가 된 사람이기도 합니다.

김석기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유가족들뿐만 아니라 경주시민들과 국민들에게도 모욕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이런 자가 국회의원으로 출마한다는 것만으로도 끔찍합니다! 김석기를 이대로 용인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큰 참사들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용산참사 유가족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김석기가 출마한 경주시에서 기자회견 등을 하며 “김석기가 있어야 할 곳은 국회가 아닌 감옥이다”라고 주장했다. ⓒ 김종득

현수막, 피켓, 유인물의 내용 모두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다. 당사자가 아닌 다른 시민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김석기가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두 번의 공직을 모두 중간에 그만뒀으며, 일왕 생일파티에 참석한 것은 모두 사실이다. 그래도 용산참사 유가족의 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한국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그렇다.

선거법 제90조는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화환·풍선·간판·현수막·애드벌룬·기구류 또는 선전탑, 그 밖의 광고물이나 광고시설을 설치·진열·게시·배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후보자를 상징하는 인형·마스코트 등 상징물을 제작해서도 안 된다.

또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선거법 제93조).

쉽게 예를 들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총선에 출마해도 광주시민들은 그를 반대하는 현수막을 설치하거나, 유인물을 나눠주면 안 된다. 광주시민 1000명의 서명이 담긴 ‘전두환 반대’ 신문광고 같은 걸 내면 큰일 난다. 1000이 모두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당할 수 있다. 선거일 전 180일부터는 모든 시민의 표현의 자유는 억압된다.

“그럼 어쩌란 말입니까? 김석기는 총선 때 여러 시민단체에서 진행한 ‘최악의 후보’ 선정 투표에서 1위에 오른 국회의원 부적격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권력을 위해서라면 용산참사보다 더 위험한 일도 저지를 사람입니다. 우리의 유인물을 보고 ‘아, 이 사람이 당시 용산참사 진압 책임자인가’라며 놀란 시민도 많았습니다. 경주시민도 알 권리가 있는데, 사실을 알리는 게 왜 불법입니까?“

사실을 알려도 불법 행위가 될 수 있다. 한국의 선거법이 그렇다. 이충연이 그걸 몰라서 반문한 게 아니다. 법의 문제점을 따진 거다.

“우린 허위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김석기의 7년’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그게 위법한 행동이라면, 우리에게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하지 말라는 겁니까? 입장 바꿔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가족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 진실을 알리는 게 위법이라면 그 법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경주시선관위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행동에 돌입했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사건을 경주경찰서에 이첩했다. 경찰은 이충연 등 용산참사 유가족 네 명에게 출석하라는 통지서를 보냈다.

“저희는 못 갑니다. 안 갑니다. 김석기의 무리한 진압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그의 잘못을 말했다고 우리더러 경찰서에 와서 죄인처럼 조사를 받으라고요? 우리 유가족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응할 수 없습니다. 잡아가고 싶으면 그러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우리 발로 경찰서로 갑니까?“

7년 전 내가 생방송으로 봤던 그 붉은 불길의 현장, 거기에 이충연이 있었다. 그때의 상처와 트라우마 속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선거법과 상관없는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가 불길 속에서 돌아가신 것도 충격인데, 내가 가해자라니..감옥에서 몇 번 죽으려 했습니다. 안 죽고 산 건, 용산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트라우마는 병원 치료로 극복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치유는 참사의 진실이 밝혀질 때 가능합니다. 참사 책임자는 계속 저희 가슴을 후벼 팠고, 이제는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저는 여전히 범죄자로 낙인찍혀 있고요. 과연 트라우마 극복이 가능할까요?“

뜨거운 불로도 태울 수 없는 분노와 절망이 그의 작은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그해 겨울, 당장이라도 재개발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철거민을 몰아냈지만, 용산 현장은 아직 비어 있다. 7년 동안 그 어떤 건물도 들어서지 않았다.

괜히 사람 6명만 죽었다.

진압 책임자는 7년 만에, 두 번째 도전 끝에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그는 이제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출근한다. 반면,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 ‘선거법 위반 사범’이 될 듯하다. 또 법정에 설지도 모른다.

엇갈린 운명, 계속 높이 오르는 자와 여전히 아래로 추락하는 사람..뭔가 기이한 느낌이 든다. 비현실적이지만, 모두 오늘날 한국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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