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비상을 꿈꾼다. 파일럿이 되어 비행기를 조종하거나, 한 분야에서 최고 경지에 이르는 꿈. 김대식(80년생, 가명)은 이 둘 모두를 희망했다. 

없는 집 자식이 무모한 꿈을 꾼 게 문제였을까? 강제 해고를 당해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몰락한 지금, 정신과 약을 입에 털을 넣을 때면, 자기를 자른 사장님 말이 종종 떠오른다.  

“전문대 나오고 너 뭐 내세울 거 있어? 너네 엄마 아빠 뭐?”

중견기업 창업주의 딸이어서 그런지 사장님은 기분이 틀어지면 학력 등 출신 성분을 따지곤 했다. 사장님은 다른 것도 지적했다. 

“빽도 없고, 돈도 없고, 니네 엄마 아무것도 없고.. 나한테 상대해 봤자야.”

정말이지 김대식은 없는 것 투성이다. 건설사에 해외 부동산까지 거느린 창업주의 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사장님이 막말을 하고, 때로는 부모님을 욕해도 꾹 참은 건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다. 

없는 집 자식들은 참아야 먹고 살 수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참는 거다. 

승일실업 오너 일가 밑에서 일했던 김대식(가명). 그는 최고 실적는 낸 직후 강제 해고됐다. ⓒ주용성

김대식은 학창 시절 파일럿을 꿈꿨으나 공부 실력은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 그는 2년제 전문대에서 인테리어를 전공했다. 비행기 조종석에 앉지 못하고 망치, 톱, 줄자 들고 먼지 뒤집어 쓰고 일했다.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 폐허의 현장이 그의 손을 거치면 반짝반짝 빛이 났다. 

김대식은 인테리어, 거칠게 말하면 ‘노가다’에 소질이 있었다. 일의 시작과 끝을 볼 줄 알았다. 현장과 도면을 살피면서 견적을 내고, 자재를 주문하며, 다른 노동자도 쓸 줄 알았다. 한국의 일부 슈퍼카 딜러 매장도 김대식의 손을 거쳤다. 

인테리어에서 두각을 나타낸 김대식은 2010년 (주)승일실업 창업주 가족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건설되는 아파트 발코니 70%에는 승일실업의 철제 난간대가 쓰였다. 한국의 아파트 발코니, 계단 철제 난간은 대개 승일 제품이라 생각하면 된다. 국내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승일실업은 이를 토대로 종합건설, 물류사업에 뛰어들고 2005년 베트남에도 진출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 2020년 6월 2일 난간업체인 승일실업과 발코니 난간 특허권·디자인권에 대한 통상실시권 계약을 체결했다. ⓒLH

그 즈음 승일실업 창업주 김상용의 딸 A 씨는 베트남 호치민시에 인테리어 전문 B 업체를 설립했다. 김대식은 2010년 5월 8일부터 베트남 B 업체에서 일했다. 시작부터 뭔가 이상했다. 

아버지 회사 승일실업과 딸이 운영하는 회사는 ‘건축 분야’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대식은 베트남에 도착하자마자 두 회사 승일실업-B 업체의 일을 했다. 

“일명 노가다 하는 사람이라고 무시를 하는 건지, A 사장은 아버지 회사 승일실업 일까지 시키더라구요.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 OO건설이 짓는 아파트 난간대 AS부터 모델하우스 관련일까지, 오너 일가 쪽에서 체계 없이 업무지시를 해 그만 두겠다고 했죠.”

그러자 A 사장과 승일실업 쪽에서 “조금만 참고 일만 잘하면 승일실업 베트남 주재원 자격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해외 주재원 자격, 세계 1위를 다투는 반도체나 배터리를 만드는 글로벌 회사가 아니어도 김대식에겐 솔깃한 제안이었다. 

세계 1위가 아니면 어떤가. 승일실업은 ‘아파트 철제 난간대’ 대한민국 1위 기업 아닌가. 산업화, 도시화가 한창인 베트남에 진출한 회사이기도 하고. 김대식은 그 제안을 믿었다. 오너 일가의 눈에 들고 싶었고,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어느 날 A 사장이 김대식에게 말했다. 

“김대식 씨, ‘목바이’에 가서 일 좀 해야겠는데.”

태어나 처음 듣는 지명 베트남 목바이. 검색해 보니 캄보디아와 맞닿은 국경 인근, 호치민시에서 차로 편도 네 시간 걸리는 곳이었다. 나이키 신발을 생산하는 한국 기업 태광실업이 목바이에 대규모 공장을 짓는다고 했다.  

베트남-캄보디아 국경에 있는 목바이의 건설현장. 김대식(가명)은 호치민시에서 편도 4시간 걸리는 이 현장에서 일했다. ⓒ김대식

김대식은 오너 일가가 시키는 건 다 했다. “목바이 까짓 거.. 못 할 것도, 못 갈 곳도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땐 몰랐다. 그 현장이 수도, 전기 등 기본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란 걸 말이다. 

김대식은 오지나 다름 없는 현장에서 약 1년 체류하며 노동자 기숙사, 쇼룸 등의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현장은 승일실업 관계사의 창호(일명 샷시)를 썼다. 김대식은 B 업체와 승일실업 양쪽 일을 한 셈이다. 

그런 와중에 편도 4시간을 달려 호치민시의 공사 현장도 챙겼다. “정말이지 열심히, 때로는 개처럼” 일했다. 파일럿 꿈을 접은 김대식 가슴에 새 희망이 생겼다. 

“오너 일가에 잘 보여서 베트남 주재원 자격을 얻고 싶었죠. 해외 비즈니스 세계에서 내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고…. 어쨌든 폼도 나잖아요, 해외 주재원. (웃음)”

2010년 7월, 승일실업 창업주 김상용 회장이 사망했다. 이듬해 1월 그의 아들이자 A 사장의 오빠 김재웅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김대식의 능력을 인정했는지, 승일실업은 2011년 9월 김대식을 직원으로 등록했다. 4대보험도 가입했다.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승일실업은 2012년 12월, 김대식을 퇴사처리 했다. 의사도 묻지 않고, 회사가 마음대로 진행했다. 김대식은 한참 뒤에야 해고 사실을 알았다. 

“오빠 회사에선 자르고, 여동생 회사에서 급여 받으라는 건지…. 월급도 회사가 아닌 타인 이름으로 보내더니, 오너 남매 회사가 사람을 마음대로 이리저리 등록하더라구요.”

김대식은 B 업체 소속으로 베트남에서 인테리어 업무를 하면서 틈틈이 승일실업 쪽 창호 영업도 했다. 베트남에서 진출한 국내 건설사 미팅에 승일 쪽 사람으로 그가 참가한 적도 있다. 어쨌든 오너 일가 쪽이 시키는 건 다 했다. A 사장의 폭언 폭행을 견디면서 말이다. 

2017년 12월,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김재웅 승일실업 회장 측이 “할 이야기가 있다”며 김대식을 한국으로 불렀다. 김 회장은 베트남에 진출한 모 대기업의 건설 관련 일을 부탁했다. 김대식은 회장의 지시를 잘 처리했다. 

2018년 2월 김재웅 회장은 다시 김대식을 한국으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회장님은 승일실업이 생산하는 난간대 영업을 베트남에서 해보라고 저에게 직접 제안했습니다. 2005년부터 베트남에 진출했는데, 큰 실적이 없다면서요. 좋은 성과가 나오면 승일실업의 물류, 시공 등의 일을 저에게 온전히 맡기겠다고 했거든요.”

김대식은 김 회장에게 주재원 자격 회복 등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승일실업은 김대식에게 차장, 부장 직함이 달린 명함을 지급하고 회사 인트라넷 계정을 부여했다. 

김대식은 영업에 자신 있었다. 베트남 체류 8년으로 적응을 마쳤고, 현지인 인맥도 생겼다. 잘만한다면 승일실업 베트남 총괄을 맡을 수 있다는 기대도 품었다. 김대식은 영업 관련 일이 진행될 때마다 승일실업 고위 간부 박OO에게 보고했고, 지시도 받았다. 

김대식(가명)은 승일실업이 생산하는 난간대 영업을 하다 베트남에서 큰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 뒤 그는 해고됐다. ⓒ김대식

2020년 가을, 김대식이 드디어 홈런을 쳤다.

베트남 건설-건자재 유통 대기업 ATAD가 승일실업이 생산하는 난간 ‘슈퍼레일’을 연간 최소 30만 미터씩 5년간 공급받겠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베트남 대기업 건설회사 반탓(BAN THACH)은 연간 최소 18만 미터의 ‘슈퍼레일’을 10년간 공급받겠다고 나섰다. 

큼직한 장외 홈런이다. 계약이 체결될 즈음인 2020년 10월 30일, A 사장은 김대식에게 텔레그램으로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너는 아버지가 보낸 선물인가봐.”

A 사장이 흥분할 만한 이유가 있다. 김대식이 따낸 계약은 금액으로 따지면 수백 억 원에 이르는 초대형 계약이자, 2005년부터 베트남에 진출한 승일실업이 한 번도 달성하지 못한 실적이었다. 

김대식의 실적은 베트남 한인 사회에서도 화제였다. 현지 한인신문 ‘베트남-코리아 타임즈’는 김대식과 ATAD 대표가 진행한 2020년 12월 2일 계약식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보도했다.

“ATAD는 태국,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캄보디아에도 진출하여 왕성한 해외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승일실업의 슈퍼레일을 수입하여 이곳을 포함하여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호주, 뉴질랜드 등 11개국에 판매할 전략을 세우고 있다.”

당시 계약식에는 김종각 한인회장, 임재훈 호치민총영사도 참여했다. 반탓(BAN THACH)과의 계약은 2021년 2월 4일 진행됐다. 

김대식(가명)의 영업으로 베트남 기업 ATAD가 승일실업의 난간대를 대량 납품받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한 베트남 한인신문 기사. ⓒ베트남코리아타임즈 캡처

김대식은 꿈에 부풀었다. 승일실업에 한 번도 따낸 적 없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김대식은 스스로 인테리어 노동자가 이룩한 신화, 새로운 비즈니스맨의 역사를 쓴다고 생각했다. 

꿈은 여기까지. 김대식은 반탓(BAN THACH)과의 대형 계약 이후 약 3주 만에 B 업체에서 해고됐다. 승일실업은 “김대식은 원래 우리 직원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초대형 실적 이후의 해고,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오너 일가가 저에게 왜 그랬는지, 김재웅 회장-A 사장의 속마음이 저도 궁금합니다. 김 회장이 저에게 구두로 약속한 인센티브(1미터 당 3달러)를 안 주려는 건지, 내가 없어져야 오너 남매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인지…. 저는 해고된 이유라도 알고 싶습니다.”

A 사장 측은 “김대식이 베트남 기업과 이면 계약을 했고, 마약 투약은 물론 회삿돈을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 사장 측은 이런 주장을 1년여 동안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김대식은 2021년 봄 한국으로 돌아와 고용노동부에 김재웅 승일실업 회장과 A 사장을 고발했다. 혐의는 부당해고, 임금체불, 퇴직금 일부 미지급, 고용계약서 미작성 미교부 등이다. 

김재웅 회장 측은 고용노동부의 조사 때 “김대식은 우리 직원이 아닌 베트남 대리점 소속”이라고 주장했다. A 사장 측은 “자발적 퇴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식은 “나는 오너 일가에 이용당했고, 그들은 사냥(계약)이 끝나자 나를 버렸다”고 밝혔다. 

A 사장은 2019년 5월 김대식에게 이런 폭언을 했다.

“나는 존재하는 것 자체가 몸값이 너보다 비싸. (중략) 니네 엄마는 너를 그렇게 가르쳤니? 아빠 없는 애들은 이따위니? 어? 이혼한 가정은 이따위니? (중략) 너 같은 괴물 새끼 만든다고 니네 엄마 아주 고생하셨겠다.”

A 사장은 2020년 3월에는 이런 말도 했다. 

“내가 본 사람 중에 니가 수준이 제일 낮아. 니네 엄마, 아빠 욕은 안 하겠어. 근데 니 피는 정말 최악이고..”

A 사장의 말대로 김대식의 추락은 출신 배경 때문일까, 아니면 없는 집 자식이 꿈을 크게 꿨기 때문일까? 김대식은 “깨끗한 ‘오너 혈통’ 가족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날 왜 잘랐는지 그 이유 하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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