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태아산재’에 고려되는 유해요인을 좁게 인정하는 시행령을 추진해 시민단체와 국회의 반발을 사고 있다.

태아산재는 부모의 업무 환경 탓에 발생한 자녀의 선천성 건강손상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일명 ‘태아산재보상법’은 2023년 1월 12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2021년 7월부터 <반도체 아이들의 가려진 아픔> 기획을 통해 ‘태아를 수급 주체로 인정하는 산재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집중 보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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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21일 산재보험 제도개선 TF 회의 자료를 통해 현재 추진 중인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상법) 시행령안을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신설안으로 ‘제34조의2(건강손상자녀 관련 유해인자)’를 제시했다. 고용노동부가 신설안에 밝힌 유해인자는 ▲화학적 유해인자 27종 ▲ 방사선, 고열작업에 따른 물리적 유해인자 ▲임산부의 업무 수행 중 노출과 자녀의 건강손상의 관련성이 의학적으로 인정된 대표적 유해인자 등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시행령은 유해요인을 협소하게 규정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시행령이 오히려 법률의 제정 취지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시민단체 반올림 활동가들이 2021년 6월 21일 국회 앞에 모여 태아 산재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시민단체 반올림

태아건강손상 피해자를 대리하고 있는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 소속 조승규 노무사는 9월 30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해당 시행령은 태아의 건강에 미칠 수 있는 1484가지 화학물질 중 27가지만 담은 것으로 판단기준을 매우 협소하게 인정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조 노무사는 “고용노동부가 의학적 기준이라는 잣대로 유해요인을 선정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산재 인정 기준은 사회적 인정기준인 상당인과관계를 통상 따르므로 엄격한 의학적 기준을 적용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현실적으로 태아산재 관련 의학 연구가 부족한 상황인 걸 인지하면서도 엄격한 의학적 기준을 요구하는 건 태아산재 문턱을 높이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애초 태아산재법을 만들었던 국회도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노원구을)은 지난 9월 28일 건강손상 자녀에 대한 산재 인정기준을 완화하는 취지의 산재보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우원식 의원실은 보도자료를 통해 ”현행 시행령에 맡겨져 있는 유해인자에 대해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고용노동부가 함부로 유해인자를 협소하게 규정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설명했다.

발의안은 고용노동부가 선택한 몇 가지 유해요인만이 아니라,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그 하위규정상으로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질로 분류되어 있는 유해요인(생식독성물질, 생식세포변이원성물질)에 노출된 경우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개정했다.

발의안은 또 현재 시행 예정인 산재보상법에는 포함되지 않은 아버지의 유해요인 노출로 인한 태아산재도 보호될 수 있도록 “임신 중인 근로자”를 “근로자”로 명시했다.

우원식 의원은 “고용노동부가 시행령을 통해 ‘태아산재법’ 제도를 후퇴시키려 하는 건 노동부의 월권”이라며 “내년 초 법령 시행 이전에 국회에서 태아산재의 취지를 명확히 하는 법률을 처리해서 노동부가 시행령으로 입법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를 원천봉쇄하겠다”고 밝혔다.

삼성반노체 노동자 출신 여성 3명은 지난 2021년 5월 20일 “엄마의 직업병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장애나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에 대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이들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면서 임신 중 유해화학 물질을 취급했고, 이후 무신장증, 선천성 거대결장증 등 선천적 장애나 질병을 가진 아이를 낳았다. 이들이 취급한 유해화학 물질 중 상당수는 생식독성을 띤 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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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이 현재 삼성반도체 출신 여성노동자들이 제기한 ‘태아산재’ 신청에 대한 역학조사를 진행 중이다.

한편, 임신 중 업무상 유해 환경에 의해 태어난 자녀에게 발생한 선천성 건강질환에 대한 산재보상 방안을 담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 개정안(대안)‘은 올해 1월 공포됐다.

개정안은 임신 중 근로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유해인자 노출 등으로 인해 출산한 자녀에게 부상, 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한 경우 건강손상 자녀를 근로자로 보고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 자녀가 지급받을 수 있는 보험급여 종류는 요양급여, 장해급여, 간병급여, 장례비 및 직업재활급여다.

법안이 시행되는 2023년 1월 12일 전에 산재보험을 청구한 피해자들도 소급적용을 받는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의 경우 법안 시행 전에 산재신청을 해야 한다.

산재신청 등 자세한 사항은 근로복지공단 콜센터(전화 1588-0075)로 문의하거나 기관 홈페이지(www.comwel.or.kr)을 참고할 수 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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