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들이 “잠깐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해온 건 작년 11월, 추운 날이었습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보도로 이슈가 된 ‘간병살인 청년’ 강도영(가명)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대학 강의와 환자 진료로 바쁜 탓에 의료인들의 일정은 토요일 오전 8시로 잡혔습니다. 그나마 한가한 제가 거기에 맞췄습니다. 

의학 계열 교수들의 모임이니 꽤 괜찮은 조찬까지는 아니더라도, 김밥 한 줄로 퉁치는 일은 없을 거란 기대로 서울 성북구의 한 공간으로 향했습니다. 역시 김밥은 아니었습니다. 둥글게 말린 두툼한 은박지는 없었습니다. 대신 샌드위치가 출입구에 놓여 있었습니다. 

책상에 앉아 샌드위치를 씹어 먹으며, 조찬에 대한 기대를 접었습니다. A 교수가 앞으로 나가 피피티 화면을 정면에 띄웠습니다.

A 교수는 메스로 환자의 몸을 열어 어렵고 디테일한 수술을 깔끔하게 집도 하듯이, 제가 보도한 강도영 관련 기사를 세밀하게 분석해 시간과 중요한 사건 순서로 재배열했습니다. 

[관련 기사 보기 – “쌀 사먹 게 2만원만.. 22세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

22세 강변청년 강도영은 어떤 인생을 살았고, 언제 위기가 닥쳤으며, 그의 아버지는 어떤 병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뇌출혈로 쓰러졌을 당시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119대원은 좀 더 체계적인 대형병원으로 아버지를 이송됐을 것이며, 병원 치료 과정에서 누군가 한 명이라도 강도영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깔끔한 브리핑!

심드렁하게 지켜보다 샌드위치가 목에 걸렸습니다. 조금씩 긴장되기 시작했습니다.

B 교수는 “강도영 아버지 강영식(가명) 씨는 공장 해고 이후 건강이 나빠진 것 같은데 산재 이슈도 있을 것 같다. 아버지 산업재해 관련 취재는 해보셨냐”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먹던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솔직히 나는 그때까지 강도영 부친의 노동 이력까지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2021년 1월 23일 의사 실기시험 응시생이 가운을 들고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사람들, 뭐지? 강도영 사건에 대해서 왜 이렇게 관심이 뜨겁지?’

이번엔 C 교수가 정면 피피티 화면을 보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쓰러지고 위기가 닥쳤을 때, 어느 국면에서든 국가나 전문가가 개입을 했으면, 그 지점에서 안타까운 일은 멈췄을 텐데요. 안타깝네요. 자, 그럼 우리가 어느 국면에 어떻게 대응했어야 했는지, 사회의 어떤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지, 그걸 좀 연구하면 좋겠네요.”

11월의 토요일 이른 아침, 이 의료인들은 한가하게 샌드위치 먹으러 모인 게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쌀값 2만 원이 없어 타인에게 빌려야 하는 가난 탓에 존속살해라는 무거운 죄를 짊어진 22세 강도영 씨의 처지를 누구보다 연민했습니다.

그가 존속살해죄로 징역 4년의 처벌을 받는다면, 우리 사회와 국가는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느냐고 자문하기도 했습니다. 의료, 보건 전문가인 이들은 이날 서로를 보며 다짐했습니다. 

“우리가 뭐라도 좀 합시다.”

그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의료인들은 텔레그램 방에서 수시로 강도영 관련 대책과 의견을 나눴습니다. 강도영을 취재했던 나는 자고 있는데, 이들은 새벽까지 강도영 보고서를 쓰고 의견을 나눴습니다. 

[관련 기사 보기 – 부패한 시신과 파리 유충.. 강도영 사건 뒤집힐까]

강도영이 2심에서도 존속살해죄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후에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의료인들은 강도영 동의하에 아버지 강영식 씨의 병원 의료기록지를 확보해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토대로 의견서를 만들어 강도영 3심 변호인에게 전달했습니다. 그걸 받은 변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 눈이 번쩍 뜨이네요!”

이런 노력에도 대법원은 강도영의 존속살해죄를 확정했습니다. 사실 이쯤 되면 기자인 저는 물론이고, 의료인들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의료인들은 종종 온라인 회의를 소집해 이 말을 반복했습니다. 

“우리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꽃피는 봄날, 그때의 그 의료인들이 서울 종로 한 연탄삼겹살집에 다시 모였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하고 또 한 말을 또다시 반복했습니다.   

“우리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냥 넘어가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서로에게 묻고 또 묻더니, 정말 뭐라도 하기로 했습니다. 간병살인에 대한 심층분석 심포지움 ‘간병살인 이대로 둘 것인가?’는 그렇게 준비됐습니다. 5월 28일 오후 1시부터 서울 중앙대학교 103관 206호에서 열립니다. 작년 11월 작은 공간에 모인 의료인 중 일부가 발표와 토론을 맡았습니다. 

장숙랑 중앙대학교 교수는 ‘간병부담의 사회화 – 보건의료 측면에서’를 발표합니다. 

최혜지 서울여자대학교 교수는 ‘간병부담의 사회화 – 사회복지 측면에서’를 발표합니다. 

토론은 백종우 경희대병원 교수, 박성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가 진행합니다. 

한 가족의 비극에서 사회적 아픔을 보고, 그 아픔에서 더 좋은 정책과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뭐라도 해보자”는 의료인들의 마음이 모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실 기자에게 사건은 물처럼, 바람처럼 지나갑니다. 탐사보도를 하는 처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한 사건에 시간을 길게 쓸 뿐, 한 시절이 지나면 기자는 사건을 흘려보냅니다. 해결된 게 아무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다른 사건을 취재해야 한다고, 할 일이 많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사건 하나를 허투루 놓지 못하는 의료인들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흘려보낸 사건을 복기해봤습니다.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를 묻기보다는 “이쯤하면 됐지”하며 애써 등떠밀어 보낸 일과 사람이 여럿 떠오릅니다. 

시인 이상국은 시 <국수가 먹고 싶다>에서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엔 이 의료인들을 보면서 “이 양반들 왜 이렇게 열심히 하지?”하며 신기해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거대한 잔칫집 같은 이 세상에서 누군가는 홀로 울고 있다는 걸 기억하고, 그런 사람을 쉽게 흘려보내지 못하는 의료인들이라고 정리했습니다. 

뭐라도 하는 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습니다. 뭐라도 하다보면, 정말 세상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간병을 포함한 돌봄이 중요한 이슈가 된 세상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언론인 여러분들의 취재 부탁드립니다. 

ps) 이 의료인들, <셜록>의 친구 왓슨으로 모두 가입했습니다. <셜록>은 망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분들이 “<셜록> 요즘 뭐라도 하고 있겠지?” 하며 수시로 감시할 테니까요. 

<행사 일정과 내용>

일시 : 2022년 5월 28일 오후 1~5시 

장소 : 서울 중앙대학교 103관 206호 및 온라인줌

ZOOM ID : 627 356 2440 (비밀번호 없음)

유튜브 라이브 : 진실탐사그룹 <셜록> 유튜브 채널

  • 참가자

사회 : 장원모 서울시보라매병원 교수

사건 개요 설명 : 박상규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발표 : 장숙랑 중앙대학교 교수, 최혜지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토론 : 백종우 경희대학교 교수, 박성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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