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몽둥이 휘두르는 사람 사진이 첨부된 메일이 도착했을 때, 나는 썩은 생선 냄새 진동하는 전남 장흥의 한 항구에 있었다. 한 취재원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구름 없는 하늘은 바다처럼 파랬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누워 ‘쇠몽둥이 메일’을 읽었다.  

중견기업 남매의 폭행, 갑질, 부당해고, 사기행각을 제보합니다. OO실업 회장은 처우 개선 없이 한국과 베트남 계열사의 업무를 지시했습니다. 사장은 수시로 이유 없이 폭행했습니다.”

메일 제목과 도입부는 자극적이었만, 더위 탓에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땀방울이 눈으로 굴러 떨어졌다.  

“제가 베트남에서 큰 계약을 성사시키자, 회사는 저를 해고 했습니다. 제 현금, 통장, 신분증은 물론 핸드폰까지 빼앗았습니다. 지인과의 연락을 차단하고 카카오톡 계정도 삭제했습니다. 베트남 경찰을 저희 집으로 보내 추방과 협박을 시도해 결국 저는 죽지 않기 위해 야반 도주했습니다.”

21세기에 무슨 무협지 같은 소리인가 싶어 메일을 닫아버렸다. 눈을 감고 잠시 쉬었다. 6월 22일 늦은 오후의 일이다. 

2022년 6월 22일 전남 장흥에서 취재 중 무더위에 지쳐 그늘에서 쉬는 모습. ⓒ셜록

대문에 서면 바다가 보이는 낡고 오래된 집에서 취재원을 오래 만났다. 취재가 끝났을 땐 밤이 깊어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마을 앞 2차선 도로에는 버스는커녕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카카오택시도 잡히지 않았다. 콜택시 기사에게 “제발 와달라”고 사정했다. 택시는 빨라야 30분 뒤에 도착한다고 했다. 

뭐라도 하면 덜 무서울 듯해 무협지 같은 제보 메일을 보낸 낯선 사람에게 연락했다. 중년인 듯한 남성은 “지인 이야기를 대신 제보한 것”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이쯤 되면, ‘이야기 안 되는 제보’라는 감이 온다. 어쨌든 내 번호가 그에게 남았다. 

잠시 뒤,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낯선 사람이 보낸 동영상, 음성, 이미지 파일이 메신저 프로그램에 줄줄이 도착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음성 파일 하나를 눌러봤다. 

“넌 피가 더러워, 씨OO아!”

한 여성의 목소리가 낮게 퍼졌다. 바로 꺼버렸다. 이어 영상 파일 하나를 터치했다. 

“최대한 빨리 널 죽일거야 씨OO아! O같은 새X야!”

역시 바로 화면을 내렸다. 깊은 밤, 아무도 없는 바닷가마을 도로에서 혼자 보긴 좀 그랬다. 저 멀리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택시 불빛이 보였다.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파일을 보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에서 일하는 박상규 기자입니다.”

“네…. 근데, 어디 소속 기자라구요?”

이쯤 되면, 역시 감이 온다. 이 남자, 파일을 나한테만 보낸 게 아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나는 것도 체면 안 서는 일이다. 

“얼굴 보면서 이야기 나눠보는 게 어떨까요?”

택시가 도착했다. 뒷좌석에 앉아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다른 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대낮에 본 메일에 첨부된 사진 속 인물이 살아 움직였다. 한 여성이 쇠몽둥이를 들고 누군가를 향해 휘두르고 찔렀다. 낯선 남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최대한 일찍 만나면 좋겠는데… 괜찮을까요?”

이틀 뒤에 만나는 걸로 약속이 잡혔다. 그는 파일을 더는 보내지 않았다. 이미 그가 보낸 파일 소화하기도 벅찼다. 제보자 김대식(1980년생. 가명)을 6월 24일 오후 인천광역시 한 카페에서 만났다. 

175cm 정도의 키에 어깨가 넓은 김대식은 몸집과 주먹이 컸다. 머리는 일명 ‘스포츠 스타일’로 짧았다. 이마를 덮는 머리카락이 없어서 그런지 쌍꺼플 진한 큰 눈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목을 덮는 머리도 없어 그의 뒤통수 아래 목 부분에 칼로 베인 듯한 상처도 눈에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서 작은 건 입뿐이다. 

(주)승일실업 오너 가족 밑에서 12년 일한 김대식(가명). ⓒ주용성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조폭’ 느낌을 주는 인물. 사장에게 오랜 세월 맞고, 폭언을 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은 물리적 힘이 세서 사람을 때렸습니까? 자기가 기업 오너, 사장, 회장이니까 권력으로 패는 거죠. 저도 똑같아요. 참다 못해 저도 가끔 저항하고 대들기도 했지만…. 사장, 그것도 오너 이기는 노동자가 몇 명이나 됩니까? 저는 하루 아침에 잘렸는데….”

내 표정이 여전히 찜찜했는지, 김대식이 말을 이었다. 

“세상 모든 곳이 기자님이 속한 세상이랑 똑같다고 생각하면 안 되죠. 작은 중소기업, 특히 해외에서는 얼마나 이상한 일이 많이 벌어지는데요. 다들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모욕 참아가면서….”

그는 부리부리한 눈을 찡그리며 말을 흐렸다. 가방에서 흰색 노트북을 꺼냈다. 하고 싶은 말도, 가지고 있는 자료도 많은 듯했다. 

“기자님 제가 베트남에서 2010년부터 일을 했는데요. 회사에서 근로계약서도 안 주고, 급여는 현금으로 줬다가 계좌로 넣었다가, 강제해고 하더니 우리 엄마한테 퇴직금 보냈다 하고….”

폭탄처럼 전송한 수많은 파일처럼 김대식의 입에서는 두서없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몸집만 큰 줄 알았는데, 목소리도 컸다. 입을 열때마다 카페가 울렸다. 그의 말은 암호를 해독하듯이 하나하나 분리하고, 분해해서 들어야 했다.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았다. 김대식이 한국과 베트남에서 10년 넘게 겪은 일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김대식은 (주)승일실업 창업주 가족과 2010년부터 인연을 맺었다. 승일실업은 아파트 베란다 철제 난간을 생산-공급하는 회사다. 당시 국내 아파트 약 70%에는 승일 제품이 쓰였다. 지금도 국내 점유율 50%를 놓친 적 없는 ‘난간대 한국 넘버원’ 회사다. 이를 토대로 승일은 건설, 인테리어 사업에도 진출했다. 

창업주 아들 김재웅이 (주)승일실업 대표이사다. 그의 여동생 김은경은 승일 관계사 (주)RED의 사장이다. 김대식은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오빠 회장님 회사 측과 여동생 사장님의 지시를 받으며 일했다. 시키는 건 다 했고, 시키지 않은 일도 알아서 찾아서 했다. 

김대식(가명)은 베트남에서 사장의 개를 돌보기도 했다. ⓒ김대식

한국의 모 회장님이 베트남에 오면 운전기사를 했고, 술 마시고 싶다고 하면 술집을 알아봤고, 골프를 치고 싶다고 하면 골프장을 예약했다. 어떤 사장님은 굳이 베트남에서도 꼭 삼다수를 마셔야 한다고 해서 왕복 8시간, 수백 Km를 달려 삼다수를 배달했다. 

승일실업의 제품이 베트남에 오면 배달 잘 됐는지 살폈고, 난간대 영업도 했다. 사장님이 강아지를 맡기면 똥 치우고, 목욕시키고, 산책도 시켰다. 

사장님 딸 모 대기업 인턴채용 서류도 김대식이 배달했다. ‘뇌물성’으로 롤렉스 사서 모 기업 간부에게 배달했고, 수억 원짜리 외제차도 법인명의로 뽑아 모 대학 모 교수에게 전달했다. 오너 가족과 친인척 관련 심부름도 했다. 

그런 와중에 베트남에서 틈틈이 승일실업 제품 영업도 뛰었다. 김대식에게 큰 기회가 찾아왔다. 베트남 대기업 건설사가 수십만 미터에 해당하는 승일의 나간대를 해마다, 그것도 10년간 독점 공급받기로 했다. 

김대식(가명)은 승일실업이 생산하는 난간대 영업을 하다 베트남에서 큰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 뒤 그는 해고됐다.

승일실업이 베트남에서 한 번도 이룬 적 없는 성과였다. 베트남에서 교민용으로 발행하는 매체 ‘베트남-코리아 타임즈’는 이런 제목으로 소식을 전했다. 

‘한국 1위와 베트남 1위 건축자재 생산업 간의 랑데뷰’

베트남 대기업과 악수하는 김대식의 사진도 신문에 실렸다. 영광은 여기까지.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는 건 당연한 일일까? 큰 계약을 성사시키자마자 김대식은 해고됐다. 

오너 남매는 모두 김대식을 외면했다. 승일실업 측은 “김대식은 우리 직원이 아니다”라고 했고, RED는 “자기가 원해서 그만뒀다”는 사실과 다른 말을 했다. 주변 사람들에겐 “마약쟁이, 횡령범”이란 거짓 소문도 퍼트렸다. 

김대식은 억울했다. 자기의 꿈과 오너 일가를 위해 일한 10여년 세월도 눈에 밟혔다. 명예회복을 하고 싶었다. 자신이 당한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당혹스러워했다. 내가 한마디로 정리해 툭 던졌다. 

“토사구팽 당한 거네. 사냥이 끝났으니… 뭐, 사냥개를 잡은 거죠.”

많이 불쾌한지 김대식이 큰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한동안 말 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게요. 10여년간 충성하며, 사장님 강아지 똥도 치웠는데…. 이젠 제가 유기견이 됐네요.”

그에게 솔직히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타까운 건 알겠는데, 김대식 선생님 이야기는 너무 어려워요. 고용관계는 복잡하고, 베트남 주재원 이야기는 난해하고. 이런 이야기를 독자가 좋아할지도 모르겠구요. 좀 더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카페를 뜨려는데 김대식이 큰 눈을 찡그리며 크게 말했다. 

“내 이야기가 복잡한 게 아니라, 기자님 마음이 복잡한 거 아니에요? (잠시 침묵) 아니, 솔직히 제 이야기가 삼성, SK 같은 대기업에서 벌어진 것이었으면 좋구나 하면서 보도할 거잖아요. 구도 좋고, 그림도 좋으니까. (침묵. 빤히 보며) 아니에요?”

이번엔 내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근데, 그거 알아요? 대기업에선 제가 겪은 일 같은 건 잘 안 벌어져요. 쌍욕 듣고, 때려면 두들겨 맞고, 개똥 치우고, 성과 내니까 해고 당하고…. 이런 일은 감시 덜 받는 중소기업에서 벌어져요.”

맞는 말이어서 할말이 없었다. 

“다른 매체 기자들도 그래요. 제보했더니, 제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다들 자극적인 영상만 달래요. <셜록>도 그런 거 아니에요? 자극적인 걸로 한 번 보도하고, 그렇게 취재원 버리는 거 아니에요?”

인천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머리가 복잡했다. 김대식의 말을 100% 부정하긴 어려웠다. 대한민국 직장인 중 약 90%는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다니지만, 기자의 눈은 대개 대기업에 쏠린다. 

김대식(가명) 한국 기업인에게 고가 시계를 배달(?)하기도 했다.

실력이 되든 안 되든, 기자들은 ‘큰놈’과 대결하길 원한다. 이런 쏠림 속에서, 작은 집단의 대장들은 감시의 눈이 없는 곳곳의 골목에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착취한다. 김대식이 겪은 일은 딱 이런 식이다.  

 집에 도착할 즈음, 김대식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개싸움 할 용기가 있습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제가 못할 게 뭡니까. 유기견도 코너에 몰리면 싸워야죠. 날 죽이겠다는데, 나도 한 번은 물어봐야죠.”

전화를 끊자 다시 영상, 음성, 사진 파일이 줄줄이 내 스마트폰에 도착했다. 여전히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다만 이번엔 김대식의 짧은 설명이 덧붙여졌다. 

‘모 대학에 전달된 수억 원짜리 외제차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OO기업 간부에게 전달된 롤렉스 시계.’

‘명품 백, 명백 옷….’

‘수상한 자금 조성….’

이런 문자도 왔다. 

“<셜록>이 취재한다고 하면 주려고, 안 까고 쟁여 놓은 게 많습니다.”

지금부터 프로젝트 <사냥은 끝났다, 개를 잡아라>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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