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번호가 스마트폰 화면에 뜨면 ‘일단 받지 않는다’는 게 오래된 나의 습관이다. 보견의료 계열 교수들이 “한 번 만나자”는 취지로 여러 번 연락했을 때도 그랬다. 꼭 통화가 필요한 일이면 문자를 보내겠지.. 하는 순간 정말 메시지가 왔다. 

“저는 서울시 OO병원에서 일하는 A 교수라고 합니다. 경희대 백종우 교수님 통해 뵙자고 연락드렸습니다. 오늘 중 편하신 시간 알려주시면 전화로 상의드리고자 합니다.”

2021년 11월 7일, A 교수에게 ‘콜백’을 했다. A 교수는 “22세 간병살인 청년 강도영 씨 문제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두 번, 세 번이 힘들지 한 번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한 번 보지 뭐, 하는 마음으로 그의 제안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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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분야 교수 6명이 그해 11월 13일 토요일 오전 8시 약속 장소에 나왔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청년과 그 가족의 아픔에 공감해 초겨울 주말 이른 아침에 이렇게들 나오시다니. 놀랐지만, 한편으론 “그래, 처음엔 다 뜨거운 법이지..” 하는 냉소적인 생각도 했다. 

그날 그 자리에 모인 교수들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같은 학회, 협의회, 혹은 OO교수협의회.. 뭐 그런 모임 중 하나라 추정했다. 무엇보다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건데, 자세히 묻는 것도 실례였다.

22세 강도영 씨는 아버지가 쓰러지고 간병을 책임지면서부터 무기력에 시달렸다. ⓒ오지원

세상의 많은 관심과 달리 강도영은 존속살해죄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을 확정받았다. 모임에서 만난 교수들의 의학적 자문과 의견서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도, 교수 6명도 이젠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다. 우리들의 ‘단톡방’ 폭파도 정해진 순서였다. 

“이대로 멈춘 순 없죠. 우리 심포지엄 한 번 합시다.”

연탄삼겹살 집에서 한 교수의 제안으로 정말 ‘간병살인 이대로 둘 것인가’ 심포지엄이 지난 5월 28일 중앙대학교에서 열렸다. 시민 약 100여 명이 오프라인-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예상 못한 반응이었다. 행사 뒤 식사자리에서 또 한 교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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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2차 심포지엄도 할까요? 여기서 그만두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두 번째 행사를 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 교수들의 모임, 끈끈해 보였다. 논의-합의-일 추진 방식이 빠르고 시원했다. 주로 A 교수가 일을 기획하고 의견을 조율하며, 섭외까지 했다.

처음엔 A 교수, 장숙랑 중앙대학교 간호대학 교수, 정혜주 보건사회정책 교수, 백종우 경희대 정신의학과 교수 등이 주축이었는데 여기에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합류했다. 보건의료에서 사회복지 쪽으로 분야가 넓어진 셈이다. 

이쯤 되니 이 교수 모임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2차 심포지엄 준비를 위해 지난 6월 29일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이 교수들을 다시 만났다. 이날 비가 많이 내렸다. 비를 핑계로 내가 툭 던졌다. 

“비도 오는데, 막걸리나 맥주 한 잔 하실래요?”

다들 오케이 했다. 맥주 한 잔 마시고 오랫동안 궁금한 걸 물었다. 

“근데, 선생님들은 무슨 모임이세요? 조직이 있을 거 아닙니까. 무슨 교수협의회든, 학회든.”

“우리 아무 모임 아닙니다. 그냥 강도영 씨 관련 기사를 보고 안타까움을 토로하다가, 서로 소개 받고 이야기 나누다가.. 어쩌다 모이게 된 겁니다.”

A 교수의 말이 그랬다. 교수들끼리 친분을 나눈 시간이 길지 않고, 작년 11월 13일 모임 때 대부분 처음 만났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조직도 모임도 학회도 아니어서 회비도 없는 모임. 굳이 조직을 따지면 ‘단톡방’ 모임이 전부다. 

근데, 이 교수들은 왜 이렇게 강도영 씨 사건을 잊지 않고 정책 대안까지 고민할까? A 교수는 최근 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간병살인 사건 등이 벌어지면 늘 나오는 말이 늘 비슷합니다. ‘제도는 이미 다 마련돼 있는데, 당사자가 이용하지 못했다’고요. 제도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그건 말그대로 ‘죽은 제도’입니다. 어떻게든 손을 봐야 하는 거죠. 문제가 발생한 사례를 해부해서 왜 제도가 작동하지 않았는지 살피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게 전문가들이 해야 하는 일이죠.”

A 교수의 말대로, 간병-돌봄살인이 벌어지면 ‘복지 사각지대’ ‘위기가정 및 사례 발굴’ 등의 이야기가 반복된다. 최근 발생한 ‘수원 세 모녀’ 사건에서도 같은 말이 나왔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하다 경제적-정서적 위기에 몰려 사망에 이르게 한 강도영 씨 사건은 2021년 5월에 벌어졌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보도한 이후, 총리부터 보건복지부 장관, 대선 후보까지 많은 사람이 안타까움을 표하며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사건 이후부터 1년여가 흘렀다. 이젠 그만 둘 법도 한데, ‘단톡방’이 조직의 전부인 이 의료인과 교수들은 또 뭔가를 한다. 한 번이 어렵지, 시작만 하면 두 번 세 번 하는 건 일도 아니라는 듯한 모양새다.

간병과 돌봄의 사회적 해결을 고민하는 ‘간병X돌봄 2차 심포지엄’이 27일 오후 1시부터 고려대학교 하나과학관 1층 주인호강의실에서 열린다. 1차 행사보다 주제와 내용이 넓고 깊어졌다. 

나상원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은 ‘인간의 의존성과 돌봄 민주주의’를, 김인희 서울대학교 공익법률센터 변호사는 ‘간병살인과 사회보장법의 문제’를 주제로 발표를 한다.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이진선은 ‘간병비 부담의 규모’에 대해서 주제 발표를 한다. 

정혜주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박봉규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문병경 성균관대 교수는 토론자로 나선다. 온라인 참여는 줌, <셜록> 유튜브로 가능하다. 

간병청년 강도영의 아픔에 공감해 모인 이 의료인들과 교수들이 어디까지 나아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셜록>은 지켜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최초로, 빨리 뭔가를 하는 건 당연히 쉽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어려운 건, 보는 사람과 뜨거운 박수가 없어도 꾸준히 뭔가를 해서 최후의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단톡방’ 교수들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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