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에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나는 오세훈 안 찍어!”

축구경기에서 심한 반칙을 한 선수의 ‘퇴장’을 의미하는 레드카드 위 글자가 선명하다. ‘오세훈’은 흰색, 다른 글자는 검은색이다. 딱 보면, 붉은색 종이 위에 글자를 새긴 것 같다.

하지만 ‘오세훈’과 ‘나는 안 찍어’는 한 몸이 아니다. 붉은색 종이 위에는 ‘나는 안 찍어’만 적혀 있다. ‘오세훈’으로 채워진 부분은 사각형 구멍이 뚫린 빈 공간이다.

지난 제20대 총선 때 2016총선시민네트워크는 기자회견에서 구멍 뚫린 피켓을 들었다. 선관위는 이 행동도 문제 삼아 안진걸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 오마이뉴스

어떤 사람이 구멍 뚫린 이 종이를 서울 종로 오세훈 후보 선거사무소 앞에서 들었다. 선거사무소가 입주한 건물 외벽에는 오 후보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기자는 구멍 뚫린 종이와 현수막을 절묘하게 겹치도록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나는 오세훈 안 찍어!’ 문장이 완성됐다.

이상하고 재밌는(?)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퍼포먼스로 누군가 검찰에 불려갈 신세가 됐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4월 12일 누군가를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고발당한 사람은 누굴까. 구멍 뚫린 종이를 든 사람? 아니면 저렇게 사진을 찍은 사진 기자?

미안하지만 ‘누가’ 검찰에 불려가는지는 잠시 뒤로 미루자. 총선 이후 2개월이 지났지만 검찰은 아직 그를 부르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살피자. 한국의 선거법 제93조 제1항은 이렇게 규정돼 있다.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정당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 – 선거법 제93조 제1항

한마디로, 누구든지 지지하든 반대하든 특정 후보 혹은 정당 명칭을 넣은 유인물, 피켓, 현수막 등을 배포·게시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가족을 죽인 원수가 출마해도, 탈세 병역회피 전력이 있는 부적격 인물이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서도 시민은 반대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살아온 삶이 바르고 정책도 좋아 시민을 대표하기에 딱인 인물이 출마해도 그를 지지하는 표시를 마음껏 할 수도 없다.

‘OOO 후보를 찍지 마세요’ 혹은 ‘@@@ 후보를 지지해 주세요’라고 적힌 유인물 한 장 시민에게 돌리고 싶다면 검찰에 불려갈 각오를 해야 한다. 도화지 한 장에 “저는 OOO 대통령을 희망합니다”라고 적어 대문에 붙이려면 전과자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선거기간에 시민의 정치표현의 자유는 거의 봉쇄된다. 선거법이 유권자의 입에 자물쇠를 채운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후보자, 운동원 등을 제외한 모든 시민은 입에 채워진 자물쇠를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과도한 규제가 가득한 선거법, 우스꽝스런 상황까지 낳았다.

자, 위의 붉은색 종이에는 ‘나는 안 찍어!’만 적혀 있다. 정당과 후보자 이름은 없다. 누구를 안 찍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저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 단체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총선넷)’의 안진걸 공동운영위원장(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피켓에 구멍을 뚫어 퍼포먼스를 했는데, 이젠 그것마저도 문제 삼네요. 그럼 시민은 선거기간에 뭘 하라는 건가요?”

지난 5월 27일 오후 서울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안진걸 사무처장은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그럴 만하다. 그 혹은 어느 누구도 ‘나는 오세훈 안 찍어!’라고 쓴 사람은 없다. 그렇게 사진이 찍혔을 뿐이다. 안진걸 사무처장에게 책임을 묻는 게 합당한 일일까? 고발 당사자인 선관위에게 물어봤다.

  • 구멍 뚫린 피켓이 고발할 만한 일인가요?

“총선넷에서 ‘난 오세훈 안 찍어!’라고 쓰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사진을 사진을 찍도록 유도를 했으니까요”

  • 유도를 한 게 잘못인가요?

“뭐, 그런 건 검찰이 판단하겠죠”

  • 선거법 제93조는 후보자, 정당 이름을 적시하지 말라는 거잖아요. 

“그게..사실 단속하는 우리도 참 답답한 면이 있습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긴 합니다”

선관위 직원마저 답답함을 토로하고 변화를 언급하는 상황. 문제는 구멍 뚫린 피켓이 아니다. 행사를 기획한 총선넷, 혹은 사진 기자에게 책임을 묻기도 애매하다. 선거법 그 자체가 문제다. 후보자 이름, 정당 명칭을 적시한 모든 게시물을 금지하다니. 이게 합당한 일일까?

“명칭만 금지하는 게 아닙니다. 후보자, 정당을 유추할 수 있는 것도 안 돼요. 가령 ’53훈을 찍지 맙시다’라고 해도 불법이에요. 더민주를 상징하는 파란색 옷도 안 되고, 새누리당을 연상케 하는 붉은색 조형물도 문제될 수 있습니다. 후보자 닮은 인형이나 탈을 제작해 거리에서 지지-낙선 운동에 활용해서도 안 됩니다. 이게 현실에 맞는 법입니까?“

총선넷은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제20대 총선 때 낙천-낙선 운동을 벌였다. 행사를 할 때마다 선관위에 ‘가능한 행동과 가능하지 않은 행동’을 일일이 확인했다.

선거법에 따르면 총선넷은 자신들이 선정한 국회의원 부적격 후보 선거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구호를 외치는 행위는 집회로 볼 수 있어 선거법 제103조 규정에 따라 금지된다. 마이크를 이용해서도 안 된다. 선거법은 제91조는 확성장치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선관위는 안진걸이 이 모든 걸 어겼다고 보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참여연대

“후보 이름 들어간 현수막도 금지, 구호도 금지, 마이크도 금지… 세상에 이런 선거법이 또 있을까 싶어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총선넷 활동 기간 내내 엄청 답답했습니다.나쁜 정치인 비판할 때 통상적으로 집회, 기자회견, 1인시위, 피켓 들기, 삼보일배 등 별 걸 다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선거기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선거운동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선거법이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거죠“

총선넷은 지난 총선 때 최악의 후보 10명을 선정하는 ‘워스트(Worst) 10)’ 행사도 진행했다. 시민이 직접 총선넷 홈페이지에서 최악의 후보를 선정하는 일종의 인터넷 투표였다. 선관위는 이 행사도 문제 삼았다. 여론조사 결과공표를 금지하는 선거법 제108조를 어겼다는 이유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홈페이지에서 투표하는 게 여론조사입니까? 여론조사는 전문기관이 시민에게 전화해 뭔가를 물어보는 거잖아요. ‘워스트 10’ 선정은 비과학적인 이벤트일 뿐인데, 그걸 여론조사로 보는 것 자체가 코미디죠. 아마 고발 접수를 받은 검찰도 참 난감해 할 겁니다“

결국 안진걸이 위반한 선거법 조항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리하면 이렇다. 이것만 봐도 한국의 선거법이 얼마나 금지 위주로 짜여 있는지 알 수 있다.

제90조 제1항 – 시설물 설치 등의 금지
제91조 제1항 – 확정장치와 자동 등의 사용제한
제93조 제1항 – 탈법방법에 의한 문서, 도화의 배부 게시 등 금지
제103조 제3항 – 각종집회 등의 제한
제108조 제3항, 제5항 – 여론조사의 결과공표금지 등
제255조 제2항 5호 – 부정선거운동죄
제256조 제3항 1호 – 각종 제한 규정 위반죄
제260조 – 양벌규정
제261조 제3항 4호 – 과태료의 부과, 징수 등

“금지 위주로 만들어진 선거법을 자유롭게 확 풀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특히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하는데요. 그런 건 걱정할 게 아닙니다. 누구든 오세훈 후보를 향해 ‘무책임하게 서울시장 그만 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고, 반대로 오 후보와 경쟁한 정세균 후보를 향해 ‘정치적 고향은 전북인데 왜 뿌리도 없이 종로에 왔느냐’고 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활발한 토론 속에서 유권자가 알아서 판단하게 해야죠. 선거는 왁자지껄, 야단법석한 게 정상입니다. 술집, 거리, 광장, 유세장 등에서 후보와 정당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벌어져야죠. 그런 과정에서 더 좋은 후보가 부각되고 검증되는 겁니다. 사실 지금은 거의 ‘깜깜이 선거’잖아요. 선관위가 제공하는 정보는 공보물이 전부인데, 그걸로 좋은 후보를 뽑을 수 있겠습니까?”

이 기사에서 오세훈 후보를 주요 예로 들었는데, 사실 그는 한국의 선거문화에 좋은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일명 ‘오세훈 선거법’으로 고비용 선거문화를 바꾸고 선거비 지출 투명화를 꾀한 것도 그다. 

이제는 그 ‘오세훈 선거법’을 넘을 때다. 고비용 선거문화를 극복했으니, 시민에게 더 자유로운 선거운동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선거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언론인 선거운동은 물론이고 자기 집 대문에 ‘나는 OOO을 지지합니다’라고 붙일 수 없는 민주주의 국가는 세계에서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진심을 숨긴 채 ‘투표합시다’라는 말에 만족하며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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