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서 2015년 10월 28일 공개한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바람 소리가 선명한 검은 밤이었다. 갑자기 전화기가 울렸다. ‘가짜 살인범 3인조‘ 중 가장 덩치가 좋은 최대열이었다.
“기자님..잘 지내쥬?”
“네, 대열 씨 무슨 일 있어요?”
그는 머뭇거렸다. 더듬더듬 “아니..뭐..그게..”를 반복했다. 편하게 이야기 하라고 몇 번을 말하자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기자님, 기사 잘 봤는데유. 내 이름은 최대열인데, 왜 ‘최재필’로 나와유? 글구 우리 친구들 이름도 죄다 틀리셨데유. 임명선은 임수철, 강인구는 강상현으로 돼 있고..기자님, 내 이름도 몰라유?”
충청도 사투리가 묘하게 섞인 그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 그거요. ‘최재필‘은 가명이에요. 일부러 가짜 이름을 붙인 거예요. 가명..”
“아..네..그렇구만유. 알것슈. 늦었네유. 기자님, 잘 자유.”
최대열은 지적장애인이다. 이 기획 기사 안에 ‘가명‘이라고 적시했지만, 그 의미를 모른 듯했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했다. 그가 말할 때마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검은 입‘이 떠올랐다.
그는 윗 앞니 세 개가 없다. 입을 열면 텅 빈 그 자리가 검게 보인다. 대화 할 때마다 시선이 자꾸 검은 입으로 쏠렸다. 미안했다. 앞니 세 개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제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잖아유. 감방에서 어떤 놈이 ‘너 왜 왔느냐‘며 깐족거리데유. 난 죄 없이 왔다니께, 계속 약올리는 거예유. 그러다 뒤엉켜 싸웠어유. 그때 이 세 개 부러졌어유. 피 엄청 엄청 흘렸슈.“
그가 멋쩍게 웃었다. 다시 입 속의 검은 빛이 도드라졌다. “많이 아팠겠네요“라고 위로하자 최대열이 목소리를 높였다.
“갸는 코뼈 부러졌을 거예유! 갸도 코피 엄청 흘렸슈. 내가 더 많이 때렸슈!”
‘가명‘의 뜻도 모르는 최대열은 가짜 살인범이다. 전북 완주경찰서가 주먹과 몽둥이로 그에게 강도치사 누명을 씌웠다. 그는 죄 없이 교도소에서 4년여를 살면서 앞니 세 개도 잃었다.
“사람을 안 죽였다고, 집에 보내 달라고 애원해도 경찰이 안 보내주더라구유. 엄청 두들겨 맞았쥬. 눈물도 많이 쏟구..지가 힘이 없었어유. 그땐 힘이 없었응게..”
최대열은 힘껏 주먹을 쥐었다. 그는 유독 ‘그땐 힘이 없었다‘는 걸 강조했다. 하지만 그때만 힘이 없었던 게 아니다. 그는 지금도 힘이 없다.
이야기할 때 주먹을 자주 쥐는 최대열을 지난 10월 초, 전북 전주 그의 집에서 만났다.
전북 삼례 나라슈퍼에서 강도가 들어 77세의 유OO 할머니가 사망한 때는 1999년 2월 6일 새벽 4시께. 그때 열아홉 살 최대열은 삼례에 없었다. 전주 매형네 집에서 자고 있었다. 그는 며칠 째 매형과 함께 노동 일을 했다. 중학교만 졸업한 최대열은 돈을 벌어야했다.
최대열이 6살이던 1986년 어느 날. 엄마는 아버지가 몰던 경운기에서 떨어졌다. 경운기 바퀴가 엄마 허리를 밟고 지나갔다. 그때부터 엄마는 일어서지 못했다.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됐다. 아버지는 1992년 교통사고를 당해 척추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두 발로 서지만, 일을 할 수 없었다.
‘생활보호대상자 1급‘으로 지정돼 정부에게 월 34만 원을 받았다. 여동생까지 네 식구가 보증금 100만 원, 월세 2만 원을 내고 단칸방에서 살았다. 살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지적장애인 최대열이 신체장애인 부모를 위해 돈을 벌었다.
노동일을 끝내고 한동안 삼례 집에서 생활했다. 최대열은 고향에서 강도치사 사건이 발생한 사실도 몰랐다. 사건 발생 약 열흘 뒤인 2월 15일 이른 아침, 완주경찰서 형사들이 집에서 자는 최대열을 깨웠다. 그는 1997년 절도 혐의로 소년원을 다녀온 적이 있다.
“나라슈퍼 할머니 왜 죽였어?”
“그게 뭐예요?”
형사가 엉뚱하게 말하는 최대열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최대열은 잠이 덜 깬 얼굴로 완주경찰서로 끌려갔다. 엄마와 아버지는 아무 힘을 못 썼다. 동네 친구 강상현(가명), 임수철(가명)이 경찰서에 먼저 와 있었다.
“엄청 두들겨 맞았쥬. 제가 어리고, 힘이 없응게 계속 때리더라구유.”
최대열은 힘을 강조하며 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에게 “아무리 때리더라도 끝까지 ‘나는 죄 없다‘고 항변해야죠“라고 뻔한 말을 했다. 최대열이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맞아 봤슈? 경찰봉으로 맞아 봤슈? 꼭 안 맞아 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니까! 몇 대 때리는 게 아녀유. 며칠 동안 사정 없이 계속 때려유. 발바닥, 뺨, 뒤통수..친구들 비명 소리 들으며 맞아봤슈? 저도 한동안 억울하다고 울며 애원했슈. 그러다 결국 굴복했쥬. 내가 힘이 없어서 항복했쥬.”
최대열은 고개를 숙이고 자기 주먹을 바라봤다. 잠시 침묵. 갑자기 고개를 휙 올리며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그래도 제가 제일 오래 버텼슈! 몽둥이 앞에서 할 말 다했슈!”
괜한 허세가 아니다. 최대열은 ‘가짜 살인범 3인조‘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무엇보다 그는 알리바이가 있었다. 나라슈퍼에서 할머니가 사망한 날, 그는 전주 누나네 집에서 잤다. 함께 노동일을 하던 아저씨들도 그의 알리바이를 입증할 수 있었다.
“내가 힘이 없고, 우리 부모님이 모두 장애인이라서 그랬을까요? 내가 말을 하면 도대체 형사들이 믿어주질 않아유. 매형이랑 함께 일한 아저씨들한테 물어보면 되잖아유! 내 말을 믿지도 않고, 아저씨들 말도 안 듣고.. 무조건 내가 할머니 죽였다는 거예유. 무슨 경찰들이 그래! 세상이 왜 그래유?”
경찰은 최대열의 말을 외면했다. 사건 조작하기에 바빴다.완주경찰서는 며칠을 조작했어도 구멍을 남겼다. 완주경찰서가 작성한 최대열의 1차 신문조서에 따르면 범인은 3인조가 아닌 ‘4인조‘로 돼 있다. 최대열의 오랜 저항은 검찰 수사기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전주지방검찰청이 1999년 2월 22일에 작성한 신문조서에는 이렇게 나온다.
- (강도치사 사건이 발생한) 나라슈퍼를 알고 있나요?
“경찰에 잡혀서야 알았습니다.”
- 나라슈퍼에서 돈을 빼앗은 사실이 있나요?
“저는 없습니다.”
- 피의자(최대열)는 1999년, 2월 6일 새벽에 강인구, 임명선과 (함께 나라슈퍼에서) 돈을 빼앗지 않았나요?
“아닙니다. 저는 2월 5, 6일 매형 따라서 전주에서 일을 했고, 7일엔 무주에서 일했습니다.”
- 5일, 전주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나요?
(송천역 근처에서 삼각형 건물을 지었다고 하다가, 창고를 지었다고 하다가 횡설수설)
- 경찰서에서는 왜 강상현, 임수철과 함께 돈을 빼앗았다고 했나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갑자기 충격을 받아서 말이 잘못 나왔나 봅니다.”
그 뒤에 검사는 이렇게 적어놨다.
“피의자의 태도가 어딘가 모자란 듯“
“유리한 증거나 할 말이 있느냐“는 검사의 마지막 질문에 최대열은 “저는 부모님을 돌봐야 하고, 돈 벌어서 집도 사야하고, 제 동생 학교 다니게도 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알리바이를 대며 집에 보내달라는 최대열은 ‘모자란 놈‘ 취급을 당했다. 계속 무죄를 주장하는 그에게 검사가 말했다.
“너 자꾸 이러면 내가 판사에게 무기징역이나, 사형 내려달라고 말한다!”
겁 먹은 최대열은 입을 다물었다. 모욕은 이어졌다. 법원은 최대열의 알리바이를 입증하는 누나의 탄원서를 무시했다. 전주보호관찰소 보호관찰관마저 최대열을 외면했다. 그에 대한 판결전조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본인 및 보호자 모두가 반성하기보다는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항변하고 있으며, 결단코 범죄에 가담한 적 없다고 진술함”
“소년원에서 가퇴원 되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재범한 것으로 판단되고, 본인 및 보호자가 본 사건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는데 다소 신빙성이 없어 보임”
가난한 장애인 부모 밑에서 자란 미성년 지적장애인 최대열. 그의 말은 ‘횡설수설‘ 집에 보내달라는 애원은 ‘어딘가 모자란‘ 행동, 무죄 주장은 ‘반성하지 않는‘ 모습으로 여겨졌다. 인간으로서 그의 기본권 모두 짓밟혔다.
사건 발생 약 1년 뒤, 부산지방검찰청이 나라슈퍼에서 할머니를 죽게 한 ‘진짜 3인조‘를 수사했다. 최대열은 다시 한 번 힘을 내 “진범이 잡혔다, 나는 억울하다“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를 기각해 또 최대열을 무시했다.
“내 말은 한 번도 안 믿어유! 아주 환장하겠어유. 나도 사람인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예유? 기자님, 나 사람 맞잖아요? 근데 이 나라는 나한테 자꾸 왜 그래유!”
할 말이 없었다. 어두워진 저녁에 보증금 50만 원, 월세 20만 원인 그의 집에서 나왔다. 그에겐 아내와 어린 두 딸이 있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최대열이 뛰어 나왔다. 그가 움켜 쥔 주먹을 풀고 머리를 긁었다.
“기자님, 미안한데유..7만 원만 빌려줘유..제가 힘이 없어서..낮에 애기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는데, 돈이 없어서 외상했어유. 그래도 의사 선생님이 엄청 착해서 외상을 해줬어유. (웃음) 미안해유.. 제가 힘이 없어서..”
그는 또 힘 타령을 했다. 그의 주머니에 10만 원을 찔러줬다. 최대열은 멋쩍게 웃었다. 그의 검은 입이 더 검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