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 시간 고민을 했습니다. 친구가 미투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주변 학교에서 스쿨미투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함께 위드유를 외쳤지만 끝내 저는 제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밤 악몽으로 저에게 그 사건은 되돌아왔습니다.”(2018. 10. 9. 한소윤 SNS 미투 게시글)

2018년 10월 고등학교 1학년 한소윤(가명) 씨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WeTee)’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같은 해 4월 용화여고를 시작으로 쏟아지는 스쿨미투에 ‘위드유(With You)’로 화답했다. 11월 3일 학생의날에 열린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집회 운영위원회의 일원이었고, 스쿨미투 운동을 이끄는 주역 중 한 명이었다.

한소윤 씨는 학교 내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위드유’를 외쳤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지워지지 않는 ‘미투’가 있었다. 이 고백은 활동가 한소윤이 아닌, 피해자 한소윤의 고백이다.

“잊으려 했지만 잊을 수 없었습니다. 제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중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제 책임이라는 생각이 매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털어내려 합니다. 당당해지려 합니다.”(2018. 10. 9. 한소윤 SNS 미투 게시글)

지난달 27일 미국에 있는 한소윤(가명) 씨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은 과거 스쿨미투 활동 당시 ⓒ한소윤(가명) 제공

2017년 봄, 중학교 3학년 1학기가 막 시작됐다. 새 학기의 두근거림. 한소윤 씨는 부산에 있는 한 중학교에 다녔다. 전교 1등, 친구들과 교우관계도 원만한 인기 있는 학생이었다. 남자친구 A와도 잘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다른 반 친구 2명이 한소윤 씨를 찾아왔다.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 중,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남자친구 A를 포함한 남자아이들 여섯 명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면서 큰 소리로 한소윤 씨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운동장에는 체육 수업을 하던 스무 명 정도의 다른 학생들도 있었다.

그날 한소윤 씨는 1교시부터 6교시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한소윤 씨를 향한 성적 대상화가 오래전부터 계속됐다는 사실을 이때 알게 됐다. 몰래 촬영한 사진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성적 대상화에 가담한 6명의 아이들. 남자친구 A, 친한 친구 3명, 그리고 나머지는 한 번도 말을 섞은 적 없는 아이들 2명이었다.

제가 알고 있던 세상이 부서지는 느낌이었어요. 제게 세상은 너무 예뻤고, 모두가 저를 사랑해주고, 누구와도 잘 지내고, 뭐 하나 잘못된 게 없었거든요. 사회의 차별이나 편견은 전혀 모르는 아이였죠.”(2023. 3. 27. 한소윤 인터뷰)

한소윤 씨는 담임선생님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털어놨고, 이후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과 면담 자리가 마련됐다.

“저에게 돌아온 대답은 ‘교내 성폭력 사건은 바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너의 미래, 학교의 명예, 친구들을 생각해서라도 피해사실이 없다고 보고하자’였어요.”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은 수업 시간 중간에 한소윤 씨를 불러댔다. 수업 도중 교실에서 불려 나가는 한소윤 씨에게 반 친구들의 이목이 쏠렸다. 그 순간보다 더 괴로웠던 건 선생님들의 ‘말’이었다.

“‘왜 예민하게 반응해서 일을 크게 만들어. 쿨하게 넘기지 그랬어.’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은 한소윤 씨의 외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남자애들이 그럴 만하게 생겼네. 네가 몸도 성숙하고, 얼굴도 인형 같고~.”

“저에게 돌아온 대답은, 너의 미래, 학교의 명예, 친구들을 생각해서라도 피해사실이 없다고 보고하자, 였어요” ⓒpixabay

한소윤 씨의 담임 선생님은 이런 상황을 두고볼 수 없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한소윤 씨와 단둘이서 사건 조사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한소윤 씨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제 경찰이 왔으니 나는 안전하구나, 살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쿨하게 넘기지 못했니?”

그놈의 쿨(Cool). 경찰은 말을 이어갔다.

네 또래 남자애들은 원래 그래. 참고 넘어가면 되는 것을…. 그 애들이 그런 말을 했다는 증거 녹음 파일도 없고, 사진 찍었다는 증거도 없어서 사실 처벌할 수 없을 거야. 다 네가 지어낸 말이라고 하면 어떡할래?”

경찰 조사를 마치고 교실을 나왔다.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날이었다.

“우산도 없이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어요. 차들이 웅덩이를 밟고 지나가서 튄 구정물인지 빗물인지 모르겠지만, 교복이 물에 흠뻑 젖었던 기억이 나요.”

다음 날부터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들은 사건에 관련된 학생들의 면담을 진행했다. 한소윤 씨, 성희롱 발언을 전해준 친구들 2명, 가해학생 6명을 수시로 불렀다. 한소윤 씨 친구들은 ‘익명’을 당부했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가해학생들에게 모든 실명을 공개하고, 조사 내용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때부터 한소윤 씨는 점심에 급식실에 발도 들이지 않았다.

“수백 개의 눈이 저를 쳐다보고, 수백 개의 입이 저를 향해 수군거리는 급식실에는 죽어도 가기 싫었어요. 혼자 교실 창가에 앉아서 집에서 가져온 고구마와 계란만 먹었어요.”

서울시교육청 앞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집회 2018.11.3. ⓒ위티

사건 이후, 가족들도 한소윤 씨의 평소 옷차림을 지적했다. 아무렇지 않게 입던 교복도 거울 앞에 서면 유난히 몸의 굴곡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였고, 좋아하는 흰 티셔츠도 몸이 비치는 것 같아 싫어졌다.

“그해 여름 내내 밖에 잘 안 나갔어요. 아침마다 옷을 여러 번 갈아입으면서 저를 단속했어요. 제 몸이 이런 일을 만든 원인이라고 생각해서 제 몸을 너무 싫어했어요.”

가해학생 6명은 결국 징계를 받지 않았다. 각자 편지 한 통씩 써서 한소윤 씨 손에 쥐여주는 게 끝이었다. 한소윤 씨는 편지 6통을 가방에 구겨넣고, 다시 꺼내 보지 않았다.

한소윤 씨의 기억은 흐려졌다. 사건 이외에 중학교 시절 추억이 딱히 기억나지 않았다. 떠올리려고 노력해도 검은색 화면만 눈에 보일 뿐. 한소윤 씨는 부산을 벗어나 기숙사가 있는 다른 지역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하루 16~18시간가량 공부에 매진했다.

“부산을 떠나고 싶었어요. 다신 이 사람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어요. 저를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저는 잘 기억 안 나는데, 엄마는 제가 1년 동안 새벽 2시에 자고 4시에 일어나서 공부만 했대요. 끊임없이 스스로 혹사하는 느낌으로…”

부산을 떠나 고등학교에 다니던 한소윤(가명) 씨에게 또 한 번의 ‘사건’이 일어난다 ⓒ한소윤(가명) 제공

1년 뒤, 한소윤 씨는 부산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고등학교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은 잊고 지냈다. 그러다 여자 기숙사 ‘불법촬영’ 사건이 일어났다.

2018년 1학기 한 학생이 인터넷에서 우연히 어떤 사진을 발견했다. 여자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누군가 건물 밖에서 촬영해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 불법촬영물은 마치 연재되는 것처럼 지난 3년간 SNS와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녔다.

“SNS에 ‘함부로 커튼을 열고 생활하면 안 되는 이유’ 이런 식으로 제목을 붙여서 사진들이 돌아다녔어요. 그중 한 장이 우리 학교 기숙사 전면 사진이었던 거예요.”

학교 선생님들은 교실에서 ‘내가 찍힌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 들어보라며, 공개적인 피해 조사를 시작했다. 사건이 알려지자, 일부 남학생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해 사진을 찾아보고, 사진 속 피해 여학생들을 특정했다. 여학생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선생님들은 여학생들이 커튼을 열어둔 채 옷을 갈아입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침부터 교내에는 여학생들은 커튼을 닫고 생활하라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그때 ‘아차’ 싶었어요.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었죠. 주변에서 여학생들에게 하는 말을 듣고 그제야 제가 중학교 시절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다시 기억났어요.”

여성의날 맞이 스쿨미투 기자회견 2019. 3. 8. ⓒ위티

두 번 좌절할 수 없었다. 한소윤 씨는 불법촬영 문제에 적극 대응했다. 열 명 남짓 여학생들을 모아 사비를 들여서 불법촬영 카메라 탐지기를 샀다. 학생들이 전교를 돌아다니며 검색을 실시했다.

불법 촬영 카메라는 학교 안에서 찾지 못했다. 학교 측은 사건 조사 결과를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여학생들을 위한 심리 상담 지원도 없었다. 여학생들은 학교 밖에서 카메라를 찾아냈다.

“여학생들이 찾아낸 결과 학교 근처 뒷산에 외부인이 카메라를 설치하고 3년 동안 여자 기숙사를 촬영한 거였어요.”

‘여성 인권’이라는 말도 들어본 적 없는 고등학생들은 불법 촬영 카메라를 찾아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내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었다. 이들은 ‘페미니스트’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페미니즘 동아리는 60여 명이 모인, 전교에서 가장 큰 동아리가 됐어요. 그게 제 페미니즘 활동의 시작이었죠. 저와 친구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이후에는 모여서 ‘불편’을 이야기하는 모임이 됐어요.”

한소윤 씨와 친구들은 각자 불편했던 경험을 나누면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의 전신인 ‘청소년페미니즘모임(청페모)’에 가입했다. 2018년 10월 스쿨미투 운동이 전국에 퍼지고, 학생들이 첫 집회를 준비하던 시점이었다.

“저는 스쿨미투 발언자, 집회 운영위원으로 참여했어요. 위티 멤버들과 스쿨미투 운동 전개 과정을 같이 이끌어갔어요.”

학업에 집중해야 할 시기, 학교 측과 한소윤 씨의 어머니는 스쿨미투 운동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한소윤 씨는 외출하려면 선생님의 허락이 필요했다. 평일에 스쿨미투 집회가 있는 날이면, 선생님을 설득해야 했다.

“지금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학교에 다니던 당시에는 ‘학생이 학교장 허가 없이 정치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고, 그게 나중에 협박으로 돌아왔어요.”

양지혜 위티 공동대표(왼쪽)와 스쿨미투 활동가들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UN 아동권리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다 ⓒ위티

한소윤 씨가 몸담은 청페모는 유엔(UN)아동권리위원회에 스쿨미투와 관련된 보고서를 2019년 제출했다. 청페모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 등 3명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사전 심의에 참석해 한국의 스쿨미투에 대해 직접 발표했다.

스쿨미투 운동은 유엔(UN) 아동권리위원회 본심의 의제로 채택됐다. 유엔은 집단 괴롭힘, 온라인 폭력, 교사 등에 의한 성폭력에 대해 어떤 대책을 했는지 밝혀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정부는 시위할 때 연락 한번 없더니, 유엔에 다녀오고 나서 교육부와 여성가족부에서 비공식 간담회에 참석해달라고 연락했어요. 당시 스쿨미투 대응 매뉴얼이 없던 때라, 매뉴얼 제작 과정에 대한 의견을 내러 청소년 대표로 참석했어요.”

청페모가 유엔에 다녀온 뒤, 스쿨미투에 대한 한국 정치권의 관심은 높아졌다. 한소윤 씨는 청소년 대표로 청와대에서 열린 비공식 간담회에 참석했다.

제가 간담회에서 의견을 내면 가장 많이 들었던 건 ‘몰라서 그렇다’는 말이었어요. 정부가 청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에 공감하면서 제대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아니었죠. 국제사회 눈치를 보느라 형식적으로 자리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쿨미투 운동 과정에서 한소윤 씨는 청소년, 학생, 미성년자 신분의 한계를 느꼈다. 비공식 간담회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 진학이 필수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스쿨미투 운동과 학업을 끝까지 병행했던 이유도 ‘학생’의 도리를 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회운동 한다고 학교에 안 나가거나, 선생님에게 대드는 이미지가 아니라고 학교에서 인정받고 싶었어요. 모범적인 생활과 사회운동을 동시에 해내야겠다고 신경 썼던 것도 학생 신분의 한계라고 봐요.”

“스쿨미투 운동이 가져온 변화는 ‘청소년의 사회적 위치’가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일러스트 신지현. ⓒ셜록

한소윤 씨는 스쿨미투 운동을 하던 당시, 여러 한계에 부딪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스쿨미투 운동이 가져온 변화는 ‘청소년의 사회적 위치’가 달라졌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스쿨미투 운동은 선거권 연령 하향 이슈와 시기가 겹쳤어요. 이전에는 청소년이 정치, 사회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했던 것 같아요. 청소년 인권도 고려 대상도 아니었고요. 하지만 스쿨미투가 일어난 후 선거권 연령이 하향됐고, 청소년 의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어요. 아동성범죄도 확실히 스쿨미투 이후로 논의 속도가 빨라졌고요.”

한소윤 씨의 올해 나이는 22살. 미국 워싱턴 D.C.에서 대학을 다니며 정치·사회학 공부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위티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

그는 얼마 전 한국에 잠시 머물렀다. 부산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나 한 식당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중학교 시절 성희롱 가해자를 마주쳤다.

“그때 든 생각은 ‘왜 저런 사람에게 내 아까운 시간을 잃어야 했을까’예요. 가해자에게 고마운 건 절대 아니지만,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스쿨미투 활동을 시작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사람을 미워할 필요는 없지만, 용서할 필요도 없죠.

다만, 안타까운 일을 극복하고 더 발전하는 기회로 만든 저에게 고마워요. 피해자들은 잊고 사는 게 아니라 과거의 저를 미워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살아가요. 모두 드라마 ‘더 글로리’ 문동은처럼 복수할 수는 없잖아요.”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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