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동생이 딸과 어머니를 죽였다.

두 사람이 하늘로 떠난 후 금대훈(가명. 46세)에겐 많은 것이 사라졌다. 수면 시간이 줄었다. 아이, 어머니 생각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쓰던 이름도 바꿨다. 새 이름으로 운명을 바꾸고 싶었다. 딸과 어머니가 죽은 건 팔자 더러운 자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내 차문홍(가명. 44세)은 배고픔을 잊었다. 음식을 봐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방에 불을 환하게 켜야 잠이 왔고, 사람들 눈을 마주치면 식은땀이 흘렀다. 

금대훈은 안인득(45세)의 형 안인성(가명)과 고향 친구 관계다. 

“인득아, 네가 사는 아파트 40X호에 내 친구가 산다.”

안인성(가명)은 금대훈 가족이 같은 아파트에 산다고 동생에게 말했다. 안인득이 OO주공 아파트로 이사온 지 1년 정도 지난 2016년의 일이다. 금대훈-차문홍 부부와 딸 금이정(가명. 사망 당시 12세)은 안인득과 같은 아파트, 같은 층에 살았다. 바로 아래층인 30X호에는 금대훈 친동생과 어머니가 살았다. 금대훈은 2018년 안인득의 집 40X호 문을 두드렸다. 

“니, 내 알제? 내 인성이 친구다.”

그날 금대훈은 안인득에게 책을 몇 권 줬다. 안인득은 금이정이 좋아할 만한 과자 몇 봉지를 금 씨 집에 가져다줬다.

안인성과 금대훈 부부는 2019년 4월 초에도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이때 안인성은 동생의 정신 병력과 증상을 구체적으로 말했다. 그는 금대훈에게 “안인득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부탁했다.

금대훈은 친구를 위로했다. 이때까지 그는 친구 동생 안인득이 자기 딸과 어머니를 죽일 거란 생각을 못했다. 경찰의 방치속에서 안인득이란 시한폭탄은 조금씩 파괴력을 키워 나갔다.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혐의로 구속된 안인득(42)이 병원을 가기 위해 2019년 4월 19일 오후 경남 진주경찰서에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인득은 오래전부터 위험한 사인을 보냈다. 

2010년 5월 2일, 진주시 주약동에 있는 한 약국 앞 길거리에서 안인득은 스타렉스를 몰아 한 행인을 향해 돌진했다. 자신을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차에서 날 21cm짜리 부엌칼을 들고 내렸다. 

“뭘 자꾸 쳐다보노, 씨XX아, 죽을래?”

그는 행인의 머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대학생 피해자는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안인득은 이 사건으로 입건돼 공주치료감호소에서 2010년 7월 5일부터 8월 4일까지 정신감정을 받았다. 전문의는 정신감정서에 이렇게 적었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 직원들이 자신을 감시하며 방해한다는 피해망상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피해자를 회사에서 보낸 직원으로 생각해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

병명은 편집형 정신분열병(조현병). 재판부는 심신미약을 인정해 2010년 8월 31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보호관찰 3년을 선고했다. 보호관찰소는 안인득에게 강제입원조치를 권유했다. 안인득은 2011년 1월부터 10월까지 진주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퇴원 후 안인득은 별다른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일도 시작했다. 특히 2015년 1월 진주정신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으면서 조현병 증세가 호전됐다.

안인득은 2016년 7월 28일을 끝으로 스스로 치료를 중단했다. 시한폭탄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2018년 9월 25일 진주시 OO주공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 민원이 접수됐다. “우리집 문에 누가 똥칠을 해놨다”는 민원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30X동 5층에 사는 강선정(가명)이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112 신고를 권유했다.

다음날, 이번엔 30X동 엘리베이터에 똥물이 가득하다는 민원이 관리사무소로 수차례 들어왔다. 강선정은 ‘어제 우리 집 문에 똥칠한 사람이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관리사무소장 말대로 강선정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범인이 특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 없이 돌아갔다.

이웃집 현관문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똥칠이라는 엽기적 행각을 한 이는 4층 주민 안인득이다. 안인득은 ‘이웃이 다 짜고서는 나를 싫어하고 괴롭힌다‘는 망상이 심해지자 복수를 위해 간장, 식초, 물, 똥을 섞어 뿌렸다.

2018년 12월부터 안인득은 진주시 지역자활센터를 찾기 시작했다. 센터에서 연결해준 일터에 나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다. 센터 여성 직원이 종종 주는 커피가 어딘가 이상했다. 12월 3일, 커피를 마셨더니 시야가 흐릿해졌다. 12월 말에는 커피를 마시자 헛구역질이 났다. 두드러기가 난 듯 몸이 간지럽고 복통도 느껴졌다.

2019년 1월 18일 오후 4시 30분, 안인득은 자활센터에 들어서자마자 여성 직원에게 따졌다. 

“니가 준 커피 먹고 두드러기가 나고 어지러운데 솔직히 말 해라. 이 씨XX아, 약 탔지?”

다른 직원이 저지에 나섰다. 

“자꾸 그렇게 욕하시면 경찰 부를 겁니다.”

안인득은 커피에 약을 타지 않았다는 여성 직원의 뺨을 때렸다. 다른 직원이 달려와 안인득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안인득은 머리로 직원의 턱에 쳤다. 시끄러운 소리에 위층에서 일하던 공익근무요원도 내려와 안인득을 뒤에서 끌어 안았다. 실랑이가 한동안 이어졌다.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에게 여성 직원이 말했다. 

“저 사람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어요. 제가 봐도 정신에 문제가 있고요.”

이때 안인득은 ‘누군가 나를 해하려 한다‘는 정신적 망상이 복통, 시야 방해 등 육체적 증상으로 이어질 정도로 병세가 나빴다. 경찰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안인득을 정신질환자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2019년에 들어 안인득은 아파트 이웃 주민들을 향한 불만을 더 이상한 방식으로 표출했다. 

안인득은 바로 위층 주민 강선정과 그의 조카 최실화(당시 18세)를 증오했다. 그들이 자기 집에 독이 든 벌레를 뿌린다고 생각다. 자활센터에서 난동을 피우고 약 한 달 뒤 안인득은 자기 집 베란다에서 출근을 위해 아파트 현관을 나선 강선정에게 계란을 던졌다. 

“이 XX아, 니가 일부러 나 괴롭게 하려고 망치로 바닥 두드리고 독충 뿌리는 거지?”

2019년 2월 28일 오전 7시 17분, 강선정은 다시 한 번 경찰서에 신고했다. “우리집에 똥물을 뿌렸던 사람이 이번엔 계란을 던지고 있다“고.

“임대아파트에는 이런 신고가 많습니다. 이웃 간 잘 화해하세요.”

경찰은 이 사태를 이웃 간 불화로 봤다. 분리 조치를 원하는 강선정에겐 “행정입원 조치는 주민 탄원서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안인득은 구두 경고만 받았다. 안인득 이상 행동의 주기는 더 짧아졌다. 3월 한 달 동안 경찰은 안인득 관련 신고로 다섯 번 출동했다.

시작은 3월 3일 아침, 강선정은 112에 세 번째 신고 전화를 걸었다. 아래층 남자가 또 오물을 뿌렸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경찰은 CCTV 설치를 권했다. 3월 8일 아침엔 다른 주민의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안인득이 마약을 했다고 추측했다. 

“갑자기 욕을 하더라고요. 눈이 풀려 있었어요. 마약한 게 아닌 이상 이러진 않을 것 같아서…”

경찰은 신고자를 나무랐다.

“그 사람이 마약을 했는지 신고자 분이 어떻게 아세요. 이유 없이 시비 건다는 이유로 마약했다고 주장하면・・・.”

아파트 주민들은 참사 이전에 수차례 안인득을 경찰에 신고했다. 오물 투척, 욕설, 위협 등 그의 이상행동은 참사의 전조였다. 하지만 경찰은 응급입원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지원

이틀 뒤, 안인득은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호프집 앞에서 손님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고 망치로 위협했다. 이때 경찰은 안인득이 흉기를 소지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당시 안인득의 가방에서 가위, 칼 두 자루, 펜치가 발견됐다. 지구대로 연행한 안인득에게 경찰이 물었다.

– 왜 이런 흉기들을 들고 다녔습니까?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 들고 다녔습니다.”

이날 형은 동생에게 “더는 사고 치지 마라. 나도 이제 물어 줄 합의금 없다”고 말했다. 안인득의 이상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9년 3월 12일 오후 7시 35분 경, 강선정은 아파트 입구에서 네 번째로 112 번호를 눌렀다.

“지난 번에 CCTV 설치하라고 해서 했는데요. 그 사람이 오늘 또 오물을 뿌려놓고, 집에 가는 애(최실화)를 따라와서 초인종을 누르면서 욕을 했어요. 애는 집에 있는데 저는 지금 무서워서 못 올라가겠어요. 같이 좀 가주세요.”

안인득은 50X호 문에 또 똥물을 뿌리고, 외출 후 귀가하는 최실화를 “죽여버리겠다”며 뒤쫓았다. 조카의 연락을 받은 강선정은 안인득이 5층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두려웠다. 강선정은 안인득이 똥물 뿌리는 CCTV 영상을 경찰에게 보여줬다. 

“이 사람 아무래도 정신에 문제 있는 것 같아요. 병원에 다니는지 알아봐주세요.”

경찰은 “우리가 알아보니 깨끗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신고자 역시 강선정이었다. 바로 다음날 오후 6시 40분, 휴대폰 없이 집을 나선 강선정은 아파트 현관 근처에서 안인득을 만났다. 

“이 XX아!” 

이웃 남자는 눈을 부릅뜨고 쫓아왔다. 강선정은 경비실로 뛰어갔다. 경비원 휴대폰으로 112에 신고한 강선정은 “이웃집 남자를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경찰에 요청했다. 경찰은 안인득에게 구두 경고 조치만 하고 돌아갔다.

2018년 9월부터 2019년 3월 말까지 안인득이 보인 이상행동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망상을 겪으며 칼과 망치를 소지, “죽여버리겠다”고 타인 협박, 폭행. 고위험 정신질환자로 분류될 행동이다. 강선정의 요구처럼, 안인득은 지역 주민들과 떨어져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다. 경찰이 응급입원을 검토했다면 말이다.

응급입원은 지역사회에서 자신과 타인을 해칠 위험이 높은 정신 질환자가 발견되면 경찰이 정신과에 호송해 의사가 입원을 결정하는 제도다. 72시간 입원이 끝나면 전문의는 입원 지속 여부를 검토한다. 계속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아 행정입원을 진행할 수 있다.

실제로 안인성은 동생 안인득을 입원시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그는 2019년 4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동생의 호프집 폭행사건을 수사한 지구대에 전화를 걸었다. “동생을 입원 시키고 싶다”는 말에 경찰은 “동생 분 사건은 검찰에 송치됐으니 거기로 연락하라”는 답을 줬다. 검찰청 민원실에선 법률구조공단에, 법률구조공단은 동사무소에 문의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동사무소에서도 안인성은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진주 방화・살인 사건 이후 진행된 경찰 조사에서 안인성은 이렇게 말했다.

“동생이 입원할 정도로 상태가 나쁘다는 걸 알았습니다. 진주시 OO동 동사무소에 찾아가니 담당 직원이 강제입원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면서 진주시청을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청에서도 다른 곳에 가 보라는 답을 줄 것 같아 그만뒀습니다.”

물론 경찰이 아무나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갈 순 없다. 남이나 자신을 해칠 위험이 높아 긴급히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만 입원 검토가 가능하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장치다.

2019년 1월 경찰은 고위험 정신질환자에 대한 응급・행정입원 판단 매뉴얼을 개정했다. 3월에는 이 규정을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한 QnA 요약집도 경찰서에 배포했다. 요약집엔 이런 내용이 있다.

Q. 비전문가인 경찰이 ‘정신질환자 해당여부‘와 ‘자타해 우려 확인‘을 어떻게 할 수 있나요?

A. 정신질환 여부는 환자 본인이나 가족 등 지인의 진술을 통해 치료나 입원 전력 등을 확인하고, 직접 관찰한 환자의 증상을 토대로 경찰관이 판단 매뉴얼을 활용해서 1차적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최종 입원 결정은 의료기관에서 진료 후 이뤄집니다. 현장에서 경찰은 흉기 소지 여부, 가족 등의 진술을 토대로 112신고이력과 범죄이력, 현재 난동상황 및 약물치료 중단여부 등을 검토해 판단해 주시길 바랍니다.

요약집에 딸린 부록엔 정신질환 여부와 자타해 위험성을 판단하는 체크리스트가 적혔다. 진료 이력, 수사 및 처벌 이력, 망상 등 이상행동, 흉기 소지, 언어적 협박, 폭행 등 신체적 위해, 약물 치료 중단까지. 안인득은 ‘정신 질환자 응급입원 검토 체크리스트‘에 제시된 9가지 항목 중 7가지에 해당됐다.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혐의로 구속된 안인득(42)이 병원을 가기 위해 2019년 4월 19일 오후 경남 진주경찰서 내 경찰차에 앉아있다. ⓒ연합뉴스

이 모든 건 현장에서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수많은 신호에도 경찰은 안인득을 입원시키지 않았다. 2019년 4월 17일 새벽, 안인득은 강선정의 조카 최실화를 죽였다. 형 안인성의 친구 금대훈의 딸과 어머니도 죽였다. 

응급입원, 현실적으로 가능했을까?

만일 경찰이 2019년 4월 17일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매뉴얼 대로 움직였다면 안인득은 응급 입원됐을 가능성이 높다.

2019년 당시 경상남도 진주에는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원이 세 곳 있었다. 그 중 안인득 집에서 차로 9분 거리에 있는 A 병원은 야간에도 전문의가 늘 한 명 이상 응급환자들을 위해 대기했다. A 병원은 안인득이 2015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진료 및 치료를 받았던 곳이다.

“응급입원이 병상 부족으로 거절될 때도 있느냐”는 질문에 진주시 보건소 치매정신건강과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2020년 코로나가 발병한 이후에는 병상이 부족해 응급입원이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병상 부족으로 거절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2019년 진주 방화・살인사건 이후 경상남도 진주의 응급입원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9년, 10명이었던 응급입원 환자 수는 2020년 74명으로 7배 늘어났다. 2021년에는 91명으로, 2019년 대비 9배 증가했다.

경찰이 진주 방화・살인 사건이 벌어진 후에야 응급입원을 적극 추진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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