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2022년 2월 28일]

엄마와 아버지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딸은 계명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공부했다. 셋 모두 안과 의사다.  

엄마는 현재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이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안과 의사다. 아버지는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삼성서울병원 안과 의사다. 두 사람의 딸 길혜지(가명)는 작년까지 아버지가 있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임상강사로 일했다. 2022년 2월 현재, 강남 모 안과의원 원장이다.

기사 수정과 사과의 뜻 전합니다.

<셜록>은 2월 24일 이 기사를 처음 보도하며 “길혜지는 서울대 의대를 나왔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보도 이후, 길혜지는 계명대 의대 출신인 걸 확인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리며, 기사 정정과 함께 취재 과정을 알려드립니다.

<셜록>은 이번 사례 취재 중, 서울의대안과학교실동문회가 길혜지를 ‘동문’으로 소개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후 대한안과학회에 연락해 크로스 체크했습니다. <셜록>은 “학회에 등록된 사람이 서울대 의대 출신 길혜지가 맞느냐”고 물었고, 학회 측은 “학회에 등록된 길혜지는 1명뿐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길혜지가 원장으로 있는 강남 모 안과의원 직원도 “(길 원장은) 서울대 의대 출신이 맞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취재를 거쳐 <셜록>은 ‘서울의대 패밀리’로 길혜지 가족을 소개했습니다. 이는 정확한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의대안과학교실 동문회 측 관계자는 보도 이후 <셜록>에 이렇게 밝혔습니다.

“길혜지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지 않았다. 전공의(레지던트 과정)을 서울대병원에서 했을 뿐이다. 이럴 경우에도 (서울의대안과) 동문이라고 한다.”

취재 과정을 살펴보면, 대한안과학회는 ‘길혜지라는 회원이 있다’라는 취지로 답했을 뿐입니다. 안과의원 직원은 정확한 정보를 밝혀야 하는 공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동문회의 규정이 애매했더라도 명확한 사실 확인 책임은 언론사와 기자에게 있습니다.

결국, 외부를 탓할 수 없는 <셜록>의 명백한 실수이자 잘못입니다. 다시 한 번 독자 여러분에게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사실 확인에 더욱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환자의 눈을 살피고 치료하는 이 가족에겐 타인이 보면 안 되는 은밀한 비밀이 있다. 특히 기자와 교육 당국이 알면 곤란한 내용이다.   

길혜지는 2007년 경기여자고등학교 2학년 당시, ‘말초 전정장애와 소뇌교각부 종양의 과호흡 유발 안진(눈이 빠르게 움직이는 현상) 발생 영향(Hyperventilation-induced nystagmus in peripheral vestibulopathy and cerebellopontine angle tumor)’에 관한 연구 논문을 썼다. 해당 논문은 미국 신경학회가 발행하는 SCI급 국제 학술지인 ‘신경학<Neurology>’에 게재됐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과대학 모습 ⓒ연합뉴스

저자 길혜지 이름은 8명 공저자들 중 맨 끝에 위치했다. 미성년 고교생인 길혜지를 제외한 저자 7명은 모두 분당서울대병원·부산대병원 소속 연구원·교수들이다. 

십대 학생이 교수, 연구원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니 큰 성취다. 해당 논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지난 21일 의사 길혜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자 – “경기여고 시절에 B 교수와 논문 썼잖아요…”

길혜지 – “맞는데요. 제가 지금 옆에 사람이 있어서 통화가 곤란해요.”

그렇게 첫 통화가 끝났다. 다음날 길혜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길혜지는 말을 막았다. 

“(해당 논문에 대해) 얘기 나눌 생각이 일(1)도 없어요. 더 이상 전화 안 하면 좋겠어요. 찾아오지도 마시구요.” 

딸 논문 작성에 영향을 준, 길혜지 엄마 A 교수를 만나보려 21일 분당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소아안과 및 사시, 신경안과 전공 A 교수 진료실 앞에는 진료 받으려는 아이와 부모로 붐볐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진료 일정에 발길을 돌렸다.

외래 진료가 없는 다음 날, 분당서울대병원을 다시 찾았다. 7층 A 교수 연구실에서 형광등 불빛이 새어 나왔다. 노크를 하자 A 교수가 문을 열었다. 

기자 – “안녕하세요.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황정빈 기자라고 합니다. 2007년에…”

길혜지 엄마 A 교수 – “누가 여기 들여보냈어요? 이렇게 들이닥쳐도 돼요?”

‘진실탐사’, ‘기자’, 길혜지가 논문을 썼던 ‘2007년’을 입에 올렸을 뿐인데, A 교수는 말을 끊었다. 더는 무슨 말도 듣지 않겠다는 듯 교수실 문을 닫아버렸다.  

A 교수는 이후 기자의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에도 답하지 않았다. 엄마처럼 말을 끊던 길혜지 역시 연락에 응하지 않았다. 

안과 의사 가족이 숨긴 걸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찾아냈다. 길혜지가 고교 2학년 때 권위 있는 학술지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는 그 논문, 2020년 ‘연구 부정’ 판정을 받았다. 연구진실성위원회는 길혜지가 해당 논문에 “기여한 게 없다”고 판단했다. 논문이 나온 지 13년 만이다. 

연구 부정 논문의 책임자(교신저자)는 서울의대 B 교수다. 그는 학교 측이 조사를 벌일 때 이렇게 밝혔다. 

“길혜지는 2006년 여름방학 기간에 병원에 나와서 데이터를 수집·정리하여 제공하였고, 논문 초안을 열람하고 내용에 동의하였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셜록

길혜지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분당서울대학병원에 나와 연구에 참여했다는 주장이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길혜지의 기여도에 대해 이렇게 판정했다.

“B 교수는 데이터 수집·정리를 미성년자(길혜지)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지에 관해 ‘전문성을 요하지 않는 일이어서 미성년자가 수행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만약 위 진술대로 전문성이 필요 없는 단순 데이터 수집·정리라면 논문의 공저자로 인정될 만한 기여라 할 수 없다.”

연구진실성위원회는 길혜지의 기여를 뒷받침할 자료 또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B 교수는 엑셀 파일을 미성년자(길혜지)의 기여를 뒷받침할 자료로 제출하였다. 위 파일의 데이터는 가공 데이터이고, 미성년자가 수집·정리한 원데이터가 담긴 연구노트나 파일은 제출되지 않았다.”

길혜지는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병원에 나와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업무를 하고도 SCI급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단 얘기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실마리는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결정문에 계속 등장하는 B 교수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길혜지 엄마 A 교수의 후배이자 동료 의사다. 그는 현재 A 교수가 일하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다. 분당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B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으로 A 교수 후배다. A 교수는 사시/신경안과질환을, B 교수는 어지럼증/눈운동질환을 각각 전문 진료 분야로 하고 있어 ’업무상 협력 관계‘다. 이들은 2010년, 2014년 두 차례 신경안과 관련 서적을 발간했다.

의사들의 품앗이는 은밀했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결정문에 따르면, B 교수는 길혜지가 A 교수 딸이라는 사실을 처음엔 숨겼다. 그러다 본조사위원회의 면담 과정에서야 사실을 실토했다. 

A 교수는 “딸 길혜지에게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의 전문가인 B 교수를 알려 주었을 뿐, 자신이 직접 B 교수에게 딸의 연구 참여를 부탁한 적은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부탁이 존재했다‘고 봤다.

“피조사자(A와 B 교수)들 사이의 관계, 피조사자들이 근무하는 병원에 미성년자가 출입한 기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위 진술은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고, 명시적인 부탁이 있었거나 적어도 묵시적인 부탁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특별한 인적 관계로 인하여 연구진실성이 훼손됐다“며 연구 위반 정도가 ‘비교적 중대’하다고 판정했다. 결국 길혜지의 논문엔 ’땀‘은 없고 진한 ’피‘만 있었던 셈이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연구 부정’ 판정을 내린 해당 논문 ⓒ셜록

뒤늦게 밝혀진 ‘범 서울의대 패밀리’의 부정행위. 그 누구도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A 교수와 B 교수는 ‘징계 시효 도과’ 이유로 구두 경고만 받았다.  

B 교수는 지난 21일 비서를 통해 ”일정이 바빠 인터뷰가 어려우며, 기자에게 질문을 따로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연구 부정에 대한 입장을 재차 질의했지만, 24일 현재까지 답변은 오지 않았다.

<셜록>이 지금까지 취재하고 보도한 ‘논문에 자녀 끼워 넣기’ 부정을 범한 서울대 교수는 모두 네 명. 동료 교수의 자녀를 자신의 논문에 올려준 교수까지 합치면 총 8명이다. 이들은 자신의 논문에 자녀를 끼워 넣거나 동료, 후배 교수의 논문에 자녀를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에겐 세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하나. 미성년자가 자기 혹은 동료 자녀라를 걸 조사 때 숨겼다. 그러다 나중에 들켰다. 

둘. 부정을 저질렀지만 아무도 실질적인 징계를 받지 않았다. 

셋. 여전히 서울대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교육부는 2019년 10월 미성년 공저자 논문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현재까지 확인된 미성년 공저자 논문 연구부정 검증과 연구 부정행위로 판정된 논문에 대한 후속조치를 그 어떤 예외도 두지 않고 끝까지 엄정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후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구 부정 판정을 받는 미성년자의 논문 대입 활용 여부 확인 및 후속 조치는 깜깜무소식이다.

그 사이, 연구 부정을 저지른 교수들의 자녀는 모두 의대 또는 의전원에 진학했다. 현재 대부분 의사가 됐다.

길혜지에 대해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다. 

그는 지난해까지 아버지가 근무하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아버지의 전공분야인 녹내장 전임의로 일했다. 아버지와 함께 녹내장 환자에게 사용하는 아메드 임플란트에 관한 논문을 썼다. 해당 논문의 제1저자는 길혜지였고, 교신저자는 아버지였다. <셜록> 취재 결과, 이 논문 외에 그가 아버지와 함께 쓴 논문은 세 편 더 있다. 

아버지와 논문을 쓰기 더 이전인 2018년, 길혜지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엄마인 A 교수와 함께 안구형 중증 근무력증에 관한 연구 논문을 썼다. 

정말이지 엄청난 ‘가내 생산’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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