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세단이 터널에 진입하자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그러더니 덜컹 위로 잠깐 솟았다. 세단이 지나간 자리엔 부서진 나무 팔레트(깔판)가 흩어져 있었다.

세단은 터널을 빠져나와 갓길에 차를 세웠다. 터널은 경기 고양시 자유로에 있는 법곳지하차도. 지하차도를 벗어나자마자 보이는 오른편 갓길엔 나무 팔레트가 가득 실린 화물차 한 대가 이미 서 있었다.

50대로 보이는 여성 운전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세단에서 내리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내 ‘112’를 눌렀다.

“내가, 내가 저 나무 널빤지를 본 순간 생각했어요. ‘(핸들을 급하게 꺾어서) 저걸 피하면 바로 사고가 나서 죽겠구나’ 싶어서 그냥 (나무 팔레트 조각을) 밟고 지나간 거예요.”

세단 운전자의 신고로, 경찰차 두 대와 소방차 두 대가 도착했다. 자유로 사고는 규모가 큰 경우가 많아서 일단 이 조합으로 출동한단다. 경찰에게 물었다.

“저건(터널 안 도로에 떨어진 나무 팔레트 조각) 그럼 누가 치워요?”
“따로 치우는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은 안 위험해요?”
“엄청 위험하죠. 잘못하면 죽어요. 그래서 저 일만 따로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경찰이 말한 ‘저 일만 따로 하시는 분들‘이 내가 오늘 만난 사람들이었다.

왼쪽은 취재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부서진 나무 팔레트. 오른쪽은 경찰차 두 대와 나무 팔레트가 실린 트럭이 법곳 지하차도 근처에 있는 풍경 ⓒ셜록

도로에도 청소는 필요하다. 단순히 도시 미관을 위해서가 아니다. 도로 위에 떨어진 모든 것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청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선다. 갓길에 떨어진 주먹만 한 작은 휴지 조각부터 도로 중앙에서 죽은 고양이, 터널 속에 떨어진 나무 널빤지, 그리고 어젯밤 교통사고 처리 후에 남은 자동차 바퀴까지, 모두 청소 대상이다.

‘잘못하다간 죽는다‘는 경찰의 말은 사실이다. 2015년 제1자유로에선 두 명이 일하다 죽었다. 10월 9일 갓길을 청소하던 노동자가 졸음운전 사고로 사망했다. 그로부터 12일 후 도로와 도로가 합류하는 구간에 서 있던 청소 노동자도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관련기사 : <매일 자유로를 걷던 남자, 철조망 위에서 스러졌다>)

경찰도 손사래 칠 정도로 위험한 이 일을, 고양시는 2009년부터 용역업체에 맡겨 ‘외주화’했다. 현재 제1자유로에선 12명, 제2자유로에선 8명의 노동자가 매일매일 도로 위를 청소한다. 자유로 청소부들은 위험에서 자유로울까. 지난해 11월 24일, 경기 고양시 제1자유로로 향했다.

오전 9시, 제1자유로 장항IC 초입에 도착하니 첫 번째 청소팀이 업무 시작을 위해 막 트럭에서 갓길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차들이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리면서 발생한 굉음이 귀를 때렸다.

제1자유로 갓길 청소 중인 두 노동자의 뒷모습 ⓒ셜록

고속화도로 갓길 폭은 약 2m를 조금 넘어 보였다. 바로 왼편은 대형 화물차의 커다란 바퀴가 굴러다니는 8차선 도로. 나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거세게 부는 바람 때문에 입 속으로 말려 들어온 머리카락을 씹으면서 생각했다. ‘갓길에서 왼쪽으로 넘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 길을 두 청소 노동자는 아무렇지 않게 휘적휘적 걸어갔다. 내가 겁먹은 눈으로 8차선 도로 위를 내달리는 차를 바라보는 사이 두 사람은 빠르게 멀어졌다.

자유로 청소 작업은 3인 1조로 이뤄진다. 두 명은 걸어다니면서 도로 위의 쓰레기를 직접 수거한다. 나머지 한 명은 작업 차량인 1톤짜리 트럭을 운전한다. 업무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갓길을 걸으면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로에 직접 들어가 낙하물을 처리하는 것이다.

윤성현 씨(가명)가 운전하는 트럭은 작업 차량이다. 이 1톤짜리 트럭은 청소 도구 및 쓰레기를 싣는 수거 기능, 노동자들을 작업 지점까지 데려다주는 이동 기능에 더해, 일반 운전자들에게 작업 중임을 알리는 일종의 표지판 기능까지 한다.

가장 중요한 기능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걸으면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기능이다. 성현 씨는 트럭을 느리게 운전하면서 30~50m 정도 간격을 두고 두 동료를 따라가는 중이었다.

“만약 사고가 나면, 이 트럭으로 괜찮을까요?”
“승용차랑 사고 나면은 어느 정도 보호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근데 기자님도 보시면 알겠지만 여기는 대형 트럭이랑 화물차가 정말 많이 다니는 곳이에요. 그런 게 들이받으면… 이 트럭은 무용지물이지 않을까요?

제1자유로 청소 노동자들의 작업 차량인 1톤짜리 트럭 왼편으로 대형 청소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셜록

도로 청소 및 정비 업무를 할 때는 보통 차량이 두 대 투입된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안전보건 실무 길잡이-도로 및 관련 시설 운영업’ 편을 보면, ‘도로를 임시로 보수하거나 교통사고 잡물을 처리하는 등을 할 때 안전을 위해선 작업 보호 자동차를 두 대 이상 배치할 것‘을 권장하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성현 씨는 갓길 청소 시에는 물론, 도로에 진입할 때도 차량은 한 대뿐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차 한 대로 (도로에) 들어가요. 가장 답답한 건 이거예요. 도로에 들어갈 때 어떤 순서로, 어떤 안전 수칙을 지키면서 일해야 하는지 적은 문서가 없어요. 고양시에서도, 회사에서도 매뉴얼을 준 적이 없고요. 저희가 긴장하고 알아서 안전하게 일해야 해요.

자유로 청소 업무 시 노동자가 참고할 수 있는 안전 수칙은 없다. 고속도로·고속화도로 유지 및 관리 작업을 하는 다른 사업장에서는 매뉴얼이 있다. 고속도로를 관리하는 한국도로공사 소속 안전순찰원은 <안전순찰 업무 매뉴얼>을 따른다. 올림픽대로, 강변북로 등 수도권 고속화도로를 대부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은 <도로순찰대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두 경우 모두 매뉴얼 안에 안전 수칙이 포함돼 있다.

고용노동부의 안전보건 실무 길잡이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작업 보호 자동차 뒤에는 트럭 탈부착형 충격흡수시설(TMA)을 부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TMA는 교통사고 시 탑승자와 상대 운전자 모두의 안전을 위해 고안된 충격 흡수 장치다.

성현 씨가 모는 트럭 뒤에는 꿀벌 무늬의 네모난 TMA가 달려 있었다. 그러나 차창 밖을 지나다니는 수십 톤짜리 화물차에 비해 트럭은 너무 작았다. 트럭 규모가 작으니 뒤에 부착된 TMA도 작았다.

국토교통부의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 지침‘에 따르면, TMA는 사용장소의 제한속도 및 기술 수준 등을 고려해 등급이 결정된다. 성현 씨가 모는 트럭에 부착된 TMA는 주행속도 시속 60㎞ 정도 도로에서 쓰이는 1등급짜리 모델로, 가장 낮은 등급에 속한다. 자유로에서 차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는 시속 90㎞다. 단속 카메라가 없는 구역에서 차들은 시속 100㎞ 이상으로 달린다.

자유로 청소 노동자들은 “정리되지 않은 나뭇가지가 작업 시 위험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셜록

오전 10시 30분쯤 만난 두 번째 작업팀 역시 3인 1조로 움직였다.

두 노동자는 등산용 스카프로 입을 가리고 선글라스를 쓴 상태였다. ‘햇빛이 눈 부셔서 선글라스를 썼냐‘고 묻자, 갓길에 떨어진 패트병을 줍던 윤범수(가명) 씨가 답했다.

“나뭇가지에 눈이 긁히니까 쓰는 거예요. 스카프는 먼지 안 마시려고 쓰고. 안 쓰면 나중에 목이 칼칼해요.”

가드레일을 넘어 갓길까지 우거진 나뭇가지를 피하느라 범수 씨가 도로에 가까이 붙을 때마다 내 눈은 커졌다. 노동자들이 아까보다 폭이 넓은 갓길에 진입하자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나뭇가지 대신 불법 정차된 화물차들이 갓길을 침범한 풍경이었다.

취재를 돕기 위해 휴가를 내고 기자와 동행한 청소 노동자 윤재남(40) 씨가 설명했다.

“운전하다가 너무 졸리니까 잠깐 쉬거나, 밤새 달린 다음에 아침에 아예 주무시는 거예요. 이게 뭐가 문제냐면, 화물차가 워낙 크다 보니까 그 앞에서 작업 중인 사람이 가려지거든요. 그럼 운전자들이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그냥 들어올 수도 있는 거죠.”

자유로 위에서 청소 노동자들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유령’ 같다. 제1자유로에서 20년 넘게 일했다는 박주만(가명) 씨가 쓰레기를 줍느라 굽혔던 허리를 펴면서 말했다.

(운전자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는지 잘 몰라요. 어느 날은 같이 청소하던 사람(동료)이 안 보여. 그래서 찾아봤더니 풀숲에 주저앉아서 다리에 피를 흘리고 있더라고. 알고 보니 운전자가 차에서 마시던 음료수 병을 그냥 창밖으로 던져서 맞은 거예요. 알아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도로에 들어가서 쓰레기 수거할 때는 뒤에서 ‘빵빵’ 얼른 비키라고 난리 나고, 어떤 사람은 창문 열고 막 욕도 해요.”

작업을 잠시 멈추고 도로를 바라보는 청소 노동자의 뒷모습. 그의 안전모에는 뽀로로 스티커가 붙어 있다 ⓒ셜록

자유로에서는 평소와 같은 목소리 톤으로는 의사소통이 불가했다. 차 바퀴가 도로를 굴러가면서 나는 굉음과 바람 소리가 귀를 울렸기 때문이다. 박주만 씨에게 ‘갓길 청소 시 어떤 점이 위험하냐‘고 물을 때도 기자는 배에 힘을 줘서 여러 번 외쳐야 했다.

“화물차가 짐을 많이 싣고 다니잖아요. 떨어진 짐이 언제 날아올지 몰라서 무섭기도 하고, 사실 제일 무서운 건 차 그 자체지. 운전자가 졸거나 휴대폰 보다가 갓길로 들어올 수 있잖아요. 바퀴에 빠쓰(빵꾸)났을 때도! 빠쓰나면 그냥 밀고 들어와요, 갓길로. 이거(청소) 하다가 사람 죽어요, 죽어. 실제로도 죽었다니까요.”

문득 청소 노동자들은 서로 어떻게 소통하는지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일하면서 서로 어떻게 소통을 하세요?”

그러자 윤재남 씨가 박주만 씨에게 집게를 넘겨받더니 회색 가드레일을 탕탕 쳤다. 그러자 두 사람보다 50m쯤 앞선 범수 씨가 뒤를 돌아봤다.

“이렇게 하면 ‘이제 돌아가자‘는 뜻이에요.”

신재호(가명)씨는 “이 작은 트럭 하나로 동료 두 명을 지켜야 한다는 현실이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셜록

첫 번째 청소가 끝나고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쉼터에 트럭을 주차해놓고 잠시 안전모를 벗은 세 노동자에게 비타민 음료를 건넸다. 장갑을 벗고 비타민 음료 뚜껑을 여는 박주만 씨에게 물었다.

“이제 쉬시는 거예요?”
“그럼요. 이 일은 쉬면서 해야 해요. 중간중간 쉬어주지 않으면 바짝 긴장해서는 사고 나는 상상만 하게 돼요.”

트럭 운전석에서 내린 신재호(가명) 씨는 음료수 대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는 성현 씨와 같이 작업 차량을 운전하는 일을 한다. 고속화도로를 걷는 동료를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 역할이다.

“자유로도 고속도로나 마찬가지예요. 차들이 시속 100㎞ 이상으로 달리니까요. 이런 곳에서 이 작은 트럭 한 대로 동료들을 지켜야 하니까… 저는 운전할 때 항상 겁이 나죠. 특히 낙하물 처리하러 차선에 들어갈 때, 그때는 진짜 뒤에서 차들이 달려오니까 언제 나를 칠지 모른다는 위협감이 큽니다.

만약에 사고가 나면은 회사가 책임질 건지, 고양시가 책임질 건지 아니면, 이 차를 운전한 제가 책임지는 건지 몰라요. 하루하루 그냥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하는 거죠.”

바로 내가 법곳지하차도에서 경험했던 상황과 같이, 도로에 떨어진 것을 수거해달라는 민원을 처리하는 것도 이들의 일이다. 제1자유로에서는 한 달에 평균 약 40건의 민원을 처리한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도로에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신호체계도, 횡단보도도 없는 고속화도로에 사람이 직접 말이다.

도로에서 낙하물을 수거 중인 자유로 청소 노동자 ⓒ윤재남

도로 위에 떨어지는 낙하물의 종류는 다양했다.

“지난주엔 저희가 장롱도 수거했다니까요. 그 장롱은 한 번에 안 실려서 저희가 눕혀서 발로 막 부숴서 실었어요. 좀 부피가 작은 건 빠르게 들어가서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데 그런 게 걸리면 도로 위에 체류하는 시간이 많으니까 정말 불안해요.”

신재호 씨가 담뱃불을 발로 짓이겨 끄는 것으로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났다. 다시 장갑을 끼고 안전모를 쓴 박주만 씨가 풀숲에 앉아 있는 고양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고양이 보이시죠? 저런 게 도로에 뛰어 들어갔다가 (차에) 치여 죽으면 저희가 치우는 거예요. 저런 거 치우다가 나도 죽은 동료들처럼 될까봐 불안불안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저라고 뭐 그런 일 안 당하리란 보장이 없어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한나절 동안 자유로 청소 노동자들을 동행 취재한 뒤 돌아가는 길에 회색 세단이 나무 팔레트를 밟고 지나간 상황을 목격했다. 이때 출동한 경찰은 지하차도에 진입하는 일은 “너무 위험해서 ‘따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경찰의 말을 들으면서 내 머릿속엔 여섯 글자가 떠올랐다. 5년 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고(故) 김용균 씨의 죽음 이후 부각된 말, ‘위험의 외주화’다.

도로에서도 위험은 외주화된다. 자유로 청소 노동자들이 고속화도로에 들어가는 이유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지만 원청인 고양시는 안전 문제를 책임지지 않는다.

두 번의 사망 사고 이후, 노동자들은 고양시와 용역업체에게 어떤 요구를 해왔을까. 그런데도, 왜 자유로 청소 노동자들은 아직도 위험하게 일하고 있을까. 질문은 이어진다.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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