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발달장애인 동생이 시설로 보내지기 전까지, 언니는 언제 튈지 모르는 고무공 같은 동생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동생은 집에서 차로 4분 정도 떨어진 시골 국도변 언덕배기에 있는 장애인수용시설로 보내졌다.

가족 누구도 동생이 왜 시설에 갔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언니도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18년이 지난 후, 언니는 동생을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 그 즈음 언니는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라는 노래도 만들었다. 곡은 이렇게 시작한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굶어 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최근 빈번하게 발생한 부모에 의한 발달장애인 자녀 살인과, 오래전부터 존재한 장애인 격리시설을 떠올려보면 이 노래가 누구의 꿈을 담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곡을 만든 사람은 장혜영, 우리가 익히 아는 정의당 국회의원이다.

장혜영 의원은 지난 4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촉구 12일 결의대회에 참여해 삭발을 했다. 장애인권리보장법과 탈시설지원법 통과를 촉구하며 말이다. 그로부터 4개월이 흐른 지금, 머리카락은 자라 차분한 숏컷이 됐다.

지난 11일 셜록과 인터뷰 중인 장 의원의 모습. ⓒ셜록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장 의원을 만났다. 장 의원은 한 살 어린 발달장애인 동생과 5년째 살고 있다. 장 의원 동생 장혜정 씨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함께 가진 발달장애인이다.

혜정 씨는 열세 살 때부터 서른 살까지 시설에서 살았다. 동생의 시설 생활은보호라는 그럴 듯한 이름을 가졌지만, 실상은 격리라는 걸 언니 장혜영은 조금씩 알아갔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도 했다.

“시설에 격리된 삶을 동생 스스로 선택한 적 없다.”

장혜영은 영상 제작 등을 하며 1년간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동생과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말이다. 시설에 들어가는 건 동생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나올 땐 동생의 의사를 존중하고 싶었다.

“(동생은) 집에서 보낸 날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시설에서 살았잖아요. 그런 동생에게 시설 밖의 삶, 자유라는 게 어떤 의미일까…. 그런 상황에서 같이 살자고 말하는 게 뭘 의미하는지 동생에겐 분명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장혜영은 동생과 함께 살기 위해 돈만 벌지 않았다. 동생에게 자기 친구들을 소개하고 여행도 함께 했다. 시설 밖 세상에 대한 생각과 경험의 재료를 제공하면서 동생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혜정아, 언니하고 같이 살래?”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난 자매. 가장 왼쪽이 장 의원. 그 옆 동생 혜정씨의 모습이다. ⓒ장혜영 의원

이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고 본 장혜영은 앞으로 살 집을 동생과 함께 보러 나녔다.

몇 곳을 함께 다녔는데, 동생이 어느 날 한 집에 들어가서 안 나오는 거예요. ‘동생이 여기서 살고 싶나 보구나생각해서 그 집을 계약했어요.”

장혜영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영화 <어른이 되면>을 만든 감독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어른이 되면> 다큐멘터리 영화는 발달장애인 동생과 장혜영이 한집에서 살기를 결심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6개월의 삶을 담았다. 영화 제목은 시설에서 살던 혜정 씨가 뭔가를 할 수 없을 때면 반복하던 말에서 비롯됐다.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장혜영은 동생의 말을 허투루 흘려 듣지 않았다.

“시설 안에서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언제까지나 미숙한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구나.. 혜정이가 저 말을 하지 않을 때, 우리가 진짜 시설 밖으로 나왔다고 할 수 있구나.. 이런 생각으로 영화 제목을 지었어요.”

동생과의 동거는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어른이 되면>에서는 혜정 씨가 시설에서 나와 언니의 손을 잡고 노들장애인야학에 가는 모습이 나온다. 평소 트로트와 춤을 좋아하던 혜정 씨는 정작 댄스 수업에선 틈만 나면 주저앉고 책상 위에 엎드리며 참여를 거부했다.

교사가무슨 장애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도 혜정 씨는 음악학과, 패션 등 상관없는 말만 되풀이했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 말을 잘 거는 혜정 씨는 이곳 장애인 학생들에겐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이틀 연속 혜정 씨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자 장 의원은 결국 이 길은 동생이 원하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장 의원은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고작 이틀 만에 완전히 길을 잃었어요. 무엇을 바라보고 노력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장 의원은 당시의 경험을 영화와 같은 제목의 책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18년 만에 같이 사는 자매였다. 한 때 서로를 알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혜정이를 모른다. 혜정이도 나를 모른다. 우리는 오랜 공백을 사이에 두고 서로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어떤 일일지 아직 잘 모른다. 그러니 기꺼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모든 순간에 자기 자신으로 충실히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 <어른이 되면>에서는 혜정 씨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이하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기 위해 언니와 함께 국민연금공단 사무실에 등급 심사 면접을 보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20분 면접 후 국가가 혜정 씨에게 허락한 활동지원서비스는 월 94시간. 하루 3~4시간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다.

당시 장혜영은 국민연금공단 측에그 시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항의했다. 공단 측은사정이 어려운 건 알겠는데 우리는 입법기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경험은 장혜영이직접 입법기관이 되기로 결심한계기가 됐다.

“장애가 하루 4시간만 있고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2021년 말 기준으로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1구간 장애인‘은 대한민국에 한 명도 없어요. 24시간 지원받는 장애인이 한 명도 없다는 거죠. 서비스의 양 자체가 너무 적다는 게 문제예요.”

국회의원이 된 장혜영은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에 나섰다. 장 의원은장애인 복지의 기본은원하는 만큼 필요한 서비스를 받는 것인데, 그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려면, 혜정 씨처럼 국민연금공단 측이 진행하는 종합조사를 받아야 한다. 종합조사표는 성인용과 아동용으로 나뉜다.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자 사이에선 종합조사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다양한 장애 유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서비스 시간을 적게 주려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많다.

장 의원은 종합조사표에 대해욕구가 아닌 기능 기반으로 되어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애인등급제 메커니즘은 한정된 자원을 가장 비난할 수 없도록 배분하는 방식인데요. 그래서 행정편의를 중점에 뒀다는 비판이 있어요. 사실 필요한 만큼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줄 수 있으면 등급을 따질 필요가 없잖아요. 그냥 주면 되는 거니까.

전 정권에서 ‘심한 장애-심하지 않은 장애’ 두 단계로 축소하는 등 시스템이 개선됐지만 아직 해결 할 부분이 많죠. (현재 종합조사표는 이용자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가 아니라 뭘 못하는지를 기준으로 삼고 있어요.”

지난 11일 장의원과 셜록 우지민 기자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셜록

장 의원은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프로젝트엄마는 살인자가 됐다를 통해 보도한, 발달장애인 자녀를 살해한 부모 이야기를 두고남일 같지 않다고 했다.

장애인 돌봄 책임은 기본적으로 가족이 떠안고, 국가와 사회는 ‘이제 좀 도와줄게’ 하는 수준입니다. 이런 방식이 아니라 (장애인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든 혹은 돌봐 줄 가족이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국가가 장애인 삶을 케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장 의원은 돌봄 주체가 개인이 아닌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활동지원서비스 본인부담금 폐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려면 이용자는 소득과 주거 상황에 따라 일정한 금액을 내야한다. 장애인 이용자가 수입이 없어도 함께 사는 가족 중에 소득이 있다면 역시 본인 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활동지원서비스는 말 그대로 일상 생활 등 기본적인 생존을 지원하는 겁니다. 사회에서 교육받거나, 문화 활동 등의 지원을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이런 부분을 지원하는 건 다른 복지 제도인 주간활동서비스라고 있어요.”

문제는 여기서도 이어진다. 가령 한 장애인이 지역 복지관에서 미술교육을 2시간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게 주간활동서비스다. 이 서비스를 이용한 장애인은 자신에게 보장된 활동지원 급여에서 일부 금액을 차감 당한다.

장 의원의 표현대로삶의 질을 높이는 서비스와 생존을 맞교환하는 방식인 셈이다.

장 의원 동생 혜정 씨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있다. 2022년 기준 혜정 씨는 국가로부터 120시간, 서울시로부터 30시간 총 150시간을 보장 받고 있다. 본인 부담금은 월 12만 원이다.

제주도 여행에서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를 부르는 자매의 모습. ⓒ장혜영 유튜브 캡처

의정 생활로 바쁜 장 의원은내가 동생 돌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기에 최소한 300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약 150시간이 부족한 상황. 장 의원은 이 부족 분을 사적 채용으로 해결하고 있다.

“동생에겐 두 활동지원사가 있어요. 한 분은 활동지원서비스로 고용했고, 다른 한 분은 사적으로 (채용했어요). 활동지원사가 발달장애인을 기피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언니가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활동지원사가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자부담금까지 포함해 한 달에 150~160만 원을 돌봄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어요. 지금은 제가 국회의원이니까 감당하지만, 다른 가정은 쉽지 않겠죠.”

장 의원은 오늘날 시설에 있는 사람 80%가 발달장애인이라는 점에서 탈시설과 활동지원서비스는 깊은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발달장애인 곁에 누가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아마 그의 어머니일 가능성이 높아요. 아니면 형제자매, 그중에서도 여성일 가능성이 크죠. (중략) 발달장애인 일상을 상시적으로 지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 가족을 시설로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돌보는 사람을 가족이 아닌 사회의 자원으로 고용한 누군가로 바꾸는 것이, 탈시설에 있어서 활동지원서비스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장 의원은 “탈시설은 욕구 이전에 권리의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정책적으로 탈시설을 하기 전에 당사자의 ‘탈시설 욕구’를 조사해요. 당사자의 욕구는 중요하니까요. 그러나 이 접근은 오히려 의사소통이 어려운 장애인의 탈시설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를 박탈당한 구조적 문제를 유념해야 합니다”

장 의원은 동생과 함께 한 지난 5년을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노력한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시설에서의 삶은 인간적이지 않아요.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박탈당했으니까요. 제 곁의 가까운 사람이 겪은 박탈당한 삶, 그가 나와 동등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지난 5년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었어요.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기도 했구요.”

장 의원은 윤설열 정부의 장애인 복지 정책에 대해보건복지부 장관도 없는 상태에서 원칙도 의지도 없다고 평가했다.

“이전 정부 역시 한계는 있었지만, 등급제 폐지와 탈시설을 국정과제로 설정하는 등 방향만큼은 옳았거든요.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권 지우기에만 골몰하고, (좋은 정책) 이어받기는커녕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지난 5월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국정과제에는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모델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장 의원은발달장애인 24시간 국가 책임제하고 비슷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최중증이라는 말이 앞에 온다는 건 다시 등급을 매겨서 장애인을 분류하겠다는 얘기예요. 그 과정에서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규정할지 자의적인 기준들이 생길 테고, 지원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다시 사각지대로 밀릴 가능성이 높아진 거죠.

친구 결혼식에 참석한 자매. 가운데가 혜정 씨이고 옆 노란마스크 쓴 사람이 장 의원이다. ⓒ셜록

장 의원은가장 취약한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모두가 인간답게 산다는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철학 위에서 원칙이 나오고 예산을 어느 정도까지 쓸지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윤석열 정부의 장애인 정책은 동정과 시혜라는 프레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듯해요.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라는 관점으로 장애인 정책을 바라봐야 합니다.”

장혜영 의원은 지난 4 20일 활동지원서비스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은미 정의당 의원 등 10명과 함께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법률안의 핵심은 활동지원수급자격 결정통지 시 종합조사표 항목별 점수 표시, 본인부담금 조항 삭제, 다른 사회서비스 이용 시에도 활동지원급여 차감 없이 제공, 3년마다 장애인활동지원 기본계획과 실태조사 등이다.

딱딱한 법률의 핵심은 결국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도 무사히 노년에 이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장혜영 의원 인터뷰 전후로, 그가 작사 작곡한 노래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를 자주 들었다. 노래는 이런 내용으로 끝이 난다.

‘언젠가 정말 할머니가 된다면 

역시 할머니가 됐을 네 손을 잡고서

우리가 좋아한 그 가게에 앉아 

오늘 처음 이 별에 온 외계인들처럼 웃을 거야’

장 의원만의 꿈이 아니다. 많은 발달장애인 가족이 비슷한 꿈을 꾼다. 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굶어 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웃으며 살아가는 꿈.

대한민국에선 여전히 외계인을 직접 만나는 것 만큼이나 이루기 어려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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