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6100만 원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란 자립청년 7명에게 자립정착금을 줄 수 있는 돈(보건복지부 권고 기준 800만 원). 노인 198명에게 기초연금을 줄 수 있는 돈(단독가구 기준 월 30만 7500원). 결식아동 8714명에게 한 끼 식사를 지원할 수 있는 돈이다(보건복지부 권고 기준 7000원).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값지게 쓰일 수 있는 세금 6100만 원. 그런데 이 돈을 가지고 ‘공짜 유학’을 다녀오고선, 그 결과로 엉터리 논문을 발표한 검사들이 있다.

세금으로 ‘공짜 유학’을 다녀오고선, 그 결과로 엉터리 논문을 발표한 검사들이 있다 ⓒ셜록

검사 ‘국외훈련’ 제도. 해외에 체류하면서 외국의 선진 법을 배워 검찰의 발전과 훈련대상 검사의 자기계발을 도모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다.

국외훈련은 검사를 포함한 공무원들에게 지원된다. 공무원들에게 국외훈련은 일종의 복지다. 그리고 국외훈련은 가족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자녀 교육과 입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인식되는 경우도 많다.

법무부는 검사의 외유성 해외연수를 막기 위해 2010년부터 ‘검사 국외훈련 운영규정’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훈련대상자는 어학성적, 근무성적, 경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발한다. 훈련 기간은 단기 6개월에서 장기 1년(최대 1년 6개월)이 원칙. 국외훈련 대상자로 선발된 검사에겐 체재비와 학자금을 포함한 ‘국외훈련비’가 세금으로 지원된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법무부에 2016년부터 2022년까지 국외훈련검사 예산 집행 내역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입수한 7년치 자료를 통해 연간 국외훈련검사 인원과 국외훈련비 집행 현황을 파악했다.

7년간 국외훈련 대상자로 선발된 검사 총 497명에게 지원된 세금은 약 303억 원. 이중 학자금으로 쓰인 금액은 약 98억 원이다. 나머지는 항공운임, 의료보험료, 생활준비금, 귀국이전비 등 체재비로 약 205억 원이 사용됐다. 국외훈련기간 중에도 검사들에겐 급여가 지급된다.

가장 많은 국외훈련비가 지원된 2020년의 경우 검사 68명을 대상으로 총 49억 원이 집행됐다. 2022년 올해도, 10월까지 검사 48명을 대상으로 총 37억 원이 지원됐다.

7년간 검사들에게 지원된 국외훈련비는 연평균 약 43억 원. 검사 한 명당 평균 6100만 원의 세금을 지원받았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미주권으로, 나머지는 유럽(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등)과 중국, 일본 등으로 훈련을 떠났다.

검사 국외훈련 운영규정에 따르면, 훈련대상자는 파견 시부터 9개월(단기의 경우 4개월)까지 논문 초안을 작성해 법무부에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귀국 이전에 연구논문을 완성해 귀국 3주 전까지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에 송부해야 한다. 법무연수원은 심사위원회를 거친 연구논문 및 토론 내용을 검찰 내부통신망에 게시하고 연간 1회 논문집을 발표한다.

한 해 약 43억 원에 달하는 세금이 지원되는 사업, 국외훈련 대상 검사들은 연구논문을 제대로 쓰고 있을까? <셜록>이 직접 검증해봤다. 그 결과, 부정·부실 의심 논문 5건을 발견했다.

7년간 국외훈련 검사 497명에게 지원된 세금은 약 303억 원에 달한다 ⓒpixabay

법무연수원 홈페이지(www.ioj.go.kr)는 심사를 거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원본을 공개하고 있다. <셜록>은 공개된 논문 중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발행된 84건을, 1차로 표절 심의 사이트 ‘카피킬러’를 통해 검사했다.

학위논문의 경우 대개 ‘표절률 10% 미만’을 인정 범위로 정하고 있다. 표절률 10% 이상 ~ 20% 미만은 ‘유의 및 의심’ 등급에 속한다. 표절률 20% 이상은 연구윤리 위반으로 인식돼 수정 후 재검사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 학계의 통상적인 기준이다.

1차 검사 결과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84건 중 5건이 표절률 30% 이상을 기록했다.(표절 기준은 ‘6어절 이상, 1문장 이상 일치’로 설정)

2차로 5건의 해당 논문들을 대상으로 표절 문장 수 등을 일일이 직접 확인했다. 그 결과 표절률은 최소 42%에서 최대 93%에 달했다. 만약 학위논문이었다면, 정상적인 연구결과로 인정받지 못하는 표절률 수치다.

표절 방식도 다양했다. 공공기관의 연구용역 보고서 일부를 통으로 베껴오거나, 타인의 논문을 짜깁기하는 식으로 논문을 작성했다. 과거 본인의 학위논문이나 학술대회 발표문을 그대로 가져온 사례도 있다. 본문의 내용뿐 아니라, 원자료에 첨부된 그림, 인용문, 그리고 참고문헌까지 거의 통째로 갖고 왔다.

이처럼 부정·부실 의혹을 받는 논문 5건에 지원된 세금은 상당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기동민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서울 성북구을)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논문을 작성한 검사 5명은 학자금과 급여를 제외한 체재비만 총 1억 5,497만 원을 지원받았다.

검사 한 명당 평균 약 3,000만 원의 체재비가 제공된 것이다. 여기에는 생활준비금 500달러, 귀국이전비 600달러(아시아지역은 300달러), 가족 항공료 등이 포함된다. 법무부가 액수를 공개하지 않은 학자금과 급여까지 고려하면, 지원금의 규모는 더 커진다.

<셜록>은 지난달 14일 기동민 의원실을 통해 ‘검사 개별 학자금 액수’를 요청했지만, 법무부는 세금으로 지원된 학자금 내역을 한 달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A 검사의 경우, <셜록>이 직접 확인한 표절률이 93%에 달한다. 타인의 저작물에서 무단으로 인용한 문장으로 거의 논문 전체를 채웠다. A 검사가 이 논문을 쓰기 위해 1년간 미국에 머물면서 쓴 체재비만 약 4,400만 원이다. 1년 학자금과 국외훈련 기간에도 지급되는 급여를 고려하면, A 검사에게 지원된 비용은 ‘억대’를 넘어설 것으로 짐작된다.

검찰의 발전과 자기계발을 위해 혈세로 유학을 보내놓았더니, 막상 작성해온 논문은 다른 저작물을 그대로 베껴온 수준인 것이다. 심지어 이들 5명 중 2명은 국외훈련 이후 검사 옷을 벗고, 대형 로펌의 변호사로 이직했다.

국외훈련 검사들의 연구논문을 검증한 결과, 부정·부실 의심 논문 5건을 발견했다 ⓒ셜록

공무원 인재개발법 시행령 제39조(국외훈련비의 지급)에 따르면, 연구보고서의 내용이 부여된 훈련과제와 관련이 없거나 다른 연구보고서·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 지급받은 훈련비의 100분의 20을 환수할 수 있다.

<셜록>은 지난달 16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에 ▲표절 논문 인지 여부 ▲국외훈련비 환수 계획 ▲연구논문 전수조사 계획 등을 질의했다.

법무연수원은 지난 5일 서면 답변서를 통해 “논문 표절 여부 판단의 경우 단순히 표절률 정도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 주제와 논문의 형태 등 여러 가지 요인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하므로, 심사를 완료한 논문의 경우 조사는 필요하지 않을 걸로 보인다”고 답했다. 한마디로, 심사를 완료한 논문이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같은 날 법무부도 서면 답변서를 통해 “관련 법령에 따라 ‘다른 연구보고서, 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 훈련비 환수 등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면서도, “다른 보고서와의 유사성 검증 방법은 표절 검증 전문업체(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검증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외훈련결과보고서 작성 형식 준수 여부 검증 또는 각 부처 정책자문위원을 활용하여 정책활용도 및 유의성 등을 검증하는 방법 예시로 들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셜록>의 취재는 ‘카피킬러’에만 의존한 게 아니다. 1차적으로 ‘카피킬러’를 활용해 검증한 후, 2차로 문제의 논문과 원자료를 찾아 한 문장씩 직접 대조했다. 그 결과 부정·부실로 의심되는 5건의 논문을 확인한 것이지만, 책임 기관인 법무부와 법무연수원 모두 “표절률 정도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며 표절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청렴 세상” ⓒ남궁현

한편, 문제의 논문을 작성한 검사 5명 모두 기소를 담당하거나 공판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저작권 위반 사건을 다뤄왔다.

저작권이 있는 가요를 무단으로 사용한 노래방 주인부터, 웹하드 사이트에 저작권자 허락 없이 유명 영화를 업로드한 대학생까지 사연은 다양하다. 이 검사들에 의해 구형을 받은 해당 피고인들은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고, 적게는 벌금 70만 원부터 많게는 징역형의 집행유예까지 받았다.

해외에 나가 세금 수천만 원을 써놓고 표절이 의심되는 부정·부실 논문을 작성한 검사들의 이름을 하나씩 공개하려 한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글은 <얼룩소>(https://alook.so/posts/zvtKnxv)와 동시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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