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촌과 공장 사이의 밭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 평평한 땅 위에 놓인 컨테이너와 주차된 굴삭기가 멀리서도 잘 보였다. 회색 철제 펜스가 땅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기자가 차를 끌고 도착할 즈음, 굴삭기 한 대가 밭에서 빠져 나왔다. 곧바로 한 여성이 쇠로 된 체인으로 출입구를 막았다. 차가 옆을 지나가자, 여성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운전석의 기자를 바라봤다.

차를 주차하고, 여성에게 다가가 “고위공직자가 소유한 농지에서 직접 농사 짓는지 현장답사하고 있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미소를 보였다.

“지금 보시다시피 제가 이 땅에서 직접 농사짓고 있어요.”

이 여성은 김상돈 경기도 의왕시장의 배우자 A 씨다. 그는 남편 김상돈 시장과 함께 2011년 1월 14일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필지 1곳 992㎡ 규모의 밭을 9억 원에 매입했다. 이들은 2012년 12월 26일 해당 농지 중 397㎡를 타인에게 4억2000만원에 팔았다. 현재는 595㎡(약 180평)만 소유 중이다.

김상돈 의왕시장 ⓒ의왕시청

그의 뒤편으로 소규모 밭이 보였다. 전체 면적의 3분의1 정도만 텃밭처럼 가꾼 상태였다. 나머지는 경작용 흙이 없는 평지였다. 저 작은 밭에선 수확물이 얼마나 나올까? A씨는 호탕하게 말했다.

“저는 사람들 보고 (저희 밭에 나온 수확물) 다 따먹으라고 해요! 지금 밭에 있는 건 작년 겨울에 심은 시금치예요. 마늘도 심었고. 제가 농사를 잘 못 지으니까 (수확물은) 조금씩 나와요. 그래서 저거(지금 심어 놓은 농작물들) 더 잘 자라라고 퇴비랑 비료도 다 줬어요.”

김상돈 의왕시장은 배우자와 함께 2011년 1월 14일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필지 1곳 992㎡ 규모의 전을 9억 원에 매입했다. <셜록>은 지난 4월 6일 해당 농지를 방문해 배우자를 만났다. 그의 뒷편으로 작은 텃밭이 보였다. ⓒ셜록

수확물도 미미한데, 김 시장과 A 씨는 왜 9억 원을 주고 약 300평의 밭을 샀을까.

“몰라요. 그땐 그냥 내가 젊었으니까 얼떨결에 은행에서 대출받아서 샀어요. 그래서 저희 부부 싸움도 많이 했어요!”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OO은행은 2011년 2월 15일 이 농지에 채권최고액 7억8000만 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통상 대출금의 120%를 근저당 설정비율로 정하는 걸 고려할 때, 김 시장과 A 씨는 농지 매입비 절반 이상을 대출금으로 메운 걸로 추정된다.

A 씨는 현장을 떠나려는 기자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좋게, 그냥 좀 해주세요. 하하하!”

지난 4월 6일의 일이다. A 씨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쯤, 기자는 차로 향하던 발걸음을 인근 주택으로 돌렸다. “직접 농사짓고 있다“는 A 씨의 주장을 확인하고 싶었다. 인근 주민 B 씨는 “땅 주인이 해당 농지를 직접 농사 짓는 게 맞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기억을 더듬었다.

작년 가을에 땅을 엎더니 그때부터 농사를 짓더라고요. 그전에는 포클레인 주차장으로 썼어요.

농지법 제6조는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어기고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해당 토지의 개별공시지가에 따른 토지가액에 해당하는 금액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기자는 포털사이트 ‘다음카카오‘와 ‘네이버‘에서 운영하는 지도 앱의 로드뷰를 통해 마을 주민의 증언을 확인해봤다. 약 10년치의 로드뷰를 살펴본 결과, 해당 농지 상태는 B씨의 증언과 거의 일치했다.

2011년 6월에 찍힌 사진에는 고추, 상추 등이 심어진 밭이 보였다. 그 옆엔 포클레인이 땅을 파헤친 모습이 담겼다.

2011년 6월에 찍힌 로드뷰 사진. ⓒ네이버 지도

2012년 8월 찍힌 사진에는 풀이 우거진 밭과 평평하게 정리된 땅이 절반씩 차지한 모습이 담겼다. 정리된 땅 위로 포클레인 장비가 일렬로 줄서 있었다.

2012년 8월에 찍힌 로드뷰 사진(좌측)과 2021년 5월에 찍힌 로드뷰 사진 비교. ⓒ카카오맵

2014년 10월 사진에는 우거진 풀밭은 사라진 채 공터처럼 변한 모습이 찍혔다. 평탄화 작업을 마친 땅 한복판에 차 3대가 주차돼 있다. 밭은 사라졌다.

2014년 10월에 찍힌 로드뷰 사진(좌측)과 2021년 5월에 찍힌 로드뷰 사진 비교. ⓒ카카오맵

2016년 6월에 사진에는 거의 주차장에 가까운 장면이 찍혔다. 포클레인 4대와 자동차 4대가 빼곡히 주차돼 있다. 텃밭은 땅 가장자리, 전체 면적의 10분의1 수준에 불과했다.

2016년 6월에 찍힌 로드뷰 사진(좌측)과 2021년 5월에 찍힌 로드뷰 사진 비교. ⓒ카카오맵

2017년 1월 사진에도 또 차가 등장한다. 포클레인 1대와 자동차 4대가 주차돼 있다. 텃밭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 포클레인 장비와 자동차 타이어가 놓여 있다.

2017년 1월에 찍힌 로드뷰 사진. ⓒ네이버 지도

2019년 7월에 찍힌 사진은 자동차 7대가 주차돼 있는 장면이다. 2020년 8월에는 자동차 2대와 트럭 1대, 포클레인 1대가 주차돼 있다. 밭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2019년 7월에 찍힌 로드뷰 사진(좌측)과 2021년 5월에 찍힌 로드뷰 사진 비교. ⓒ카카오맵

2021년 10월에 찍힌 사진부터 다시 밭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2022년 4월 현재처럼 땅의 3분의1 정도만 텃밭처럼 가꿔져 있다.

김 시장 땅에 자동차 대신 밭이 다시 등장한 시점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불거진 직후다. 시민단체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LH 직원들이 업무상 알게 된 정보를 광명, 시흥 부동산 투기에 활용했다는 의혹을 작년 3월 제기했다.

2021년 10월에 찍힌 로드뷰 사진. ⓒ네이버 지도

마을 주민 B씨의 증언대로, 김 시장과 배우자는 농지 취득 이후 약 10년간 농지를 주차장처럼 썼다. 작년 가을부터 소유 농지 일부에 밭을 만들어 농사짓는 상황이다.

기자는 김 시장의 농지 전용 허가 여부를 확인하고자 담당 지자체인 의왕시청에 질의했다. 의왕시청 도시농업과 담당자 C 씨는 “해당 농지 관련 농지전용 허가 신청이 그동안 들어온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농지 무단 전용이다.

농지를 경작 외의 용도로 전용하려면 농지법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신고하지 않고 농지를 무단으로 전용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렇게 농사가 불법으로 전용되는 동안, 땅의 공시지가는 2011년 1월 1㎡당 51만6000원에서 2021년 1월 기준 98만3400원으로 약 2배 뛰었다.

<셜록>은 김 시장과 배우자 A 씨가 의왕시청에 제출한 농지 취득 관련 서류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냈다.

2011년 당시 해당 농지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이었다. 토지거래허가제는 투기가 나타나거나 우려되는 지역을 정부가 거래규제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제도를 말한다. 토지거래허가를 받으려는 사람은 농지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자체에 허가신청서와 농업경영계획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김 시장과 배우자 A 씨는 농업경영계획서상 2011년 5월부터 ‘자기노동력‘으로 밭작물을 심겠다고 지자체에 신고했다. 이 둘은 직업란에는 ’자영업’을, 영농경력 칸에는 ‘5년‘을 각각 적었다. 당시 김상돈은 제6대 의왕시의회 의원이었다.

김 시장은 시정 활동을 하며 약 300평 크기의 밭(현재는 약 180평)에서 자기노동력으로 농작물을 기르겠다고 밝힌 셈이다. 당시 김 시장은 의왕시 이동에 위치한 약 506평 짜리 논을 이미 취득해 자기노동력으로 경작할 의무가 있었다.

김상돈 의왕시장과 배우자 A씨는 농업경영계획서상 2011년 5월부터 ‘자기노동력’으로 밭작물을 심겠다고 지자체에 신고했다. 이 둘은 직업 란에 ‘자영업’을, 영농경력 란엔 ‘5년’을 각각 적었다. 당시 김상돈은 제6대 의왕시의회 의원이었다. 김 시장은 시정 활동을 하며 약 300평 크기의 밭(현재는 약 180평)에서 자기노동력으로 농작물을 기르겠다고 밝힌 셈이다. ⓒ셜록

기자는 지난 8일 반론을 듣고자 김상돈 의왕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시장은 의왕시 왕곡동에 위치한 농지의 자경 여부를 묻는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했다.

“배우자가 직접 농사 짓고 있어요. (기자님이) 왕곡동 와서 와이프 만나고 가셨잖아요. 얘기 다 (전해) 들었습니다.”

김 시장은 “작년 가을부터 농사 짓기 시작했다“는 주민의 증언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몇 년 전부터 (농지에) 나무도 심고 하는데, 자꾸 죽었습니다. 땅을 갈아엎고 흙을 퍼냈다가 다시 덮고, 돌도 걸러내고 그러는데, (농사가) 잘 안됐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은 게 아니라, 농사가 잘 안됐다는 변명. 김 시장은 “(농지를) 포클레인 주차장으로 사용했다“는 마을 주민의 말을 ‘쿨하게’ 인정했다.

“예전엔 그랬었죠. (해당 농지가) 그린벨트가 풀린 땅이라서 가능한 줄 알고 (굴삭기를) 대놨어요. 나중에 (주차장으로 사용하면) 안 되는 걸 알고 다시 농사 짓고 있습니다.”

김상돈 의왕시장 ⓒ의왕시청

김 시장은 “애초에 주차장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농지를 매입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는 선을 그었다.

“아뇨, 그러지는 않죠. 낮에는 농사를 짓고, 저녁에는 포클레인을 주차해도 되는 땅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나중에 (주차장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지금은 못하고 있다는 의미예요.”

김 시장은 “배우자가 포클레인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고 기자에게 밝혔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22년 공개한 <관보>에 따르면, 김 시장의 배우자 A 씨는 건설기계 2억 원어치를 소유하고 있다. 그는 굴삭기 등 3개의 건설기계를 갖고 있다.

서성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소속 변호사는 “농지를 농작물의 경작이나 다년생식물의 재배 등으로 활용하지 않고 지자체에 신고 없이 주차장 용도로 사용했다면, 무단 농지 전용으로 봐야 한다“면서 “작년 LH 농지 투기 의혹 사태 이후 형식적으로 자경하는 외형을 갖추어 놓고 실제 자경을 하지않았다면 비난의 여지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김상돈 시장은 4월 1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경기도 의왕시시장 예비후보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2002년부터 의왕시의회 의원(4,5,6대)을, 2014년부터는 경기도의회 의원(9대)을 지냈다. 2018년부터는 시장으로 일했다.

<셜록>은 지난 13일 자 “의왕에서 충남까지.. 의왕시장 가족의 불법 농지 소유” 기사를 통해 김상돈 의왕시장이 농업경영계획서와 다르게 자경하지 않고 약 506평짜리 논을 소유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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