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서울대 교수라면, 고등학생 자녀의 스펙 쌓기는 한결 수월하다. 부모의 SCI급 논문에 이름을 올리고, 그 논문으로 학회 대회에 나가면 상 타기도 쉽다. 부모가 이공계 교수라면 연구실도 쓸 수 있다.

기존 연구원들의 방해와 눈치 주기? 그런 건 절대 없다. 연구원에게 교수는 장래를 움켜쥔 신과 같은 존재다. 함부로 이의를 제기했다간 자기 목이 날아가는 불벼락을 맞을 수 있다.

부모 논문에 이름 올렸다가 나중에 들키면 어쩌냐고? 걱정마시라. 서울대 교수는 그렇게 바보가 아니다. 동료 교수, 특히 ‘갑을관계’에서 ‘을’의 처지에 있는 교수나 연구원에게 부탁하면 된다. 논문에서 부모 이름을 빼고, ‘을’을 넣으면 쉽게 타인을 속일 수 있다.

혹시라도 들통이 나면? 이 또한 걱정 마시라.

서울대는 무척 느리다. 문제를 발견했을 즈음에 당신은 훌쩍 자라 있을 것이다. SCI급 논문에 이름을 올렸으니, 속칭 좋은 대학에 들어가 이미 졸업할 가능성이 높다. 얼마간의 노력과 운이 보태지면 이미 의사 정도는 됐을 테고.

부모 징계 따위도 없을 거다.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렸으니, 징계는 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서울대는 그렇게 냉정하지 않다. 자녀 스펙 좀 올려준 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너무 냉소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절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상상을 서술한 게 아니라, 서울대에서 최근 벌어진 일을 그대로 옮긴 거다.

‘국내 식중독균 권위자’로 꼽히는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A교수. 그는 ‘패혈증 비브리오균’의 영향에 대한 SCI급 논문에 용인외고 3학년이던 딸과 그 친구의 이름을 올려줬다.

A 교수는 ‘부녀지간’인 게 들통날까봐, 자기는 빠지고 동료 교수에게 교신저자(책임저자)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A 교수 딸과 친구는 그 부정논문으로 ‘미생물탐구대회’에 나가 대상을 차지했다. 이 행사의 실무위원장은 A 교수였다.

계획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A 교수의 딸은 고려대 생명과학부에 입학해 같은 학교 의대로 편입한 후 의사가 됐다. 그의 친구 역시 성균관대 의대를 진학해 의사가 됐다.

서울대는 2020년에야 해당 논문을 ‘연구 부정’으로 판정했다. A 교수는 징계를 받지 않았다. 여전히 서울대 교수로 일하며 정년 퇴임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뭐가 문제냐?”며 당당하다.

의사가 된 딸의 친구는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며 순진한 태도로 방어막을 쳤다. 용인외고(현 외대부고)는 더 가관이다. 한 교사는 이렇게 반박했다.

“걔 원래 정말 똑똑한 얘였어요. 서울의대에서 모셔갈 만한 아이였다니까요! 논문도 학생이 직접 썼습니다.”

아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누구도 염치를 느끼지 않았다. 이번 기획으로 ‘불공정과 반칙’을 당연히 여기는 문화를 고발하고 개선 방향을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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