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가 받은 불이익은 조사 안 합니까?”

안인득(77년생)은 2019년 5월 마지막 조사에서 경찰에게 물었다. 그는 비슷한 말을 이전에도 몇 번 했다. 

“10년입니다. 10년째 불이익을 받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불이익을 주고 있고, 제 딴엔 노력한다고 했지만 아무런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 2019년 4월 18일 진술

“제가 잘못한 건 인정하지만, 제가 불이익을 당한 부분을 참고 좀 해주십시오.” – 2019년 4월 22일 진술

방화・살인을 저지른 후 진행된 여섯 차례 경찰 조사에서 ‘불이익’이란 말은 총 46차례 등장했다. 망상일 수 있으나, 그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안인득은 경남 진주에서 4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진주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체육고등학교를 희망했지만, 고교 진학 자체를 포기했다. 학업 성적이 부진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탓이다.

18살에 그는 처음 법망에 걸려든다. 친구들과 함께 본드를 흡입해 1995년 12월,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 이후 방위산업체 근무로 군 복무를 해결한 후 자동차정비공장, 제조 공장, 대기업 하청업체 등 주로 생산직으로 일했다.

경남 창원에 있는 한 대기업 제2공장에서 일하던 2008년, ‘불이익’이 생겼다. 약 3개월 정도 전자제품을 차에 싣는 업무를 하던 중 허리를 다쳤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이었기 때문이다.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혐의로 구속된 안인득(42)이 병원을 가기 위해 2019년 4월 19일 오후 경남 진주경찰서 내 경찰차에 앉아있다. ⓒ연합뉴스

진술에 따르면 그는 노동청 등 관계 기관을 찾는 등 산재 인정을 위해 노력했다. 노력은 물거품으로 끝났다. 이때부터 사회에 대한 불만과 피해의식이 안인득 가슴이 뿌리를 내린 듯하다. 다친 허리는 이후에도 잘 낫지 않았다. 

“제가 기업체에 들어가기 전까진 어느 정도 일반인과 비슷한 생활을 했는데….”

안인득은 방화 및 살인으로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이런 말을 했다. 그의 말대로 ‘허리 부상-산재 불인정-실직’은 안인득 삶에서 큰 분기점이었다. 

그의 형 안인성(가명) 경찰 진술에 따르면 이때 이후 가족과도 멀어졌다.

“(일을 그만둔 후) 안인득은 눈치가 보였는지 다른 가족과 사이가 점점 벌어졌고, 혼자서 스타렉스 차량에서 살았습니다. 가끔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연락해서 어머님과 제가 번갈아 생활비를 주곤 했습니다. 동생이 안쓰러워서 연락하면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냐?’고 퉁명스럽게 물었고, 대화 자체가 잘 안 됐습니다.”

피해 의식은 범죄로 표출됐다. 안인득은 2010년 행인에게 칼을 휘둘렀다. 행인을 옛 회사에서 자신을 감시하라고 보낸 사람이라고 여겼다. 입건된 안인득은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았다. 이때 조현병이 발견됐다. 

정식으로 병을 진단받은 후 치료가 지속됐다면, 안인득의 병은 나아질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13일 회기역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백 교수는 “안인득이 계속 치료받았다면 끔찍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2010년~2011년 7월이 안인득에겐 조현병 급성기에 해당한다고 봤다.

“다른 정신 질환과 마찬가지로, 조현병도 치료될 수 있는 병입니다. 특히 처음 발병 이후 약 3~5에 해당하는 급성기 치료 결과에 따라 병의 예후가 결정됩니다. ”

안인득은 2011년에 A 병원에서 약 10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당시 의료진은 적극적인 치료 방식을 택했다.

“이때 클로자핀(clozapine)이란 약물이 쓰였는데, 효과 좋기로 유명하지만 비쌉니다. 당시 대학병원 입장에선 비싼 약을 쓸수록 손해 보는 구조였는데도 이 약을 썼다는 건, 안인득의 증상이 심한 편에 속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퇴원 후 안인득은 ‘중졸’ 딱지를 떼기 위해 2012년 3월 진주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굴삭기 운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녔고 같은 해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2년 전 같은 도전을 했을 땐 여섯 차례 낙방한 시험이었다.

방송통신고등학교는 한 달에 두 번 주말에만 출석하고 대부분 수업을 온라인으로 실시했다. 안인득은 성실한 학생이었다. 2015년 졸업 당시 전체 110명 재학생 중 4~5등 성적을 받았다.

“저는 꾸준히 수업을 들어 3년 과정을 마쳤습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여러 전공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2019년 4월 25일 안인득 진술)

백 교수가 주목하는 시기는 2015년~2016년 사이다. 안인득이 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은 시기다. 안인득은 과거 입원 치료를 받았던 A 병원에 다녔다. 담당 의사 역시 그때와 같았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셜록

안인득은 ‘조현병 약물치료 최후의 보루’라 불리는 클로자핀을 처방받은 2011년보다 나은 상황이었다. 의사는 클로자핀을 사용하지 않았고 처방된 약의 용량도 많은 편이 아니었다. 안인득은 4주에 한 번꼴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매번 28일 치 약을 처방해줬다. 

“안인득은 담당의에게 감정이나 상황을 솔직하게 공유했습니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라포(신뢰감이나 공감대)가 잘 구축된 것으로 보입니다. 정신질환자가 의사에게 자기 얘기를 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치료 초반에 안인득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수면 장애도 겪었다. 2015년 1월~4월 사이엔 대체로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안인득은 의사에게 2015년 4월에 “나를 따라붙고, 모여서 갈구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피해망상과 관계망상이었다.

백 교수는 안인득이 조현병의 여러 증상 중에서도 피해망상과 관계망상이 심했다고 설명했다.

“관계 망상은 실제로는 근거가 없는데도 주위 사물이나 사람이 자기와 관계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카페 옆 테이블에 누군가가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게 나를 해치기 위해서라고 여기는 식입니다.”

꾸준한 약물치료가 본격적으로 효과를 보기 시작한 건 5월부터다. 안인득은 “시비 거는 사람들이 있지만 직접적이진 않다”고 했고, 의사는 ‘관계망상이 개선됐다’고 적었다. 

병세는 꾸준히 나아졌다. “누가 의도적으로 시비 거는 거 같지 않다” “나를 신경쓰게 하는 것들이 별로 없다”고 말하는 등 6~7월엔 관계망상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수면 장애도 사라졌다. 

8월부터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욕망이 생겼다. 안인득은 일을 시작해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추석이 있는 9월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겠단 계획도 세웠다.

백종우 교수는 특히 2015년 겨울에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인다고 설명했다.

“피해망상과 관계망상을 앓는 조현병 환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는 경향이 있어요. 2015년 겨울 안인득의 상태가 정말 좋아졌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문제 원인을 안에서 찾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민한 경우가 있다’고 인정하거나 ‘사람들이랑 같이 지내다 보면 마찰이 생길 수 있다’고 발언하는 등 자신과 사회를 조금씩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거든요.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쌓고, 일도 시작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태가 됐을 거예요.”

안인득의 재취업을 방해한 건 허리통증이었다. 2012년 굴삭기 기사로 일할 때 또 허리가 말썽을 부렸다. 그러나 의지만큼은 강했다. 안인득은 통원 치료 기간 내내 의사에게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2015년 3월엔 “아는 사람이 일자리를 연결해주면 다시 중장비 일을 할 것이다”고 구체적인 계획을 말하기도 했다.

다음해까지 치료가 이어지면서 병은 호전됐다. 문제는 2016년 여름, 주치의가 다른 병원으로 옮기면서 발생했다.

“정신과 치료는 환자와 의사 간 신뢰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보통 주치의가 바뀔 땐 환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합니다. 급하게 담당 의사가 바뀔 땐 이 설명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뀐 주치의에게 두 번째 진료를 받은 2016년 7월 28일, 안인득은 약물 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왜 제가 약을 먹어야 합니까? 이제 안 먹으면 안 됩니까?” 

치료 필요성을 설명에도 안인득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의사는 “대화가 되지 않음”이라고 의료기록지에 적었다. 이날 이후 안인득은 병원에 발길을 끊었다.

“약물치료를 받았던 상태가 지속됐다면 안인득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안인득처럼 치료를 중단한 정신 질환자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지역사회에 필요합니다.”

그 시스템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기관이 있다. 바로 정신건강복지센터다. 2011년 A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끝내고 퇴원할 때 병원 직원은 안인득에게 물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하시겠어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환자로 등록되면 2016년 여름처럼 환자가 스스로 치료를 중단했을 때 모니터링이 시작된다.우리나라는 환자가 동의해야 센터의 관리를 받는다. 안인득은 등록을 거부했다. 

그의 병은 완전히 방치됐다. 치료가 중단된 지 약 2년 만에 안인득은 아파트 주민을 상대로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2019년 4월, 방화 및 살인을 저질렀다. 

“이 대목이 참 아쉽습니다. 환자가 동의해야 비로소 지자체 관리 시스템에 편입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선 안인득처럼 보호 관찰 처분 이력 등 자신과 타인을 해칠 위험이 높은 환자는 의료기관이 지자체로 정보를 제공하게 돼 있습니다. 물론 개인 정보는 철저히 보호되는 게 원칙이고요.”

백종우 교수는 “현 정신질환 치료・관리 시스템은 치료 의지가 없는 환자가 방치되기 쉬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병식(자신이 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이 없는 경우가 많은 조현병 환자는 국가의 세심한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단 것이다. 

안인득은 하교 후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을 쫓아가는 등 방화살인 직전 이상행동을 보였다. ⓒ오지원

백 교수 말처럼 사후 관리 시스템이 미비한 탓에 중요한 게 응급 입원이다. 응급 입원은 환자가 자신이나 남을 해칠 정도로 증상이 악화해 이상 행동을 보이면 경찰이 정신과 전문의에게 호송해 입원 필요성을 따지는 제도다.

“응급 입원이 중요한 이유는 치료를 멈춘 안인득이 다시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을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환자 동의 없는 입원 제도는 분명 남발해선 안 되지만, 꼭 필요한 순간엔 작동해야 합니다.”

‘2019년 4월 17일 전에 안인득이 응급입원을 통해 다시 치료받았다면?’

진주 방화・살인 사건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가슴 속에 수천 번 쌓은 이 질문을 밖으로 꺼냈다. 범행 전 안인득이 보낸 여덟 차례 이상신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경찰에게 책임을 묻기로 했다. 일부 피해자와 유가족은 지난해 10월 국가를 상대로 한 국가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관련 기사 보기 – 경찰, 왜 안인득 봐줬나]

이들은 법정에서 피고 대한민국과 국가의 책임과 위법행위를 두고 다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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