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법 위반 혐의를 받는 현직 판사 가족에 대해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우만우 검사)는 지난해 11월 18일, 농지법 위반 혐의를 받는 정선재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배우자 김○○ 씨에 대해 일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같은 혐의를 적용받은 딸 정○○ 씨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모녀는 농사지을 의사가 없음에도 농지를 소유하고, 거짓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발급받은 혐의로,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시민단체 참여연대에 의해 지난해 6월 고발당했다.

정 부장판사의 배우자 김 씨는 2020년 6월 30일 경기 여주시 가남읍에 있는 농지 한 필지 2413㎡를 남동생으로부터 1억 4000만 원에 매입했다. 이후 2021년 4월 15일에는 같은 지역에 위치한 250㎡ 규모의 논을 7200만 원 주고 남동생으로부터 추가 매입했다.

딸 정 씨는 2020년 6월 30일 경기 여주시 가남읍에 있는 4필지 4541㎡를 외할머니로부터 3억 700만 원에 매입했다. 이후 약 1년 만에 1982㎡ 규모의 밭(일부 분할)을 타인에게 3억 2000만 원에 매도했다.

모녀는 2020년 6월 농지 취득 당시 제출한 농업경영계획서에 ‘자기노동력’으로 고구마, 배추, 잡곡을 심겠다고 기재했다. 특히, 김 씨는 이미 소유 중인 농지의 ‘자경여부’를 묻는 문항에도 ”예“라고 적었다.

정 판사의 배우자 김 씨는 2021년 4월 15일 경기 여주시 가남읍 심석리에 있는 필지 1곳 250㎡ 규모의 논을 7200만 원 주고 남동생으로부터 매입했다. 농지취득 관련 서류를 확인해보니, 김 씨는 이미 소유 중인 농지의 ‘자경여부’를 묻는 문항에도 “예”라고 적었다. ⓒ셜록

하지만 모녀는 2021년 봄쯤 소유 농지를 타인에게 무상으로 임대했다. 검찰도 피의자 조사 결과 해당 농지에 대한 대리경작 사실을 인정했다.

현행 농지법 제6조 제1항에는 “농지는 농업경영에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같은 법 제23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법률에 정한 경우 외에는 소유 농지를 무상사용하게 할 수 없다.

사건을 담당한 경기여주경찰서는 농지법 위반 혐의를 받는 모녀를 기소의견으로 지난해 11월 27일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피의자 김 씨에 대해 일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범행의 동기와 처벌 실익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검찰은 피의자 김 씨가 2021년 시행한 농지 취득에 대해 “피의자가 초범이고, 실질적으로 납세의무를 충실이 이행하고자 했던 동기에서 비롯된 것일 뿐 농지법의 취지를 몰각하거나 우회하려는 의도는 확인되지 않으며, 위와 같은 경위를 비추어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크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 판사의 배우자와 장녀는 2020년 6월 30일 경기 여주시 가남읍에 위치한 필지 5곳 총 6594 규모의 농지를 총 4억 4700만 원에 매입했다. 셜록은 지난해 2월 15일 해당 농지를 찾아갔다. ⓒ셜록

이에 대해 서성민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는 지난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피의자 처벌 실익을 따져 검찰이 불기소 판단을 한 건 굉장히 이례적“이라면서, “농지법 위반 사건에 대해 그동안 얼마나 방관해왔고 처벌에 있어 관대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변호사도 1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검찰이 피의자에게 죄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기소유예 결정을 한 건 봐주기 결정이 맞다”면서 “검찰이 피의자 변명을 다 들어준 솜방망이 처벌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검찰은 피의자 김 씨가 2020년 취득한 농지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아예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외형상 피의자가 남동생에게 매수하는 형식을 취한 것일 뿐 그 실질은 일련의 상속재산에 대한 분할 협의로 보이고, 실체적으로도 피의자에게 상속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농지법에선 상속 등에 의한 경우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더라도, 농지를 소유하거나 취득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명시해 놓았다.

하지만 서 변호사는 “검찰의 불기소 논리대로 라면, 상속세를 마련하려고 농지를 불법으로 취득한 사람은 앞으로 다 봐줘야 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하 변호사도 “농지 취득이 상속세를 내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일반적인 상속과 다른 상황인데 일종의 변칙을 이용해 딸에게 재산을 물려준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서울고등검찰청 ©주용성

검찰은 딸 정 씨의 농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실행위자가 아니란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실행위자로 지목된 부인 김 씨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피의자 김 씨가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딸인) 피의자 정 씨 명의로 토지를 취득하는 절차를 진행한 사실 ▲피의자 정 씨는 (엄마인) 피의자 김 씨에게 일체의 권한을 위임한 것 외에 일련의 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은 사실 ▲각 농업경영계획서 또한 피의자 김 씨가 작성한 사실을 근거로 “피의사실은 피의자 김 씨에 의해 이루어진 것일 뿐, 피의자 정 씨의 행위라거나 피의자가 이에 개입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실행위자는 피의자 김 씨로, 피의자에게 (피의자 정 씨 소유의) 각 토지에 대한 농지법 위반 혐의 역시 인정된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 동기와 경위, 처벌의 실익과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 점이 앞서 살핀 바와 같으므로 이에 대해 별도 입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는 1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실행위자가 엄마였어도, 딸이 본인 명의로 취득한 농지인데 그 과정을 전혀 몰랐을까 의심스럽다”면서 “적어도 딸이 본인 명의로 농지를 취득했다는 걸 알았다면, 공범의 문제로 볼 수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한편, 셜록과 참여연대는 지난해 6월 김 씨와 정 씨 모녀를 비롯해, 채평석 전 세종시의회 의원, 김상돈 전 의왕시장과 부인, 그리고 그의 아들까지 총 6명을 농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세종북부경찰서는 지난해 11월 18일 채 전 의원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채 전 의원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매입한 세종시 부강면 부강리 필지 3개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이 농지의 채 전 의원 지분은 3분의 1 정도다. 매입 당시 총 가격은 약 15억 7200만 원이다.

셜록은 지난해 4월 해당 농지를 방문해, 돈을 받고 대신 농사 일을 하는 대리경작자를 발견했다. 이런 경우 농업경영계획서에 ‘일부 위탁 노동력’을 함께 기재해야 하는데, 채 의원은 오직 ‘자기노동력‘으로 농사를 짓겠다고 적힌 농업경영계획서를 관청에 제출했다. 거짓으로 농지취득증명서를 발급받은 혐의다.

채 전 의원 농지가 있는 부강면에는 부강역-북대전IC 4차선 연결도로가 뚫릴 예정이다. 채 전 의원 농지부터 부강역까지 직선거리는 2.2km다.

셜록은 지난해 4월 세종시 부강면에 있는 채평석 당시 세종시의원 집을 찾았다. 채 의원은 서둘러 현장을 벗어나 한 부동산업소로 들어가버렸다. ⓒ셜록

하지만 경찰은 “본건과 동일한 내용의 수사가 이미 세종청에서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피의자 채 씨가 해당 토지에서 농업경영을 하고 있음이 확인되어 불입건 종결된 점, 피의자가 제출한 농자재 구입 내역 등을 종합해 볼 때, 피의자 채 씨가 이 사건 토지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거짓이나 그 밖에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취득하였다고 볼만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봤다.

김상돈 전 의왕시장과 그 배우자, 그리고 그의 아들의 농지법 위반 사건만 아직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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