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스펙을 만들어 준 교수 부모는 무사하다. 짝퉁 논문을 손에 쥔 자녀는 일명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누군가는 의사가 돼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입학 취소가 곤란한 세습된 특권, 여기에 누구도 손을 못 대고 있다. 결국, 성공한 연구 부정은 처벌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서울대학교에서 벌어졌고, 진행 중인 일이다.

자녀 등 미성년자를 부정하게 논문에 등재했다가 딱 걸린 서울대 교수는 14명. 이들은 모두 실효성 있는 징계를 받지 않았다. 여전히 서울대에서 학생을 가르친다.

이런 허무한 결론 앞에서 교육부의 엄포는 공염불이 됐다.

“연구 부정으로 판명되면 대학에 징계를 요구하고 국가연구개발비를 환수하겠다. 자녀의 대학 입학에 연구 부정 논문이 활용됐는지도 철저히 조사해 조치하겠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019년 10월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4차 교육신뢰회복추진단회의에서 미성년 공저자 논문 특별감사 결과 발표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작은 좋았다. 교육부는 2019년 5월 13일, 전국 50개 대학교수 87명이 논문 139건에 미성년 자녀를 등재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10월, 교육부는 특별감사로 추가 확인된 논문까지 포함해 전체 미성년 공저자 논문은 794건이었다고 발표했다. 2007년부터 10년간 나온 논문을 조사한 결과다. 교육부는 현재까지도 미성년 공저자 논문 연구 부정 검증을 이어가고 있다.

이후,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서동용 의원실은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미성년 공저자 연구 부정 판정 논문 결정문을 전수 분석한 결과, 서울대 미성년 공저자 논문 현황을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서울대 교수의 미성년 공저자 논문은 64건이었다. 이 중 22건(34%)은 미성년자가 기여한 게 없는 논문으로 ‘연구부정’ 판정을 받았다.

부정을 범한 서울대 교수를 소속대학별로 따져보면 의과대학 4명, 수의과대학 4명, 치의학대학원 2명, 약학대학 2명, 농업생명과학대학과 사회과학대학 각각 1명이다. 의학 계열이 압도적이다.

서울대 교수 ‘미성년 부당 저자 표시’ 연구 부정 논문 현황 ⓒ셜록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윤리 위반의 정도는 ▲매우 중함 ▲중함 ▲비교적 중함 ▲경미 ▲매우 경미, 이렇게 5가지로 분류된다. 위반의 정도가 ‘비교적 중함’ 이상인 경우에는 아래의 조치를 받을 수 있다.

1.징계 (파면, 해임, 정직, 감봉, 견책)

2.교원 재계약임용의 제한

3.연구비 지원 기관에 대한 통지

4.연구비 지급 중단 또는 연구비 신청의 제한

5.당해 학위논문에 의거해 수여받은 학위의 취소

6.피조사자에 대한 논문의 철회 또는 수정 요구 및 해당 학술지 편집인에 대한 통지

7.학위 논문의 지도 및 심사의 제한

8.본교 연구처 학술활동지원비의 지급 중단

..(중략)

연구부정을 저지른 14명 교수 중 위에 열거한 징계나 조치를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유가 있다. <셜록> 기획 ‘유나와 예지 이야기’를 통해 보도한, ‘식중독균 권위자’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A 교수 사례를 보자.

[관련 기사 읽기 – ‘의사쌤’ 유나와 예지의 말할 수 없는 비밀]

그는 2012년, 용인외고 3학년 딸 유나(가명)와 그의 동아리 친구 예지(가명)를 SCI급 논문에 제2저자로 등재했다. 자기 실험실 제자들이 쓴 논문에 부정하게 이름을 넣은 것이다. 그는 교신저자로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면 ‘부녀지간’인 사실이 들통날까 봐, 당시 미국에 있던 동료 교수 이름을 빌려오는 등 치밀하게 움직였다.

A 교수의 부정은 2020년에 밝혀졌다. 이미 그의 딸과 친구는 모두 의사가 됐다. 서울대는 A 교수에게 연구 윤리 위반 정도가 ‘중대하다’고 판정했다. 하지만 별다른 조치는 내려지지 않았다.

연구 부정이 벌어진 2012년에 적용되는 연구 부정 징계 시효는 3년(현재는 10년으로 개정)이기 때문이다. A 교수의 치밀한 부정 설계를 밝혀냈어도 징계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A 교수의 사례는 ‘진리는 나의 빛’을 강조하는 서울대를 ‘자식의 전당’으로 만들어버린 모든 연구 부정 교수들에게도 적용된다. 서울대학교 교원 징계 규정 및 교육공무원법 개정 이전 징계 시효를 적용하면 이들 역시 징계 시효가 지나 불이익을 줄 수 없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졸업생과 가족들이 학교 정문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해당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일부 고교생들은 입학사정관제도가 도입된 2000년대 후반부터 논문을 입시에 적극 활용했다. 유나와 예지가 논문을 쓴 2012년은 이명박 정부 때로 논문 붐이 일던 시기다. 2007년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면서 교과 성적 외 동아리 활동, 논문, 도서출판 등 비교과 활동들이 입시 평가에 반영됐다.

특목고 학생 중심으로 대학교수 실험실에서 실험에 참여하거나, 교수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 올리는 등의 스펙 쌓기가 유행했다. 유나와 예지가 졸업한 외대부고(과거 용인외고)의 박OO 부장 교사는 작년 11월 기자와 통화에서 그때 시절을 이렇게 추억했다.

“저희 학교는 용인외고 1기 시절부터 창의연구 논문 제도가 있어서 지도교사가 배정되고 실험도 하고 논문을 많이 썼어요. 예지 학번(2011년 입학)만 해도 350명 중에 166편이나 논문이 나왔어요.

수준 편차가 있겠지만 한 학년 고교생이 논문 166편이나 썼다는 사실은 그만큼 내용이 부실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입학사정관제의 문제점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2014년부터는 학생부에 논문 등의 이력을 기재하는 것이 금지됐다.

결국 ‘미성년자 논문 등재’라는 서울대 교수들의 연구 부정은 2014년 즈음에 모두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을 징계할 수 있는 시효는 모두 도과했다. 교육부와 서울대는 2020년에야 이들의 부정을 밝혀냈다. 명문화된 시효 앞에서 장사 없다. 시효가 지났으면 아무리 죽을죄를 지어도 징계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교육부가 아무리 엄포를 놓아도, 서울대 진실성위원회가 엄정하게 조사했어도, 특권 세습이라는 그들만의 해피엔딩은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 더해 서울대는 연구 부정을 범한 교수가 누구인지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사단법인 대학연구윤리협의회 엄창섭 이사장(고려대 의대 교수)은 지난해 12월 24일 고려대에서 진행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연구진실성위원회에서 조사가 진행되는 중에는 연구 부정 판명이 안 났기 때문에 외부에 해당 사안을 공개하면 안 되지만, 부정행위로 판정이 난 이후에는 궁극적으로 공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옆 사람이 어떤 연구 부정을 저지르고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 알 방법이 없어요. 그렇게 해서는 교육 효과 또한 없습니다. 미국은 연구 부정을 저질렀을 경우 이름까지 다 알리고, 일본도 이름은 아니더라도 어느 기관 소속인지는 알리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A 교수.ⓒ황정빈

기자에게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라며 당당했던 A 교수. 그는 11일 오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도 녹음해서 또 유튜브에 올리든 말든 그건 알아서 하는데, 뭐든지 지나치면 좋지 않아요. (중략) 나뿐만 아니라 서울대 교수들 여러 명이 (고등학생들 실험시켜주고 논문에 이름 올리고) 그랬다고. 그 당시에는 그게 권장 사항이었고, 근데 이제 와서…”

그의 여유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의 치밀한 연구부정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그는 여전히 서울대학교 교수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