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은 더는 조폭의 전유물이 아닌 예술로 평가받고 있다.”

타투이스트들의 주장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지난해 4월 비의료인 타투(문신) 시술 행위의 합법화 방안을 검토하며 한 말이다.(연합뉴스 <인수위, 비의료인 타투 합법화 검토…”조폭 전유물 아닌 예술”> 김승욱 기자 2022. 4. 13.) 인수위 관계자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한국인들의 손재주가 좋아 ‘K-타투’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 현행법상으로는 타투이스트는 물론이고 그들로부터 시술받는 사람들도 범법자다. 이런 불합리한 면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만 이런 약속을 한 게 아니다. 지난해 1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으로 타투 합법화를 제시했다.

대통령 당선인과 유력 대통령 후보가 모두 타투 합법화를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2023년 현재 한국에서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하는 타투는 여전히 불법이다. 1992년 대법원의 판결 이후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법과 제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현재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하는 타투 시술은 의료법과 보건범죄단속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는 5(합헌) : 4(위헌)로 현행 의료법과 보건범죄단속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는데, 이때 “현재로서는 의료인에 의하여 문신시술이 시행되어야 안전성이 담보될 수 있다”고 봤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헌재의 결정을 환영하며 “비의료인의 문신시술은 의료인과 동일한 정도의 안전성과 의료조치의 완전한 수행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보건위생상 위험성을 내포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타투유니온’ 지회의 법률대리인인 곽예람 변호사(법무법인 오월)는 “감염의 위험성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지만, 타투 시술은 아주 고도의 의학 기술을 요하는 게 아니라 정형화된 방법으로 행해지는 행위이기에 관리와 조율을 통해 위험성을 통제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의료법의 입법 목적은 ‘의료인이 독점적으로 수행해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의료행위’를 규율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타투 시술은 이런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곽예람 변호사 인터뷰 2023. 3. 8.)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 당시 소수의견으로도 “문신시술은 치료목적 행위가 아닌 점에서 여타의 무면허 의료행위와 구분된다”고 지적된 바 있다.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 ⓒ셜록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그린타투센터’ 이사장) 역시 “타투를 의료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에 힘을 보탠다.

“타투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잖아요. 그런데 의사들이 타투 시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의사들은 그림 그리는 걸 전혀 배우지 않습니다. 타투를 의료행위라고 하는 건 문제가 있는 거죠.”(임상혁 원장 인터뷰 2023. 3. 8.)

이웃나라 일본이 2020년 최고재판소 판결을 통해 타투 합법화를 결정할 때도 이와 같은 논리가 인정됐다.

당시 변호인단은 의사국가시험에는 문신사에게 요구되는 그림 그리는 기술이나 디자인 지식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문신사에게 의사면허를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일본에서의 문신시술 규제를 둘러산 법적 고찰> 박용숙 강원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2021. 9. 27. 참고)

타투 시술은 의료인만 해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감염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하지만 타투이스트들은 자격과 위생 관리를 통해서 충분히 안전하게 시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타투유니온은 ‘의료인이 아니어도 타투를 위생적으로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자, 녹색병원과 함께 ‘타투이스트를 위한 감염관리 규정’을 만들었다. 타투이스트들이 보건상 위험을 알고, 위생적으로 타투 시술을 함으로써 우려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타투 시술용 멸균 장갑과 거즈 ⓒ주용성

이들은 소독을 넘어선 ‘완전 멸균’ 수준의 엄격한 지침을 마련했다. 소독이 미생물을 제거하는 과정이라면, ‘완전 멸균’은 균의 아포(포자)를 포함한 미생물의 모든 형태를 제거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팔을 가르키며) 여기에 더러운 상처가 났잖아요. 여기를 알코올로 닦는 건 소독이에요. 균을 다 죽이는 건 아니란 말이죠. 그런데 멸균은 아예 균 자체가 하나도 없는 겁니다. 의사들이 수술할 때 멸균 고무장갑(라텍스 장갑) 끼고 준비하는 거랑 같은 방식입니다.”(임상혁 원장 인터뷰 2023. 3. 8.)

‘타투이스트 감염관리규정’은 손 위생, 타투 시술 기구 소독과 멸균, 피부 소독, 멸균기 관리 등에 필요한 규정을 상세하게 명시해놓았다. 녹색병원과 타투유니온은 ‘그린타투센터’를 설립해 매달 타투이스트 교육 및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타투 문화가 자리 잡은 유럽과 미국의 경우 면허제나 신고제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1998년부터 타투를 합법화해 약 25년 동안 운영 중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뉴욕주 등은 자격증을 취득하면 합법적으로 타투 시술을 할 수 있다.

곽예람 변호사도 “미국 뉴욕처럼 보건위생 교육을 전제로 라이센스 취득 제도를 운영해도 충분히 감염 예방 관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해외처럼 면허제도를 운영하면서 위생기준을 명확히 설정하는 게 ‘음지화’를 막고 오히려 안전하게 타투 시술을 관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법무법인 오월 곽예람 변호사 ⓒ셜록

사실 한국에서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뿌리 깊다. ‘감염 위험성’보다 타투 합법화를 가로막는 더 큰 벽은 ‘아직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인식이다. 경범죄처벌법 등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녹아 있는 현행법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전신 문신이 있으면 군 입대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2021년 6월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1%가 ‘타투 합법화 법안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타투시장의 규모도 팽창 중이다. 한국타투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타투 및 반영구문신 시장의 규모는 약 2조 원에 달한다. 노동자는 약 12만 명, 시술 건수는 650만 건이다.

젊은 층 사이에선 타투는 이미 흔하다. 운동선수들의 타투는 해외와 국내를 망라하고 경기 중계 등을 통해 자주 노출되곤 한다. 타투를 한 연예인은 더 쉽게 볼 수 있다.

중장년층도 예외가 아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2021년 11월 작성한 ‘타투업법’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50대 이상도 8.8%는 서화타투(문신)를, 26.4%는 반영구문신을 경험했다.

정치권에서도 타투를 볼 수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이미지 변신 차원에서 눈썹 문신을 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 표현대로, 문신은 더 이상 조직폭력배 등 범죄자의 전유물이 아닌 셈이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22일 타투이스트 직업코드 ‘42299’를 왼쪽 팔에 새겼다. ⓒ류호정의원실

윤지수 신임 타투유니온 지회장은 “부모와 함께 타투 시술을 받으러 오는 성인 손님을 보고 타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체감한다”고 말했다. 7년차 타투이스트인 윤 지회장은 지난달 27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이삼십 대 자녀가 한 타투를 보고 부모님도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제 손님 중에도 따님과 같이 온 어머니가 계셨는데요. 나중에 어머니가 타투에 흠뻑 빠지셔서 따님보다 더 자주 오시곤 했습니다.”(윤지수 지회장 인터뷰 2023. 3. 9.)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21대 국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타투 합법화 관련 법안이 모두 8개나 발의됐다. 강기윤·엄태영·최영희·홍석준 의원(이상 국민의힘), 박주민·송재호·최종윤 의원(이상 더불어민주당), 류호정 의원(정의당)이 각각 발의했다.

정부도 사회적 흐름을 발 빠르게 쫓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10월 규제 혁신 차원에서 문신을 통한 반영구 화장 시술을 피부관리실이나 미용실 같은 미용업소에서 시행하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광주광역시에 ‘K-타투 규제자유특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K-타투 규제자유특구는 현재 불법인 비의료인의 문신 행위가 가능하도록 지정하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계명문화대는 2023년 타투디자인학과를 국내 최초로 신설했다.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표현력을 갖춘 전문 타투디자이너 양성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하는 타투 시술은 여전히 불법이다.

윤지수 타투유니온 신임 지회장 ⓒ셜록

“타투를 불법으로 규정한 한국의 현실 때문에 해외의 스카웃 제의를 거절하지 않고 한국을 떠나는 타투이스트들이 존재합니다. 오히려 해외에선 얇은 선을 갖고 피부에 그림을 그리는 ‘K-타투’를 신기하게 여기면서 한국 타투이스트들을 인정해주는 분위기예요.”(윤지수 지회장 인터뷰 2023. 3. 9.)

이달 중, 의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한 반영구문신사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받을 예정이다. 판결을 앞두고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22일 타투이스트 직업코드 ‘42299’를 왼쪽 팔에 새겼다. 류 의원은 “타투이스트의 노동자성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해결책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타투이스트들은 타투라는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이들을 불법으로 규정해, 누군가는 신고와 협박을 당하고, 또 누군가는 생을 스스로 마치기도 합니다. 타투이스트들이 재판받고, 벌금을 내야 하는 이 문제들을 정치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류호정 의원 인터뷰 2023. 2. 22.)

류 의원의 퍼포먼스 이후, SNS에선 그와 같이 ‘42299’를 몸에 새긴 타투이스트들의 인증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13일 기준, 약 20명의 타투이스트들이 SNS에 인증샷을 올렸다.

‘42299’를 몸에 새긴 타투이스트들의 인증 릴레이가 SNS에 이어지고 있다. ⓒ타투유니온 제공

지난 8일 타투유니온은 ‘타투를 의료행위로 본 의료법은 합헌’이라 결정한 헌법재판관 5명(유남석, 이선애, 이은애, 이종석, 문형배)을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 후보로 추천했다. 노벨상을 패러디해 만들어진 이그노벨상은 “반복할 수 없거나 반복해선 안 되는” 업적에 수여하는 ‘불명예스러운(Ignoble)’ 상이다.

한쪽에선 ‘K-타투’라 자랑하고, 또 다른 쪽에선 ‘불법’이라 처벌하는 모순. 그 아래서 타투이스트는 존재를 부정당하고 있다. 그들을 따라다니는 ‘불법’의 꼬리표가 여전한 오늘, “문신은 (…) 예술로 평가받고 있다”던 대통령 인수위의 자랑이 더 공허하게 맴돈다.

“타투는 울타리 바깥에 있는 노동입니다. 타투이스트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류호정 의원 인터뷰 2023. 2. 22.)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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