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서 2015년 11월 5일 공개한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아버지는 어제처럼 술을 마시고, 그제처럼 엄마를 때렸다. 내일은 오늘처럼 술을 마시고 나와 동생을 때릴 것이다.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 사람은 살아온 대로 살아간다. 아버지는 그걸 증명한다.  

가짜 살인범 3인조 나이가 가장 많은 임명선( 37) 아버지에게 역사의 원리를 배웠다. 삶으로 역사를 가르친 아버지의 직업은 목수. 술을 마시면 일을 나가지 않았다. 가난했다

임명선은 3남매 장남이다. 각각 , 어린 여동생 둘이 있다. 임명선과 여동생의 유년은 도망과 외박으로 채워져 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임명선은 동생들을 데리고 밖으로 도망쳤다

엄마를 때리고, 살림 부수니까 무서웠죠. 어린 동생들은 부들부들 떨며 자지러지고..제가 오빠니까 피신시켜야죠.”

그래봤자 오빠 임명선도 초등학생이었다. 어둡고 깊은 , 집에서는 엄마의 비명과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퍼졌다. 임명선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동생들을 데려 갔다. 세상은 넓지만 곳은 없었다. 멀리 가면 길을 잃어 영원히 집에 돌아올까봐 무서웠고, 가까이 있으면 아버지의 고함과 엄마의 비명이 두려웠다

삼남매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동네의 버려진 집이나, 다리 밑에서 이슬을 피해 잠을 잤다. 밤의 추위는 문제가 됐다

시골 동네에 버려진 이불, 비닐하우스 보온재로 쓰이는 부직포 많잖아요. 그런 주워서 덮고 잤죠. 어른들이 입다 버린 있죠? 그런 입으면 겨울에도 견딜 만했어요. 우린 어려서 몸이 작았으니까, 어른 옷은 거의 이불이었죠.”

밖에서 밤을 보낸 삼남매는 이른 아침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취해 잠들었으면 몰래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다. 아버지가 아침에도 술을 마시면 집에 들어 없었다. 그러면 가방 없이 학교에 갔다. 집에 들어가지 하고, 학교도 가지 못한 거리를 배회한 적도 많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랑 선배들이 저를 많이 때리고 괴롭혔죠. 왜긴요. 제가 가난하고, 바보 멍청이같고, 지저분하니까 때리죠. 예전엔 그랬잖아요.”

2015년 11월 26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임명선 씨. ⓒ셜록

집에서는 취한 가난한 아버지가 때리고, 학교에 가면 가난하다고 놀리는 애들이 때리고. 맞기 싫었지만, 피할 방법이 없었다. 피할 없는 일은 있었다. 배고픔이다. 아버지가 초저녁부터 취하면 삼남매는 저녁도 먹고 집에서 도망쳤다. 1 원만 있으면 배를 채울 텐데, 그게 없었다. 여름에는 그나마 나았다

저와 동생이 너무 어렸으니까 어디 가서 달라는 말도 하죠. 너무 배가 고파서, 동생들이랑 남의 수박을 서리해서 먹었어요.”

동생들과 함께 허기진 배를 채우려 밭에서 먹은 수박. 그것이 임명선 남의 물건에 손을 번째 역사다. 훗날 수박은 임명선의 인생을 바꾼다. 임명선은 초등학교까지만 다녔다초등학교를 졸업해도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가난하고 배가 고팠다. 수박이 아닌 다른 걸로 배를 채우고 싶었다. 청소년 시절, 수박을 실으러 트럭에서 돈을 훔쳤다. 일로 임명선은 소년원에 다녀왔다. 유년시절 그와 동생의 배를 채워준 수박이, 이젠 그를 가둔 셈이다. 그의 허기와 절도는 수박밭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수준이었다

취한 아버지를 피해 도망다니다 보니 저절로 연마된 것일까. 아니면 굶주림이 만든 빼빼 마른 가벼운 때문일까. 임명선은 달리기를 끝내주게 잘했다. 달리면 아무도 잡았다. 달리기 실력이 엉뚱한 곳에서 발휘됐다

강도치사 사건으로 삼례 나라슈퍼에서 OO 할머니가 사망한 여드레가 지난 1999 2 14 저녁. 완주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일종의 탐문 수사였다. 알리바이를 말하고 무죄를 주장하면 되는 상황.

형사를 보고 겁부터 먹은 것은어린 전과자 본능이었을까임명선은 논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의 다리가 빛을 발했다. 임명선은 멀리 도망쳤고, 그를 쫓던 형사들은 논두렁에 빠지는 아수라장이 됐다.

임명선의 놀라운 질주를 형사들은 의심을 확신으로 키웠다. 다음날 새벽, 임명선은 OO대학 화장실에서 체포됐다. 논두렁에 빠져 잔뜩 화가 형사들의 주먹질과 몽둥이질이 시작됐다

그냥 무서워서 얼떨결에 도망갔다니까 믿더라고요. 바로 구타가 시작됐죠.”

집에서는 아버지가 때리고, 학교에서는 친구와 선배들이 때리고, 경찰서에서는 형사들이 때렸다. 형사들의 구타는 아버지, 친구들의 주먹질과 비교가 됐다. 폭력의 질과 양은 월등했고, 고통은 끔찍했다

겪어본 사람은 몰라요. 형사 몽둥이질은요, 진짜 끝내줘요. 개자식아, OO놈아 계속 욕하고..너무 괴로워서 완주경찰서 유치장에서 자살할 궁리만 했어요. 죄도 지었는데,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정말 죽고만 싶었어요. 정말 징하게 울었죠.”

가난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친구로 엮어줬다. 함께 어울렸던 가난하고 지적장애가 있는 강인구, 최대열 차례로 완주경찰서로 잡혀왔다. 어린 친구는 함께 있을 서로에게 슬쩍 물었다

, 네가 그랬냐?”

아니.”

그럼, 너가 할머니 죽였냐?”

아니

근데, 이렇게 우릴 때리냐?”

몰라.”

형사들의 꿰어 맞추기 조작이 시작됐다. 자신들이 잡아온 가짜 범인은 . 지적장애인이 . 누구든 조작이 쉽지 상황. 그래도 완주경찰서 형사들은 끝내가짜 살인범 3인조 만들어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들 덕에 임명선은 생애 처음으로우두머리 등극했다.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은 임명선이 미리 범행 도구를 준비해, 즉흥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를 지휘해 벌인 사건으로 조작됐다

할머니 죽였다고 하면, 바로 손이 날아와요. 경찰봉을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해요. 정말 자살하고 싶었다니까요.”

증거도 없이 주먹으로 창조한 경찰의 조작은 곳곳에 구멍을 남겼다. 완주경찰서 형사들이 작성한 임명선 신문조서를 보면 슬픈데 웃기고, 웃긴데 슬픈 블랙코미디같은 상황의 연속이다. 형사들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썼다는 임명선의 자술서를 보자

“1미터 조금 넘는 밧줄을 주워서 할머니 몸을 조금씩 감았습니다. (중략)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를 보고서 소리를 지르자 급히 도망갔습니다. (중략) (훔친 돈은) 5만 원에서 6만 원 정도 있었고, OO와 나는 반으로 갈라서 돈을 나누어 가졌음을 진술합니다”

임명선이 작성했다는 자술서의 일부. 객관적 상황과 맞는 게 없다. ⓒ완주경찰서

사건 현장 상황과 들어맞는 하나도 없다

사망한 할머니는 밧줄에 감기지 않았다. 범행은 새벽 4시께 벌어져 목격자는 없다. 방에서 사건이 벌어졌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리도 없다. 진짜 범인은 둘이 아닌 셋이다. 자술서는 엉망진창이다

블랙코미디는 계속 이어진다. 자술서를 형사들의 신문이 시작됐다. 형사가현재 조사를 받는지 알고 있나요?”라고 묻자 임명선은 이렇게 답한다

현재 내가 조사를 받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사람을 죽게 했다는 자술서를 썼는데, 조사받는지 모르겠다는 상황. 앞뒤가 맞는 수두룩하다. 그만큼 경찰의 조작은 어수룩했다. 경찰이 때리기만 아니다. 칭찬을 해줬다

구속 직전, 피의자가 판사를 만나 직접 이야기 있는 구속영장실질심사. 자리에서가짜 3인조 범행을 부인할까봐 두려웠을까? 판사 만나기 직전, 형사들은 승합차에 3인조를 태우고 훈련을 시켰다

OO놈들아, 너희들 판사 앞에서 범행 부인하면 다시 우리한테 와서 조사 받아야 . 판사님한테 무조건 너희들이 했다고 하고, 잘못했다고 빌어. 알았지?”

형사들에게 맞으며 조사를 받는다니. 먹은 3인조는 판사에게우리들이 할머니를 죽게 했다 거짓말을 했다. 훈련시킨 대로 일이 끝나자 형사가 임명선의 등을 두드려줬다

잘했어.”

집에서, 학교에서, 경찰에서..내내 두들겨 맞기만 임명선. 그는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우두머리 되어 구속됐다. 우두머리에겐 책임이 따른다. 그는 무려 6년여의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구속된 3년이 지났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임명선은 아버지 장례식에도 갔다

원래 장례식에는 보내줘야 하는데, 교도소에서 아무도 말을 줬어요.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도 몰랐어요. 한참 뒤에 동생 편지를 받고 알았다니까요. 그때 많이 울었어요. 그래도 아버지잖아요. 마지막도 지키드리고..제가 불효자식이죠.”

임명선은 교도소에서 나온 고향 삼례로 가지 않았다. 대전에 있는 동생 집에서 개월을 보냈다. 괜히 고향에 있으면 경찰의 조작에 휘말릴까봐 두려웠다

오빠인 제가 못나고 바보같아서 동생들이 고생 많았죠. 어려서부터 다리 밑에서 자고 그랬으니까. 동생들 엄청 울었어요. 저도 많이 울었지만, 동생들이 불쌍하죠.”

동생 이야기를 임명선의 눈이 젖었다. 그는 멋쩍게 오른손으로 코를 만지며 웃었다. 왼쪽으로 휘어진 그의 코가 더욱 도들라져 보였다. 코는 휘었을까?

감옥에서 얻어 터졌죠. 코피 엄청 쏟았어요. 코뼈가 부러졌는데, 치료를 못해서 코가 이렇게 휘어 버렸어요. 저는 사람을 번도 때려 적이 없어요.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저를 패는지 모르겠네요.

인터뷰 시간 , 임명선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생각났다. 울며 ‘Sorry!’ 외치는 이모티콘이 먼저 도착했다.

임명선 씨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셜록

창피하네요. 미안해요. 원만 빌려주세요. 사장님한테 어제 제가 말을 못했어요. 나갈 것도 많고, 애로 사항도 많네요. 21일이 월급날인데..죄송해요 이상한 해서. 그냥 없던 일로 할까요?”

땅의 많은 가난한 사람들처럼, 역시 일을 해도 가난하다. 단돈 원을 빌리기 위해 서른 여섯의 임명선은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 썼다 지웠다를 수없이 반복한 떨리는 손으로보내기버튼을 눌렀을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임명선은 가짜 3인조 중에서 유일하게 지적장애가 없다. 하지만 소통하기는 가장 힘들었다. 요금을 내지 못한 탓에 그의 휴대전화는 오래 전에 끊겼다. 오직 카카오톡으로만, 그것도 그가 와이파이가 되는 지역에 있을 때에만 연락이 가능했다

부끄럽죠. 저라고 자존심이 없겠어요. 근데, 요즘 너무 힘들어요. 요즘 그래요..”

그는 멋쩍게 웃었다. 요즘 힘들다니, 거짓말이다. 그는 요즘 힘든 아니다. 계속 힘들었다. 그런 그에게 형사는 잔혹한 장난질까지 쳤다

완주경찰서로 잡혀온 날인 1999 2 15. 형사에게 두들며 맞고 겁에 질려 펑펑 울었다. 상태로 엉터리 자술서를 썼고, 1 신문을 받았다. 형사가 마지막으로 임명선에게피의자는 본직으로부터 조사받을시 가혹행위 등을 당하면서 조사를 받지 않았나요?”라고 물었다.

이런 답변이 적혀 있다

폭언이나 가혹행위 등을 전혀 받지 않고 조사를 받았습니다. 좋은 세상인 같군요.”

세상에나, 좋은 세상이라니. 임명선에게 세상이 좋았던 적은 하루도 없다. 그의 꿈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사람을 그렇게 놓고, 저런 말을 자기들 마음대로 놓다니..저는요 형사들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요?”

임명선은 금방 울어버릴 것처럼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코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국가는 임명선의 인생만 망치지 않았다. 몸도 망쳐놨다. 국가는 임명선의 코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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