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에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헌법재판소는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지난 6월 30일 위헌을 결정했다. 그동안 한국은 선거법 제60조를 통해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원천적으로 금지해왔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주진우 ‘시사인’ 기자는 지난 2012년 제19대 총선 때 김용민, 정동영 민주통합당 후보 등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는 등 선거운동을 했다. 검찰은 두 사람이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을 어겼다며 기소했다.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기자는 해당 법률이 언론인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선거운동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 등으로 2012년 11월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서를 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헌법재판소는 3년여 만에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핵심 이유는 중 하나는 이렇다.

“심판대상조항들은 언론인의 선거 개입으로 인한 부작용과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그와 같은 문제는 언론매체를 통한 활동의 측면에서 즉, 언론인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그 지위에 기초한 활동으로 인해 발생 가능한 것이다. 반면,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지 아니하고 정당 가입이 허용되는 언론인에게, 언론매체를 이용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선거운동을 하는 것까지 전면적으로 금지할 필요는 없다.“

더불어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조항들은 개인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제한하는 것이고, 공익의 확보에 추가적으로 기여하는 바는 미미하다는 점에서 법익의 균형성을 충족하지 못하고, 선거운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여러 언론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법원이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는 섣부른 보도이다. 실제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한국의 선거법에는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 외에도 여러 ‘금지 조항’이 가득하다. “누구든지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향우회·종친회·동창회·단합대회 또는 야유회, 그 밖의 집회나 모임을 개최할 수 없”으며(선거법 제103조), 마이크 등 확성장치를 이용한 선거운동에도 제약이 있다.(선거법 제91조)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기자는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만 어겨 기소된 게 아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두 사람이 선거법 제103조와 제91조도 어겼다고 적혀 있다.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 조항이 사라져도, 검찰은 두 사람을 처벌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할 수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와 검찰은 2012년 4월 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일명 ‘삼두노출 퍼포먼스’를 문제 삼았다. 이 행사에서 김어준, 주진우는 차량의 선루프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총선에서 김용민 후보 지지와 ‘가카심판’ 등을 이야기했다.

그해 3월에 있었던,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손수조 후보(부산 사상)의 카퍼레이드를 패러디한 이 행사에 시민 5000여 명이 참여했다. 여러 시민이 웃고, 떠들고, 즐긴 이 행사에 선관위는 선거법을 적용해 김어준, 주진우를 검찰에 고발했다.

주진우(왼쪽) ‘시사인’ 기자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 오마이뉴스

선거법에 따르면 ‘삼두노출 퍼포먼스’ 행사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집회”이며, 김어준-주진우가  마이크를 잡고 광장의 시민에게 말한 건 ‘불법 행위’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김어준, 주진우에 대해 충분히 공소를 유지할 수 있다.

위 선거법 조항은 표현의 자유, 선거운동의 자유 등을 제약한다고 지적받는 대표적인 독소조항들이다. 여러 학계, 법조계, 시민단체 인사들은 위 조항의 삭제 혹은 개정 등을 요구해왔다. 이 법률을 근거로 처벌받을 위기에 처한 사람은 김어준, 주진우만이 아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6월 16일, 제20대 총선에서 낙천-낙선 운동을 벌인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총선넷)’ 활동가와 시민단체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은 시민단체 참여연대 등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가져갔다.

선관위와 경찰이 문제 삼는 총선넷의 행위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부적격 인물로 선정된 후보 선거사무소 앞에서 총선넷이 연 기자회견은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집회가 됐다. (선거법 제103조 위반)

총선넷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구멍 뚫린 피켓’을 든 건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문서-도화, 인쇄물”의 배부 등을 금지한 선거법 제93조 제1항을 어긴 불법행위가 됐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최악의 후보를 선정하는 ‘원스트 10’ 행사는 ‘여론조사의 결과공표금지’를 규정한 선거법 제108조를 어긴 행위로 간주됐다.

이렇게 선거법은 유권자의 자유로운 행동을 촘촘하게 규제하고 감시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선거법이 오히려 선거의 자유와 시민의 권리를 제약하는 모양새다.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법률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환영할 일이다. 여기에 더해 온갖 제약 투성이인 선거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때마침 오는 7월 7일 국회에서 시민사회 출신 의원모임인 ‘국회 시민정치포럼’ 주관으로 선거법 개정 토론회가 열린다.

한국은 유권자가 자기 집 대문에 ‘나는 OOO 대통령을 희망합니다’라는 종이 하나 자유롭게 붙일 수 없는 나라다. 이런 사회가 과연 민주국가인지, 이런 선거법을 그냥 둔 채 내년 대선도 조용히 치러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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