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에겐 욕할 수 있다”며 욕설·폭행 등 갑질을 하던 사장님은 세금 앞에선 차분하고 신중했다. 사장님은 회사에서 이익이 발생했을 때 직원 급여 정상화부터 챙기지 않았다. 고가의 수입차 전시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사장님에겐 이유와 계획이 있었다. 

‘대한민국 아파트 발코니 철제 난간대 1위’ (주)승일실업 창업주의 딸 김은경. 2010년께부터 베트남에서 인테리어 업체 (주)RED를 운영하던 김은경 사장은 2019년부터 눈에 띄는 매출을 올렸다. 

국내에서 고가의 수입차를 판매하는 A 딜러사가 그 즈음 베트남에 진출했는데, 자동차 전시장 내부 공사 등을 RED가 맡으며 매출이 크게 늘었다. 김 사장이 직원 김대식(1980년생. 가명)을 통해 약 1600만 원짜리 롤렉스 시계를 전달한 고위직도 A 딜러사와 관련 있다.  

[관련 기사 보기 – 직원 돈으로 1600만원 롤렉스 사고..]

롤렉스 시계의 힘인지 아니면 RED가 인테리아 공사를 잘한 덕인지, A 딜러사는 2019년 한국 내 자동차 전시장 공사 몇 개를 김은경 사장 측에게 맡겼다. 김 사장의 딸은 A 딜러사의 강남 전시장에서 인턴으로 2개월 일했다. RED의 매출과 수익은 더 올라갔다. 

승일실업, (주)RED의 일을 했던 김대식(가명). 최고 영업 성과를 낸 직후 김대식은 해고됐다. ⓒ주용성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RED와 김 사장의 친오빠 김재웅이 대표이사로 있는 승일실업 쪽 일을 하던 김대식의 기대도 커졌다. 

“일이 잘 풀리니까 당연히 불규칙하게 나오던 월급이나 고용관계가 좋게 정리되길 바랐죠. A 딜러사 전시장 일도 제가 다 맡아서 진행했으니까요.”

사장님은 기대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영업할 때 필요하니까. 수입차 하나 법인 이름으로 뽑자. 세금을 많이 내느니, 그렇게 하는 게 좋지.”

김은경 사장은 베트남 호치민에서 벤츠, 마세라티 매장을 다니며 어떤 차를 선택할지 고민했다. 김대식도 따라 나섰다. 김 사장은 1억~2억 원대 차량에 주로 관심을 보였다. 김대식이 제안했다. 

“벤츠보다는 마세라티가 좋지 않겠어요? 그쪽 사람들이 우리랑 관계도 있잖아요.”

김 사장은 2억 원대 마세라티를 선택했다. 베트남이 아니라 한국에서 구입하는 쪽으로 말이다. RED 한국 법인은 존재했으나, 직원은 베트남을 오가며 일하는 김대식뿐이었다. 김은경 사장은 베트남에 주로 체류했다.

2억 원대의 수입차를 법인 명의로 리스해 영업에 쓴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회사 이익을 법인차 운영비용으로 처리해 세금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보였다.  

“차 나오면 서울 성수동 우리 집으로 끌고 가 남편에게 줘.”

이렇게 김은경 사장님의 두 번째 계획이 드러났다. 법인 명의로 고가의 수입차를 뽑아 사적으로 타거나 가족이 이용하게 하는 것, 한국 고위층의 고전적인 탈세 수법 중 하나다. 

김은경 (주)레드사이공 사장이 법인차로 리스한 마세라티 차량. 할인 전 가격은 2억 원이 넘었다. ⓒ김대식

김대식은 김 사장의 지시대로 서울 강남 마세라티 전시장을 찾았다. 이미 김 사장과 이야기를 마쳤는지, 딜러사 측은 ‘스페셜 프라이스’ 할인을 적용해 차량을 준비한 상태였다.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S Q4 모델. 할인된 가격은 약 1억6755만 원.

김 사장 측이 신한카드와 맺은 오토리스 계약서에 따르면 보증금은 4711만 원, 리스 월 납부액은 약 372만 원. 

김 사장의 남편이 고가의 수입 법인차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보험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법인차를 이용할 수 있는 운전자 등록은 해당 법인 임직원만 가능하다. 보험회사 직원과 이 사안을 논의한 당사자 역시 김대식이었다. 그가 보험회사 직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물었다. 

“(김은경) 사장님 남편분은 임직원이 아니시니.. 사장님 남편분 특약, 이런 거는 가능할까요?”

보험회사 측은 ‘불가’라고 답했다. 어쩔 수 없이 김대식은 ‘임직원한정’으로 보험등록된 상태로 마세라티를 끌고 서울 성수동 김은경 사장 자택으로 향했다. 

김대식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김 사장의 남편인 대학교수 B 씨를 만났다. B 교수는 수도권 소재 모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사진을 가르친다. B 교수는 김대식이 끌고온 마세라티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비싼 차를 다 가져오고… 회사 좋네!”

김대식은 B 교수에게 차를 넘기면서 기능과 차량 내 버튼 이용방법 등을 설명했다. 차 트렁크를 열고 딜러사 측에서 제공한 선물 꾸러미도 보여줬다. 법인차를 회사 임직원도 아닌 사람에게 인수인계하는 이상한 풍경. 

김은경 (주)RED 사장은 2019년 12월 회사 돈으로 고가의 마세라티 차량을 리스했다. 출고된 차는 그의 남편에게 인계됐다. ⓒ김대식

김대식은 B 교수를 마세라티 운전석 옆에 서게 한 후 기념촬영까지 해줬다. B 교수는 “고맙다”며 김대식에게 그날 저녁으로 생선회를 대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김대식은 씁쓸했다. 

그 법인차 할인 전 가격 2억 원이면, 제가 그동안 받지 못한 성과급이나 불규칙한 급여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거든요. 근데 사장님은 세금 좀 아끼겠다고 회삿돈으로 수입차 뽑아서 남편한테 넘기고…. 기분이 좋겠어요?”

고가의 수입차를 법인 명의로 뽑아 세금은 피하고, 호화 생활은 누리고. 일부 계층의 이런 ‘이중 혜택’ 생활은 종종 사회적 문제가 됐다. <매일경제> 올해 4월 9일 자 보도에 따르면, 2021년 수입차 등록 대수는 27만6146대. 이중 10만2283대(37%)가 법인 명의다. 

같은 해 등록된 슈퍼카 람보르기니 353대 중 300(84.9%)대, 포르쉐 8431대 중 5264(62.4%)대가 법인차라고 <매일경제>는 전했다. 

고가의 수입 법인차가 탈세 수법으로 자주 이용되자 정치권에서도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초 후보자 시절 “법인차량 번호판 색상을 연두색으로 바꾸겠다”는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법인차 번호판을 눈에 잘 띄게 만들어 탈세를 막겠다는 주장이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20일, B 교수가 법인차를 여전히 이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가 근무하는 학교를 찾았다. 학교 주차장에 마세라티는 없었다. 학교에서 만난 B 교수는 이렇게 주장했다. 

“김대식에게 마세라티를 받은 건 맞다. 하지만 내가 이용하지는 않았다. 한 번도 끌고 다니지 않았다. 차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그대로 있다. 아내가 베트남에서 오면 끌고다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용하지 않는다.”

김은경 사장 측은 월 리스 비용으로 372만 원을 여전히 납부하고 있지만, 차는 지하 주차장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김대식은 2010년 5월부터 승일실업 창업주 자녀 김은경-김재웅 쪽의 일을 했다. 오너 일가 쪽이 시키는 일은 거의 다 했지만, 급여가 정상적으로 지급된 적은 드물다. 고용관계도 명확하지 않았다. 

승일실업은 2011년 9월 1일부터 2013년 3월 1일까지 김대식을 4대보험 가입시켰다. 그렇다고 급여를 준 건 아니다. 무슨 사정 때문인지, 급여는 김은경 사장 남편 B 교수 이름으로 입금됐다. 김대식이 ‘2억 원대 법인차’에 허탈감을 느끼는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김대식은 승일실업이 생산하는 난간대 공급 영업을 베트남에서 했다. 2020년 말 의미 있는 성과를 냈지만, 곧바로 해고됐다. 그는 올해 초 고용노동부에 김재웅-김은경 남매를 고발했다. 부당해고, 임금 체불, 퇴직금 미직불 혐의 등으로 말이다. 

근로감독관은 베트남 법인 RED 김은경 측에 대해서는 “관할권 없음” 결론을 내렸다. 김재웅 측 승일실업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않았다. 

김은경 사장은 <셜록>의 반론과 확인 취재에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그의 한 측근은 “김대식의 주장은 신빙성이 낮다”는 취지로 <셜록>에 답했다. 승일실업 측은 “김대식은 처음부터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었다”며 관계를 계속 부인하고 있다.

최근 김대식은 기자에게 과거 텔레그램 대화를 하나 보여줬다. 2020년 10월 김은경 사장과 나눈 대화다. 김 사장은 김대식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세라티 10월 13일 골프대회 초대받았어. 마세라티 (딜러사) 사장님이 넌 고객이고 VIP이니 자기랑 치면 된다고 하시더라. 사장님 계시는 동안 한 건 해야 할 텐데. ㅋㅋ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산 건 너의 신의 한수야.”

마세라티 딜러사 측이 주최한 골프대회에 초대된 김은경 사장(왼쪽에서 두 번째).

실제로 김 사장은 골프대회에 초대받아 딜러사 사장과 골프를 쳤다. 회사 돈으로 2억 원대 차를 뽑은 그는 VIP였다. 그해 10월 13일, 김 사장은 딜러사 사장과 함께 골프대회 시상대 위에서 만세 포즈를 취했다. 

세금도 안 내고, 남편에게 고가의 차도 보내고, 골프도 치고…. 김 사장은 즐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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