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부정 논문을 취재할 때 한 취재원은 이런 말을 했다.

“그 애들은 마지막 배를 잘 탄 거죠.”

여기서 ‘애들’은 입시 다양화로 도입된 입학사정관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당시 부모의 힘으로 부정하게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을 말한다.

관리가 부실했다는 논리로 제도를 탓하며 이 부정행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주장이 있다. 부정행위자나 그의 부모가 ‘우리 편’이면, 사람들의 판단력은 더욱 심하게 흔들린다. 교육열이 뜨겁고, 공정이 시대의 화두가 된 현실을 고려하면 기이한 현상이다.

어떤 제도든 허점이나 맹점이 있기 마련이다. 여권 제도가 있어도 누군가는 교묘히 조작해 출입국 절차를 무력화 한다. 이런 사람에게 “출입국 관리와 여권 제도에 허점이 있었다”며 면죄부를 줘야 한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짜 논문, 경력 위조 등 명백한 부정행위를 제도 탓으로 정당화 하는 건 그 자체로 부당해 보인다.

배를 타고 이미 항구를 떠난 부정행위자들. 배를 다시 불러들여야 할까, 아니면 그냥 둬야 할까?

사실 법과 원칙대로 하면 그리 고민되는 일 아니다. 진영과 이념에 따라 흔들리는 잣대, ‘내로남불’을 제거하면 되는 일이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이미 잘못 출항한 배를 불러들인 경험이 있다.

부산대 박홍원 부총장이 2021년 8월 24일 부산 금정구 부산대학교 본관에서 조국 전 장관 딸 조민씨의 의학전문대학원 입시 의혹과 관련한 최종 결론을 발표하고 있다. 부산대는 “입학전형공정관리위원회 ‘자체조사 결과서’와 정경심 교수의 항소심 판결, 소관 부서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2015학년도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셜록

먼저 2016년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사건을 보자. 정유라 씨는 이화여대 체육특기자 입시 과정에서 부당 특혜가 드러나며 입학이 취소됐다. 정 씨는 청담고등학교 시절 학사와 성적관리에서 특혜 받은 사실까지 드러나, ‘고교 졸업 취소’까지 당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딸 조민 사례도 마찬가지다. 조민 씨의 동양대 총장 표창장, 단국대 의학논문 등재 등 일명 ‘7대 스펙’은 모두 허위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역시 입학 취소 여부를 논의 중이다.

정유라-조민에게 세상이 매정한 게 아니다. 교육부와 대학이 천명한 원칙이 그렇다. 문재인 정부 초기였던 2018년,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미성년 자녀 공저자 실태를 조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연구부정으로 판정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위법 정도에 따라 대상 교원을 징계조치(최고 ‘판면’)할 계획이다. 연구 부정 논문이 대입에서 활용될 경우 해당 대학에 입학 취소 등 조치를 요구할 계획이다.

일명 ‘조국 사태’ 터진 이후인 2019년 10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미성년 공저자 논문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특별감사로 추가 확인된 미성년 공저자 논문을 포함한 794건의 논문에 대해 끝까지 철저한 검증과 후속 조치를 추진할 것이다.”

각 대학도 입시 모집 요강에서 부정에 따른 입학 취소 원칙을 밝혔다. 부정행위에 따른 형사 재판 진행과는 별도로 대학이 부정 입시 의혹을 조사하고 입학 취소를 내릴 수 있다.

지난해 3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이었던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는 조민 씨의 부산대 입학 취소 관련 법률 검토를 마치고 이런 입장을 내놨다.

“입학취소 권한을 가지고 있는 대학은 형사 재판과는 별도로 학내 입시 의혹에 대해 사실 관계를 조사하고 일련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가능하다. 부산대 학칙과 모집요강에 따라 입학 취소가 가능하다.

이후 부산대는 조 씨의 2015년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를 결정했다. 부산대는 지난달 조 씨 입학 취소 2차 청문회를 진행했다.

교육부가 미성년자 부정 논문에 대해 엄정한 후속 조치를 하겠다고 밝힌 때가 2019년이다. 정유라-조민 사례처럼 원칙대로 진행하면 된다. 하지만 2022년 3월 현재, 교육부의 후속 조치는 깜깜무소식이다.

교육부는 2017년 대학 교수가 자식을 논문에 끼워넣기 한 사례가 드러나자 그해 12월부터 교수의 미성년 자녀 논문 1차 조사를 벌였다. 이후 대상을 교수 자녀에서 전체 미성년자로 확대해 2019년까지 2차, 3차 조사 및 특별 감사를 진행했다.

2019년 10월, 교육부가 특별감사로 밝혀낸 미성년 공저자 논문은 총 794건. 이중 교육부가 밝혀낸 연구 부정 건수는 고작 29건(3.7%)뿐이다. 그중에서도 대입 활용 여부까지 확인한 건 단 7건(0.88%), 미성년자 수로 따지면 6명에 불과했다.

교육부는 나머지 765건 논문에 부정이 있었는지, 문제 있는 논문이 대입에 활용됐는지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전국 40개 국립대학에서만 45건의 연구 부정 미성년 공저자 논문이 발견됐다. 그중 22건(48.8%)이 서울대 교수 논문이었다.

교육부의 엄포와 달리 이 서울대 교수들은 실질적 징계를 받지 않았다. 국민 세금으로 자녀 스펙을 만들어준 교수도 무사하다. 그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대학의 입시자료 보존 기간은 5년이다. 교육부가 뒤늦게 부정을 발견하고, 조치를 미적거리는 사이 2017년 이전에 부당 저자였던 학생들의 당시 입시자료는 보존 기간이 지나 폐기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입시 부정행위자를 가려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입시 비리로 인한 업무 방해 공소 시효는 7년이다. 교육부와 대학이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많다.

<셜록>이 취재한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 자녀인 차유나(가명)는 2017년 고려대 의대 편입생으로 입학 자료 보존 기한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 (관련 기사 보기)

<셜록>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당시 고려대 의대 학사편입학 모집요강에 따르면, 서류평가에 반영되는 자기소개서 학업활동으로 논문을 적을 수 있다. 차유나가 의대 편입에 부정 논문을 활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고려대 의대 학사편입학 모집요강에는 이렇게 명시돼 있다.

“입학사정에 사용된 전형자료에 주요 사항이 누락되거나 허위나 부정이 있을 경우에는 입학 취소를 할 수 있다.

교육부가 하루라도 빨리 조사-수사 의뢰를 하면, 바로 잡을 수 있는 입시비리는 많다. 교육부는 왜 머뭇거리는 걸까?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월 17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현장 교장(원장)단 대표와의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지난 2월 28일 <셜록>과의 통화에서 과거 교육부의 엄포는 “정치적 수사였다”고 일축했다. 부정 논문을 검증하고, 대입 활용 여부를 확인해 엄정하게 조치하는 건 처음부터 어렵거나 불가능했다는 지적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같은 날 <셜록>과 전화통화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른 부모와 학부모에 대한 교육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부정을 저지른 교수와 미성년자에 대한 처분은) 개별 대학이 판단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교육부가 어떤 경우에는 입학 취소까지 가능한지 등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머뭇거리면서 ‘성공한 입시비리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공식이 점점 굳어지고 있다. 공정해야 할 입시를 부정한 방법으로 망가뜨린 특권층은 거의 무사하다. 반면 교육적으로 옳은 방향이라는 평가를 받은 제도(입학사정관제, 학종)가 오히려 ‘부정의 원흉’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부정행위자는 유유자적 배를 타고 떠났다. 항구에 남은 사람들은 괜한 제도 탓을 하며 입시를 획일적으로 퇴행시키고 있다. 그것도 강남 대치동 사람들이 가장 반기는 방식으로 말이다.

도대체 교육부는 무슨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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