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와 예지는 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이하 용인외고)의 자랑이다.

차유나(가명)는 3학년 때 SCI급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 과학고도 아닌 외고생이 ‘패혈증 비브리오균 htpG 유전자의 영향’을 연구해 과학-기술적 명성이 높은 저널에 올려도 손색없는 논문에 기여했다니. 그야말로 한국 교육의 쾌거다.

유나의 1년 후배 나예지(가명)는 더 놀랍다. 용인외고 1학년 때 연구를 시작해, 이듬해 여름에 나온 해당 논문에 이름을 올렸으니 말이다. 석박사 즐비한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쓰기 힘들다는 SCI급 논문에 나란히 이름을 등재한 두 고교생. 학교의 자랑이 되는 건 당연하다.

<한국경제>는 2013년 ‘명문GO! 열전’ 시리즈를 보도하며, 두 번째로 용인외고를 다뤘다. 이 기사에도 유나와 예지의 논문 이야기가 나온다.

“고교생 수준을 뛰어넘은 결과물도 나왔다. 김두영(자연과학과정3) 안아현(국제과정3) 학생의 공동논문 ‘key-amplified cipher’는 국제논문대회 ‘ICICM(International Conference on Information Communication & Management) 2013’에 채택됐다.

패혈증 비브리오균 유전자의 영향을 연구한 OOO 학생(자연과학과정3)의 논문은 ‘한국미생물학회지’에 게재됐다. 대학 교수와 함께 연구한 논문의 제 2저자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용인외고에겐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박OO 부장교사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논문과 저자를 기억했다.

“예지는 워낙 똑똑해서 기억이 나요. 용인외고 학생들이 논문을 많이 쓰는데, 이 학번(7기) 350명이 166편이나 썼다니까요! 좋은 논문은 학술지에 게재가 됐습니다. 워낙 똑똑한 애들이 많으니까요. 논문은 아이들이 직접 씁니다!”

박 교사가 작년 11월 10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풀어낸 이야기다. 기자가 해당 논문을 검증하는 투로 묻자 박 교사의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다.

“나예지는 (SCI급) 논문 쓸 만한 탁월한 아이였어요. 전교 1등! 서울의대에서 모셔갈 만한 친구였다니까요. ‘조국 사태’ 때문에 열심히 공부한 애들 노력까지 폄하되는 건 안타깝습니다. 자투리 시간 활용해서 연구한 건데 더 박수쳐 줘야죠!”

논문이 나온 지 약 10년, 기자는 유나와 예지의 오늘이 궁금했다. 작년 10월부터 두 사람을 수소문했다. 정규 수업 외 자투리 시간만으로 국제적인 논문을 썼다는 두 학생은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직종에 있다. 둘은 나란히 의사가 됐다.

‘짝퉁’ 논문을 쓴 유나와 예지. 그들은 훗날 의사가 된다. ⓒ오지원

연락처를 어렵게 구해 나예지에게 지난 12월 전화를 걸었다.

  • 나예지 선생님 되시죠?
    “아.. 제가요, 인터뷰 별로 하고 싶지 않아서요.”
  • 논문에 대해서 좀 물어보려구요.
    “그냥 저는 거부했다고 써 주시면 될 것 같아요.”
  • 그래도 반론 차원에서…
    “(말을 끊으며) 저는 잘 몰라요.”

1년 선배 차유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자의 취재는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는지, 차유나는 기자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회사 전화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떠오르는 명문 용인외고의 자랑 유나와 예지. 지금은 “의사선생님”이라 불리는 두 사람에겐 떳떳하지 못한 과거가 있다. 두 사람이 기여했다, 언론이 “고교생 수준을 뛰어넘는 결과물”이라 칭찬한 논문, 그거 다 짝퉁 거짓말이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2020년 해당 논문에 대해 ‘연구 부정’ 판명을 내렸다. 유나와 예지는 모두를 속였다. 두 미성년자의 꼼수를 포장하고, 미화하고, 눈감아준 사람들은 <셜록>이 취재를 시작하자 숨거나 입을 닫았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A 교수가 있다. 그는 한국 비브리오균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이다. 그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국무총리실 식품안전정책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2021년엔  한국미생물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 식품바이오융합연구소장이다.

많은 사람이 잠수를 탔으니, A 교수를 직접 만나야 했다. 지난 12월 22일 서울대학교로 향했다. 농업생명과학대학 건물 8층 한 연구실 창문을 두고 A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역시 소문을 들었는지 기자를 보고 연구실 밖 복도로 나왔다.

“교수님, 자녀 분이 연구 기여도가 없는데 부당하게 논문에 올리신 이유가 뭔가요?”

그의 이마 위 굵은 주름이 요동쳤고, 교수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기자들이 그렇게 할 일 없어요? 부당하게 올렸다고 누가 그래요?”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다른 교수님에게 논문 교신저자(책임저자)를 대신 맡아달라고 부탁하셨잖아요.“

그의 목소리는 커졌고 말은 짧아졌다.

“당신 학교 어디야? 석사해봤어? 문과야, 이과야? 실험에 대해 알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A 교수. ⓒ오지원

기자의 출신 학교와 학위에도 관심을 보인 A 교수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대학 입시에서 중요한 딸의 스펙을 쌓는 데 도움을 줬다. 서울대 연구실과 대학원생, 연구원, 동료 교수까지 그의 딸 스펙 쌓기에 모두 동원됐다. A교수는 자신의 딸의 고교 동아리 후배까지 챙겼다.

<셜록>이 입수한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결정문’에 따르면, A교수는 자신의 딸과 그 친구를 부당하게 논문에 공저자로 포함시켰다.

딸을 위한 A 교수의 설계는 은밀하고 치밀했다.

차유나와 나예지가 용인외고 시절에 제2저자로 이름을 올린 ’패혈증 비브리오균 htpG 유전자의 영향’. 이 논문의 실질적인 책임자인 교신저자는 사실 A교수다. 제1저자는 그의 연구실 소속이던 B,C 연구원이다.

2012년 이 논문은 영향력지수(IF) 평균(2020-2021년 기준) 3.422로, SCI급 저널로 평가되는 한국미생물학회지에 실렸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A교수가 자신의 자녀를 공저자로 만들기 위해 이 사건 위반 행위를 계획하고 주도한 점을 고려하면 위반의 정도는 ‘중대하다’고 봤다. 하지만 A교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잘못된 결정이라고! 당신 뭔데 나를 이렇게 찾아와 기다려요. 할 얘기 없다니까!”

그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딸에게 가짜 스펙을 만들어 준 사건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겨울방학. 용인외고 2학년으로 편입한 차유나는 나예지와 함께 A교수의 연구실로 향했다.

유나와 예지는 2011년 겨울방학 때 서울대 A 교수 실험실로 향했다. ⓒ오지원

A교수의 연구실 소속 C연구원에게 차유나는 낯설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봄에는 A교수와 꽃놀이를 가고, A교수의 양평 집에서 고기도 구웠다. 함께 등산도 갔다. 등산에 A교수 부인이 동행한 적도 있다. 지난해에는 A교수의 환갑 잔치도 챙겼다.

C연구원은 “차유나가 A교수 딸인 건 실험실 오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며 논문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올리자고 해서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C연구원은 문제의 논문 제1 저자다.

당시의 진실을 아는 한 연구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아는 걸 말하는 게 무섭습니다. 정말 두렵습니다. A 교수에게 찍히면, 한국에서 취업하는 걸 포기해야 합니다.”

그가 말하기 두렵다는 ‘진실’은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판단에 다 들어가 있다. 문제의 논문 책임저자는 사실상 A 교수다. 하지만 논문 어디를 봐도 A 교수의 이름은 없다. D 교수가 책임저자로 등재돼 있는데, 이게 다 A 교수의 꼼수에서 나온 일이다.

A 교수는 ‘갑’의 위치에서, 정교수 승진을 준비하는 ‘을’인 D 교수에게 부탁했다.

“내가 교신저자(책임저자)가 되면 부녀지간인 게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D 교수가 교신저자를 맡아 줘. 나는 빠질게. 유나와 예지 공저자에 포함시켜주고.“

이렇게 D 교수가 문제의 논문에 책임저자가 됐다. 무엇보다 유나와 예지가 서울대학교에서 연구에 참여했다는 그때, D 교수는 한국에 있지도 않았다. 그는 미국에 체류중이었다.

A교수는 자신의 딸 이름을 논문 저자에 등재해 달라고 D교수에게 부탁했다. ⓒ오지원

D 교수는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 당시, 유나가 A 교수의 자녀라는 걸 밝히지 않다가 예비조사위원회의 추가적인 소명 요청에 비로소 진실을 밝혔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유나와 예지의 ‘꼼수’를 자세히 지적했다.

“미성년자들이 작성했다고 주장하는 연구노트는 실제 연구과정에서 미성년자들에 의해 작성된 것인지 의심스럽고, 그 내용도 미성년자들의 기여를 뒷받침하기에 부족하다. (중략) 수기로 연구노트에 직접 작성된 부분이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 출력물을 오려 붙이거나 다른 노트에 수기로 기재한 것을 복사해 붙였다. (중략)

미성년자들이 특정 표의 데이터 생산에 기여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연구노트에는 그와 유사한 내용의 표가 출력물을 오려 붙인 형태로 포함되어 있을 뿐이고, 그 기초가 되는 원데이터가 기재된 부분은 찾을 수 없다.”

유나와 예지는 부정으로 판명난 논문으로 대회에 나가 상까지 탔다. 2012년 5월 한국미생물학회는 ‘제1회 미생물 탐구 페스티벌’을 열었다. 민사고, 세종과학고, 광주과학고, 인천과학고 등 수십여 개의 팀이 참가했다. 유나와 예지는 팀을 꾸려 해당 논문으로 대회에 나갔고, 처음으로 열린 행사에서 대상을 받았다. 

당시 한국미생물학회 실무위원장은 A 교수였다. 당시 해당 대회 심사위원 명단은 비공개로, A교수가 속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실무위원장은 학회의 제반사업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다.

유나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아버지 실험실에서 만든 논문’에 이름을 올려, 그 논문으로 ‘아버지가 실무위원장인 학회에서 개최하는 탐구대회’에 나가 대상을 탔다.

미성년 유나, 예지가 부정하게 이름을 올린 비브리오 관련 논문.

유나-예지와는 다른 팀으로 제1회 미생물 탐구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용인외고 E학생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고등학생이 쓰기에는 거의 불가능했던 논문이긴 했어요. 그래서 당시에는 예지의 아버지가 미생물학회 쪽에 계시는 교수님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어요.”

그때 그 소문의 진실은 10년이 지나 밝혀졌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으로. 한국미생물학회에 계셨던 교수는 예지가 아니라 유나의 아버지이니 말이다.

유나는 논문뿐 아니라 동아리 활동에도 아버지를 적극 활용했다. 2012년 3월. 차유나는 자신이 회장이었던 생물동아리 ‘데카바이오’ 홍보를 이렇게 했다.

“2012년 2학기 중반에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A교수님께서 데카바이오에서 10-12명의 학생들에게 하루 동안 서울대에서 실험할 기회를 제공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2011년에는 총 12명이 가서 병원균과 비병원균을 판단하는 방법을 서울대 언니/누나 오빠/형들과 함께 실험을 하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유나가 스펙으로 쌓은 동아리 활동, 논문, 수상 경력에서 아버지인 A교수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유나는 고려대 생명과학부 입학 후 고려대 의대로 편입했다. 현재 아주대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 중이다. 나예지는 수시로 성균관대 의과대학을 진학해 현재 삼성서울병원에 레지던트로 근무한다.

A교수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서울대 교수로 변함없이 재직 중이다. 그는 징계 한 번 받지 않았다. 이름만 빌려준 D 교수만 징계를 받았다.

작년 10월 서울대 오세정 총장은 제75주년 개교기념사를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의 교육과 연구는 국가사회의 이익에 봉사하고 세계적 과제인 사회 양극화의 극복에 기여하는지, 우리가 키워내는 인재는 사익을 위해 사회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성 확대와 사회 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인지, 끊임없는 점검과 가일층의 분발이 필요합니다.”

오 총장의 개교기념사와는 달리, 서울대는 ‘교수들의 자녀 스펙 쌓기’에 이용됐다. 자녀의 스펙을 쌓아주기 위해 연구 윤리마저 저버린 서울대 교수들은 사회 양극화의 극복이 아닌 촉진에 앞장서고, 사익을 위해 사회 분열을 조장하며 공정성을 해치고 사회 통합을 저해했다.

이것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 대학이라 불리며, 연간 약 5천억원의 국민 세금을 지원받는 서울대의 현실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이 서울대학교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서울대학교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 결과 연구 부정 및 연구 부적절 판정을 받은 사례는 49건이나 됐다. 그중 미성년자 자녀를 저자로 등록하는 등의 부당 저자 사례가 18건으로 가장 많았다.

근데, 용인외고는 해당 논문이 ‘짝퉁’이란 걸 정말 몰랐을까? A 교수 딸에게 ‘대상’을 안긴 한국미생물학회와 서울대 연구원들은 정말 고교생의 논문 기여를 믿은 걸까?

유나와 예지의 친구가 알던 걸 일명 ‘명문고-명문대’가 몰랐다면, ‘명문’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기사 중 일부 오류를 수정합니다>

<셜록>의 보도가 나간 이후, 한국미생물학회 측은 “제1회 미생물탐구대회 당시 실무위원장은 심사위원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밝혀왔습니다.

<셜록>은 지난해 12월, 한국미생물학회 관계자에게 ‘미생물탐구대회 심사위원 구성’에 대해 질의했습니다. 당시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다음 사항을 확인해주었습니다.

1.미생물탐구대회 심사위원은 비공개로 알려줄 수 없다. 2.해마다 심사위원 구성은 조금씩 다르다. 3.위원장은 항상 고정으로 들어가 있다.

이러한 답변을 바탕으로 <셜록>은 한국미생물학회는 “실무위원장은 항상 고정으로 심사위원으로 들어가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담당자와 <셜록>의 통화 간 커뮤니케이션의 오류로, ‘위원장은 항상 고정으로 들어가 있다’는 표현은 ‘심사위원으로서’가 아닌 ‘학회의 제반 사업을 총괄하는 역할로서 고정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임을 뒤늦게 서로 확인하였습니다.

이에 해당 표현을 수정합니다. 서울대학교 A 교수와 독자 여러분께 사과의 뜻을 전합니다. 앞으로 사실 확인에 더욱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 2022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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