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고등학교 1학년이던 박민지(가명) 씨는 자신의 모교 서울 광남중학교에 다니는 동생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동생이 광남중에서 ‘유명한’ A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과거에도 수업 시간에 성희롱 발언을 해 문제가 됐던 교사가 친동생에게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었다. 박민지 씨는 결심했다. ‘스쿨미투’ 고발을 해야겠다고. 동생도 가족도 친구도 모르게 박민지 씨는 광남중 스쿨미투 포스트잇 운동을 시작했다.
“가해교사는 제가 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신체 접촉은 크게 없었어요. 그런데 동생과 같은 학년, 같은 반 학생들을 노래방에 데려가고 신체 접촉을 한 거죠.”
박민지 씨의 어머니는 교육청에서 일하고 있었다. 동생은 중학교 3학년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어머니의 경력에 혹시나 흠이 생길까, 동생이 학교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했다.
“동생 모르게 광남중 후배들을 통해서 학교에서 포스트잇 운동을 진행했어요. 동생이 알면 학교에서 고발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피해가 갈 것 같았어요.”
박민지 씨 동생을 성추행한 A 교사. 그는 박민지 씨가 중학교에 다닐 때도 여학생들 사이에서 ‘걸리면 안 되는 선생님’이었다.
“저는 A 교사 수업을 들은 적 없어서 직접 피해를 본 건 없었지만, 피해 사실을 더 제보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A 교사의 언행에 문제가 있다는 건)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어요.”
A 교사의 성희롱, 성추행은 만연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미처 항의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입시에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광남중은 명문고를 많이 보내는 학교로 유명했어요. 선생님에게 자신의 평가가 달려있으니까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한 거예요. 그러니까 A 교사가 ‘예쁜 여학생이 내 무릎에 앉으면 수행평가 만점을 주겠다’ 같은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거죠.”
박민지 씨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동생과 후배들 대신 스쿨미투 폭로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박민지 씨는 스쿨미투 공론화를 위해 SNS 계정을 개설하고, 포스트잇 운동을 제안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포스트잇 운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쏟아졌다. 재학생은 A 교사가 근무하는 교무실 문 앞, 복도, 계단에, 졸업생은 학교 주변 돌담길에 포스트잇을 빼곡히 붙였다. 메모지 안에는 A 교사의 성희롱, 성추행을 고발하는 내용이 적혔다.
2018년 박민지 씨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최대한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스쿨미투 제보자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방송국 스쿨미투 다큐멘터리에 얼굴과 목소리를 가리고 출연했다.
비밀을 간직한 삶은 순탄치 않았다. 가족들에게 들킬까 늘 가슴 졸여야 했다. 가족과 함께 식사하다 TV 뉴스에 자신의 인터뷰 장면이 나와 깜짝 놀란 적도 있다.
“가족들과 다 같이 밥을 먹고 있었어요. 제 실루엣과 음성 변조한 목소리가 뉴스 화면에 나왔는데, 순간 체할 뻔했어요. 엄마는 알아볼 줄 알았는데, 못 알아보더라고요.”
스쿨미투 고발 이후, 박민지 씨와 광남중 재학생들은 2차가해에 몸살을 앓았다. 사방에서 스쿨미투 운동을 공격했다.
학교에선 교사들이 스쿨미투 고발자를 색출하려고 애썼다. 고발자로 추정되는 학생들을 면담 자리에 불러 ‘네가 그랬냐’고 추궁해댔다.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보려고 하거나, 교내 포스트잇을 붙이는 학생들에게 ‘너희 얼굴 다 외웠다’라며 협박하는 경우도 있었다.
“포스트잇을 붙일 때 선생님 눈에 안 띄게 하려고 일부러 붙이는 시간도 정해서 공지할 정도였어요. 다행히 한 명도 안 잡혔어요. 만약 제가 학교에 있었다면 잡혔을지도 몰라요.”
남학생들의 2차가해도 심각했다. 박민지 씨가 운영하는 스쿨미투 고발 SNS 계정에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악플을 다는 식이었다. 학교에서는 포스트잇을 붙이는 학생들에게 압박을 가했다.
“스쿨미투 SNS 계정에 패륜적, 성적인 답글을 달고 가는 학생들이 있었어요. 포스트잇을 붙이는 학생들에게는 소위 ‘일진’ 남학생들이 와서 압박을 가했다고 후배들에게 많이 들었어요.”
학부모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학교에서 괜한 소란을 만든다는 의견, 피해자 편을 들어주는 의견이 대립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박민지 씨가 운영하는 스쿨미투 SNS 계정과 광남중 스쿨미투 기사에 댓글을 남겼다. 스쿨미투 운동이 학교와 지역의 명예를 실추한다는 투였다.
“학교 위상 떨어뜨리지 말라, 동네 소문 나쁘게 만들어서 집값 떨어뜨리지 말라는 학부모들이 있었어요. 반대로 ‘학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냐’며 학생들을 믿어주는 분들도 계셨어요.”
기자들의 배려 없는 취재 열기(?)도 상처로 남았다. 기자들은 학교 앞에 찾아와 재학생들을 붙잡고 무작정 질문을 쏟아냈다.
“기자들이 하교하는 학생들이 싫다는데도 붙잡고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인터뷰했어요. 후배에게 그런 연락을 받고 제가 학교 앞에 찾아가서, 그러지 말아달라고, 저에게 연락 달라고 (기자들) 명함을 다 받아온 적도 있었죠.”
2018년 서울시교육청은 광남중학교 특별장학에 착수했다. 교육청은 A 교사를 파면했다. A 교사는 파면 처분에 불복해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파면 처분 취소 소송을 냈으나, 지난해 9월 재판부는 파면이 정당하다고 최종 판결했다.
2019년 검찰은 A 교사를 불구속 기소했다. 2017년 1학기부터 2018년도 2학기까지 학생들에게 1년 6개월에 걸쳐 반복적으로 성희롱한 혐의다.
A 교사는 “방학은 쉬라고 있는 것인데 왜 학원을 다니고 난리야”라며 피해자의 팔 안쪽을 만지거나, “야동을 본 적 있냐, 남자든 여자든 크면서 야해져야 한다”, “나랑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으면 수행평가 점수를 잘 주겠다” 등 총 30회에 걸쳐 학생들에게 언어적·신체적인 방법으로 성희롱 등 성적 학대행위를 했다. 법원에서 인정된 사실들만 그렇다.
하지만 법원에서 인정한 증언은 일부에 불과했다. 더 많은 제보를 받았지만, 증인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 안에서 증인을 찾기 어려웠어요. 저는 이미 졸업한 학교 외부 사람이라 증인이 될 수 없었어요. 학생들이 잘못 걸려서 담임 추천서를 못 받으면 목표한 고등학교에 못 가고, 또 대학 입시까지 영향을 줄까봐 그랬던 것 같아요.”
A 교사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고,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스쿨미투가 일어난 지 4년 만에 가해교사에 대한 법적인 처벌이 마무리됐다.
“교사인 피고인이 중학생인 피해자들을 상대로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성희롱 등의 언행을 한 것으로, 범행기간 및 범행횟수 등에 비추어 그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하여 피해자들이 적지 않은 성적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꼈고, 성적 가치관과 판단능력이 확립되지 않은 피해자들의 정상적인 인격발달에 해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일체를 부인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2020. 10. 8. 서울동부지방법원 판결문 일부, 2019고단1618)
피해자들에게는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가해자는 당당하게 ‘파면이 부당하다’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피해자들은 오히려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까 가슴을 졸여야 했다. 학생들의 용기 있는 증언에, ‘동네 집값’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어른들도 있었다. 세상의 망각은 너무 빨랐고, 법적 처벌은 한참 더뎠다.
스쿨미투 이후 5년. 박민지 씨는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에게 스쿨미투는 학생들이 목소리를 낼 ‘기회’였다.
“교사들의 성폭력이 ‘잘못된 일’이라고 인식하는 시대가 왔어요. 스쿨미투 운동은 학생들이 스스로 가해교사들의 잘못된 행동을 인식하면서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해요.”
스쿨미투를 겪은 세대는 잘못된 일에 침묵하지 않는다. 박민지 씨는 고등학교에서도 스쿨미투의 힘을 체감했다. 광남중 스쿨미투 운동 이후, 박민지 씨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도 교내 불법촬영 사건이 일어났다. 박민지 씨는 광남중학교 출신 친구들이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을 보고, 스쿨미투의 영향력을 느꼈다.
“나와 주변 사람이 겪은 사건이라고 체감할수록 더욱 관심을 두게 돼요.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내기 더 수월해지는 거죠. 스쿨미투에 참여했던 중학생은 고등학생, 성인이 되면서 다음에 또다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더 이상 학교에서는, 성희롱, 성추행하는 선생님이 그냥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문 뒤에 숨지 못한다. 학생들의 인식이 변했고, 시대가 변했다.
“오래전부터 교사들이 학교에서 청소년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러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쿨미투는 전 국민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어요. 스쿨미투는 저희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악습이 모이고 모여서 이제야 터진 거죠. 부모님들은 성폭력 피해자가 자기 자녀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심각성을 인지했던 것 같아요. 더 이상 남 일이 아닌 거죠. 그래서 전 세대의 지지를 받은 게 아닐까요.”
박민지 씨의 말처럼, 부모 세대도 스쿨미투의 심각성에 공감했다. 미래의 학교 내 성폭력 피해자를 막기 위해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움직였다.
정치하는엄마들은 4년째 ‘학교명을 포함한 스쿨미투 처리 현황을 공개하라’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 8일 경기도교육청을 상대로 스쿨미투 처리현황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앞서 지난해 4월에는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승리했다.
“교육청이 (스쿨미투 처리 현황을) 공개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봐요. 투명하게 보여주는 게 오히려 교육청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꿀 기회라고 생각해요. 학교를 감시하는 게 교육청의 일이잖아요.”
박민지 씨의 말처럼 학생들은 강하다. 교사, 학생, 학부모 등 집단적인 2차가해를 견뎠고, 가해교사는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학생들이 나서서 제 손으로 일궈낸 성과다.
이제 학교 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변화한 모습을 보여야 할 차례다.
“스쿨미투 고발자들에게 어떤 말보다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가장 큰 위로가 될 것 같아요.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줘야죠.”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