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자유로를 걷던 남자, 철조망 위에서 스러졌다

시속 9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 자유로에서, 순간 졸음을 이기지 못한 대가는 처참했다.

운전자의 통제를 벗어난 흰색 칼로스는 도로를 벗어나 갓길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차는 그다음으로, 갓길을 걷고 있던 김동현(가명, 당시 63세) 씨를 쳤다. 동현 씨가 부딪친 동반석(조수석) 쪽 앞 유리가 반쯤 부서졌다. 허공에 튀어오른 동현 씨는 도롯가 윤형 철조망 위로 떨어졌다.

동현 씨는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다음 날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철조망엔 그날 신은 회색 양말 한 짝이 남았다. 2015년 10월 9일 오전 7시 30분에서 40분 사이, 경기 고양시 관할 자유로 이산포IC 부근에서 벌어진 사고다.

8년 전 동현 씨는 왜 이른 아침에, 일반도로도 아닌 고속화도로를 홀로 걷고 있었을까?

자유로는 동현 씨의 일터였다. 동현 씨는 이날 아침 형광조끼를 입고 한 손엔 집게를, 다른 손엔 쓰레기봉투를 들고 출근했다. 그는 도로 위의 청소부였다.

도로에도 청소가 필요하다.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다. 하루 평균 통행량 약 22만 대 수준인 자유로(2018년 기준, 국토교통부 조사)에서 도로 위에 떨어진 모든 것은 위험 요소다. 화물차가 흘린 플라스틱 드럼통, 죽은 고라니 사체, 교통사고 처리 후에 남은 차량 부속물 등이 시야에 잡힌 순간 운전자는 당황한다. ‘피해야 하나?’ 멈칫거리거나 고민하는 사이 사고 위험은 커진다. 놀란 마음에 운전대를 틀면 위험은 더 커진다.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 동현 씨와 같은 청소 노동자들이 도로에 투입된다. 이들의 업무 범위엔 갓길 청소도 포함된다. 도시 미관을 위해서도 있지만, 갓길에 방치된 부피가 큰 쓰레기들은 도로로 흘러가기 쉽기 때문이다. 밤사이 교통경찰들이 갓길에 빼 둔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동현 씨가 사고 당일 아침에 하던 일도 갓길 청소였다.

고속도로는 민간 사업자가 관리하는 도로를 제외하곤 한국도로공사가 이 업무를 관할한다. 수도권 고속화도로는 대부분 서울시설공단이 맡는다. 청소 노동자들은 모두 이 두 기관에 직접 고용된다.

고양시와 파주시에 걸쳐 있는 자유로는 상황이 다르다. 고양시는 이 일을 직접 하지 않는다. 대신 2009년부터 용역업체에 맡겼다. 동현 씨와 같은 자유로 청소 노동자들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하지만, 고양시에 속한 노동자가 아니다.

동현 씨가 속했던 용역업체에서 노면 청소차량 운전 업무를 하는 임성진(가명) 씨는 이렇게 말했다.

“동현 씨가 사고를 당한 곳은 사람의 통행이 불가한 구간이에요. 그래서 청소도 저 같은 노면 청소차가 들어가야 하죠.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천천히 다니면서 낙엽 쓰는 차 많이 보셨죠? 그 차예요. 원래 그 차가 해야 하는 일을 당시 업체에서 사람한테 시킨 거예요.”

8년 전 그날, 동현 씨는 도로 위에서 혼자였다. 같은 조에 속한 동료는 작업 차량을 운전 중이었다. 사고가 일어나던 때, 동료는 차를 돌리는 중이었다. 동료는 이미 사고가 벌어지고 약 5분 뒤에, 철조망 위에 떨어진 동현 씨를 발견했다. 홀로 고속화도로를 걷던 동현 씨를 지켜줄 수 있는 그 어떤 보호 장치도 없던 셈이다.

고양시 측은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당시 용역업체에서 관리직으로 근무했던 익명의 관계자는 “그때 김동현 씨의 유가족과 보상금 500만 원에 합의를 본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이날 사고 이후 용역업체는 이런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12일 만에, 또 다른 사고가 발생했다.

김규정(가명, 당시 68세) 씨는 2015년 10월 21일 오전 9시경, 경기 고양시 덕양구 제1자유로 행주대교 구간을 청소 중이었다. 규정 씨가 서 있던 곳은 도로 위였다. 물론 그곳은 하얀색 빗금으로 표시된 램프 구간(오르막 합류구간)으로, 평상시에는 차들이 쉽게 침범하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규정 씨의 왼편은 2차선 도로, 오른편은 1차선 도로였다.

그때, 오른편 1차선 도로에서 회색 스포티지 차량이 시속 60km 이상으로 달려왔다. 운전자는 램프 구간에 선 규정 씨를 발견하고 핸들을 좌측으로 꺾었다. 상대적으로 공간이 넉넉한 좌측으로 틀어 2차선 도로로 진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규정 씨가 향한 곳 역시 같은 곳이었다. 2차선 도로 중앙 쪽으로 몸을 피하던 규정 씨는 그대로 차량과 충돌했다.

동현 씨를 들이받은 흰색 칼로스처럼 회색 스포티지 차량도 앞 유리가 반파됐다. 도로 한가운데 피 흘린 채 쓰러진 규정 씨 발엔 신발 한 짝이 없었다. 그 옆에 집게가 나란히 누웠다. 의식을 잃은 규정 씨는 119 구조대를 통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3일 뒤 사망했다.

약 2주 만에 동료 두 명을 잃은 박주만(가명, 60대) 씨는 이때를 회상할 때 연거푸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둘 다 아는 사람이었냐고요? 당연하죠…. 한 사람은 나보다 두어 살 더 많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나보다 한 일고여덟 더 먹고. 지금도 눈에 선하죠 뭘. 일 끝나면 같이 소주 한잔 하러 갔던 사람들인데. 사고가 나는 장면은 못 봤고, 현장은 봤어요. 피 묻은 신발이랑 철조망에 걸쳐 있던 옷가지랑, 그런 거를…. 한동안 도로에 못 나갔어요. 무서워서. 저도 걸어다니던 도로거든요.”

박주만 씨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하면서 죽어서 떠나보낸 동료도 있지만 다쳐서 보낸 동료도 있다고 털어놨다.

“많이들 그만뒀어요. 사고 나거나 다쳐서.”

죽을 뻔한 위기도 여러 차례 넘겼다.

“2013년인가, 14년도였을 거예요. 이산포IC 쪽에서 일산 킨텍스로 들어가는 구간 작업 중이었어요. 그날 사고가 있어서 사고 후처리요. 날씨가 엄청 추운 겨울이었던지라 도로가 얼어 있었어요. 그래서 달려오던 차들이 이미 사고 난 차를 또 들이받고, 저를 향해 막 달려오더라고요. 도로가 꽝꽝 얼어 있으니까 막 빙빙 돌면서요.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서 가드레일 너머로 피했어요. 그때 안 피했으면 (차가) 나도 밀어버렸지.”

박주만 씨는 “이런 일을 경험하고 나면 며칠씩 생각나서 미치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목숨 내놓고 하는 일이에요.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동현 씨를 친 운전자도, 규정 씨를 친 운전자도 몰랐을 거다. 자유로 위를 걷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것도 매일매일 ‘일하며’ 말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고위험군‘에 속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2021년까지 도로 및 관련 시설 운영업종에서 발생한 연평균 재해율은 1.52%로, 다른 업종(0.56%)에 비해 2.7배나 높다.

고속화도로는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없고, 차량이 빠른 속도로 달린다는 점에서 고속도로와 유사하다. 2021년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도로 작업구간용 트럭탈부착형 스마트 충격흡수장치(TMA) 개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고속도로 유지관리 작업장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건수는 총 135건으로, 한 해 평균 약 27건 꼴이다. 치사율은 23.5%로, 일반 교통사고의 2배 이상 수준이다.

자유로 위에서 차와 사람이 부딪치면 결과는 ‘중상 혹은 사망’ 둘 중 하나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도로교통공단이 운영하는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 사이트에서 2012년~2022년 사이 경기 고양시 제1자유로 위에서 발생한 ‘차 대 사람’ 사고 현황을 확인했다.

지난 11년간 제1자유로 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중,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등록된 자동차-보행자 간 사고는 총 14건이었다. 이 중 5건은 보행자가 사망했고, 나머지 9건은 중상을 입었다. 사망자 5명 중 2명은 화물차와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

2015년에 제1자유로에서 동현 씨와 규정 씨가 사망한 이후에도 자유로 위에선 사고가 이어졌다. 2019년 5월엔 파주시가 관할하는 자유로 탑골IC 부근에서 동물 사체를 치우는 작업을 준비하던 한 청소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2020년 5월엔 제2자유로에서 승용차가 노면 청소 차량을 들이받아 승용차 운전자 사망하고 노동자가 부상을 입었다.

도로 위의 청소부들은 주만 씨의 표현처럼 ‘오늘도 목숨을 내놓고’ 일한다. 이들이 걷다가 죽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셜록은 직접 자유로에 가보기로 했다.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