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한 논문을 이용한 일부 특권층의 입시 비리는 완벽한 성공으로 마무리될 듯하다. 비리를 설계하고도 불이익을 받지 않은 부모처럼, 그 자녀도 무사할 것으로 보인다.

대입에서 부정한 방법을 쓴 사실이 밝혀지면 입학을 취소하는 등 책임을 묻는 게 상식이다. 그 상식이 입시 열기 뜨거운 한국에서 뒤집힐 위기에 처했다. 교육부가 손놓고, 모두가 침묵하는 사이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일부의 흉악 범죄를 제외한 대부분 범죄에는 공소시효라는 게 있다. 정해진 시간을 도과하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서울대학교 교수 14명이 논문에 자녀 등 미성년자를 등재해 ‘연구 부정’ 판정을 받고도 징계 시효 도과 덕분에 무사한 것처럼 말이다. 세월의 혜택(?)은 이들의 자녀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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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이 보도하는 기획 ‘유나와 예지 이야기’ 두 주인공 사례를 보자.

유나와 예지는 부정한 논문으로 2012년 미생물 탐구 페스티벌에 나가 대상을 받았다. ⓒ오지원

유나 아버지는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A 교수다. 그는 석박사들도 1년에 한 편 쓰기 어렵다는 SCI급 논문에 자기 딸 유나(가명)와 친구 예지(가명)를 부정하게 등재했다. 2012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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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외고(현 외대부고)에 다니던 유나와 예지는 그 논문으로 그해 한국미생물학회가 주최한 ‘제1회 미생물 탐구 페스티벌’에 나가 대상을 받았다. 당시 해당 학회의 실무위원장은 A 교수였다.

유나는 2013년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에 수시전형으로 입학했다. 졸업한 뒤 같은 학교 의대에 편입했다. 당시 고려대 의대는 편입학 입시 때 전공과목, 자기소개서, 추천서, 활동증빙서류 등을 평가했다. 이 중 활동증빙서류에는 학업활동, 봉사활동, 수상실적, 자격증, 리더십 활동 등이 포함됐다. 유나는 현재 아주대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다.

예지도 수시전형으로 2014년 성균관대학교 의대에 들어갔다. 그는 현재 삼성서울병원 레지던트다.

유나와 예지의 비밀은 교육부가 2017년 ‘대학 교수 논문 중 미성년자가 등재된 사례’를 전수 조사하면서 드러났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두 학생이 논문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2020년 결론냈다.

<셜록>은 작년 12월, 두 학생이 수시전형 입시에서 ‘가짜 논문’을 활용했는지 고려대와 성균관대에 각각 물었다.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논문 활용 여부는) 개인정보여서 알려줄 수 없습니다. 당사자가 아니면 수사 기관 요청이 있을 때만 (입시 자료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셜록>은 “혹시 유나가 의대 편입학 입시 때 연구 부정 판명받은 논문을 사용했는지”를 고려대 커뮤니케이션팀(홍보팀)에 물었다.

“의대 학사편입은 지금 실시하지도 않고, 모집 요강 자체가 오픈이 안 되기 때문에 (문제의 논문이) 입시에 활용됐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입시자료 보존 기간이 5년이어서 폐기됐을 가능성도 큽니다.

유나와 예지가 ‘가짜 논문’을 대학 입시에 사용했다는 걸 확인해도 처벌 등 불이익을 주긴 어렵다. 입시 비리에는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된다. 업무 방해는 5년 이하의 징역이 부과되는 범죄로 공소시효는 7년이다. 유나와 예지는 각각 2013년, 2014년에 입시를 치렀다.

공소시효가 이미 도과했으니 수사는 어렵다. 수사 없이 사실 관계 밝히기는 어렵다. 입학 취소는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징계시효 3년’이 지난 덕에 유나 아버지를 포함한 서울대 교수 14명이 징계를 안 받은 것과 같은 이치다.

대학의 입시자료 폐기와 업무방해죄 공소시효는 유나와 예지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부당한 논문을 입시에 활용한 모두와 관련된 일이다. 부정 논문을 입시에 사용한 사례는 2000년대 후반부터 2017년까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실시된 기간에 몰려 있다.

2022년을 기준으로 공소시효를 적용하면 2015년 이전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 2018학년도 대입 대상자부터 논문 활용은 전면 금지됐다.

교육부 문제를 지적 안 할 수 없다. 학종 입시는 분명 여러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일부 유산계급과 엘리트 계층이 ‘논문 품앗이’ 등으로 학종을 부정하게 활용해 자식에게 학벌을 만들어 준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019년 10월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4차 교육신뢰회복추진단회의에서 미성년 공저자 논문 특별감사 결과 발표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는 2017년부터 실태 조사를 시작해 2019년 5월에야, 전국 50개 대학교수 87명이 논문 139건에 미성년 자녀를 등재했다고 발표했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나온 논문을 조사한 결과다. 당시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교육부는 미성년 공저자 논문 연구 부정 검증과 연구 부정행위로 판정된 논문에 대한 후속조치를 그 어떤 예외도 두지 않고 끝까지 엄정하게 추진할 예정입니다.”

내용은 비장하지만, 실상은 별 효력 없는 엄포다. 앞서 말한 대로 대부분 공소시효를 도과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입시자료 보존 기간 5년’을 고려하면, 여러 대학은 관련 자료도 폐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후속 조치를 끝까지 엄정하게” 하려면 수사를 통해 문제를 입증해야 하는데, 남아 있는 근거가 거의 없는 셈이다.

게다가 교육부는 지금까지 밝혀낸 ‘논문 부정’ 혹은 ‘연구 부정’에 대해 어떤 엄정한 조치를 했는지, 어느 대학 몇 명을 입학 취소했는지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공소시효를 도과하는 사건은 더 늘어나고, 입시자료는 나날이 폐기되는 중이다. 이걸 모를 리 없는 교육부는 지난 7일 <셜록>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런 말을 반복했다.

“교원 징계나 미성년자에 대한 조치는 아직 진행 중인 사안이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부정 논문을 쓴 것으로 판명난 미성년자에 대해서는 대학에 (해당 논문) 대입 활용 여부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논문 비리’ 가족들의 해피엔딩이 가까워지는 상황.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구나 싶은 순간, <셜록>은 작은 실마리 하나를 찾았다. A 교수의 딸 유나는 2017년에 고려대 의대에 편입했다. 업무방해죄 공소시효가 무려 2년이나 남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셜록>은 끝까지 추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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