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문으로 전동휠체어 탄 강사가 들어오자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한 명도 그를 따라 들어왔다.
강사의 두 팔과 다리, 고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꼿꼿한 자세로 눈앞 50여명의 수강생에게 인사를 건넸다. 얼굴을 제외하고 그의 몸에서 움직이는 건 건 전동휠체어를 조정하는 손가락뿐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휠체어에서 전동음이 작게 퍼졌다.
강사를 따라 들어온 남성은 컴퓨터를 켜고 스크린에 PPT 자료를 띄웠다. 이어 스크린이 잘 보이게 강의실 앞 조명을 끄고 강사에게 헤드 마이크를 연결했다. 그는 수업 내내 강사에게 다섯 걸음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강사를 주시하고 있다가 눈 마주치는 등의 신호에 따라 PPT 화면을 넘기고, 빨대를 이용해 물을 먹여주기도 했다. 그는 강사의 눈빛을 읽고 다음 행동을 이어갔다.
“이분이 제 활동지원사입니다.”
남성은 살짝 고개 숙여 수강생들에게 인사했다. 그는 수업 중엔 물론이고 화장실 갈 때도 강사와 한몸처럼 움직였다. 검은색 옷을 입어서 그런지 더 그림자처럼 보였다.
전동휠체어를 탄 강사는 최광훈 휴먼케어센터 원장이자 서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다. 그는 20대에 근육병을 진단받고 지체장애인으로 40년을 지냈다. 근육병은 온몸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희소병이다.
이곳은 서울 서초구 휴먼케어센터. 지난 18일 오전 9시, 성인 약 50명이 장애인 활동지원사 교육을 듣기 위해 모였다. 최 원장은 수강생들에게 물었다.
“좋은 일 하러 왔다, 봉사하러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 들어보세요.”
수강생 몇 명이 손을 들었다.
“환불해 줄 테니까 나가시면 돼요.”
강의실에 당혹스런 침묵이 흘렀다.
“여러분 돈 안 받고 일할 거예요? 월급 받을 거 다 받고 하면서 무슨 장애인만 관련 되면 좋은 일이고 봉사래. 여긴 봉사 정신이 아니라 직업정신, 프로페셔널한 마인드가 필요해요.”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6월부터 ‘엄마는 살인자가 됐다’ 프로젝트를 통해 발달장애인 자녀를 살해한 엄마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사건에서는 몇 가지 공통점이 보였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사람은 대개 ‘엄마’였고, 이들은 24시간 돌봄노동을 하다가 우울증을 앓았다. 자녀 살해 후 엄마들은 모두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한국에는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복지제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이하 활동지원서비스)’가 있다. 장애인에게 신체, 가사, 이동 등의 활동 보조를 제공하는 재가 복지 서비스이다.
만 6세 이상부터 만 65세 미만의 장애인복지법상 등록 장애인이면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 쪽에서 장애인의 일상생활 가능 정도와 경제 상황을 조사한 후 서비스 이용 시간을 차등 제공한다.
이런 제도가 있음에도 왜 엄마들은 홀로 돌봄을 감담하다 우울증을 앓고 자녀 살해라는 비극으로 몰렸을까? 이 의문의 실마리를 풀어보고자 기자는 직접 장애인 활동지원사(이하 활동지원사)가 되어보기로 했다.
활동지원사는 장애인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직업이다. 학력, 나이, 경력 상관없이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누구나 될 수 있다. 이론 및 실기교육 40시간, 현장실습 10시간을 이수하면 된다.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및 유사 경력자는 이론 수업 8시간을 감면받을 수 있다.
이론 수업은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5일간 진행됐다. 강사 7명이 수강생들에게 <장애의 이해><자립생활과 인간중심 계획의 이해><활동지원사 역할><인권과 학대> 등 크게 15개의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진행했다.
교육 첫날 최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장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선뜻 답하는 수강생은 없었다.
“장애는 저처럼 못 걷는 사람이 장애 판정을 받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강사는 잠시 뒤 말을 이었다.
“아프다고 장애가 아니라 아프다는 이유로 차별받으면 그게 장애예요.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휠체어를 주지 않는 사회가, 휠체어가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한 뼘 높이의 그 문턱이 장애죠.”
김나연(가명) 휴먼케어센터 강사는 7월 19일 오후 수업 때 수강생들에게 A4 종이 한 장씩 돌렸다. 종이 모서리엔 점 4개, 가운데에는 5개가 찍혀 있었다. 최 강사는 수강생에게 “각자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 셀카 모드로 해놓고 종이에 있는 점을 이어 사각형과 별을 그려보라”고 제안했다. 핵심은 스마트폰 카메라에 비친 종이를 보고 점을 잇는 것이다.
수강생 각자 폰을 보고 점을 이었다. 다들 사각형은 쉽게 그렸다. 문제는 별 그리기였다. 대부분이 쩔쩔 맸다.
“사각형은 다들 그럭저럭 그렸는데 별이 어렵죠? 지금 우리가 한 게 지적장애인 체험이에요. 우리도 이렇게 평소랑 조금만 다르게 해도 헷갈리잖아요. 지적장애인 처지도 그래요. 활동지원사는 천천히 그들의 속도를 이해하고 반복하도록 도와 주는 게 중요해요.”
이어 김 강사는 팔을 쓰지 않고 오직 입으로만 종이에 사랑하는 사람 이름을 쓰라고 했다. 김 강사는 “글씨를 다 쓰는 동안은 손이 절대 책상 위로 올라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자는 입으로 펜을 문 채 살짝살짝 힘을 조절해 글씨를 썼다. 손으로 잡지 않으니 종이가 자꾸 움직였다. 글씨를 쓰는 동안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눈을 찔렀다. 글씨를 다 쓰자 최 강사가 말했다.
“입으로 글씨를 쓰는 게 불편한 건 누구나 다 알아요. 근데 글씨를 쓸 때 자꾸 머리카락이 눈에 찌르기도 하고 얼굴이 가려웠을 거예요. 실제로 한 지체장애인은 머리카락이 자꾸 눈을 찔러서 종일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혼자서는 머리카락도 못 넘기니까. 활동지원사는 그런 부분까지 신경 써 줘야 해요.”
최은정(가명) 강사는 21일 수요일 <발달장애인의 활동 지원> 수업을 진행했다. 최 강사는 발달장애인은 트라우마에 취약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발달장애인 이용자랑 같이 지하철을 탔을 때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이용자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자기 몸을 때리고 흔들 수 있어요. 그럴 때 대부분 활동지원사는 놀라서 주변 사람에게 ‘발달장애인이라서 그렇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정말 그분(이용자)에게 큰 상처예요”
정 강사는 “발달장애인 이용자들이 산만해지는 것은 자기 자극을 통해 불안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활동지원사의 역할>이란 수업에서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퀴즈를 하나 냈다.
“장애인 이용자가 퇴근하기 전에 수면제 한 알을 먹여 달래. 그럼 어떻게 할 거예요?”
한 아주머니가 손을 들고 말했다.
“수면제는 위험하니까 주면 안 되지!”
강사는 “이용자가 처방받은 약인데요?”라고 되물었다.
기자도 “처방전을 확인하고 난 후에 약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하고 생각하던 찰나 강사는“이용자의 요청을 들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계속 강조하지만, 활동지원사는 이용자를 보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조하는 사람이에요. 대개 활동지원사들은 이용자를 케어하는 거라고 말하고 통제하지만 (그런 행동은) 활동지원서비스의 핵심인 이용자의 자기 결정권을 박탈하는 거예요. 장애인을 돌봐야 할 신체적 정신적 약자가 아니라 고객, 소비자로 대해야죠.”
물론 강사는 “지적장애와 자폐장애 같은 발달장애는 보통 자기 옹호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보호도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기자가 참여한 활동지원사 이론 수업을 듣는 수강생은 거의 모두가 50대 이상으로 연령대가 높았다. 20~30대로 보이는 두 명, 60대 이상 두 명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었다. 가정에서 주로 여성, 특히 엄마가 돌봄 노동을 감당하는 것처럼 활동지원사가 되려는 사람은 거의 50~60대 여자였다.
수업에 참여한 정혜자(가명 1960년생) 씨는 오랜 기간 베이비 시터로 일했다. 정 씨는 “오랫동안 아기들을 봤기에 ‘돌보는 일’이 가장 자신 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수업을 듣기 전까진 장애인 인권과 복지에 관심이 없었다던 한은경(가명 1971년생) 씨는 교회 권사를 통해 활동지원사 직업을 처음 알게 됐다고 밝혔다.
휴먼케어센터 한 강사는 “대체로 젊은 남성 장애인을 이동지원 하거나 돌보려면 힘을 쓸 수 있는 남자 활동지원사가 필요한데, 남성 인력이 부족하다”며 “활동지원사 분야에서도 여성보다 남성이 더 빨리 취업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재가 장애인 성별 분포는 남자가 57.8%, 여자가 42.2%로 남성 비율이 다소 높다. 활동지원서비스도 남성이 여성보다 많이 이용한다. 활동지원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는 장애 유형에 따른 성비를 보면 자폐성 장애(85.3%), 지적장애(64.6%), 뇌병변장애(60%), 시각장애(58.9%), 지체장애(55.7%) 순으로 남성 비율이 높다.
“강의실에서 봤던 것처럼 활동지원사 대다수가 중년 여성이에요. 사실 이용자도 그렇고 이용자 부모님은 같은 또래나 젊은 활동지원사를 선호해요. 친구 같은 사이를 원하니까. 남성들은 이런 직업이 있는지도 잘 몰라요. 간혹 있는 남성 활동지원사는 돌고 돌아 마지못해 이 일을 하는 분이 많으세요. 용돈벌이 하시려고.”
한 강사는 28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활동지원사의 인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경기도 하남시에서 일하는 활동지원사 308명을 조사한 논문에서도 이런 현실이 드러난다. 해당 지역에서 활동지원사의 성비는 여성이 87.0%(268명)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연령대 또한 50대가 62.3%(192명), 40대 19.8%(61명), 60세 이상 9.1.%(28명)였다.
활동지원사의 학력과 월수입도 많은 걸 시사한다. 고졸이 73.4%(226명)로 가장 많았으며 중졸 14.0%(43명), 대졸이 10.1%(31명)로 뒤를 이었다. 월 수입은 100~150만 원이 63.3%(195명)으로 가장 많았고, 150~200만 원을 버는 비율은 16.2%(50명)에 불과했다. 51명(16.6%)은 50~100만 원을 벌었다.
이런 통계와 조사결과는 다른 지역도 대체로 비슷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리하면, 우리사회 돌봄노동은 여전히 저소득 일자리이며, 상대적으로 저학력의 중년 여성이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5월 기준 근무 중인 활동지원사 수는 9만8000여 명이다. 2017년 6만2000여 명이던 활동지원사가 5년 사이 3만여 명 늘었다.
기자가 참여한 활동지원사 이론 수업이 모두 끝난 지난 7월 22일, 수료증을 든 중년 여성들은 다음 단계인 실습을 위해 각자 흩어졌다. 여성 지원자가 압도적으로 많기에 실습 자리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 어쨌든 이들은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