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대체로 의사 혹은 의대 교수였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교수’였다. 그들의 자녀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의대 아니면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갔다. 미래만 창창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이미 ‘필승코스’를 밟아왔다.

부정하게 논문에 이름을 올리고 이걸 입시에 활용한 아이들. 어린 학생이 간이 크고 겁이 없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런 부정은 다 가진 아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렇게 많이 가졌지만, 부끄러움이나 염치 같은 건 소유하지 못했다. 기획 ‘유나와 예지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만난 부모와 아이들은 대체로 그랬다.

“미성년자 논문 부정을 철저히 조사해 조치하겠다”던 문재인 정부 교육부. 어찌 된 일인지 철저한 조사도, 조치도 깜깜무소식이다. 입시비리 책임자들은 진보-보수, 좌우, 우리 편 네 편 가릴 것 없이 포진해 있으니 교육부의 고충(?)이 일견 이해된다.

2017년부터 조금씩 터져 나온 ‘미성년자 논문 부정’은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의학 논문 제1저자 부당 등재 사건으로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부모 찬스와 불공정 문제가 사회적 화두가 됐다.

입학사정관제, 학생부종합전형이 문제의 원흉이 되어 뭇매를 맞더니, 엉뚱하게 “과거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가 힘을 받았다.

입시 제도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먼저 찾는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이곳에서 20여년간 논술 강사 및 입시컨설턴트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책 <대치동>을 쓴 조장훈 작가를 지난 8일 서울 노원구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책 <대치동> 출간했다. 책의 부제는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이다.

그에게 특권층의 논문 부정 등 입시비리와 ‘대입 복고주의’ 의견을 들어봤다.

<대치동> 저자 조장훈. ⓒ주보배
  • <대치동>에는 ‘욕망’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대치동에 특별한 욕망의 사람들이 사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세속적인 욕망이 대표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난 곳일 뿐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선생님이 대리시험 쳐주면 좋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기출인지, 유출인지 모를 너무나 정확도 높은 내신 족보들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아이가 옆에 있는데도 ‘학벌 세탁을 위해서는 A 대학보다는 B 대학이 낫다’고 말하는 학부모도 있다.”

  • 대치동에 왜 그렇게 학생-학부모가 모일까.

“대입이 바뀌면 새로운 전형에 어떻게 대비할지 난감한데, 대치동에 오면 늘 해법이 있었다. ‘재외국민 특별전형도 대치동 학원에 가면 해결된다’는 인식이 생겼고, 특히 논술전형 실시 후엔 ‘대치동에는 다른 데선 알 수 없는 정보들이 있다, 모든 게 해결된다’라는 생각이 만들어졌다.”

  • 입학사정관제-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뒤늦게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

“새로운 입시 제도는 정보를 균등하게 분배한 뒤에 도입해야 한다. ‘고교 학점제’는 약 15년을 준비한다. (그에 반해) 입학사정관제는 급격히 도입됐다. 사람들은 대비책이 없었고, 바뀐 제도에 살아남으려 각자도생의 길을 갔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계층, 입시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 당시 대학교와 고등학교의 움직임은 어땠나.

“대학은 고교생 대상 전공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논문 참여도 권장했다. 외고, 특목고 등은 적극적으로 그런 활동을 권장했고. 무엇보다 학교 측에서 전문직 학부모를 모아 놓고 ’공부 잘하는 애들에게 이런 체험 활동 좀 시켜주세요’라며 품앗이를 조직하고 주선하기도 했다. 그 순간에 ‘이게 조금 찝찝하기도 하고, 옳지 않으니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학부모가 몇 명이나 될까? 입학사정관제가 갑자기 확대되면서 그런 부작용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 ‘품앗이’라면 어떤 건가.

”학부모들이 모의법정, 모의유엔대회 이런 걸 막 만들었다. 국회의원, 법조인들이 거기에 이름 걸고 시상해줘서 수많은 스펙이 만들어졌다. 그런 걸 대학이 평가해서 걸러야 했는데, 관리 시스템도 없었다. 과장된 확인서(스펙)가 허다했다.“

  • 미성년 부당 저자 논문 문제도 그때 많이 나왔다. 

“미성년자 논문 연구 부정은 대학과 지식인들이 얼마나 허술하게 학문 체계를 관리하고 운영하는지 보여준다. 자격 미달 논문에 학위를 준 관행이 있으니, 짧은 소논문 제1저자로 고등학생 이름 올리는 게 대수롭지 않았던 거다. 학자라면 그런 요구가 들어오면 거부하고 싸워야 했다. 학계가 통렬히 반성하고 관련자들 엄벌해야 한다.”

  • <셜록> 취재 결과 ‘연구 부정’ 연루 교수들은 처벌이나 징계를 거의 받지 않았다.

“학계 자정능력의 부재를 보여준다. 이들의 성찰 부족은 우리 사회 지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반지성이 더 강화되면 사람들이 입시 제도를 안 믿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교수 사회 스스로가 학문과 지식에 대한 태도를 성찰해야 한다.

연구 진실성 외면한 교수들을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부정 논문이) 대학 입시에 활용됐는지도 확인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사회적 특권층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처벌하지 않고 지나가면서 우리 사회가 변할 수 있을까?”

조장훈 작가는 과장된 스펙과 연구부정 등이 유행처럼 번졌던 시대의 산물인 ‘그 시절의 아이들’ 처리에 대해서는 사회적 고민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그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미성년 자녀를 부정하게 논문 저자로 올릴 때) 학부모들이 이걸 설계-회유-강요 혹은 금전적인 거래가 있었다면 양자(교수-학부모) 모두 처벌해야 한다. 문제는 ‘돈 줄게 논문 해줘’ 이런 노골적인 사례는 거의 없다는 거다. 학교가(그리고 부모가) 권장한 활동을 따랐던 학생을 (약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우리가 다 처벌할 수 있을까?”

  • 예외를 두면 법 적용의 형평성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나.

“교수 몇 명 처벌한다고 이 사안이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공정한 사법 적용과 연관돼 있다. 사회적 원칙도 잃으면 안 되고. 굉장히 조심스러운 문제다. (사법 처리 이전에 그런 시스템에) 편승했던 이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 입시 문제로 박탈감과 불공정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많은 학생이 박탈감을 느꼈을 거다. 학교 측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 전문직 학부모만 불러 모아서 인턴활동, 학술체험 기회를 마련했으니까. 특히 가난한 학생은 좋은 활동을 제안받았어도 비용 탓에 못 하는 사례도 있었을 거다. 누구는 통계 정리 같은 단순 업무를 하고 논문에 이름을 올렸고, 이게 입시에 영향력을 끼쳤으니, 불평등을 느꼈을 거다.”

입학사정관제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학생부에 외부 활동 기재를 금지하고 교내 활동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2013년에 도입됐다. 조 작가는 “학종은 진일보한 정책이지만, 형식적인 면에 머물렀다”고 평가했다.

“왜냐하면 학종의 구조를 보면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제일 비중이 높은 수시 전형은 교과전형이다. 수능 상위 18개 대학으로 좁히면 최대 전형은 학종이 된다. 결국 ‘인서울 대학’에 못 가는 학생들은 어차피 학생부 교과에 정시를 봐야 한다. 학종 대비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입시 성과를 내려고 상위권 위주로 프로그램들을 만든다. 여기에 참여 못 하는 애들은 결국 들러리가 된다.

학종이 내용적으로는 이상적이지만 전교 1등 따라하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학생 적성과 성과에 맞게 지도할 방법이 없다. 일상에서 불평등, 차별을 온몸으로 느끼는 제도가 되어 버렸다.“

  • 그러다 결국 ‘정시 확대’ 목소리가 커졌다.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 다양하고 놀라운 가능성이 열리는 21세기에 객관식 시험으로 대학 입시를 치르자고? 이건 퇴행이다. 수능은 사실상 변별력을 상실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학원 등 사교육 손바닥 안에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실력을 갈고닦아온 (대치동) 학원은 수능에 대해서는 정말 월등히 높은 역량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은 학원 가거나 인터넷 강의 듣지, 학교 수업은 안 들을 거다. 수능과 정시 확대를 대형 학원들이 제일 반긴다. 교육적인 취지로만 보면 입학사정관제, 학종이 수능 점수로 줄 세워서 뽑는 것보다 훨씬 훌륭한 전형이다.“

  • 입시 제도가 너무 복잡해서 단순화하자는 요구도 많다.

“입시 전형이 복잡하면 정보를 모으고 판단할 시간이 부족한, 생업에 바쁜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돈 많은 사람들은 입시 컨설팅도 하고, 엘리트들은 입시 정보도 많이 접할 거고. 그런 부분에서 불공정을 느낀다. 이유가 그렇다면 (정시 확대라는) 해법은 잘못 나온 거다. ‘입시에 필요한 정보들, 왜 너희들끼리만 알고 있느냐’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복잡한 입시 제도를 왜 학부모가 모두 찾아봐야 하나. 학교에 많은 입시상담 인력을 배치하는 등 시스템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 방법과 전형들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이거 너무 복잡하고 힘드니까 옛날로 돌아가자’ 해법은 절대 아니다.“

  • 입시 제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복잡하더라도 더 다양해져야 한다. 대신 학생에게 맞는 입시를 찾아주고 그에 맞는 교육 과정을 연결해야 한다. 학벌주의를 완화하고 다양한 교육 시스템들을 갖춰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입시는 더 다양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학벌을 향한 과도한 교육열, 교육 시스템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어떤 입시 제도도 성공하기 어렵다.“

  • ‘부모 찬스‘를 이용해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크다.

“사회 구조적 불평등이나 계급적 차별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당연하고 정당하다. 우리 사회가 성찰할 문제다. 다만 (이런 입시 부정에 대한) 분노가 실현 불가능한 공정의 허상 추구로 가면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입시 제도도 학벌을 향해 이토록 진심인 사회에서는 그 빈틈과 해법을 찾으려는 온갖 노력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풍족한 사람들이 더 많은 자원을 투여해서 학벌을 독과점하는 경향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입시의 공정함만을 추구하는 건 거대한 불평등을 용인하는 허상이 될 수 있다.“

<대치동> 저자 조장훈 ⓒ주보배
  • 입시 과정의 공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건가.

“공정하게 경쟁해서 학벌을 얻으면, 그 학벌은 특권이 돼도 괜찮나? 입시의 불공정을 말하는데, 그럼 불법만 아니면 문제가 해결될까? 자기들이 가진 학벌로 그 이후의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학벌 취득 과정에서의 공정과 상식만을 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입시 과정의 공정만을 추구하는 것은 자칫 학벌주의 정당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학벌주의의 영향력이 강력한 사회에서 입시 부정을 계급 고착화 현상이라 생각 못 하고, 개인들의 투자와 노력과 능력의 결과로 오인하는 것은 문제다.”

조장훈 작가는 “스무 살 무렵의 입시로 취득하는 학벌이 인생의 상당 부분을 결정하는 특권으로 존재하는 한”, 학벌을 향한 전 계층의 ‘자산 총동원’ 경쟁은 계속될 것이라 지적했다. 학벌주의가 해체되지 않으면 “어떤 입시 제도도 결국에는 계급 재생산에 기여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크게 달라지지 않으면, 의미가 있든 없든 이 싸움의 승자는 결국 ‘대치동 사람들’일 수밖에 없고.

<대치동>에는 이 문제가 이렇게 요약돼 있다.

“입시 제도의 변화는 늘 대치동을 요동치게 했다. 대치동에 은마아파트가 들어서던 1979년은 예비고사-본고사 체제에서 학력고사로의 대전환을 준비하던 시기였고, 대치동에 학원가가 처음 들어서기 시작한 1991년은 재학생의 방학 중 학원 수강이 허용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원형인 대학교육적성시험의 실험평가 문제가 공개된 해였다.

1997년도에 논술전형이 전면 실시된 이후 2008년 정시 논술이 폐지될 때까지 대치동에서는 논술학원이 호황을 이뤘고 논술 시즌이 되면 전국에서 강의를 들으러 온 학생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길게 줄을 늘어섰다. 2008년도 입학사정관제 도입과 2015학년도 학생부종합전형으로의 전환 이후에는 입시 컨설팅 붐이 일어 컨설팅 학원 전성시대를 맞았다.

대치동의 학원들은 어떤 입시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신속하게 필승의 해법을 찾아냈다. 대치동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질수록 원하는 학벌을 얻을 가능성 또한 높아졌기 때문에 인근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대치동 학원가는 부유층이 계급 상승 가능성을 독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 자본의 지리적 영토다.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분노가 약자 혐오로 표출되고, 공정을 향한 열망이 엉뚱하게도 복고주의와 학벌주의 정당화로 퇴행하는 현실. 조장훈 작가와 <대치동>은 하나의 해법이나 정답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깊이 생각하고 꾸준히 풀어야 하는 문제, ‘인강’은 물론이고 대치동 일타 강사도 가르칠 수 없는 화두를 던진다.

‘계급 세습과 불평등 정당화 도구로 꼬여버린 교육과 입시, 우리 사회는 어디서부터 매듭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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