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처럼 길었던 누명의 시간에 비하면 법원 판결은 순간이었다.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동생 대신 피고인 자리에 형은 판사의 선고를 들었다.

피고인은 무죄입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판사의 한마디, 정작 형은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형은 한국어를 못한다. 옆에 통역이 일본어로 바꿔 말해줬다.

피고인 김승효는 무죄입니다.”

서울고등법원은 31 오후 재일교포 유학생 김승효(68)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김승효는 44 만에 간첩 누명을 벗었다.

영화 <자백> 주인공 명인 김승효는 1974 서울대학교로 유학을 왔다가 입학 2개월 만에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옷이 벗겨진 19일간 고문을 받고 간첩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국 법원은 징역 12 자격정지 12년을 선고했다. 김승효는 1981 광복절특사로 풀려났다. 일본으로 돌아간 고문후유증으로 조현병을 앓았다. 정신병원에서 21년을 살았다.

그의 시간을 정리하면 이렇다.

서울대학에서 유학생활 – 2개월.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감금된 시간 – 19일.

감옥에서 보낸 시간 – 7년 3개월.

정신병원에서 보낸 시간 – 21년.

누명 벗기까지 걸린 시간 – 44년.

여전히 조현병을 앓는 동생 대신 법정에 김승홍은 사과를 받고 싶었다. 동생을 망가뜨린 책임이 있는 누구에게라도 말이다.

44 만에 무죄를 선고한 한국 법원은 끝내미안하다 말을 하지 않았다. “피고인의 잃어버린 삶과 아픔에 공감한다 위로의 말도 하지 않았다. “유감스럽다 립서비스도 하지 않았다.

고문 당하는 사람들, 수사기관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존재는 푸른 하늘의 하느님이 아니다. 법대 위에 앉은 판사님이다. 김승효도 그랬다. 2 때부터 서면과 진술로 무죄를 주장했다.

중앙정보부의 조서를 검찰이 베껴 기소장을 만들었고, 이걸 복사하기해서 유죄 판결문 만든 이들이 판사들이다. 김승효는당신은 무죄입니다라는 소리를 2018년이 아니라, 1974년에 듣고 싶었다.

그때 말을 하지 않은 한국 법원은 립서비스도 생략할 만큼 정말 당당한가?

한국어를 모르는 김승홍은 법정을 나온 뒤에야 판사가 동생에게 사과하지 않았다는 알아차렸다. 동생은 20 초반에 한국으로 유학을 갔다가미쳐서집에 돌아왔다. 70 노인이 거의 동생은 여전히미쳐있다.

김승효의 형 김승홍이 지난 7월 20일 결심 공판 최후 진술을 준비하며 동생이 나오는 영화 <자백>을 다시 보고 있다. ©셜록

동생을 생각하면 형은 가슴이 아파 미칠 지경이다. 형은 31일에도 울먹였다.

저희 부모님은 동생이 누명 벗는 보고 돌아가셨습니다. 대한민국은 저희 형제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릴 있도록 책임감을 갖고 사과하길 바랍니다.”

간첩 누명 이후 한국어를 잊은 김승효가 40 만에 중얼거린 한국어가 있다.

나는 무죄야.”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44 만에 한국 법원이 했는데, 정작 김승효는 말을 듣지 못했다. 소식을 전하며 어떻게 설명을 해도동생은 알아듣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형은 말했다.

그걸 생각하면 형은 가슴이 아파 미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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