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주진우 전 <시사인> 기자가 또 선거법 위헌을 이끌어 냈다. 두 사람과 변호인단은 한 사건에서 두 번째 위헌을 받아냈다는 점에서 헌정사에 새 역사를 새겼다. 

헌법재판소는 김 총수와 주 전 기자가 “공직선거법 제103조 제3항은 집회의 자유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며 청구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위헌을 결정했다고 21일 밝혔다. 

문제가 된 선거법 제103조 제3항은 이렇게 규정돼 있다. 

“누구든지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향우회ㆍ종친회ㆍ동창회ㆍ단합대회 또는 야유회, 그 밖의 집회나 모임을 개최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률에 대해 “선거에서의 기회 균등, 공정성을 해치는 것이 명백하다고 볼 수 없는 집회나 모임의 개최, 정치적 표현까지 금지·처벌하고 있다”며 “심판대상조항(제103조 제3항)으로 인하여 달성할 수 있는 공익의 정도가 중대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법재판소는 “일반 유권자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집회나 모임을 개최하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함에 따라, 사실상 선거와 관련된 집단적 의견표명 일체가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집회의 자유,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 정도는 매우 중대하다”며 위헌을 결정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왼쪽)와 주진우 전 <시사인> 기자. ⓒ 오마이뉴스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전 기자가 이런 심판 결과를 이끌어내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2016년 기획 ‘선거 축제, 누가 가로막나’를 통해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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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제19대 총선이 열린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당시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열풍 속에서 대중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김 총수 등은 총선 선거운동 기간인 2012년 4월, 서울-부산에서 <나는 꼼수다> 오프라인 콘서트를 열고 민주통합당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특히 그해 4월 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삼두노출’ 행사가 문제가 됐다. 당시 주 기자는 “우발적으로 집결하라! 4월 8일 오후 4시 11분, 서울광장 나꼼수 삼두노출 대번개”라는 글을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삼두노출’은 그해 3월 13일,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손수조 후보(부산 사상)가 벌인 카퍼레이드를 패러디한 행사다.

제19대 총선 때 부산 사상에 출마한 손수조 새누리당 후보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두 사람은 카퍼레이드를 진행해 선거법 위반 논란을 불렀다. ⓒ 오마이뉴스

주 기자 등의 안내 공지에 따라 서울광장에는 시민 5000여 명이 모였다. 김 총수, 주 기자 등은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당시 서울 노원갑 출마) 등의 지지를 당부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행사 직후 두 사람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두 사람을 세 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두 사람이 언론인 선거운동을 금지한 법(당시 선거법 제60조)을 어기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집회(선거법 제103조 제3항)”을 열었으며, 집회 현장에서 마이크(선거법 제91조 제1항)를 잡고 특정 후보 지지 연설한 점을 문제 삼았다. 

두 사람은 1심 재판부에 선거법 제60조, 제103조 제3항이 위헌에 해당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재판부는 언론인 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제60조에 대해서만 제청했다.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전 기자는 선거법 제103조 제3항에 대해서는 헌법소심판을 청구했다. 

두 사람은 과도한 기본권 제한으로 비판을 받아온 두 선거법 조항을 다른 방법으로 각각 위헌법률심판대에 올려 놓은 셈이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6월,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 조항(선거법 제60조)에 대해서 위헌을 결정했다. 그렇게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 법률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6년 뒤, 헌법재판소는 선거운동 기간 중 집회를 금지하는 선거법 제103조 제3항에 대해서도 위헌을 결정했다. 

‘한 사건에서 두 번 위헌 결정’이라는 이례적인 성과를 거둔 상황. 그렇다고 김 총수와 주 전 기자가 모든 혐의에서 벗어난 건 아니다. 선거운동에서의 확성장치 사용을 제한한 선거법 제91조 제1항 위반 혐의가 아직 남았다. 

헌법재판소는 “확성장치의 사용을 제한 없이 허용할 경우 경쟁적인 사용에 따라 소음이 증폭되어 피 해를 확산시킬 수 있다”며 재판관 전원일치로 21일 합헌을 결정했다.

김어준-주진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선거법에는 금지조항이 가득하다. 여러 법률가와 시민단체 등은 “선거법이 오히려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하며 선거법 개정을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다. 

지난 2012년 4월 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일명 ‘삼두노출’ 행사 모습. ⓒ 오마이뉴스

김 총수와 주 전 기자를 대리해 두 차례 위헌을 이끌어낸 박성철 변호사는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정치적 표현과 선거운동에 대하여 ‘자유를 원칙으로, 금지를 예외로’ 해야 하고, ‘금지를 원칙으로, 허용을 예외로’ 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의 자유에 대한 금지를 원칙으로 삼는 위헌적인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변호사는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유권자가 주권을 행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으면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담보되기 어렵다”며 “선거의 자유를 해하는 행위를 명확하게 열거하여 금지하고 나머지는 허용하는 방식으로 (선거법) 구조를 변경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선거기간 중 시민들이 현수막 등 그밖의 광고물 및 문서·그림 등을 게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선거법 제90조 제1항, 제93조 제1항에 대해서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 불합치를 결정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어깨띠, 옷, 표찰 등을 이용한 선거운동을 제한한 공직선거법 제68조 제2항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위헌, 헌법불합치 결정이 줄줄이 나와도 여전히 선거법에는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규정이 수두룩하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원작 중 하나인 <왜 나는 그들을 변호사는가>를 쓴 신민영 변호사는 책에서 “우리나라 법 중 가장 악법은 무엇일까. 국선전담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접한 법 중 가장 악법에 가까운 법은 공직선거법”이라고 적었다. 

신 변호사는 22일 <셜록>과의 전화통화에서 “선거법 조항에 대한 몇 차례 위헌 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자유를 원칙으로 금지를 예외로’ 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했지만 여전히 금지되는 행위는 광범위하다”며 “선거운동 기간에는 입 닫고 있다가 정부가 정해주는 투표날에 가서 투표나 하라는 건 독재국가에서나 어울리는 사고방식”이라고 대폭적인 선거법 개정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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