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지 30년은 족히 된 듯한 5층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4층까지 걸어 올라가 낡은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집안에 있는 여성이 인터폰으로 물었다. 에둘러 가면 더 오해받을 듯했다.  

“김영희(가명. 50년생) 씨 살인사건 판결문 읽고 찾아왔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터폰이 뚝 끊기더니 현관문이 열렸다. 희끗한 단발머리의 70대 할머니가 나왔다. 160cm가 안 돼 보이는 늙은 여성의 몸은 붉은색 원피스를 걸쳐도 왜소해 보였다. 

“제가 김영희입니다.”

살인죄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사람, 감옥에 있어야 할 70대 할머니가 무표정한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 예상 못한 당사자와의 대면, 당황한 건 오히려 기자였다. 했던 말이 또 나왔다. 

감옥에 있는 줄 알았던 엄마 김영희 씨가 문을 열었다. ⓒ오지원

판결문 읽고 찾아왔는데.. 발달장애인 가정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취재.. 그런 거 괜찮습니다.”

김영희 씨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녀는 불쑥 찾아온 기자에게 “괜찮습니다”는 말로 인터뷰를 거부하고 현관문을 닫았다. 지난 달 22일의 일이다. 

사실 이 오래된 집은 가해자의 집이면서 살인 피해자의 집이다. 살인도 이 집에서 벌어졌다. 김영희 씨는 2020년 4월, 딸 이은수(가명. 73년생)를 살해했다. 그때 딸은 46세였다. 김영희 씨는 가해자이면서 유가족이고, 엄마이자 살인자다. 

엄마와 딸은 샴쌍둥이처럼 46년을 붙어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줄 알았는데, 엄마가 딸을 죽였다. 

이은수 씨는 중복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발달장애로 느리게 자랐고, 시각장애로 앞을 제대로 못 봤다. 엄마 김영희가 딸의 두뇌, 안내자, 눈 역할을 했다. 둘은 늘 함께 다녔다. 

이은수는 경남의 한 특수학교에서 공부했다. 고교까지 마쳤지만 간단한 단어 하나 읽는 걸 어려워했다. 펜으로 자기 이름 세 글자는 쓸 줄 알았다. 이은수는 엄마의 권유로 집 근처에 있는 A 직업재활원에 다녔다. 

처음엔 딸 혼자만 재활원으로 갔다.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엄마 없는 단독생활. 오래 못 갔다. 딸은 돌발행동을 하는 등 재활원 적응을 힘들어 했다. 결국 엄마 김영희가 나섰다. 

이은수는 A 직업재활원에서 1993년 2월부터 2014년까지 일상생활, 사회적응, 의사소통 기술 등 직업교육을 받았다. 20년 동안 김영희도 딸과 함께 등·하원 했다. 직업재활원 쪽이 2014년 5월 3일 작성한 이은수 초기면접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 일상생활 시 어려움이 없으나 엄마에게 의지를 많이 함. 직업 강점은 차분하고 조심스러우며 섬세함. 희망 직종은 단순포장 작업이며 보호 작업을 희망함.’

이은수는 2014년 생활용품을 만드는 B 공장에 취업했다. 장애인을 많이 채용하는 사회적기업이었다. 집에서 공장까지는 버스로 약 30분, 늘 엄마가 동행했다. 

이은수의 업무는 일회용품 칫솔과 치약을 조립하는 등의 단순 노동이었다. 딸은 타인과 의사소통을 어려워했다. 시력은 흐릿하게 사물의 형체만 구분하는 정도였다. 딸의 출퇴근을 돕는 엄마 김영희가 이은수 업무 대부분을 처리했다. 딸이 화장실 갈 때도 엄마는 동행했다.  

이은수가 엄마보다 20kg 정도 더 나가고, 키도 컸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김영희가 늘 붙어 다녔다. 공장의 팀장 C 씨는 “은수 씨는 항상 엄마와 팔짱을 끼고 다녔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거의 그분(이은수)은 혼자서 활동이 아예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채용도 어려웠는데… (일을 안 하면) 어머님이 집에서 딸을 24시간 돌보셔야 하잖아요. 그래도 일하러 오면 사람들도 좀 만나고 북적거리고 하니까. 어머니는 거의 무료 봉사처럼 같이 그냥 오신 거예요.”

몸무게 20kg 차이가 나는 영희 씨와 은수 씨가 함께 공장에 출근하고 있다. ⓒ오지원

C 씨는 “은수 씨는 장애가 심해 공장에서 일하던 다른 발당장애인들과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은수 씨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표정뿐”이라고 밝혔다. 엄마와 딸은 공장에서 일하며 월 120~130만 원을 받았다. 

2016년 3월, 김영희는 속이 답답하고 가슴 두근거리는 증상으로 종합병원을 찾았다. 몸에 이상이 생긴 줄 알고 내과 검사를 받았으나 의사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권유했다. 사회생활 없이 딸 곁에서만 산 지 40여년, 김영희는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돌봄 부담이 커질수록 엄마의 우울증은 악화됐다.

“사는 것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

엄마는 다른 가족들에게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결국 가족들은 김영희 곁에서 이은수를 떼어놓기로 했다. 2017년 4월, 가족들은 이은수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엄마 없는 일상이 어색했을까. 이은수의 돌발행동이 터졌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일주일 만에 퇴원 조치당했다. 딸은 엄마 곁으로 돌아왔고, 돌봄은 다시 김영희 몫이 됐다. 

설상가상, 코로나19 사태로 이은수가 다니던 공장이 2020년 폐업을 결정했다. 장애인 직원이 5~6명 정도였는데, 모두 갈곳을 잃었다. 그해 3월부터 이은수도 공장에 출근할 수 없었다. 이제 엄마 김영희가 집에서 24시간 딸 돌봄을 책임져야 했다. 

딸은 사회복지기관 등에 가려하지 않았고 집에 있길 원했다. 결국 김영희는 24시간 이은수와 함께 집에 고립됐다. 엄마의 우울증은 나날이 악화됐다. 덩치가 엄마보다 훨씬 큰 발달장애인 이은수는 종종 엄마를 때리고 자해도 했다. 일은 4개월이 지난 7월에 터졌다. 

1심과 2심 판결문에는 당시 상황이 이렇게 적혀 있다. 

“피고인(김영희)의 우울증이 극도로 악화되었고, 피고인은 우울증으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합리적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김영희)의 주거지 작은방에서 ‘죽는다’는 의미를 알지 못하는 지체장애인 피해자(이은수)로부터 ‘죽자’라는 말을 듣게 되자 피해자를 살해한 후 자살하기로 마음을 먹고…”

2020년 7월 31일 12시 30분께, 김영희는 딸을 바닥에 눕힌 후 몸통 위로 올라타 목을 힘껏, 오래 눌렀다. 딸 사망을 확인한 김영희는 자기도 죽으려 처방받은 우울증약과 수면제를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그 후 스카프와 노끈으로 자기 목을 졸랐다. 자살은 실패로 끝났다. 

사건이 벌어진 후, 김영희는 바로 구속되지 않고 9월 11일까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김영희의 정신을 감정한 의사는 이렇게 진단했다. 

“피고인은 고도의 우울증에 의해 사물을 변별 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했다고 볼 수 있고,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 주위 가족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구할 능력 또한 미약했다고 볼 수 있다. 피고인의 우울증이 이 사건 범행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평생을 다해 딸을 돌본 늙은 엄마에게 남은 건 죄책감과 회한, 살인자라는 꼬리표뿐이다. 김영희는 여전히 우울증 약을 먹는다.

부산지방법원은 2021년 12월 21일 김영희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5월 26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감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피고인은 범행 이전에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고, 스스로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을 자책하고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으며, 앞으로 자기 자녀를 살해하였다는 죄책감과 회한을 안고서 남은 생애를 살아가야 한다. 피고인은 현재 만 72세의 노인으로서 앞서 본 고도의 우울증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질병으로 신체적인 건강 또한 징역형의 집행을 오롯이 감내하기에는 벅차 보인다.”

김영희는 24살 되던 해에 딸 이은수를 낳았다. 딸과 함께 20년간 재활원에 다녔고, 46년간 딸의 두뇌, 길잡이, 눈이 되어 줬다. 재판부가 인정한 대로 인간으로서,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고 그러다 병을 얻었다. 김영희는 70세 때 딸을 살해했다. 

평생 딸을 돌본 늙은 엄마에게 남은 건 죄책감과 회한, 살인자라는 꼬리표뿐이다. 김영희는 여전히 우울증 약을 먹는다. 

 

<김영희-이은수 모녀는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을 위한 돌봄서비스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중증 성인 발달장애인이 낮에 의미 있는 활동을 하도록 돕는 ‘주간 활동 서비스’와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가 그것이다.

‘주간 활동 서비스’의 지원 자격은 18세 이상 65세 미만의 성인 발달장애인이다. 장애 정도와 경제적 조건을 고려해 최대 월 132시간 시설 등에서 교육과 돌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제도가 있다고 모두가 서비스를 누리는 건 아니다.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주간 활동 서비스 사업이 포함된 ‘발달장애인 활동 서비스’를 이용한 발달장애인은 0.8% 뿐이었다. 2020년에는 4000명을 서비스 사업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등록 발달장애인(지적 장애, 자폐성 장애)의 1.6%에 불과한 수치다.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는 활동지원사가 가정 등으로 방문해 장애인의 일상을 돕는 제도다. 역시 신체적 능력과 경제 상황을 고려해 서비스 시간은 차등 제공된다.

부산장애인부모회 해운대지회 지회장 이진섭 활동가는 “돌발행동이 잦은 중증 발달장애인들은 시설에서 받기 꺼려해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자폐 1급 아들을 키우며 느낀 점을 기록한 책 <우리 균도>의 작가다.

이진섭 활동가는 “두 제도를 이용하려 해도 손이 더 많이 가는 중증 발달장애인은 (서비스 제공자에게) 거절당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그는 인건비 문제도 지적했다.

“똑같은 돈을 주는데 누가 더 감당하기 힘든 중증 발달장애인을 맡으려고 하겠어요. 그나마 작년부터 실시한 일대일 돌봄 서비스 선생님 같은 경우엔 돈을 1.5배 더 주긴 하지만, 중증 장애인을 돌본다고 돈을 더 주진 않습니다. 주간 활동 서비스라는 좋은 제도가 있지만 인건비를 제대로 못 맞추니 중증 장애인은 거부당하고 돌볼 선생님 인력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진섭 활동가는 정부의 무관심이 이어지면 김영희 씨 사건 같은 비극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는 지금 장애인과 부모들에게 희망 고문을 하고 있어요. 문재인 정부가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제대로 된 게 없어요. 장애인 부모님들은 어떻게든 희망을 품으려 하는데 정부가 그걸 저버리게 합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하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 24시간 국가책임제’ 도입을 위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부모연대는 지난 5월 23일 살해당한 발달장애 자녀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모를 추모하는 분향소를 전국에 19곳 설치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부모연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예비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지명 등 일부 정보를 다르게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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